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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김준철 소령이 이끄는 19공수여단이 압구정역을 점령했다.

우리는 은근슬쩍 그들의 무리에 끼어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특별한 물건이 기다리고 있으니깐.

군부대가 이곳에 있는 좀비들을 상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역 안에 있는 좀비의 수가 많은 것도 아닌데다가 전부 하급 좀비에 속하는 회사원 좀비와 노인 좀비들이었다.

탕! 탕탕!

그들은 어둠 속에 있는 존재가 적이라 생각되면 무조건 발포했다.

희생자가 발생하는 것과 좀비가 늘어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것 같았다.

이어지는 총소리가 멎자 김준철 소령이 우리를 지하철 승강장으로 안내했다.

내려오는 동안에는 빛이 없어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현장에 도착하자 그가 피난민들에게 보급형 손전등을 나누어 주었다.

팟-.

주변이 밝아졌다.

“전원 이곳에서 대기해주시면 되겠습니다. 계단 위는 저희가 막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몇몇이 말을 하고 싶은지 입을 때였다 닫기를 반복했다.

플레이어인가보다.

그들의 얼굴을 외운 나는 유소라를 데리고 승강장의 제일 좌측으로 이동했다.

“소라씨. 제가 준 칼은요?”

유소라가 뱀파이어의 피가 묻은 식칼을 들어서 내게 보여주었다.

“여기 있어요.”

“좋아요. 그럼 게임이 시작되면 제가 시킨 대로 하셔야 합니다.”

“옙….”

“아까 말했다시피 금기사항은 지키도록 하시고요.”

“알았어요.”

“그럼 잠시 쉬도록 하세요. 지금이 아니면 오늘은 쉴 시간이 없을 테니까요.”

유소라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벽에 기대어 누웠다. 다른 사람들을 전부 볼 수 있도록 모서리 자리를 잡았다.

나는 승강장을 걸으며 플레이어로 보일만 한 자들을 찾았다.

유추되는 놈들만 간추려 보자면 대략 열 명 정도.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플레이어의 수는 굉장히 적었다.

그 말은 즉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튜토리얼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

“쉽지 않겠네.”

반대편에 도착하자 대화를 하고 있는 정우와 마이클이 보였다.

“정우 킴. 좀비들 무섭지 않아요우?”

“무서워. 안 무서울 리가 있겠냐. 눈앞에 괴물이 있는데.”

내가 그들의 옆으로 다가갔다.

“준비됐어?”

“천재 킴!”

정우 녀석이 내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네어 주었다.

“왔냐. 소라씨는?”

“반대편에 있어.”

“왜 혼자 왔어?”

“상황 파악 중이라서. 다른 플레이어가 몇 명 정도인지. 우리가 아는 스토리랑 같은지 볼 겸 나 혼자 돌아다니는 중이야.”

“좋네. 플레이어는 몇 명 정도 있디?”

나는 손가락을 전부 뻗어 보여주었다.

“대충 열 명. 지금 내 뒤에 한 명 따라붙은 것 같은데. 모르는 척 중이야.”

“너를? 왜?”

“우리는 대놓고 플레이어인 걸 티 내고 있잖아. 합류하고 싶거나 크기 전에 처리하려는 거겠지.”

“처리한다는 말은 이 게임을 알고 있는 놈이라는 거네.”

“그렇지.”

정우가 석연찮은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 혹시 모르니깐 조심하고. 일 생기면 무전해.”

“그래. 마이클, 너는 정우 말 잘 듣고 있어.”

마이클이 해맑게 웃었다.

“오케이.”

대화를 마친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치직. 치지직.

쓰읍.

콧속에 박힌 피비린내를 지우기 위해 담배를 깊게 빨았다. 물론 이렇게 해서 지워지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중화(中和) 정도는 되기에 하는 행동이었다.

담배 연기를 흘리며 걷고 있는데. 누군가 계속 따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아까부터 그림자같이 내 걸음에 맞춰 걷는다.

내가 걸음을 멈추면.

터벅.

녀석도 멈추었다.

뚜벅.

뒤로 돌아 피난민들을 확인해 보았지만, 누구인지는 모르겠다. 같은 얼굴이 계속 보인다면 알 법도 한데.

사람이 많은데다가 전부 눈에 익지 않은 얼굴들이라 구별이 쉽지 않았다.

“……”

나는 머리를 긁적인 후 다시 걷기 시작했다. 노리는 게 내 목숨이라면 진즉에 공격해왔을 터.

일부러 방심하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녀석이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저 상황을 파악하려는 것 같았다.

덜컹. 덜컹. 덜컹. 덜컹.

지하철 승강장의 열려있는 안전보호벽 안으로 열차 소리가 들렸다.

다른 이들은 듣지 못했을 것이다.

NPC나 레벨이 낮은 플레이어들은 청력이 높은 수준으로 발달해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안에서 열차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우리 그룹뿐.

나는 무전기를 켰다.

삐빅.

“들었나.”

삐빅.

-들었다.

좋아.

무전을 마친 나는 추격하는 놈을 신경쓰지 않고 빨리 걸었다.

돌아오는 길 플레이어로 보이는 자들에게 말을 걸어볼까 생각했는데.

‘아니다.’

친해져봤자 짐만 된다.

도움이 되는 플레이어는 이곳에서 살아남는 자들이다.

우선 때를 기다리자.

지하철의 끝에서, 끝까지 오는데 삼 분 정도 걸렸다.

지친 피난민들이 누워서 길을 막지만 않았어도 더 빨리 올 수 있었을 것이다.

압구정역 자체가 그리 길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소라 씨.”

대답이 없다.

졸고 있는 유소라의 옆에 살며시 앉았다. 내가 도착했는지도 모르고 코를 새근새근 골며 깨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자는 동안에 식칼의 손잡이를 꽉 잡고 있었다.

“…… 후우.”

그녀의 자는 모습을 보니 나도 졸음이 몰려왔다.

‘저 녀석만 아니었어도.’

다른 플레이어의 추격만 없었어도 나도 잠시 눈을 붙였을 텐데.

다시 둘러보았지만 지금 이 근처에는 플레이어로 보이는 놈이 없었다.

나는 담배의 마지막 한 모금을 깊게 빨았다.

쓰읍.

푸후-.

차가운 바람이 바깥으로 연결된 통로를 통해 들어왔다.

내가 다 피운 담배꽁초를 열차 길에 던졌다.

‘저 녀석이구나.’

걸렸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NPC들은 내 담배에 반응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유유히 걷는 나를 보는 자들은 많았지만.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내 담배에 관심을 두는 자들은 없었다.

계속해서 담배 연기를 뿌렸는데도 불구하고 기침은커녕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지금 내 담배꽁초가 떨어진 곳으로 눈동자가 돌아간 저놈.

아니 저년.

저 자식이 나를 추격해온 자다.

“…… 어이, 너.”

이마에 밴드를 붙이고 교복을 입고 있는. 앳되어 보이는 소녀가 껌을 ‘짜악, 짜악’ 씹으며 나를 꼬나보았다.

많아봤자 나이가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데.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처럼 눈빛이 살아 있었다.

요즘 학생들 무섭다더니 진짜네.

“뭐요.”

“너 왜 나를 따라오는 거지?”

“…… 뭐래? 내가 왜 당신 같은 늙다리를 따라가?”

플레이어 맞나? 싶을 정도로 양아치 같은 말투의 여자아이였다.

“아까부터 따라온 거 다 알고 있어.”

“뭐, 뭐. 뭐에요? 증거 있어요?”

“증거랄게 뭐 있나. 네가 쫓아오는 걸 직접 봤는데.”

“나를 봤다고요?”

“어.”

소녀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증거 없으면 함부로 말하지 마시죠? 조온나 짜증나니깐.”

“뭐? 조온나?”

“그래요 조온나. 하-! 재수가 없으려니 이런 늙탱이가 말을 거네.”

강하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여고생이다.

나는 헛기침을 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니?”

“지하철. 지하철이지 어디겠어.”

“말이 짧구나.”

“짧은 건 그쪽이고.”

“뭐?”

소녀의 시선이 내 하체를 향했다. 내가 버럭 화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게 어른한테.”

“아, 뭐래. 됐고, 갈 테니깐 말 걸지 마요. 재수 없게 다 늙은 아저씨가 말을 걸고 지랄이람.”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나는 온화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곳에서 감정 낭비해 보았자 피곤하기만 하고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저씨. 이제 벙어리 코스프레 하는 거야? 왜 고개만 까딱- 까딱- 거려?”

“……”

“당신 벙어리야? 어? 벙어리냐고!”

내가 계속해서 대답하지 않자. 그녀가 중지를 날리더니 지하철의 반대편을 향해 걸어갔다.

“후우….”

세상은 참 넓구나.

별에 별새끼가 다 있다.

어린 학생들에게 이런 무시를 당해보는 것이 처음이라 그런지 당황스럽고 웃겼다.

좀 있으면 내게 무릎을 꿇고 빌게 될 텐데.

내가 썩소를 지어 소녀의 뒷모습을 보았다.

* * * * *

핸드폰을 다시 확인해 보았지만 역시나 먹통이었다. 인터넷, 메신저, 전화, 문자. 전부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저 시계로 사용하는 방법뿐.

“소라씨. 소라씨. 이제 일어나세요.”

“으음. 으음…. 어? 제가 잠들었나요.”

“예. 잘 잤어요?”

“아…. 네….”

“좀 있으면 시작될 거예요. 정신 단단히 잡아요.”

유소라가 눈에 힘을 주어 나를 보았다.

“예!”

덜컹. 덜컹. 덜컹. 덜컹.

터널 밖에서 다시 열차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두 번째 라운드]

[선택지 A의 첫 번째 임무를 시작합니다.]

NPC들이 아무렇지 않은 듯 땅에 누워서 쉬거나 잡담을 떠들었다.

그에 반해 플레이어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가 보아도 저들은 이 게임의 플레이어였다.

시스템 메시지가 보내는 임무에 격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초보.

‘…… 알아서 하겠지.’

덜컹. 덜컹-! 덜컹-!! 덜컹-!!!

터널 밖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달려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바람 소리와 함께 열차 길이 굉음을 내었다.

지하철이 오고 있다.

방향을 보니 신사역에서 압구정으로 오는 지하철이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닭 뼈를 꺼내었다.

지금 소환하면 다른 NPC들이 기겁할 게 뻔하므로 대기하는 중이다.

우우우우우우우웅-

점점 커지는 바람 소리가 지하철이 가까워졌음을 나타냈다.

계단 위에 대기하고 있던 김준철 소령이 빠르게 내려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하철이 온다고?”

그래.

오고 있다.

이어 도깨비 마스크를 쓴 특공대원들이 계단을 내려왔다.

그들의 수는 대략 서른 명.

김준철을 호위하듯 주변을 감쌌다.

“작전 과장. 신사역은 좀비들이 점령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근데 어떻게 지하철이 오고 있는 거지?”

“그게… 출발지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아래쪽에서 마지막으로 출발한 열차인 것 같습니다.”

반은 맞는 말이고 반은 틀린 말이다.

아래쪽에서 출발했다는 말은 맞다.

다만 마지막 출발은 이 열차가 아니었다.

진동이 느껴졌다.

열차가 터널 안으로 들어왔음을 나타냈다.

검은 터널 안에서 환한 빛이 어둠을 뚫고 뿜어져 나왔다.

전기가 들어오고 있는 열차다.

피난민들이 환호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북으로 도망갈 길이 열렸다는 기쁨이었다.

-우오오오오오!!

-지하철이 온다! 지하철이야!

-저걸 타고 이동하는 건가?

쿠구구구구구구-!

그들의 희망도 잠시.

승강장 안으로 들어오는 열차를 확인한 그들의 표정이 굳었다.

제일 앞에 있던 나와 유소라가 긴장된 표정으로 들어오는 지하철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이렇게 된 이유는 안이 보였기 때문이다.

환하게 불이 들어와 있는 지하철 안으로, 좀비들이 시민들을 잡아먹고 있었다.

아직 살아 있는 시민이 피 묻은 손으로 창문을 두드리며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단 몇 초 사이에 지하철을 확인한 모두의 얼굴이 굳었다.

유리창 곳곳에는 사람들이 도망가려 발버둥친 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던 나도 당황스러운 만큼 처참한 풍경이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보고 싶지 않았다.

학살의 현장을.

빠르게 들어온 열차의 머리가 승강장 끝에 이르자.

끼이이이이익-

마찰음과 함께.

쿵!

지하철이 멈춰 섰다.

“소라씨, 시작합시다.”

“네!”

-키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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