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김준철 소령이 크게 소리쳤다.
“육지로 이동한다!”
-알파, 수신.
-로메오, 수신.
-브라보, 수신.
-델타, 수신.
보트가 모터를 켜고 달릴 준비를 했다.
뒤늦게 도착한 유람선이 일렬로 서있는 보트의 뒤로 붙었다.
갑판 위,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에 흠뻑 젖은 김정재가 팔짱을 끼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 저 유람선도 끝인가.’
놈의 얼굴을 보자 짧은 욕이 절로 나왔다.
다른 플레이어와 NPC는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유람선이 도착하면 모두 지옥을 보게 될 것이다.
왜냐고?
저 유람선 안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쯤 아마도……
부아아아아아앙-!
보트들이 일제히 물살을 가르며 출발했다. 유람선을 뒤로 한 채 말이다.
육지로 향하는 동안 나는 김준철 소령에게 말했다.
“김준철 소령님.”
“옙.”
“저 유람선 갑판 위에 있는 남자. 조심하세요.”
“…… 저 검은 코트를 입은 남성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내가 이 말은 한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김정재는 재미라는 이유 하나로 플레이어와 NPC를 공격하는 흉악무도한 쓰레기이기 때문이다.
라운드가 종료된 상황에서 놈과 싸우게 될 일은 없지만.
그래도 꺼림칙하다.
“적으로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예. 다만 먼저 공격해오지 않는다면. 굳이 저 자랑 싸울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경계를 늦추지만 않으면 될 거예요.”
“…… 알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출발한 곳 반대편에 있는 한강 공원에 도착하게 되었다.
보트가 정착하는 순서대로 군인들이 재빠르게 내리며 진열을 펼쳤다.
나도 같이 나가려 해 보았지만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이 앞길을 막고 있었다.
팍!
“…… 여기도 있구나. 소라씨, 잠깐 기다리세요.”
“네.”
도깨비 마스크를 쓴 군인들이 전원 상륙했다.
군인들이 빠르게 부채꼴로 퍼져 주위를 수색했다.
총탄을 전부 써버린 탓에 전부 은빛의 도검을 들고 있었다.
수색을 마친 군인이 주위 상황을 보고하자 김준철 소령이 소리쳤다.
-모두 내리십시오!
그의 외침과 함께 우리 앞을 막고 있던 결계가 사라졌다.
나는 보트에서 먼저 내려 유소라의 손을 잡아 주었다.
“여기요.”
“고마워요.”
그녀가 방긋 웃으며 보트에서 내려왔다. 물살 때문에 중심을 잃은 유소라가 앞으로 고꾸라지듯 걸으며 내 품으로 들어왔다.
내가 헛기침을 하며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조심하세요.”
“죄, 죄송해요. 이렇게 미끄러운지 몰랐어요.”
“괜찮아요.”
나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어릴 적부터 여자와 어울리는 것에는 서툴렀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익숙지 않다.
-크흠.
[시스템 메시지.]
[플레이어 전원 잠시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
보트에서 내린 플레이어 전원이 한 곳에 모였다.
투명한 직사각형의 결계막이 우리를 이곳에 가두었기 때문이다.
안에 갇힌 우리는 서로 눈치만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와 정우 또한 말이다.
여고생이 속한 그룹과 건달 플레이어가 있는 곳에서 우리의 행보를 말하고 싶지 않아서다.
뚜벅. 뚜벅. 뚜벅.
마이클이 내 옆으로 붙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가 비밀을 말하듯 조용히 속삭였다.
“천재 킴.”
“말해.”
“카랴멜 먹을래요우?”
내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캬라멜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디저트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 좋지.”
“오우. 여기 있어요우. 코리안 캬라멜.”
“고마워. 나 캬라멜 엄청 좋아하거든.”
절로 웃음이 나왔다.
마이클이 주머니에서 노란 캬라멜 하나를 꺼내줬다.
익숙한 듯 하면서 처음 보는 껍질이었다.
“…… 엿?”
“예스. 코리안 캬라멜. 디스 이즈 엿. 엿 먹어요우.”
“야이 미친…….”
유소라가 환하게 웃으며 내 옆으로 붙었다.
“어! 저도 엿 주세요.”
“오우, 유소라도 카랴멜 좋아해요우?”
“네!”
마이클이 가방에서 엿 하나를 더 꺼내었다.
“엿 먹어.”
“…… 말이 조금 짧으시네요.”
“죄송해요우. 제가 외국인이라…… 그렇다고 모든 것이 짧은 것은 아니에요우. 긴 것도 있어요우.”
“…… 아. 네.”
우리 모두 엿을 입에 물고 조용히 NPC들을 바라보았다.
[행복 지수 +1가 증가합니다.]
응?
캬라멜에 이런 능력이 있었나.
나도 몰랐던 사실이다. 물론 이곳에서는 쓸모없는 능력치여서 많이 먹을 필요는 없겠다.
“옵니다!”
도깨비 가면 군인의 외침이 들렸다.
군인 여럿이 유람선이 도착하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우우우우웅-
유람선이 육지에 머리를 박으며.
콰광!
그대로 올라왔다.
선착장이 없는데다가 조타수가 운전에 익숙지 않은 것 같았다.
갑판 위에 서 있는 김정재의 중심이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역시 모든 능력치가 99에 달하는 최강의 NPC.
놈이 코트를 흩날리며 유람선에서 뛰어내렸다.
펄럭.
탁!
그가 내려오자 김준철 소령이 인사를 건네었다.
“수고하셨습니다.”
“…….”
김정재가 대답하지 않고 그를 지나쳐 갔다.
평소 놈의 행실을 보았을 때, 다른 NPC들을 공격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김준철 소령에게 부탁한 ‘경계’ 덕분에 싸움이 붙지 않은 것 같다.
많은 수의 군인이 도검을 들고 대기하고 있으니, 놈도 섣불리 덤비지 못하겠지.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상황을 알고 있는 정우도 숨을 크게 내뱉었다.
의외인 점은, 건달이 우리와 같은 타이밍에 한숨을 내뱉었다.
마치 놈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김정재는 분명 ‘멸망의 땅’ 후반부 스토리에 나오는 놈인데.
저자가 알고 있다고?
우연의 일치인지.
진짜로 놈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인지.
정확한 사실은 모르겠지만 놈이 위험한 것은 변함이 없었다.
김정재가 사라지자 우리를 막고 있는 직사각형의 결계가 사라졌다.
내가 앞장서 나오며 정우에게 말했다.
“드디어 유토피아다.”
“이제 시작이네. 들어가면 밥 먼저 먹자. 배고파 죽겠네.”
“…… 밥을 어떻게 먹어? 진입하면 바로 지하로 갈 텐데.”
“지하…… 아! 맞네…… 스벌.”
“하루만 버티면 되니깐 좀만 더 참아.”
유소라가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며 내 옆으로 바짝 붙었다.
“천재씨. 어디서 피 냄새가 나요……”
“피 냄새?”
정말이다.
짙은 피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콧속에 박혔다.
김정재에게 집중하느라 느끼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김준철 소령님!”
김준철 소령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부르셨습니까!”
“유람선 안을 확인해주시겠어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배에 타고 있던 탑승객들이 아무도 내리지 않아 들어가려 했던 참인 것 같다.
김준철 소령을 필두로 군인들이 유람선 안으로 들어갔다.
“…….”
그들이 진입한 지 몇 초 후.
고함이 들려왔다.
-제길!!
갑판으로 나온 김준철 소령의 얼굴이 도깨비 가면처럼 성난 표정 이었다.
“망할! 망할!! 망하알-!!!”
플레이어들이 유람선 앞으로 조심스럽게 모였다.
“소령님. 어떻게 된 건가요?”
“그…… 천재씨가 말한……. 후우…… 직접 들어와서 보시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람선 안으로 들어가자 무자비한 살육 현장이 보였다.
피비린내를 참지 못한 유소라가 코를 막았다. 시체를 보더니 구역질을 했다.
마이클이 그녀를 데리고 유람선 밖으로 나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격에 당한 듯 몸이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피난민 NPC와 함께 스님 플레이어 전원이 사망해있었다.
김준철 소령이 학살 현장을 보며 이를 꽉 깨물었다.
나는 그의 뒤로 붙었다.
“소령님.”
“…… 말씀하십시오.”
“아까 그 남성의 이름은 김정재입니다. 잊지 말도록 하세요.”
“김정재…… 제길…… 기억…… 하마.”
* * * * *
김정재가 사라지자 NPC들이 다음 마을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
산책로를 넘어 아파트 단지로 진입하는 길.
보이지 않는 장벽이 또 한 번 우리를 가로 막았다.
NPC들은 벽에 막히지 않고 그대로 진입해서 들어갔다.
앞을 향해 걷던 김준철 소령이 뒤로 돌아 내게 물었다.
“왜 안 오십니까?”
“…… 먼저 가세요.”
“같이 가시지요.”
나는 투명한 벽을 만지며 그에게 말했다.
“금방 따라가겠습니다.”
“그럼…… 먼저 가도 되겠습니까?”
“예.”
김준철 소령이 우리 모두에게 경례를 하더니 앞을 향해 나아갔다.
이렇게 도깨비 가면을 쓴 군인들.
9공수여단과 헤어지게 되었다.
유소라가 손을 높이 들어 흔들었다. 여고생 플레이어도 손을 흔들었다. 어느덧 그들과 친해졌었나보다.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 듯 후 모두를 데리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뒤로 여고생 그룹과 건달 플레이어가 따라왔다.
내가 뒤로 돌아 그들에게 말했다.
“왜 따라와요?”
건달이 유소라의 얼굴을 슬쩍 보더니 내게 대답했다.
“나는 내 갈 길 가는 거다.”
“…….”
“비켜라. 그럼 나 먼저 가도록 하지.”
그가 내 어깨를 밀치며 앞으로 걸어갔다. 길을 아는 것으로 보아 분명 ‘멸망의 땅’을 플레이 해본 사람인 것 같은데.
저렇게 무섭게 생긴 사람이 나와 같은 게임을 하고 있었다니.
현피라도 당했으면 큰일 날 뻔 했네.
정우가 클클거리며 내 손을 툭툭 쳤다.
“야. 저 사람 엄청 무섭다.”
“능력치도 높아.”
“어떻게 알아?”
나는 그가 밀친 어깨를 걷어 정우에게 보여 주었다.
“봐.”
그냥 손바닥으로 밀쳤을 뿐인데 벌겋게 부어올랐다.
말도 안 되는 흔적이다.
뺨을 때리듯 휘두른 것도 아니고. 힘을 주어 꽉 누르지도 않았다.
그저 비키라며 슬쩍 밀쳤을 뿐.
게임의 초반이라 레벨이 높지 않을 테니, 분명 그는 특수한 직업을 얻어 능력을 얻은 것이 확실했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상처를 본 유소라가 가까이 붙었다.
“어머! 천재씨, 괜찮아요?”
“예. 그냥 살짝 부어오른 거에요.”
“푸른 주사 놔드릴까요?”
“그 정도는 아니에요. 마나 아껴두세요.”
“아…….”
“소라씨 혹시 저 분 아세요? 아까 소라씨 얼굴을 슬쩍 보는 것 같던데.”
“아뇨!”
유소라가 윗입술을 핥았다.
‘…… 뭐지.’
내가 어깨를 주물러서 풀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여고생 그룹은 신경쓰지 않은 채 말이다.
아파트단지의 중간에 도착했다.
악마가 사는 곳으로 연결되어 있는 게이트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거대하고 흉측한 나무 문을 볼 수 있었다.
문의 중간에서 수은으로 보이는 액체들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건달 플레이어가 앞장서 그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문 앞에 서서 대화를 나누었다.
“마이클, 너는 최대한 말 수를 줄이도록 해. 쓸데없는 말해서 일 만들지 말고.”
“알겠어요우.”
나는 유소라를 보았다.
“소라씨, 소라씨는 딱히 무엇을 하려고 하지만 않으면 될 거에요. 그냥 그들이 시키는대로 움직이세요.”
유소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정우와 대화를 나누었다.
“너는 성질만 좀 죽여. 다 같이 모이기 전까지 다른 놈들이랑 싸우지 말고.”
“노력해보마.”
“어쩔씨고? 뒤지고 싶으면 싸우던가.”
정우가 비꼬듯 마이클 흉내를 내었다.
“뒤지기 싫어요우. 천재씨 짧아요우.”
“닥쳐. 이 새끼야.”
정우가 크게 웃으며 내 등에 매달렸다. 장난치는 척 하며 내 귀에 속삭였다.
단 두 마디를.
“유소라. 거짓말쟁이.”
나는 정우 얼굴을 보았다.
그가 검지로 입술을 가리더니 내 등에서 내려왔다.
그리곤 게이트를 향해 걸었다.
“야, 김천재, 빨리 가자. 소라씨는 여기 처음 와보죠?”
유소라가 당황하듯 눈을 굴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대답을 마친 그녀가 시선을 회피하며 또 윗입술을 핥았다.
그녀의 행동이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나는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물증이 없는 의심은 그저 음모론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무리 친한 친구가 말한 것이라도 상황을 지켜보아야 한다.
중립과 이성적인 판단이 이곳에서 생존 방법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준비를 우리는 한 명씩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마정우.
마이클.
유소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로 나.
게이트의 문, 휘몰아치는 액체 안으로 손을 먼저 넣었다.
기분이 오묘하다.
시원한 물을 지나가는 기분이다. 천천히 얼굴을 넣자 게이트의 반대편이 보였다.
다시 빼내 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앞으로 가는 것만 가능할 뿐.
내가 게이트 안으로 몸 전체를 밀어 넣었다.
이어 황토색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도착했다.
“…… 유토피아.”
이 게임의 초반부와 후반부의 스토리를 맡은 멸망의 마을.
[폐허가 된 마을]
드디어 중심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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