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아포칼립스-22화 (22/215)

22화

[시스템 메시지]

[세 번째 라운드를 시작합니다.]

휘유우우우웅-

사막에서 강한 모래바람이 불 듯 눈앞이 황토색으로 바뀌었다.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

멸망의 땅 플레이어들이 유토피아라고 부르는 ‘폐허가 된 마을’이다.

나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앞을 향해 나아갔다.

이곳에서 기다린다고 해도 다른 그룹원들이랑 만날 수 없으니 말이다.

[‘김천재’님의 그룹]

[앞으로 진행될 ‘멸망의 땅’ 세 번째 라운드의 스토리 흐름을 선택해주세요.]

A. 31일.

B. 10일.

C. 365일.

이 마을에서 며칠이나 머물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상황이다.

짧게 머문다고 빨리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래 지낸다고 해서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곳도 아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빠르게 마치고 나오는 것이 제일 좋은 장소다.

나는 주저 없이 선택지 B를 선택했다.

열흘이면 우리 모두 충분한 성장을 마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시스템 메시지]

[모든 플레이어가 스토리 흐름의 선택을 마쳤습니다.]

[선택지- B]

모래바람이 걷히며 아파트 단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 눈앞으로 보이는 건물 전부, 폭격을 맞은 듯 높은 층은 전부 허물어져 있었다.

그나마 괜찮다고 느껴지는 것은 모래로 덮인 낮은 빌라들.

아파트 단지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방독면을 쓴 군인들이 보였다.

경비실을 개조하여 위병소로 만들었는지 기관총과 그럴듯한 쇠 철책이 본새를 내고 있었다.

뚜벅. 뚜벅. 뚜벅. 뚜벅.

가까이 다가가자 입구를 지키고 있는 군인 중 한 놈이 내게 총구를 겨누었다.

“멈춰!”

나는 두 손을 높이 들어 올리며 그들에게 말했다.

“아군이다.”

“뭐?”

“아군이라고.”

조장으로 보이는 놈이 뒤에서 지켜보고.

그를 따르는 것 같은 병사 두 놈이 내 앞으로 다가오며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어디서 왔지?”

“강의 건너편.”

“강의 건너편? 그곳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닌데.”

“그래서 이곳으로 온 거다.”

“아니. 내 말은 네가 거기서 어떻게 살아남았냐는 거다. 강의 하부에 있는 사람들은 진즉에 전멸됐는데 말이야.”

이상하다.

본래대로라면 이 마을에 출입할 때 그저 감염 여부만 확인했었는데.

NPC들이 지정된 대사 외에 말을 하고 있다.

“…….”

“강의 건너편에서 어떻게 올라왔지?”

“보트를 타고 왔다.”

“거짓말!”

“거짓말? 왜 거짓말이라 생각하지?”

“강의 남쪽은 벌써 오 년 전에 우리가 탐색을 마쳤다. 그곳에 보트가 있을 리가 없어.”

5년?

뭐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

“오 년이라고 했나?”

“그래.”

두 번째 라운드에서 세 번째 라운드로 넘어갈 때 걸리는 시간은 총 일 년이어야 한다.

19공수여단이 마을을 점령하고 안전을 확보하면 플레이어가 그곳에 진입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방독면을 쓴 군인이 배를 내밀며 내 앞에 정면으로 섰다.

후- 하- 후- 하-

방독면 안으로 거칠게 쉬는 숨소리가 들렸다.

“그나저나 너, 말이 짧군.”

“…… 지금 네 상관이 누구지?”

“알아서 뭐 하게? 네가 알만한 분이 아니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곳에 김준철 소령님은 안 계시는가?”

내 한마디에 하사, 중사, 상사의 얼굴이 바뀌었다.

같은 간부의 계급이지만 부사관과 장교의 자리는 다른데다가.

김준철의 소령이라는 위치는 그들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김준철… 소령…. 네가 그분을 어떻게 알지?”

“있나 보군. 김준철 소령을 불러라.”

“뭐? 이 새끼가 그분이 누군 줄 알고.”

“김천재. 김천재라고 말하면 알 거다.”

“…… 김천재?”

세 명 중 조장으로 보이는 자가 나와 대화 중인 방독면 군인의 어깨를 끌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상부에 연락해보겠습니다.”

“예.”

조장으로 보이는 자가 연락을 하러 위병소로 자리를 옮겼다.

나와 대화를 하던 군인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었다.

“김준철 소령님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글쎄.”

“그리고 너. 왜 나한테만 반말하는 거냐?”

“반말은 네가 먼저 했지. 방금 온 상사는 내게 존댓말을 했어. 그러기에 존댓말로 대답한 거고.”

“…….”

무전을 마친 위병조장이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김천재 선생님.”

“예.”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앞서 저희 부하가 저지른 무례한 행동에 대하여. 사과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아요.”

“김낙수 중사!”

나와 말다툼을 하던 군인이 차려 자세로 대답했다.

“중사 김낙수!”

“이분께 사과드려라. 김준철 소령님의 생명의 은인이시다.”

“예?!”

“빨리 사과드리라고!”

김낙수 중사가 위병조장을 보며 머뭇거리더니, 이내 나의 앞으로 와 고개를 깊이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짓은 다음부터 하지 말도록 하세요.”

“…… 옙.”

나는 김낙수 중사의 어깨를 툭 친 후 위병조장에게 갔다.

“들어가시죠.”

* * * * *

마스크를 받았다.

혹시라도 밖에서 활동하며 바이러스를 들여왔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앞으로 하루는 이곳의 지정 격리 시설인 민간 병원에서 머물러야 한다고 했다.

캉. 캉. 캉. 캉.

쇠로 만들어진 계단 밑으로 내려가자 문을 철창으로 만든 방이 늘어져 있었다.

마치 감옥을 연상케 할 만큼 어둡고 꿉꿉한 곳이었다.

“이런 곳에 머물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바이러스가 퍼지면 큰일나니, 어쩔 수 없죠.”

“곧 침구류와 식사를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침구류가 격리 중에도 보급되나요?”

“원래는 안 되지만. 김준철 소령님이 특별 부탁하셨습니다. 후에 소각하더라도 꼭 지급하라고….”

김준철 소령.

나를 기억해줘서 다행이다.

게임 속 시간이 오 년이나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끼이이이익.

쿵.

철창이 닫혔다.

지하의 첫 번째 방이다.

내가 감옥 같은 방의 구석으로 갔다.

툭. 툭.

둔탁한 소리.

손가락으로 쳐보니 시멘트벽이었다. 얇은 석고 보드가 아니라 말이다.

‘…… 지형에 대한 설정도 바뀐 건가.’

“그룹.”

------------------

「‘김천재’님의 플레이어 그룹」

-김천재: 양호(파랑)

-마정우: 양호(파랑)

-유소라: 양호(파랑)

-마이클 비치: 양호(파랑)

[양호(파랑): 생명력 90% 이상]

[보통(초록): 생명력 75% 이상]

[나쁨(노랑): 생명력 50% 이하]

[최악(빨강): 생명력 15% 이하]

------------------

다행이다.

아직까지는 다들 아무 이상도 없다.

혹시나 나보다 일찍 도착한 플레이어가 있을까 싶어 소리쳐 보았다.

“누구 계십니까.”

좌측 끝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닉진이 있습니다.”

“어! 네가 먼저 왔냐?”

“그래.”

“다른 사람은?”

“세 명 더 왔어.”

내가 철창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며 말을 이었다.

“누구?”

“…… 말하기 좀 그런데.”

“어…. 오케이.”

저 한마디로 모든 상황을 알 수 있었다.

그룹원의 이름이 먼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유소라랑 마이클이 도착하지 못했다는 것.

세 명이 더 도착했다고 했으니 여고생 그룹과 건달, 그 네 명 중 세 명일 것이다.

게다가 정우 녀석이 누군지 말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건달은 필히 있을 것이고.

나보다 늦게 출발한 여고생 그룹이 먼저 도착했다는 말은 놈들도 이 게임에 대해 이해도가 높다는 것이다.

한참을 망설이던 나는 지하가 울릴 정도로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저희와 적대적인 관계를 갖고 싶지 않으신 분은 미리 말씀해주세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후우-

내가 다시 말을 이었다.

“다들 이 게임의 경험자이신 것 같은데. 이곳에서 나가면 서로 돕는 거 어떻습니까? 어차피 다들 살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멀지 않은 곳에서 여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반대편의 좌측 철장인 것 같았다.

“아저씨, 같이 동맹을 맺자는 거야?”

“동맹까지는 아니고. 그냥 어려울 때만 가끔 서로 돕자는 거지.”

“예를 들자면?”

“서로 공격하지 않고. 정보에 대한 공유를 이루자, 이 말이야.”

여고생이 잠깐 생각하는 듯 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게 동맹이잖아?”

“비슷하지만 달라. 동맹은 같은 목적을 이루려고 맹세하는 거고. 내가 말하는 건 그냥 서로 싸우지만 말자는 거야.”

“어…. 오케이. 콜! 우리 그룹은 이제부터 아저씨 그룹이랑 동맹이야!”

동맹이 아니라고.

“너. 이름이 뭐지?”

“나?”

“그럼 귀신한테 물어봤겠어?”

“…… 내 이름은, 김연희. 김연희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 것 같은데.

“…… 김연희. 내 이름은 김천재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천재? 아저씨 똑똑해?”

“아마도.”

그녀의 입에서 ‘풋’하고 바람세는 소리가 났다.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걸걸하고 두꺼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동맹하도록 하지.”

이렇게 악한 느낌을 주는 목소리는 단 한 명밖에 없다.

건달.

아니, 그전에 동맹이 아니라니까?

“저… 저희와 정보를 공유한다는 거죠?”

“그래.”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왜 나한테는 이름을 안 물어보는 거지?”

“아,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건달이 마른기침을 몇 번 하더니 내게 대답해왔다.

“조영기. 조영기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이름이 뭔가 무섭게 느껴졌다.

“저는-”

“들었다. 김천재.”

“…… 예.”

“내가 그룹이 없어서 그런데, 너희 그룹에 들어갈 수 있겠나?”

그가 그룹 제의를 해왔다.

다섯 명이 한 그룹인 이곳에서 벌서 네 명을 모았는데.

그까지 들어와 버리면 꽉 찬다. 좋은 인재가 나타나도 영입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내가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런 말은 어버버버 거리면 얕보이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저기 김연희양의 그룹에 들어가는 게 어떠신가요?”

“나보고 저런 꼬맹이랑 같이 다니라고?”

김연희가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

“나도 문신 늙탱이랑 같이 다니기 싫어!”

“뭐? 이 년이!”

캉!

철창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들을 중지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만! 그만 하세요. 저희끼리 싸우면 안 된다고요.”

조영기가 낮고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었다.

“…… 후우. 꼬맹이, 여기서 나가면 따로 보도록 하지.”

“왜? 프러포즈라도 하게?”

“저년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대화를 꺼냈는데.

아수라장이 되었다.

나는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정보 공유를 하는 척하면서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인지시켜줘야겠다.

‘멸망의 땅’ 플레이어라면 모두 나를 천재라고 인정하고 있으니.

내 닉네임을 들으면 여기 있는 플레이어 전원 깜짝 놀랄 것이다.

게임 내에서는 무려 전투 랭킹 1위에 달하는 거물급 인사니깐 말이다.

“모두 진정하시고. 이제부터 정보를 공유하도록 하죠.”

김연희가 툴툴거리듯 대꾸했다.

“정보?”

“예, 이 게임에 대해 공유하고 싶은 정보요.”

“나는 없어.”

“그럼 제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려는데, 조영기의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내가 먼저 하도록 하지.”

의외다.

제일 말수가 없을 것 같은 사람이 먼저 정보를 공유하겠다니.

게다가 신이 난 것 같은 말투였다. 빨리 말하고 싶다는 듯 말이다.

“아. 그럼 먼저 말씀하세요.”

“우선…. 나는 ‘멸망의 땅’ 상위 랭커였고.”

오호라.

그래서 자랑하려고 먼저 말을 한다는 거구나.

“아무도 깨지 못한 15번째 라운드에 도전했던 자다.”

내 눈이 번쩍 뜨였다.

멸망의 땅의 끝이라 불리던 15번째 라운드에 도전한 것은 내가 이끄는 초월자 그룹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말은 나와 함께 멸망의 땅을 즐겼던 게이머.

가슴이 뛰었다.

게임 내에서 나와 같이 게임을 즐기던 자가 실제로 만나게 되었다고?

그것도 같은 그룹으로 활동하던 멤버가.

“…… 혹시 닉네임이 어떻게 되시죠?”

“내 닉네임?”

“예.”

“내 닉네임은….”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누구일까.

초월자 그룹에 속한 인원이라고 해봤자 정우와 나를 제외하자면.

오크 종족을 선택한 든든한 왕궁 사냥꾼 ‘지군’.

트롤 종족을 선택한 자비 없는 피의 암살자 ‘고티’.

엘프 종족을 선택한 애교쟁이 미녀 마법사 ‘차카니’.

내 생각에는 저자는 분명 ‘고티’ 일 것이다. 얼굴을 보아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니깐.

대답이 없자 내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닉네임이 어떻게 되신다고요?”

그가 대답을 망설이는 듯 철창을 발로 ‘캉캉’ 치더니 말을 이었다.

“…… 내 닉네임은 ‘차카니.’ 엘프 종족의 수장이었다.”

로그인 더 아포칼립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