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저 녀석이 좋겠네.”
나는 다리가 날아간 좀비 한 마리의 머리채를 잡아 밖에 있는 군인을 향해 던졌다.
빠르게 날아간 회사원 좀비가 도깨비 마스크를 쓴 군인과 뒤엉켜 땅에 뒹굴었다.
-으어어!
-키엑!
군인이 잠깐 멈칫하는 사이 좀비에게 어깨를 물렸다.
“으아아악! 이런 미친! 놔! 놓으라고!”
팍! 팍!
주먹으로 때릴수록 회사원 좀비가 그를 더욱더 강하게 물었다.
“놓으라고!”
“키에엑!”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군인이 좀비와 군인을 둘 다 총으로 쏘았다.
탕! 탕!
“…… 미안하다. 너까지 좀비가 되면 막을 수가 없어.”
-꺄아아아악!!
군인이 같은 편을 쏘자 시민들이 더욱 큰 혼돈에 빠졌다.
-부처님 예수님 알라님, 계신다면 아무나 빨리 저희를 도와주세요….
-흐으으윽…. 이럴 줄 알았으면 돈이나 펑펑 써보고 죽을걸.
-꿈일 거야. 꿈일 거라고…. 이건 전부 꿈이다….
내가 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남아 있는 군인에게 소리쳤다.
“여기는 내가 맡을 테니 상부 쪽으로 가도록 해!”
“어, 어, 어, 어떻게 거기에?”
“빨리!”
-키에에엑!
회사원 좀비 한 마리가 등 뒤에서 내게 달려들었다. 놈의 넥타이를 잡아 엎어치기를 한 후.
팍!
좀비 무리를 향해 던졌다.
쿠당탕.
“빨리 가라고!”
“…….”
나와 좀비의 혈투를 본 그가 마지못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민들을 데리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모두 저를 따라오십시오!
군인이 시민을 이동시키는 동안 나는 열차 입구에 서서 좀비들을 막았다.
피난민들에게 시선이 꽂혔던 좀비들.
시민들이 사라지자 좀비들이 고개를 삐걱거리며 잠시 멈추더니.
이내 목표물을 바꾼 듯 전부 나를 향해 달렸다.
-키에에엑!
내가 입 꼬리를 올려 씨익 웃었다. 그리곤 죽은 군인을 향해 손바닥을 펼쳐 들었다.
“리바이브.”
[박규환(군인)을 소생시킵니다.]
[NPC 소환 영입으로 인하여 인구수 2개를 사용합니다.]
남은 마나: 10
[소환 목록]
-박규환(군인) 1/1 : 명령 대기 중
-스켈레톤 1/1 : 전투 중
도깨비 가면을 쓴 군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마에 뚫려있는 구멍이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외관상 큰 문제가 있지는 않았다.
“실력을 보여라. 우선…. 검술이 보고 싶군.”
놈이 소총을 뒤로 매더니 등에 달린 검을 뽑아 열차 안으로 달려왔다.
다다다다-!
무리를 지어 달려오던 좀비 다섯 마리가.
샥-
한 방에 몸이 반으로 갈렸다.
-키에에엑!
소환수들의 능력은 소환자에 비례한다.
내 레벨이 9이면 소환수 또한 그 정도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스켈레톤같이 약한 놈들이 9레벨 이어봤자 특별나게 강하지는 않지만.
이런 특수 직업을 가진 자들에게 내 힘이 부여된다면 엄청나게 강해진다.
내가 뿌듯한 얼굴로 열차의 문을 닫고 다음 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 * * * *
열차의 반쯤 왔을 때 유소라의 붉은 주사기 힘이 끝났다.
그래도 도깨비 군인을 얻게 되어 좀비들을 상대하는 게 굉장히 쉬웠다.
※ 신규 영입: 박규환(군인)
레벨: 9
생명력: 1080/1080
마나: 10/10
체력: 35 공격: 44
방어: 15 속도: 25
▶전격(電擊) (마나 소모: 5)
-30초간 번개같이 빠른 움직임을 갖게 됩니다.
▶일도양단(一刀兩斷) (마나 소모: 5)
-생명력의 9할을 태워 혼신의 일격을 가합니다.
굳이 내가 싸우지 않더라도 녀석이 순식간에 쓸어버리기 때문이다.
슥- 삭!
박규환 혼자서 열차의 마지막까지 가는 길을 뚫었다.
덕분에 이곳까지 오는 동안 총 세 번의 황금빛이 내 머리 위로 돌았다.
레벨업을 3번 했다는 말이다.
벌써 12레벨.
두 번째 라운드를 끝내지도 않은 상황에서 10레벨 이상을 갖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랭킹 1위였던 내가 놀라울 정도니 다른 놈들은 전혀 따라잡을 수 없겠지.
마지막 칸에 도착한 내가 열차 밖으로 나오며 정우와 마이클을 찾았다.
“정우야!”
응급 상자를 확인하고 있는 정우와 마이클이 보였다.
“어…. 어? 어! 김천재!”
“백신은?”
“챙겼지. 와…. 근데 너 진짜 미쳤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여기까지 온 거야?”
“천재잖아.”
“뭐래.”
마이클이 환하게 웃었다.
“천재 킴!”
“마이클. 수고했어.”
“노 수고. 쉬웠어요우.”
내가 포근하게 웃으며 마이클의 어깨를 툭 쳤다.
“물건이나 확인해 보자.”
응급 상자를 열자 비닐 팩 안에 들어 있는 주사기 두 개와 캡슐 한 알이 보였다.
“백신 두 개에. 회복 캡슐 하나라…. 저쪽보다 백신이 한 개 많네.”
“천재야. 캡슐은 네가 가지고 있어라. 이거 마나도 충전되는 거지?”
“어. 내가 가져도 돼?”
“지금 이 캡슐 쓸 만한 사람이 너밖에 없잖아.”
“준다면 나야 좋지.”
정우가 내게 캡슐을 건네어 주며 말을 이었다.
“좀비들은?”
“오는 길에 웬만큼 처리했어. 승객 칸 문도 닫으면서 왔고.”
“다른 플레이어들이 방해하지는 않았고?”
“어. 상황이 터졌는데도 다들 침착한 거 보니…. 아직은 때가 아니라 생각하는 것 같아.”
폭주한 내 모습 때문에 움직이지 않은 자도 있을 테고.
생각해보니 아까 보이던 여고생도 이 게임의 플레이어지만 좀비들을 상대하고 있지 않았다.
레벨업보다는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것이겠지.
“…… 알았어. 근데 저 군인은 어떻게 할 거냐?”
정우가 손가락으로 김준철 소령을 가리켰다.
“아직 생각 중.”
“처리하려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인 것 같은데.”
“아직. 놈이 사령부에서 새로운 명령을 안 받았어. 살려두면 좋은 점도 많고.”
“그래? 원래 이렇게 명령을 늦게 전달받았나?”
“어. 진짜 다 까먹었냐?”
“초반 임무를 어떻게 일일이 다 기억해.”
“나는 하는데?”
“그건 너고.”
좀비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작전 과장이라고 불리는 자가 김준철 소령에게 달려왔다.
다다다다다!
“사, 사령. 사령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드디어 사령부에서 연락이 왔다.
김준철 소령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군용 통신기의 수화기를 넘겨받더니 무전을 시작했다.
“김준철 소령입니다.”
걸걸한 목소리의 사내가 대답해왔다.
-어, 네가 여단장이구나. 본부 상황실장이다.
“예. 말씀하십시오.”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
“압구정역 지하에 있습니다. 현재 승강장에 도착한 좀비들을 상대로-”
-승강장에 좀비가 도착해?
“예. 지하철을 타고 왔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김준철 소령의 답을 들은 상황실장이라는 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상황실장님?”
-나 보고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 좀비들이 지하철을 타고 왔다는 것을?
“…… 예. 저도 직접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지만-.”
-잠시만 기다리게나.
“알겠습니다.”
대화가 잠시 멈추었다.
내가 정우와 마이클을 데리고 유소라가 있는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곧 두 번째 라운드의 메인 게임이 시작될 예정이니 말이다.
-김준철 소령.
“…… 말씀하십시오.”
-그 열차와 압구정역을 폭파하도록 한다.
김준철 소령의 격양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지금 네 말대로라면 그 지하철은 또다시 좀비들이 이동할 수 있는 경로가 된다.
“하지만.”
-김준철 소령. 작전에 하지만이라는 말은 없어.
너무나도 단호한 말투였다.
“상황실장님. 압구정에는 아직 많은 시민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이 열차를 이용하면 그들을 살릴 수 있을 텐데요.”
-불가하다.
“예?”
-연락을 못 받았나 본데. 지금 옥수역에는 좀비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이 나타났어.
“우두머리…?”
-그래. 우리가 지원 병력을 보내지 못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네.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지 못하지만. 위에서 아래로도 내려가지 못하고 있어.
김준철 소령의 얼굴이 굳었다.
“그럼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
-다음 명령이 있을 때까지 대기하도록 한다.
“대기? 상황실장님! 죄송하지만 다음 명령을 기다릴 수 없습니다. 지상에 있는 좀비들이 계속해서 지하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미안하지만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대기하라는 것밖에 없다.
“시, 실장님! 헬기를 통해서라도 지원 병력을 보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곳에 남아있는 시민들이-”
-무전 끝. 무사 귀환을 바란다.
“자, 잠시만요!”
이 대화를 마지막으로 무전이 끊겼다.
김준철 소령이 계속해서 수화기의 버튼을 눌러 보았지만, 송신은 되지 않았다.
“실장님? 상황 실장님? 실장님! 실장! 야, 이 개새끼야!”
쾅!
김준철 소령이 수화기로 군용 통신기를 내리쳤다.
“하아…. 하아…. x발….”
모두가 그의 눈치를 보고 있는 때, 작전 과장이 조심스럽게 김준철 소령에게 말했다.
“여단장님.”
“…… 왜.”
“제가… 다리를 넘지 않고 강북으로 가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다리를 넘지 않고, 강북으로 가는 방법?”
“예.”
“어떻게?”
작전 과장이 지도를 펼쳐 들었다.
“여기서, 여기로. 이렇게 이동하면 됩니다.”
“…… 가능한가?”
“아마도요. 지금으로써는 이 방법이 최선입니다.”
“…….”
김준철 소령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작전 과장이 어떠한 설명을 해주었는지 몰라도, 시민들의 목숨을 가지고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잠시 방심하는 사이 근처에 좀비들이 모여들었다.
그중 제일 날렵해 보이는 좀비 한 마리가 작전 과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키에에엑!
“으아아악!”
김준철 소령이 소총의 개머리판으로 좀비의 얼굴을 찍어 내렸다.
콰직!
“하아…. 하아…. 여, 여단장님. 감사합니다.”
“후우….”
김준철 소령이 무전기를 들었다.
“작전 과장. 네 말을 믿어보도록 하지.”
삐빅.
-현 시간부로 압구정역을 폭파하도록 한다. 다시 전파한다. 압구정역을 폭파하도록 한다.
* * * * *
어둡다.
아직도 압구정의 하늘은 먹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콰광! 콰과과광!!
압구정역 안에서 폭탄이 크게 터지며 검은 연기와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폭파 완료.
김준철 소령이 머리 위로 걸쳤던 도깨비 가면을 내려 얼굴을 가리더니 크게 소리쳤다.
“전원 이동!”
지상으로 자리를 옮긴 시민과 군인들이 한강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벤트 완료]
[생존자 수: 100%]
[보상: 1,000 제니]
[시스템 메시지]
[경이로울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보여준 ‘김천재’ 플레이어님께 ‘파죽지세(破竹之勢)’ 칭호와 함께 500 제니가 추가로 지급 됩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보고 있는 나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파죽지세(破竹之勢)
레벨이 오를수록 추가적인 특수 능력을 얻게 되는 특수한 칭호다.
서버 내에 세 명만 부여되며 강자의 표식이라고도 할 수 있는 특수한 칭호.
‘그런 건가.’
폭파와 함께 두 번째 라운드의 시작을 알리는 지하철 이벤트가 끝났다.
군인들이 속도를 높여 한강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내가 소환수로 만든 군인에게 속삭였다.
“무리에 섞여 이동하도록.”
중간 중간에 도깨비 가면을 쓴 자들이 시민들을 향해 소리쳤다.
-늦으면 죽습니다. 힘들어도 빨리 걸으십시오!
-낙오자들은 따로 데려갈 수 없습니다. 죽는다 생각하고 걸어야 합니다!
투득. 투득. 투드드드득.
목이 말랐는데 때마침 하늘에서 비가 떨어져 내렸다. 내가 고개를 들어 입을 벌리고 비를 마셨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목을 축이기에는 충분했다.
나와 발을 맞춰 걷던 유소라가 물었다.
“천재씨.”
“예.”
“강북으로 이동하면 전부 살 수 있나요?”
“…… 이동이 가능한 사람만요.”
“예?”
“이동이 가능한 사람만 살 수 있어요.”
“그게 무슨…?”
나는 정우와 마이클을 불렀다.
이제부터는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본 게임이기 때문이다.
“한 번만 말해줄 거니 모두 잘 기억하도록 해.”
로그인 더 아포칼립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