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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볼일을 마친 나는 박규환과 함께 동쪽 펍으로 복귀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룹원들이 보였다.

다들 목이 말랐는지 음료 잔을 들고 하나씩 들고 있었다.

정우 녀석이 맥주잔을 들어 올리며 내게 말했다.

“여! 왔냐. 어? 도깨비 군인도 데리고 왔네.”

“응. 저번에 소환수로 만든 사람이야. 그나저나 웬 맥주?”

“마이클이 한잔하자고 해서. 목 좀 축이고 있었지.”

“좋네.”

마이클이 맥주잔을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천재 킴도 한 잔?”

“아니. 나는 밥부터 먹어야 할 것 같아. 움직였더니 배고프네.”

나는 의자를 끌어 앉았다.

유소라가 눈치를 보며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소라씨. 못 마시면 안 먹어도 돼요.”

“예?”

“분위기 맞추려고 억지로 먹을 필요 없어요.”

“아….”

마이클이 말을 이었다.

“천재킴 노노! 우리 억지로 안 먹였어요우. 소라유 지금 다섯 잔 먹었다.”

“응? 다섯 잔?”

“다섯 잔.”

나는 유소라의 얼굴을 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발그스레한 게 확실하게 술을 많이 마신 사람 같았다.

유소라가 수줍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천재씨도 한잔하세요.”

“…… 괜찮습니다.”

비에 젖은 코트를 벗어 의자 머리에 걸쳤다. 축 늘어진 코트에서 물이 떨어져 내려 땅을 적셨다.

피곤함을 느낀 나는 의자에 걸터앉아 정우에게 물었다.

“방은 잘 알아봤어?”

“어. 북쪽 펍에서 열흘 다 합쳐서 팔백 제니에 준대.”

“팔백 제니….”

“가격 괜찮지?”

나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비싸네.”

“어? 팔백 제니가 비싸? 방 세 개 열흘인데.”

“비싸지. 마이클, 너는 얼마에 준대?”

“외국인 할인 붙여서 열흘에 오천 제니에 준다고 했어요우.”

그게 할인이냐.

나는 무심한 표정으로 말을 흘렸다.

“서쪽 펍에서는, 백 제니에 준대.”

마정우가 맥주잔을 든 채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 한 방에 백 제니? 완전 개꿀이네. 세 개 다 합쳐봤자 삼백 제니이잖아?”

“아니. 그냥 백 제니.”

“그냥 백 제니?”

“세 방 전부 합쳐서 열흘에 백 제니. 괜찮지?”

마정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 싼 가격에 숙소를 얻으리라고 생각지 못했으니 말이다.

정우가 혀를 내두르며 이마를 ‘탁’ 쳤다.

“미쳤네. 백 제니에 그게 가능해? 뭐 칼이라도 들이밀었냐?”

나는 방긋 웃으며 정우의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꼴깍.

캬!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 빨리 다 마시고 서쪽 펍으로 자리를 옮기자.”

“오케이. 가는 길에 상점 좀 다녀가자. 필요한 물건 좀 살 겸.”

“…… 그래.”

* * * * *

비가 그쳤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동쪽 펍에서 나와 상점 거리로 자리를 이동했다.

마을 분수대 근처에 있는 상점 거리는 무기 상점부터 해서 방어구와 식료품까지 전부 다루는 일종의 종합 시장이다.

‘멸망의 땅’ 플레이어들은 이곳을 이렇게 부른다.

[사짜들의 거리]

물론 시장의 진짜 이름은 이게 아니다. ‘평화시장’이라는 이름이 따로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이런 이름을 사용하게 된 이유는, 모든 물건에 가격이 붙어있지 않아서다.

붙어있는 것은 재활용된 중고 아이템뿐.

구매자도 판매자도 가격을 모른다. 형성되어 있지 않은 시세를 서로 대화를 통해 풀어간다.

이게 이 거리의 암묵적인 룰이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자 각종 과일과 식료품들이 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에게 친숙한 길거리 음식인 붕어빵과 핫도그 등 여러 가지 간식거리도 있었다.

출출했던 나는 붕어빵 상인에게 말을 걸었다.

“붕어빵 한 봉지에 얼마에요?”

돌아오는 NPC 아주머니의 딱딱한 대답.

“사는 놈이 알지, 파는 년이 어떻게 알아유?”

“…… 제니 세 개 어때요?”

아주머니가 무심한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냅둬유. 말려서 장작으로 쓸 테니깐.”

“…… 제니 다섯 개는요?”

아주머니가 면장갑을 접어서 땅에 던졌다.

팍!

“내가 붕어빵 장사를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반죽 값도 안 나오는 거 내가 왜 하고 있나 몰라!”

“…… 그럼 제니 열 개는요?”

붕어빵 아줌마가 입 꼬리를 올렸다.

“그렇게 가지고 가고 싶으면 가지가유.”

“…… 예.”

[붕어빵 4개를 10제니에 구입합니다.]

붕어빵을 숙소 1인실보다 더욱 비싼 값을 주었다.

다른 이들이 보면 미친놈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먹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마치 온라인 몰에서 의류를 몇천 원 싸게 구입하기 위해 장바구니에 한가득 담아두고 한참을 고민하지만.

치킨 이만 원짜리는 서슴없이 배달시키는 마음 같은 거다.

내가 붕어빵을 크게 베어 물자 정우 녀석이 손을 내밀었다.

“하나만.”

“그래. 마이클, 소라씨도 하나씩 먹어요.”

나는 붕어빵을 모두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콩 한 쪽도 반으로 나눠 먹는다고, 같은 그룹원을 챙기는 것이 리더 플레이어로서의 마음가짐이라 생각했다.

시장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황토색 벽돌로 만들어진 무기 상점과 방어구 상점이 보였다.

간판에 칼이 그려져 있는 곳이 무기 상점. 방패가 그려져 있는 곳이 방어구 상점이었다.

정우와 마이클이 무기 상점을 확인하는 동안.

나는 유소라와 함께 방어구 상점에 들렀다.

있을지 모르겠지만.

남아있다면 내게 최강의 무기라고도 불릴 수 있는 아이템을 얻을 수 있으니깐.

달그닥.

가볍게 나무 문을 밀고 들어가자.

“어서 오십시오!”

삼각 두건에 앞치마를 두른 아저씨가 활기차게 소리쳤다.

“안녕하세요! 저희 스타박스 방어구 상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천천히 둘러보도록 하십쇼.”

“예.”

방어구 상점의 초입에는 여럿 의류 매장처럼 가지각색의 클래스별 갑주와 투구, 방패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나보다 먼저 온 플레이어들이 상점을 거닐고 있었다. 나이대로 보아 삼십 대 중반 또는 후반.

많아봤자 사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정네 둘이었다.

‘네크로맨서?’

해골로 만들어진 갑주와 커다란 낫을 들고 있었다.

게임 초반인데 대놓고 나 네크로맨서요! 하고 외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을 못 본 척 무시하고 방어구 상점의 제일 깊은 곳을 향해 걸었다.

“천재 씨. 여기는 방어구를 사는 곳인가요?”

“예. 소라 씨 방어구는…. 아! 마이클한테 괜찮은 게 있으니 그걸 받으면 될 거예요.”

“아….”

“앞으로 소라씨는 방어구는 살 필요 없을 거예요. 간호사 클래스는 제작해서 사용하는 쪽이 효율이 좋으니까요.”

“그럼…. 천재 씨 방어구 사러 오신 건가요?”

“방어구… 는 아니고…. 음…. 무기 사러 왔습니다. 무기.”

“무기요? 여기는 방어구 상점이라면서요.”

나는 활짝 웃었다.

유소라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잠깐 지었지만, 굳이 말을 잇지는 않았다.

내가 하는 행동에 의문점을 품어 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 왜 안 보이는 거지.”

“옷을 찾으시는 거예요?”

“옷은 아니고. 악세사리에요.”

“악세사리?”

“예.”

구석으로 이동할수록 오래된 물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걷는 만큼 먼지의 두께가 점점 높아졌다.

상점의 끝에 도착했을 때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 물건들은 골동품이라 생각될 정도로 변색되고 망가진 방어구들이었다.

나는 그사이를 뒤집었다.

쿨럭- 쿨럭-

먼지가 흩날리자 유소라가 소매로 입과 코를 막으며 기침을 했다.

“처, 천재씨. 여기 있는 물건들은 쓰지 못할 것 같은데요. 깨지고, 변색되고. 그냥 돈 좀 주고 새 물건 사시는 게 어때요?”

“……”

나는 대답없이 계속해서 방어구를 뒤집었다.

먼지 때문에 눈이 따가웠지만 그만큼 값어치가 있는 물건이 이 상점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한참 동안 방어구 상점의 골동품 코너를 확인했다.

쓸 만한 아이템들이 여럿 보였지만 모두 옆으로 치워냈다.

내 목표는 방어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이 그 물건을 가져갔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털썩.

커다란 원형의 방패 사이에 숨겨져 있던 뿔피리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정체 모를 동물의 뼈로 만든 피리.

“좋았어!”

나는 환한 미소로 피리의 먼지를 털어내며 줄에 붙어있는 상표를 읽었다.

[NOGARD]

유소라가 내 옆으로 가까이 붙어 단어를 소리 내어 읽었다.

“노가르드? 이게 무기인가요?”

“예. 이거에요.”

“제 눈에는 뿔피리로 보이는데요.”

“…… 그렇기도 하죠. 자- 이제 계산하러 갈까요.”

계산대 앞에 서자 방어구 상점의 주인이 먼지떨이를 내려놓으며 내게 말했다.

“물건은 고르셨습니까?”

“예. 이 물건을 사고 싶은데요.”

“자 보자…. 응? 이걸 사신다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방어구 상점의 주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뿔피리를 집어 들었다.

물걸레로 닦아도 찌든 때가 벗겨지지 않을 정도로 깊게 변색 되었다.

다른 상점이었다면 진즉에 버렸을 법한 골동품.

관리가 안 되는 이곳에서만 판매하는 물건이다.

그가 줄에 붙어있는 상표명을 보더니 내게 말했다.

“노가르드….”

“얼마인가요?”

“처음 보는 상표명인데. 우선 가격표에는 만 제니라고 적혀 있군요.”

“지금도 그 가격과 동일한가요?”

“흐음…. 잠시만 기다려주시지요.”

그가 뿔피리를 있는 힘껏 불어 보았다. 숨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입구의 반대편에서 검은 먼지가 쏟아져 나왔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듯 말이다.

-콜록! 콜록!

“아이고…. 소리도 제대로 안 나는구만. 정말 이 물건을 구매하시려는 겁니까?”

“예. 마음에 들어요.”

“…… 후우. 그래서, 얼마에 구입하고 싶으십니까?”

제안이 들어왔다.

[시스템 메시지]

[상점 주인 김흥정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이 거리에서 만만하지 않은 상인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장사의 달인.

김흥정.

강아지의 오줌을 윤활제라며 갑옷에 발라서 팔 만큼 머리가 약아빠진 NPC다.

우선은 진지한 톤으로 그에게 말했다.

“천 제니 드리죠.”

상급 방어구에 속하는 가격이다.

“천 제니? 아니 가격표에 명시되어 있는 금액이 만 제니인데요!”

“그건 임시로 적어놓은 가격이잖아요. 몬스터 유인할 때 쓰는 피리를 누가 만 제니에 사요.”

김흥정이 머리를 긁적였다.

“…… 그래도 십 분의 일 가격은 너무한 거 아닙니까? 어떤 동물의 뿔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메이커인데요.”

“노가르드요?”

“예.”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사라진 브랜드인데 메이커값이 붙으면 되겠습니까. 옷도 한 철 지나면 가격이 절반으로 뚝 떨어지는데요.”

“사라진 브랜드?”

“예. 못 믿겠으면 핸드폰으로 검색해보세요. 찾아도 안 나올걸요.”

플레이어들은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지만. NPC들은 사용이 가능하다.

김흥정이 매서운 눈초리로 피리를 다시 확인하더니 핸드폰을 쥐어 들었다.

나는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괜히 툭툭 치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톡. 톡. 톡. 톡.

“없죠?”

“…… 없네요.”

“어차피 구석에 박아놓고 썩어버릴 물건. 천 제니에 주세요.”

“…… 팔천 제니. 어떠십니까? 새 제품의 팔 할인데요.”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천 제니. 피리가 사용하기 힘든 상태에다가 외관이 변색되어 소장 가치가 떨어집니다.”

“그런 물건을 왜 사려고 하시는 겁니까?”

“제가 피리 컬렉터여서요.”

“하…. 그럼 오천 제니. 딱 반 가격입니다. 이 이하는 절대 안 돼요.”

유소라가 말을 이었다.

“어머. 천재씨, 반 가격이래요.”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천 제니. 안 되면 그냥 가도록 하겠습니다.”

“하. 이 양반 참 이상한 고집이 있네. 만 제니에서 오천 제니로 깎았으면 나라도 사겠다! 됐어! 부러뜨려서 갖다 버릴 테니깐 사지마.”

그가 열 받은 듯 얼굴을 붉혔다.

숙련된 장사꾼의 연기다.

“그럼 수고하십쇼.”

나는 고개 숙여 인사를 한 후 방어구 상점의 밖을 향해 걸었다.

정중한 태도와 천 제니가 아니면 구매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나무 문을 열고 나가려는 찰나.

“잠깐!”

김흥정이 소리쳤다.

“천오백 제니. 나도 먹고살아야 하잖아? 응?”

“…… 천 이백 제니.”

“천 사백!”

“천 백.”

“처, 천 삼백!”

“천 제니.”

“…… 하. 그래. 천 이백에 하자. 그럼 됐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 제니.”

* * * * *

유소라와 내가 방어구 상점에서 나왔다.

먼저 쇼핑을 끝낸 마정우와 마이클이 우리를 반겼다.

“살 건 다 샀고?”

“어. 너는?”

정우가 기깔나 보이는 도끼를 들어서 내게 보여주었다.

버서커 엑스?

손잡이에 있는 문양을 보니 전설의 대장장이라 불리던 ‘제라스’가 만든 도끼였다.

“와- 얼마 주고 샀냐?”

“삼천 제니. 거지 됐다.”

“그 정도면 잘 샀네. 마이클은?”

마이클이 유탄 발사기가 장착된 소총을 내게 보여주었다.

“사천 제니에 샀어요우.”

“그건 좀 비싸게 주고 샀네.”

정우가 내게 물었다.

“소라씨는?”

“안 샀어. 간호사 전용 무기하고 방어구는 직접 제작해서 쓰는 게 좋으니까.”

“아, 그러네. 그럼 너는?”

나는 해맑게 웃으며 허리춤에 꽂아놓은 피리를 집어 들었다.

“너 이거 뭔지 알지?”

“…… 이게 여기서 구하는 거였냐?”

나는 히죽 웃은 후 피리에 적혀 있는 글자를 좌측에서 우측이 아니라.

우측에서 좌측 순서로 읽었다.

[N O G A R D]

D. R. A. G. O. N.

초반에 구할 수 있는 네크로맨서 아이템 중 최강의 무기다.

[아기 용의 송곳니]

-공격력 +28

-모든 그룹원의 능력치 40% 증가.

*소환수 조합 스킬 능력이 활성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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