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도착한 지하철 안으로 아우성치는 좀비들이 보였다.
쾅!
우리 앞에 있는 좀비가 주먹도 아닌 얼굴을 휘둘러 창문을 두들겼다.
놈의 입에서 흘러내린 피가 창에 튀었다.
유소라가 기겁을 하며 내 뒤로 물러섰다.
“으….”
“소라씨. 백신을 구할 때까지는 절대 먼저 앞으로 나가지 말아요. 뒤로 도망가지도 말고요.”
“으으으…. 알았어요….”
“저 구석에 보여요? 응급 상자.”
유소라가 좀비의 시선을 피하며 지하철 앞으로 붙었다.
창을 통해 안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천재씨. 저 안쪽에 하얀색 상자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할 수 있죠?”
유소라가 크게 심호흡을 하며 내게 말했다.
“해야죠.”
“좋아요.”
-시민을 지켜라!
김준철 소령의 명령을 받은 도깨비 부대가 이동을 시작했다.
지하철의 입구 하나당 무장을 한 군인이 두 명이 달라붙었다.
그들이 탄창을 확인하더니 지하철을 향해 사격 자세를 취하였다.
[이벤트 발생!]
[난이도: B-]
[보상: 1,000 제니]
-김준철 소령을 도와 좀비들을 무찌르시오.
-생존자 수에 따라 다른 보상이 지급됩니다.
우리 옆으로 다가온 군인들이 경고했다.
“뒤로 물러나시기 바랍니다.”
“예. 소라씨, 뒤로 물러나세요.”
유소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뒤로 바짝 붙었다.
“천재씨….”
“걱정하지 마시고요.”
나는 닭 뼈를 굳게 쥐었다.
끼익. 끼이이이익-
지하철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도깨비 마스크를 쓴 군인들이 총구를 좀비 머리에 고정시키고 호흡을 크게 들이마셨다.
삐빅.
무전이 울렸다.
-지하철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사살하도록 한다. 감염자, 비감염자로 나누지 말고 발포하도록.
삐빅.
천천히 열리던 지하철 문이 갑자기 단숨에 열렸다.
드르르르르륵! 쾅!
지하철 문이 열림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총성이 울렸다.
탕! 탕탕! 탕탕탕!
열차 안에 대기하고 있던 좀비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키에에에엑!!!
좀비들이 입구에서 나오는 순서대로 쓰러졌다.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기겁했다.
-꺄아아아악!!
-조, 좀비들이.
-신이시여….
‘이곳에 신은 없다. 있었다면 이런 사태가 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철컥. 철컥.
방아쇠 헛도는 소리가 들렸다.
군인 둘 중 한 명이 벌써 탄창 하나를 다 사용했다.
“제길! 너무 많잖아!”
총알의 수는 제한되어 있다. 지하철 안에 있는 좀비들을 전부 쓰러뜨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탁. 탁!
한 명이 탄창을 가는 동안.
탕탕탕탕!
다른 한 명이 총을 난사했다.
“소라씨. 들어갑시다.”
“예? 아, 예!”
내가 군인들의 다리를 걸어 자빠트렸다.
털썩
“뭐, 뭐 하는 짓이야?!”
“죽고 싶어!”
일어나려는 그들에게 손바닥을 뻗어 중지 신호를 보냈다.
“여기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뭐?”
내가 앞서 나오는 좀비 녀석의 머리를 발로 걷어찼다.
팍!
-키에에에엑
이어서 달려오는 회사원 좀비의 목을 잡아 힘을 주어 안쪽으로 던졌다.
부웅-
퍽!
바깥으로 나오려던 좀비들이 균형을 잃고 다 같이 쓰러졌다.
쿠당탕.
-키에엑!
내 모습을 본 군인들이 작게 속삭였다.
-뭐야, 저 새끼는….
-마, 말도 안 돼. 저게 인간의 힘이라고?
지금 내 레벨은 9.
못해도 회사원 좀비 보다 다섯 배 이상 높은 근력을 가지고 있다.
놈들이 버텨낼 힘이 아니다.
내가 닭 다리뼈를 강하게 휘두르며 주문을 외웠다.
“스켈레톤 소환.”
[시스템 메시지]
▶스켈레톤 소환 (마나 소모: 2)
-시전자의 레벨 수 만큼 뼈를 매개체로 해골 병사를 소환.
남은 마나: 13
스켈레톤 전사 한 마리가 땅에서 일어났다.
내 레벨이 오른 덕분인지 놈의 뼈 굵기가 달라졌다.
앞선 스켈레톤 전사의 뼈가 어린아이 손목만 했다면.
지금은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였다.
[소환 목록]
-스켈레톤 전사(폐급) 1/1 : 전투 준비 완료.
“소라씨, 지금이에요!”
“네!”
스켈레톤 전사와 내가 좀비들을 막는 동안 유소라가 지하철의 뒤쪽을 향해 달렸다.
원래라면 비상 개폐 장치가 있어야 할 자리지만.
이 게임 안에서는 백신을 숨겨놓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유소라가 식칼의 손잡이 부분으로 유리를 깨고.
와장창!
그 안에 있는 응급 상자를 꺼내었다.
“천재씨. 찾았어요!”
좀비와 힘겨루기를 하던 내가 크게 소리쳤다.
“빨리!”
유소라가 허겁지겁 응급 상자를 열더니 그 안에 있는 주사기와 캡슐을 꺼내었다.
주사기에는 빨간색 스티커로 백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ZX-19]
머뭇거리던 유소라가 눈을 질끈 감더니 자신의 팔뚝에 주사를 놓았다.
치이이익.
“으으….”
유소라의 몸속으로 투명한 액체가 들어갔다. 열이 오르는 듯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처…. 천재씨.”
“걱정하지 말고. 열차에 기대어 쉬어요.”
“……”
유소라가 고개를 떨구었다.
ZX-19 백신 또한 Z 바이러스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바이러스다.
백신 바이러스가 면역 반응을 일으킬 때까지는 그녀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다.
‘간호사’라는 직업을 얻을 때까지.
“스켈레톤, 유소라를 지켜라.”
내 옆을 지키던 스켈레톤이 자신에게 달라붙은 좀비들을 떼어내더니 유소라의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녀가 좀비들에게 당한다면 이 계획은 실패하게 된다.
지켜야 한다.
열차와 열차 사이 연결된 출입문을 통해 끝없이 몰려오는 좀비들.
-키에에에엑!
나는 한 마리의 야수가 되어 녀석들을 상대하였다.
길게 휘두른 주먹이 회사원 좀비 녀석의 머리를 터트리고.
팍!
높게 차올린 발차기가 등산복을 입은 아저씨 좀비를 날려 보냈다.
부웅-
무리를 지어 오는 좀비들을 향해 럭비선수처럼 달려가 몸통으로 받아쳤다.
다다다다다-
팍!
놈들이 동시에 쓰러지며 아우성을 쳤다.
-키에에엑!!
-크하악.
-캬악!
놈들과 부딪친 어깨에 통증이 아려왔다.
피로도가 쌓였는지 온 몸의 관절들이 삐걱거렸다.
“후아….”
숨이 차오른다.
네크로맨서라는 직업의 특성상 근력에 비해 체력이 많이 부족했다.
아침부터 물을 마시지 못한 상태에서 체력을 급격히 쏟아서 그런지 목도 타오르는 것 같았다.
잠시 한숨을 돌리는데.
콰직!
죽은 줄 알았던 발 밑 좀비 녀석이 내 정강이를 물었다.
갑작스런 통증에 나는 신음을 흘렸다.
크윽.
“이 개새끼야!”
다리를 털어내자 놈의 이빨이 부러지며 고개가 떨어져 나갔다.
나는 균형을 잃고 뒤로 쓰러졌다.
“아…. 제길….”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눈앞이 번쩍였다.
팍!
“악!”
반대편 열차에서 날아온 물체가 내 눈덩이를 맞추었다.
눈을 살짝 떠서 땅을 보니 구슬이 떨어져 있었다. 고개를 들자 캡 모자를 거꾸로 뒤집어쓴 꼬마 좀비가 새총으로 나를 조준하고 있었다.
“하….”
두 번째 라운드의 좀비라 얕보지 말라는 건가.
새총을 신호 삼아 달려온 좀비 세 마리가 내 사지를 붙잡고 잡아 뜯으려 했다.
“제기랄! 꺼져!! 꺼지라고!!”
그중 축구 유니폼을 입은 좀비가 입을 크게 벌려서 내 목을 깨물려 다가왔다.
-키에에엑!
그 순간.
펑!
유소라의 머리 위로 축포가 터졌다.
“천재씨!”
유소라가 깨어났다.
다다다다!
그녀가 달려와 축구 유니폼을 입은 좀비 머리에 식칼을 박아 넣었다.
콰직!
-키에에엑!!!
“꺄아아악! 무, 무서워!”
내가 다리에 달라붙어 있는 좀비들을 주먹으로 쳐냈다.
팍!
“스켈레톤! 이 녀석들을 막아!”
스켈레톤 전사가 빠르게 다가와 좀비들을 향해 다이빙하듯 뛰어들었다.
-끼끼끼끼!
“소라씨! 지금이에요, 빨리. 빨리 스킬을 쓰세요.”
“스, 스킬이라뇨.”
“상태 창에 소라씨 스킬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죠?”
유소라의 눈이 허공을 향했다.
자신의 상태창을 확인하고 있었다.
“어…. 예! 있어요. 붉은 주사. 푸른 주사. 누른 주사.”
“붉은 주사. 지금 빨리 저한테 사용해주세요.”
“어, 어떻게 사용하는데요?”
“제일 앞에 써있는 명령어를 그대로 읽어요. 빨리!”
유소라가 입술을 움찔거리더니 허공을 보며 속삭였다.
“나와라, 붉은 자의 피를 담은 바늘이여.”
그녀의 손안에 붉은빛이 작게 번쩍이더니 빨간 액체가 든 홀로그램 주사기가 만들어졌다.
유소라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주사기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처, 천재 씨?”
“여기. 제 손에 놔주세요.”
그녀가 눈을 질끈 감더니 내 팔뚝에 주사를 놓았다.
치이이익.
빨간색 액체가 천천히 내 몸 안으로 들어왔다.
몸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가슴 깊은 곳에서 힘이 끓어오르며 숨이 빨라졌다.
혈관이 피부 표면을 뚫고 나올 듯 팽창해졌다.
운동을 마친 상태의 몸처럼 근육들이 부풀어 올랐다.
[‘유소라’ 플레이어로부터 붉은 피를 수혈받았습니다.]
[화과산(花果山) 꼭대기 거석의 영기를 받은 제천대성(齊天大聖)의 힘이 활성화됩니다.]
[활성화 시간: 30분]
“…… 후우. 수고했어요. 소라 씨.”
“괘, 괜찮으세요?”
“예. 이제… 밖으로 나가 있으세요.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 알았어요.”
유소라가 열차 밖으로 나가자 군인들이 그녀를 호위하듯 양옆으로 달라붙었다.
그녀가 안전하게 나가는 것을 확인한 나는 지하철 안쪽에서 강제로 문을 닫았다.
끼익. 끼이이익. 끼이이이익.
쿵.
“후우….”
문이 닫히자 밖으로 나가려 하던 좀비들의 시선이 전부 내게 꽂혔다.
-키에에엑!
-크하악….
“놀아볼까.”
* * * * *
나는 성난 원숭이처럼 좀비들을 찢으며 앞을 향해 달렸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괴수들이 도심을 파괴하며 사람들을 몰살하는 장면이 떠오를 정도로 압도적인 힘이었다.
덜컹!
닫혀있는 다음 열차 칸의 문을 열자 뭉쳐있던 좀비 녀석들이 동시에 덤벼왔다.
열댓 마리가 동시에 내 몸을 감싸 안았고.
나는 고릴라가 포효하듯 소리를 치며 주먹을 휘둘렀다.
“으아아아!”
쉬익- 팍! 쾅! 와장창!
열차 밖에서 군인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저, 저 새끼 뭐야? 저것도 좀비인가?
-아닌 것 같아…. 저건 좀비…가 아니라…. 괴물이야.
후우.
큰 싸움을 했는데도 숨을 고르게 쉴 수 있었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 유소라의 잠재적 힘은 대단했다.
쓰러진 좀비들을 확인한 나는 지하철의 머리를 향해 다시 걸었다.
열차를 걷는 내내 좀비들이 계속해서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키에에엑!
“크흠.”
나와 눈을 마주친 좀비 녀석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첫 번째 라운드와는 다르게 어느 정도 지능이 있어 공포감이라는 것을 느낀 것 같다.
“꺼져라.”
내 손바닥이 놈의 뺨을 쳤다.
팍!
생기가 있는 뺨을 치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저 질척하고 단단한 살덩이를 치는 촉감.
그래서 그런지 ‘찰싹’이라는 소리가 아니라 둔탁한 소리가 났다.
내게 뺨을 맞은 좀비의 머리통이 360도로 세 바퀴 회전하더니 팽이처럼 날아갔다.
나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손에 묻은 액체를 털어냈다.
‘무기를 구해야겠네.’
열차의 뒤를 향해 걸어오던 좀비들이 나를 보더니, 겁에 질린 채 도망가기 시작했다.
절반은 열차 밖으로.
반은 열차의 머리 쪽으로.
“없나.”
지하철의 머리로 향하는 동안 괜찮은 좀비가 있나 확인해 보았는데.
전부 하급 좀비들이었다.
회사원을 복장을 한 젊은 남성과 여성 좀비들.
어디론가 떠나는 것 같은 화사한 옷을 입은 할머니 할아버지 좀비들.
교복을 입은 학생 좀비들.
전부 전투력이 낮은 좀비들이다.
이 능력도 제한 시간이 있으니. 끝나기 전에 쓸만한 부하를 하나 만들어 놓아야 할 텐데.
“후우…. 어쩔 수 없네.”
없으면 강제로 만들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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