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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한참 동안 내 자랑을 늘어놓은 조영기가 지쳤는지 질문을 시작했다.

“그래서, 너희 그룹은 이 마을에서 열흘 동안 머문다는 거지?”

“예.”

“나와 같군.”

“아…. 그래요?”

“안전하다고 길게 머물러서 좋을 게 없지. 이 시간에도 다른 놈들은 치고 나가고 있을 테니깐.”

“치고 나간 다라….”

차카니라는 사실을 들으니 쓸 만한 인재로 보이기는 했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다음 라운드로 갈 때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 뭘?”

“세 번째 라운드와 네 번째 라운드 사이에 있는 다리. 혼자 넘어갈 수 없잖아요.”

조영기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때 가서 다른 플레이어들을 구해보던가. 남이 만든 그룹에 들어가야지.”

“왜 첫 번째 라운드에서 그룹을 만들지 않으셨어요?”

“…… 거절당했다. 그 머저리 같은 놈들! 좀비에게 맞서 싸우자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도망가다가 전부 죽었어.”

“……”

“두 번째 라운드에서는 너희들이 나를 데려가지 않았고. 갈 곳이 없으니 그룹이 없는 거야.”

“아….”

갈 곳이 없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가 초라해 보였다.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불쌍하다.

“아니, 첫 번째 라운드 때. 주민들이 내 얼굴을 보고 도망가지만 않았어도…. 이런 스벌. 대체 왜 나를 피한 거야?”

Z 바이러스의 감염체보다 자신의 얼굴이 더 무서운 것을 모르니깐 저런 말이 나온 것이다.

나였어도 도망갔다.

나는 조영기의 말을 좋게 받아주며 말을 끝냈다.

“그렇군요. 좋은 그룹 찾으시기를 응원할게요.”

“고맙다. 어차피 이 병원에서만 나가면 다른 플레이어들이랑 만날 수 있으니 뭐….”

갑작스럽게 대화를 끝내자 조영기가 다시 말을 이었다. 어지간히 말을 좋아하는 놈인 것 같다.

하긴 멸망의 땅을 컴퓨터로 즐길 때도 쉴 틈 없이 쓸데없는 말을 쏟아냈으니 말이다.

“더 궁금한 건 없고?”

“없어요.”

“있으면 지금 말해. 나중에 가서는 물어볼 시간도 없을 테니깐.”

“…… 그럼 아저씨 직업은 건달, 아니 마법사인 거죠?”

“그래. 어떻게 알았지?”

“그냥 찍었어요.”

“어허…. 그렇다면…. 어떤 원소를 사용하는지는 비밀로 하마.”

마음대로 하세요.

어차피 불 아니면 번개겠지.

근력이 높지 않은 마법사가 내 어깨를 만지는 것만으로 벌겋게 달아오르게 했으니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번개에 가까울 것이다. 불이었다면 내 옷까지 녹아버렸을 테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김연희에게 물었다.

“김연희, 너는 직업이 뭐지?”

그녀가 암살자인 것을 알면서도 물어보았다. 혹시나 우리를 속이고 있을까 싶어 재차 확인한 것이다.

“나? 나는 암살자인데. 아저씨는 직업이 뭔데?”

내 직업을 공개해도 될까?

상대방에게 약점을 잡히는 직업이기는 한데, 저 둘이 먼저 오픈했기에 내가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어떻게 말할지 잠시 생각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어차피 약점을 잡히더라도 녀석들에게 당할 일은 없으니.

“나는 네크로맨서.”

“저쪽 아저씨는?”

“야만 전사.”

“오…. 뭔가 강해 보이는 조합이네.”

“너랑 같이 다니는 남자들 직업은 뭐지?”

김연희가 대화를 멈추었다.

그들에 대해 대답하기 싫었던 모양인지 말을 얼버무렸다.

“그 사람들 직업은 나도 몰라.”

“왜? 같은 그룹 아니야?”

“같은 그룹이기는 한데, 1라운드가 끝나고 만난 사람들이라 전혀 몰라. 저-기 한 명 같이 들어오기는 했는데. 지금 대답이 없네.”

“…… 알았다.”

-쿠웩- 쿠웩-!

기이한 신음이 계단 위에서 들려왔다.

예상컨대 지금 내려오는 놈은 좀비다.

캉! 캉! 캉! 캉!

누군가 계단을 밟으며 내려오고 있다. 어째서 마을 안에 좀비가 있는 거지?

소리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아 강력한 놈은 아닐 것 같은데.

나는 철창 가까이 붙어 계단 쪽을 응시했다.

캉! 캉!

응?

처음 보는 류의 Z 바이러스 감염체가 나타났다.

구울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외관에 네발로 걷는 놈이었다.

-쿠웨엑!

강철로 만든 것 같은 목줄에 손과 발에 묶여 있는 부러진 수갑.

어디서 도망쳐 나왔나?

지하에 있는 모두가 조용해졌다. 괜히 소리를 내었다가는 놈의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스르르륵-

쇠사슬 끌리는 소리와.

터벅.

놈의 넓적한 다리가 지하 바닥을 강하게 찍는 소리.

스르륵- 터벅. 스르륵- 터벅.

나는 숨을 죽였다.

처음 보는 몬스터인데다가 약해 보이지도, 강해 보이지도 않는 어중간한 외관을 가졌다.

-리바이브.

“…….”

주문 또한 먹히지 않았다.

그 말은 놈이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것.

갖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이곳에 있는 동안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혹시 스토리가 틀어져서 Z 바이러스의 감염체들이 마을에 공격 온 것일까.

아니지.

이 마을은 멸망의 땅 후반부까지 플레이어들을 이끌어 주는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

초반 몬스터들이 절대로 뚫을 수 없는 곳이다.

스르르륵- 터벅.

놈이 걸음을 멈추었다.

위치가 너무 안 좋다. 바로 내가 머무는 방 앞이다.

“…….”

나는 주머니에 있는 닭 다리뼈를 굳게 쥐었다.

혹시나 놈과 싸우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쿠웨엑-. 쿠웨엑.”

놈이 입에서 토사물을 쏟아냈다. 무엇을 뱉어냈나 보았더니 하수구에서 살 법한 회색 생쥐와 각종 벌레였다.

사람이 아닌 것으로 보아 마을을 공격한 것은 아닐 터.

하수구를 타고 이곳으로 들어왔나?

캉! 캉! 캉! 캉!

다시 계단이 울렸다.

누가 내려오고 있는 것 같은데 수가 한두 명이 아닌 것 같았다.

최소, 네 명 이상.

-어…. 뭐지. 왜 계단에 핏자국이?!

-뭐? 마지막으로 이곳에 왔다 간 사람이 누구냐.

-오, 오 박사님입니다. 아니지, 마지막으로는… 김천재님이 시설에 입소하셨습니다.

-뭐?! 빨리 내려가서 확인해!

우렁차고 굵직한 목소리.

김준철 소령이다.

캉캉캉캉캉캉!

군인 두 명이 계단 밑으로 빠르게 내려왔다.

앞서 두 번째 라운드에서 보았던 복장과는 완전히 달랐다.

특공 복과 붉은 도깨비 가면이 아니라.

도깨비 모양 강철 투구에. 우주복으로 사용될 것만 같은 특수 재질로 만든 검은 바디슈트.

허리춤에 채여 있는 검과 등에 매달려 있는 소총이 인상적이었다.

도구들이 두 번째 라운드보다 훨씬 더 진화된 것 같아 보였다.

김준철의 주요 NPC들이 전부 각성에 성공했나 보다.

“…… 하긴 오 년이나 지났으니.”

구울을 발견한 군인 두 명이 도검을 꺼내 들었다. 좋은 선택이었다, 저들의 허리춤에 달려 있는 게 어떤 종류의 총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좁은 곳에서는 검이 나을 수도 있다.

나는 손가락을 뻗어 구울을 가리켰다.

경비병 두 명이 검을 길게 뻗어 놈의 움직임을 멈췄다.

-도, 돌연변이잖아? 야! 저놈 돌연변이 맞지?

-맞는 것 같은데 여기는 어떻게 들어온 거지?

-나도 모르지. 여단장님과 박사님이 내려오기 전에 빨리 처리하자.

-알았어.

경비병을 확인한 구울이 입에서 질척한 액체를 뿜어내며 위협을 시작했다.

-키야아악!

놈이 군인들을 향해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내가 모르는 시간, 오 년 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다다다다다-!

두 명의 군인이 강강술래를 하듯 빙글빙글 돌며 구울을 난도질하였다.

쉬익- 샥!

베고. 베고. 또 베어도.

놈이 계속해서 재생하였다.

머리 위에 있는 빨간색 게이지에 변동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돌연변이 중에서도 상급 이하의 몬스터는 절대로 낼 수 없는 회복력이었다.

즉.

우리가 떨어진 멸망의 땅 세 번째 스토리에 상급 몬스터들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게임의 초반부에.

“…… 골치 아프게 됐네.”

-후우…. 이 새끼 왜 이렇게 안 죽는 거야?

캉! 캉! 캉! 캉!

뒤이어 황급히 달려온 세 명의 군인. 그들 또한 도깨비 마스크와 수트를 입고 있었다.

그들 중 덩치가 제일 큰 사내가 성난 목소리를 내었다.

“어째서 이곳에 몬스터가 있는 거냐!!”

김준철이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구울의 모습을 확인한 그가 빠르게 뛰어왔다. 등에서 날을 빼내는 속도가 너무나도 빨라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였다.

부웅-.

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남들과 달랐다. 바람을 베는 것이 아니라 부수는 것 같았다.

콰광!

단 일격으로 구울의 몸을 반으로 잘라냈다.

놈의 머리 위에 있는 빨간색 게이지가 한 방에 회색으로 변하였다.

“여기가 어디라고….”

김준철 소령의 손에 쥐어진 무기를 보니, 다른 이들과 다르게 그는 특수한 검을 갖고 있었다.

철퇴라고 불러야 할 만큼 두텁고 거대한 날붙이였다.

‘저렇게 커다란 무기로 이 정도 속도를 낸 건가….’

굉장하다.

* * * * *

구울을 처리한 김준철 소령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물론 내 몸에 바이러스가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철창을 중간에 둔 채 말이다.

김준철 소령이 도깨비 가면을 위로 들어 올렸다.

다시 만나기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얼굴에 X자로 큰 흉터가 생겼다.

“천재 씨!”

무척이나 반가운 표정이었다.

“오랜만이에요 소령님.”

“어떻게 되신 겁니까? 그날 이후로 보이시지를 않아서 걱정했습니다.”

“…… 사정이 있었어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같이 다니시던 분들은…?”

“오고 있을 거예요. 여기서 만나기로 했으니.”

“살아 계셔서 다행입니다.”

“하하…. 소령님도 건강해 보이시니 다행이네요.”

카앙. 카앙. 카앙.

누군가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김준철 소령과 나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

이어서 내려오는 자의 얼굴을 본 나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 박사?”

“어? 박사님을 알고 계시는가요?”

“…… 아뇨. 복장이 그런 것 같아서요.”

나는 저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지만 모른 척을 했다.

그가 왜 이곳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폐허가 된 마을에서 수십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장소에서 혼자 연구를 하고 있어야 하는 자가.

어떻게 이곳에 온 걸까?

박사가 주머니에 손을 꽂으며 다가와 김준철 소령에게 말했다.

“자네가 말한 자가 이분인가?”

“예.”

“오호라….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곳에서 바이러스 백신을 연구하고 있는 오지명 박사라고 합니다.”

나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김천재라고 합니다.”

“반갑군요. 천재씨에 관한 이야기는 김준철 소령한테서 많이 들었습니다. 최강의 돌연변이 생물 중 하나인 스누펜을 처리하셨다고요?”

“…… 예.”

박사가 안경을 고쳐 잡았다.

“오호라….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 어디를 가셨다가 지금 나타나신 건지요?”

“사정이 있어서 떠돌아다녔습니다.”

“어떤 사정인지 알 수 있을까요?”

심문하는 듯이 말하는 오 박사.

김준철 소령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박사님. 김천재씨는 이제 막 이 마을에 도착해서 피곤하실 겁니다. 그런 이야기는 휴식 후에 하도록 하시지요.”

“……”

“급한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알겠어요. 천재씨, 저희 다시 만날 수 있는 거 맞지요?”

나는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은 확실하니깐.

적으로 만나게 될지, 아군으로 만나게 될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박사가 김준철 소령을 데리고 격리실의 반대편을 향해 걸어갔다.

내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하였다.

멍청한 놈들.

그곳에는 어차피 다른 플레이어들의 귀가 있는데 말이다.

나는 팔짱을 끼고 벽에 몸을 기대었다. 김준철 소령이 돌아올 때까지 말이다.

캉! 캉! 캉! 캉!

다시 계단 위에서 누군가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딱딱한 군인의 대화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철창 앞에 붙어 계단을 보았다.

“…… 왔구나.”

유소라와 마이클이 내려왔다.

“살살잡아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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