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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고개를 돌려보니 모히칸 머리에 실눈을 가진 육중한 몸의 플레이어가 손을 뻗어 내 앞길을 막았다.

“어이. 잠깐 나 좀 보지?”

생긴 것으로 보아 중국 사람인 것 같은데.

왜 한국 서버에 있는 거지? 라는 의문점이 드는 동시에 마이클의 얼굴이 생각났다.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이구나.’

나는 놈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전력을 살펴보았다.

장비를 보니 별것 아닌 플레이어 같다.

각목에 못을 박아넣은 무기와 금목걸이. 방어구라고 하기에도 힘든 흰색 런닝과 검은 반바지.

그냥 동네 양아치다.

“왜?”

“입장료. 주고 가야지.”

입장료?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입장료라니?”

“남의 집에 들어왔으면 입장료를 내놔야 할 것 아니야?”

“…… 여기가 네 집이라고?”

“그래. 너는 특별히 백 제니만 받도록 하마. 거래 신청!”

백 제니?

메인 이벤트가 아니면 한 번에 이십 제니 이상 벌기가 힘든데. 백 제니를 펍 입장료로 받는다니.

이 무슨 미친 말인가.

[시스템 메시지]

[‘리 커우러나’플레이어님이 ‘김천재’님께 거래를 신청합니다.]

[‘김천재’님의 거래 수락 OFF 상태로 인해 신청이 취소됩니다.]

바보 같은 놈.

세 번째 라운드에 도달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사람이 평소에 거래 창을 열어놓는 실수를 할 것 같나?

“뭐야? 거래 창을 닫아놨어?”

“…… 손 치워.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뭐?”

“손 치우라고.”

“시간 낭비? 너…. 내가 누군지 알고서 그런 말을 하는 거냐?”

“모르니깐 빨리 비켜.”

리 커우러나와 그의 그룹이 나를 비웃듯 크게 웃었다.

차림새를 보아 전부 한국인이 아닌 것 같은데, 숫자가 너무 많다.

슬쩍 주위를 둘러보니 그룹만 다를 뿐 놈들과 한패로 보이는 놈들이 스무 명 이상 있었다.

혼자 상대하기에는 수가 너무 많다.

위험하다.

리 커우러나가 내 머리 옆으로 각목을 휘두르며 말했다.

부웅- 부웅-

“상황 파악이 안 되나본데, 죽고 싶어?”

“……”

“곱상하게 생겨서 왜 이러실까? 겨우 백 제니에 목숨을 살려 준다는데. 어차피 두 번째 라운드를 끝냈을 때 보상 제니 받았을 거 아니야?”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일대일 대결이라면 순식간에 놈을 때려눕힐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랬다가는 녀석들의 집단 린치를 받게 될 것이다.

때리고 도망갈 수 있도록, 공간만 좀 더 넓었어도 좋았을 것을.

“왜 대답을 안 하셔? 백 제니, 내놓을 거야 말 거야?”

한숨을 쉬며 주위를 둘러보던 내 눈에 허공을 떠도는 파란색 창 하나가 보였다.

상태창 옆으로 말이다.

파란색 창의 설명을 전부 읽은 나는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어려운 상황이겠으니 혼자의 힘으론 할 수가 없다.]

이 말은 즉 혼자가 아니면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 못 준다. 아니, 안 준다. 너 같은 새끼한테 내가 제니를 왜 줘?”

“진짜 죽고 싶은가 보구나?”

“죽고 싶은 건 너겠지.”

돼지 같은 몸의 리 커우러나가 의자 뒤로 바짝 기대며 헛웃음을 뱉었다.

“뭐? 허? 허허허허…. 혹시 근처에 그룹원이 있냐?”

“아니.”

“그럼 어떻게 그런 자신감이 나올 수 있지?”

“글쎄.”

펍의 주인장이 바 안에서 서둘러 달려 나왔다. 그가 카우보이모자를 고쳐 잡으며 내게 어깨동무를 했다.

“자네, 이 마을에 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군인들도 저 패거리에게는 손을 못 대니 그냥 백 제니 주고 떠나게나.”

펍의 주인은 NPC가 아니었던가?

왜 이런 대사를 내뱉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말이 내 신경을 더욱 긁었다.

한낱 양아치 플레이어를 도와 저런 말을 하다니.

“주인장. 미안하게 됐어.”

“뭐라고?”

“가게가 좀 더러워질 것 같아.”

“…… 자네. 그러다 죽어.”

“죽는 건 내가 아니라. 저놈들이겠지.”

나는 희미하게 미소를 띠며 카우보이의 손을 밀어냈다.

그리곤 나만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박… 규… 환…. 이곳으로….”

리 커우러나가 내게 귀를 들이밀었다.

“뭐라고?”

“박… 규환…. 이곳으로…. 빨리 와라….”

“뭐라는 거야. 박 뭐? 네 친구 이름이냐? 좀 더 크게 말해봐.”

“…… 박규환. 이곳으로 빨리 와라.”

“박규환?”

[소환 목록]

-박규환(군인) 1/1 : 전투 중

와장창창!!

펍의 창문이 깨지며 검은 수트를 입은 강철 도깨비 가면의 사나이가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박규환의 등장과 동시에 펍 안에 있는 모두가 얼어붙었다.

시스템상 나와 만나지 못한 오 년이라는 세월 동안 녀석도 성장했는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냈다.

리 커우러나의 동료들이 각종 무기를 들고 일어났다.

쇠 파이프, 사시미, 삽을 갈아서 만든 창 등.

그 모습이 마치 삼류 중국 영화에 나오는 조연출 건달뱅이들 같았다.

-뭐, 뭐야. 저 새끼? 군인 아니야?

-군인이 이 시간에 왜 여기를….

-죽여! 혼자 온 것 같은데 죽이면 되는 거 아니야?

-맞아!

박규환이 등에 메어 있는 검을 천천히 빼 들었다.

스르르르르륵-

Z 바이러스의 감염체들을 상대하려 만든 은 장검.

날 끝이 잘 제련되어 있어 뼈가 두꺼운 오우거도 간단히 베어내는 무기다.

허리춤에 두 개의 권총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내가 없는 동안 수색조에서 활동했나 보다.

“박규환,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줘라.”

딱!

내가 손가락을 튕김과 동시에 박규환이 활동을 시작했다.

샥-

횡으로 휘두른 검날이 사시미를 쥐고 있는 적의 팔목을 베어냈다.

“크학!”

흔들리는 조명에 비친 박규환의 피 묻은 검날이 반짝였다.

스윽-!

좌측에서 우측으로 검을 휘두르는 방향에 서 있던 세 명의 적이 쓰러졌다.

뎅그랑!

쓰러진 놈 중 한 명이 쇠 파이프를 떨어트렸다.

“우두머리를 제압해라.”

박규환이 리 커우러나의 앞으로 빠르게 달려가.

샤샥!

두 번의 검 격을 날렸다.

검 끝이 리 커우러나의 얼굴을 십자가로 그었다.

깊게 베어내지 않았다.

그저 공포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피가 흘러내릴 만큼의 깊이를 주었다.

“거기까지.”

박규환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검을 집에 돌려 넣었다.

나는 그의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 들고.

탕!

머리 위로 탄을 발사했다.

“경고는 여기까지. 무릎을 꿇지 않는 자는 전부 죽이도록 하겠다.”

* * * * *

내 손바닥이 리 커우러나의 머리를 계속해서 내리쳤다.

팍! 팍! 팍! 팍!

“너희는 스누펜이랑 싸우지 않았다는 거지?”

“예….”

“군인들이 너희한테도 흐른 세월이 오 년이라고 했다는 거고?”

“맞습니다.”

의문점이 하나 풀렸다.

이곳에 소환된 플레이어가 갖게 되는 스토리의 흐름은 같다.

그렇다는 말은 모두가 공평한 위치에서 활동하게 된다는 것.

“펍의 주인은 어떻게 네 편으로 만든 거지?”

“제 편이 아니라 공포를 가르쳐 주었습니다.”“공포? NPC에게 어떻게 공포를 주지?”

리 커우러나가 멋쩍게 웃으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헤헤…. 이곳에 온 후 악명을 올리는 데 노력했습니다. 지금 이 마을의 악당! 하면 저희라고 알 정도로 말이죠.”

“악명을 올려서 어쩌려고?”

“상점 이용가가 줄어드니까요.”

악명이 높아지면 그에 겁을 먹은 NPC들의 행동이 달라진다.

하지만 열에 아홉은 군인에게 쫓기게 되거나 수용소에 잡혀갈 텐데.

굳이 상점 이용가를 줄이기 위해 악명을 높일 필요가 있나?

“악명이 높으면 나중에 곤란한 상황이 계속해서 발생할 텐데?”

리 커우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만. 지금 당장 죽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다음 라운드로 넘어가려면 제니를 최소한 삼천 개는 모아야 할 텐데.”

“……”

제니 삼천 개.

다음 라운드로 넘어갈 때 필요한 오프로드 자동차 구매 비용이다.

“너. 며칠짜리 코스를 선택했지?”

“한 달입니다.”

“그럼, 일일 임무만 수행하더라도 제니를 모을 수 있을 텐데?”

“…… 일일 임무는 Z 바이러스 감염체들을 상대해야 하지 않습니까? 위험한 일을 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놈의 머리통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찰싹!

“죽을래? 네가 아까 내게 한 행동은 위험한 일이 아니냐?”

“으…. 그거야 혼자 왔으니깐….”

“여럿이 왔으면 안 그랬을 거다?”

리 커우러나가 눈을 반짝였다.

“당연하지요.”

뼛속까지 양아치다.

“너, 여기 방은 얼마에 구했어?”

“방?”

“잘 거면 방을 구했을 거 아니야? 여관은 회복이 느리니 안 갔을 거고.”

“아, 숙소 말하는 거구나. 1박 기준으로 일인실 십오 제니. 이인실 이십오 제니. 이렇게 구했습니다.”

손뼉이 절로 쳐졌다.

“너, 지금 가서 주인장한테 방 빌린다고 말해. 기간은 열흘. 일인실 두 개. 이 인실 한 개. 금액은 방금 네가 말한 가격으로 지불 한다고 하고.”

리 커우러나가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저 지금 제니가 없는데요.”

“거래만 성사되면 지불은 내가 할게.”

“아하.”

“그리고 더 깎을 수 있으면 깎아 봐. 수고비를 줄 테니깐.”

“수고비?”

“아까 백 제니 달라고 했었지? 네가 백 제니 이상 깎으면. 내가 백 제니 줄게. 잘하면 더 줄 수도 있고.”

리 커우러나의 표정이 굳게 변하였다.

“…… 알겠습니다.”

그가 육중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온몸이 근육으로 되어있는 주한미군 마이클보다도 더욱 큰 키와 덩치였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어이, 주인장.”

린넨으로 총구를 닦아내고 있던 주인장이 눈을 내리깔았다.

“예? 예예.”

“방 좀 구하려고 하는데. 일인실 두 개. 이인실 한 개. 열흘이다.”

“총 세 방 맞습니까?”

“맞아. 얼만지 계산 좀 해봐.”

“…… 일인실 두 개가 열흘이니 삼백 제니. 이인실 한 개가 열흘이니 이백오십 제니. 총 오백오십 제니입니다.”

방 세 개가 합쳐서 열흘에 오백오십 제니.

개꿀이다.

리 커우러나가 주먹으로 바 테이블을 내리쳤다.

쾅!

“야!”

“흐이이익…. 왜, 왜 이러십니까.”

“장난치냐? 방을 세 개나 얻었는데 가격을 좀 깎아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잘한다!’

“우, 우선 진정하시지요.”

“다시 가격을 들어봐야 진정이 될 것 같은데.”

“선생님…. 지금 말씀드린 가격도 다른 곳보다 훨씬 싼 금액입니다….”

“그래서 얼마라고?”

“…….”

주인장이 펍 안에 모인 플레이어들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계산기를 꺼내었다.

탁. 탁탁.

“이 금액은 어떻습니까?”

“이 새끼가…. 좋은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구나.”

리 커우러나가 주인장의 목덜미를 잡아 ‘바’ 밖으로 끌어냈다. 종업원으로 보이는 여성이 덜덜 떨며 벽에 가까이 붙었다.

같은 그룹원을 제외한 다른 플레이어들도 그를 못 본 척 시선을 돌렸다.

“사, 살려주십시오!”

“너를 죽이면 어차피 이 펍에서 머무는 것은 공짜가 되는 거잖아?”

물론 아니다.

NPC 사망 시, 다른 NPC가 찾아와 그의 자리를 대신한다.

하지만 NPC는 이런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을 이용한 리 커우러나의 협박이었다.

“흐으으윽…. 어, 얼마에 드리면 되겠습니까….”

“선 제시.”

“…… 예?”

“제시해 보라고. 최대한 싸게! 얼마에 줄 수 있는지. 참고로 마지막 기회니 신중하게 말하는 것이 좋을 거야.”

주인장이 침을 꿀꺽 삼켰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두 눈을 감았다.

“세 방 합쳐서 열흘에 백 제니. 어떻습니까?”

리 커우러나의 표정에 웃음이 돋아났다.

“자식. 이제야 정신을 차리는구나.”

[‘리 커우러나’플레이어의 악명이 +10 증가합니다.]

리 커우러나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주인장을 내 앞으로 데려왔다.

“세 방 다 합쳐서 열흘에 백 제니. 괜찮습니까?”

괜찮기만 하겠냐.

“…… 좋은 가격이네. 주인장, 바로 계약을 하도록 하지. 거래 창을 열도록 해.”

나를 바라보고 있는 주인장의 눈에서 원망이 느껴졌다.

NPC 주제에 쓸 만한 눈을 가진 자였다.

“거래 창 열라고.”

“알… 알았습니다.”

[시스템 메시지]

[‘서쪽 펍의 주인장’의 거래 목록이 열립니다.]

[1인실*2(열흘)+2인실(열흘)]

[가격: 100제니]

[거래를 승낙하시겠습니까?]

“…… 예스. 열흘에 백 제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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