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내가 녀석을 잡기 위해 생각한 두 가지의 방법.
그중 하나를 실행했다.
“거래 신청.”
-…….
루시퍼의 주먹이 내 얼굴에 닿기 직전에 멈추었다.
[시스템 메시지]
[‘김천재’플레이어님이 ‘김두식’님께 거래를 신청합니다.]
성공했나?
------------------
[거래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ES] or [NO]
------------------
‘성공이다.’
이 시스템에 대하여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자만이 할 수 있으며 플레이어에게만 통하는 기술.
[무빙 스탑]
시스템을 이용한 일종의 버그다.
거래 창을 여는 동안에는 상대방과 나의 움직임이 멎는다.
[NO]를 눌러 창을 닫기 전까지.
일시적이지만 움직임이 멈추었다.
YES를 눌러도.
NO를 눌러도.
이미 게임은 끝났다.
-NO
루시퍼가 NO를 누르는 동시에 내가 놈을 껴안았다.
팍!
-무, 무슨 짓이냐!
“이 녀석을 죽여라. 뱀파이어!”
뱀파이어가 땅에 떨어진 식칼을 줍더니 우리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다다다다다다!
-아, 안 돼!
놈이 팔에 힘을 주어 발버둥 치자 내 손이 천천히 벌어졌다.
그것도 잠시.
콰직.
놈의 심장에 식칼이 박혔다.
-크하아아아악!!!!
놈의 비명에 뱀파이어와 내가 튕겨 나갔다. 그 충격으로 인해 귀에서 ‘윙-’소리와 함께 이명이 생겼다.
내가 상체를 일으켜 세워 녀석을 보았다.
심장에 박힌 식칼을 통해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놈의 분노한 얼굴을 보자 내 손이 떨려왔다. 도망가려 뒷걸음질 치려 했는데. 몸이 굳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놈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눈과 입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튜토리얼 보스인 주제에 미칠 듯한 공포감을 조성했다.
무섭다….
너무 무섭다. 미치게 무섭다!
역시 보스 몬스터라 한 방에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 한 것인가.
“꺼…. 꺼, 꺼져!”
-인간 주제에…. 감히….
“뱀파이어! 이 녀석을 막아라!”
뱀파이어 또한 몸이 말을 듣지 않는지 삐걱거렸다.
그래도 나와는 다르게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의지만큼은 나보다 나았다.
“빨리!”
뱀파이어가 삐걱거리는 몸으로 걸어왔다. 그의 움직임을 눈치 챈 루시퍼가 뒤로 돌았다.
분노한 얼굴과는 맞지 않게 낮고 차가운 음성을 내뱉었다.
-사라져라.
팍!
뭐지?
그저 손날로 허공을 그었을 뿐인데.
뱀파이어의 목이 빙그르르 하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놈의 손톱이 날카롭다거나.
날붙이를 들고 있지 않았다.
‘기공(氣功)인가.’
뱀파이어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몸이 그대로 주저앉지는 않았다.
나무처럼 그대로 서 있었다.
저곳이 자신의 자리인 듯 말이다.
“……”
짧은 순간이지만 절망이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에 박혔다.
정우랑 마이클은 왜 아직도 오지 않는 것인가.
대체 왜?
루시퍼가 손에 묻은 피를 털어내더니 나를 보았다.
-이번에는 네 차례다.
심장이 빠르게 뛰어왔다.
숨이 빨라졌다. 아드레날린이 돋았는지 조금이지만 몸을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놈의 머리 위에 있는 생명력 게이지를 보니 십 분의 일 정도밖에 안 남았다.
조금만 시간을 끌면 이길 수 있을 텐데.
내가 식칼의 위치를 확인하려 눈알을 돌리는데. 떨어진 뱀파이어의 머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
피식 웃음이 나왔다.
‘흡혈 덕분인가.’
루시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친 건가.
“…… 아니. 그냥 너를 어떻게 죽일까 생각하고 있었어.”
-마지막 저항을 하려는 것인가?
“그럴 걸. 이번엔 네 차례잖아. 너 지금 몸이 잘 안 움직이지?”
-뭐?
“너를 찌른 그 칼. 뱀파이어의 피가 묻어 있었어. 분명 몸이 천천히 마비되고 있을걸.”
루시퍼가 자신의 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내 말이 맞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 그래서? 지금 네가 뭘 할 수 있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
나는 방긋 웃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을 이었다.
“끝이다.”
-끝?
샥-
나를 째려보던 루시퍼의 목이 횡으로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화면이 천천히 내려가는 것을 깨달았는지 놈이 눈알을 굴렸다.
-이게 무슨.
그의 머리가 땅에 떨어짐과 동시에 둔탁한 소리가 났다.
팍.
지면에 떨어진 루시퍼의 얼굴이 그의 뒤에 서 있는 뱀파이어를 보았다.
뱀파이어의 손톱에 그의 검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루시퍼가 내게 물었다.
-어… 떻게…. 저 녀석이….
“후…. 저 녀석. 내 소환수야.”
-…… 그게 무슨… 말….
“이미 죽은 놈이었다고. 플레이어가 아니라서 생명력이 전부 깎이기 전에는 내 명령으로 움직여.”
뱀파이어의 머리 위로 생명력이 표시되어 있었다.
가로로 길게 늘어진 생명력 막대기 안에 빨간색이 손톱만큼 남아 있었다.
흡혈 능력으로 인한 생명력 회복.
기가 막히게 운이 좋았다.
-…… 제길.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워 떨어져 있는 루시퍼의 목 앞으로 걸어갔다.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마지막으로 할 말은?”
-…… 언젠가는. 널 내 손으로 죽여주마.
“좋네. 다음에는 내가 직접 찾아갈게.”
-내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나?
“그럼. 결전의 날까지 발 닦고 기다리고 있어.”
나는 땅에 떨어진 식칼을 주워.
온 힘을 다해 놈의 정수리에 박아 넣었다.
부웅-
콰직.
* * * * *
건물 안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의 눈앞에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튜토리얼 완료]
[첫 번째 라운드 클리어]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추가 경험치가 지급됩니다.
띠링!
머리 위에 황금색 빛이 한 바퀴 돌았다.
[‘공략 불가 영역의 성공자!’ 칭호를 획득합니다.]
[소환 레벨이 +1 증가합니다!]
[소환 레벨 ‘4’ 달성]
[하수인의 공격력과 방어력, 체력이 소폭 증가합니다.]
-후우.
뱀파이어와 김두식의 몸에서 흘러나온 붉고 검은 액체가 복도를 흥건히 적셨다.
하얀색 벽지 위로 밤하늘의 별 만큼 수없이 많은 핏방울이 보였다.
전투가 쉽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증거였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었다.
“돛대네.”
입에 물고 불을 붙이자.
치직. 치지직.
쓰읍.
계단을 달려 올라오는 정우와 마이클이 보였다.
다다다다다!
“김천재!”
“천재 킴!”
빨리도 온다.
푸후-.
씁쓸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왜 이제 왔냐.”
“응?”
정우가 땅에 쓰러져 있는 뱀파이어와 김두식을 확인하더니 탄식을 내뱉었다.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되기는.”
“저놈 혹시…….”
“악마 녀석이 저 자식 몸에 들어가서 한바탕했다.”
“루시퍼가?!”
정우가 땅에 떨어져 있는 김두식의 목을 다시 확인했다.
“그러네. 머리에 뿔이 있네. 너 혼자 잡은 거냐?”
“그럼 누가 잡았겠냐.”
“…… 튜토리얼에서 악마를 잡았다고? 공홈에서도 악마 잡았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는데.”
듣고 보니 그렇네.
악마와의 싸움을 다시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렇겠지. 어떤 미친놈이 튜토리얼에서 악마랑 싸울 생각을 해. 다른 플레이어를 제물로 바치면 쉽게 끝나는데.”
정우가 환하게 웃으며 내 뺨을 툭툭 쳤다.
“말도 안 돼…. 김천재. 이 미친 새끼, 진짜 너는 대박이다.”
“아퍼, 이 새끼야. 그나저나 너네 너무 늦었잖아. 무전 못 들었어?”
“무전?”
“어.”
“…… 무전 안 왔는데?”
“뭐?”
내가 허리춤에 달린 무전기의 버튼을 눌렀다.
삐빅.
“원, 투, 쓰리, 포. 어 뭐야? 진짜 안 들리네.”
“응? 충전이 안 됐나?”
“그럴 리가. 빨간 불이 들어오는데.”
마이클이 자신의 무전기를 슬쩍 보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천재 킴 쏘리. 무전기 채널을 안 맞춰 놨어요우. 그건 4번. 이건 7번.”
“아, 이 미친….”
어이가 없어서 다리에 힘이 풀렸다.
정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쏘리. 쏘리.”
“쏘리라고 하면 다 끝나냐…. 하….”
내가 짜증을 내자 마이클이 두 손을 모아 흔들며 내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사제합니다.”
“사죄겠지.”
갑자기 마이클의 머리 위에서 폭죽이 터졌다.
탕! 탕타당탕!
뭐지?
“어어어어. 이, 이게 뭐에요우?”
…… 전직?
갑자기 전직이라고?
마이클의 머리 위로 전직 신호가 튀어 올랐는데,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
정우 또한 깜짝 놀라 나를 보았다. 우리 둘 다 모르는 눈치였다.
이 게임의 고인물인 나와 정우가 모르는 특별 전직 시스템이 있나?
“천재야, 뭐냐.”
“…… 나도 모르겠는데.”
전직을 원할 시 그 직업에 맞는 조건에 합당해야 이벤트가 발생한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이렇게 어이없게 되는 게 아니다.
“처, 천재 킴.”
“마이클. 너 상태창 보이지?”
“상태창?”
상태창이 영어로 뭐지?
“스테이트? 인포?”
“오우, 인포! 보여요우.”
“직업란에 뭐라고 되어 있어? 잡. 네 직업.”
마이클이 눈을 굴렸다.
“직업…. 프리스트, 프리스트에요우. 방금 전에 시스템 메시지에서도 프리스트라고-”
프리스트?
귀신이 곡 할 노릇이다.
왜 갑자기 녀석이 프리스트로 전직하게 된 거지.
“……”
설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 그런 건가….”
내가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쓰읍-
푸후-.
정우가 내게 물었다.
“뭔데? 왜 전직했는지 알아?”
“정우야. 프리스트의 전직 조건이 뭐지?”
“레벨을 5까지 올리는 거지.”
“또?”
“두 손 모아 기도하며 키워드 입력.”
“그 키워드가 뭔데.”
“뭐긴 ‘사제’잖아.”
나는 억지로 웃어 보였다.
눈치를 챈 정우가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설마 방금 그거?”
“어. 그거.”
마이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뭐에요우?”
“마이클, 너 혹시 교회나 성당 다녀?”
“교회? 성당?”
“가톨릭이나 크리스천이냐고.”
내가 이 질문을 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기존 멸망의 땅에서 사제 직업을 얻은 자들은 ‘기도문’을 타이핑해서 마나 재생력을 높일 수 있었다.
즉 슨 마이클이 기도문을 외울 줄 안다면 마나 약을 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
“노! 저 ‘부디스트’에요우.”
“…… 너 불교 신자야? 보살님?”
“예스.”
‘멸망의 땅’ 최초로 부디스트 프리스트가 탄생하였다.
‘기도문은 모르겠구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사실 그가 기도문을 모르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 성경을 찾아 그에게 주면 되니깐.
다만 큰 문제가 하나 생겼다.
그게 뭐냐고?
네크로맨서의 파티원이 사제다.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
“천재 킴. 안색이 까매요우.”
정우가 말을 이었다.
“마이클, 네가 더 까매.”
내가 또다시 짜증을 내뱉었다.
“생각 좀 하게, 둘 다 잠깐만 닥쳐봐!”
“또 닥쳐? 오케이.”
벽에 기대어 천천히 주저앉자 아래층에서 유소라가 달려 올라왔다.
“으아아아아아!!”
그녀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와 눈이 마주쳤다.
“뭐, 뭐야. 소라씨 뭐에요?”
“조, 좀비가. 좀비들이!”
그녀의 뒤로 회사원 좀비들이 떼를 지어 올라왔다.
달리는 자세를 보니 튜토리얼이 끝남과 동시에 놈들의 능력치가 향상되었나 보다.
정우가 내 뺨을 툭툭 치더니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수고했다. 나머지는 우리한테 맡겨.”
“하…. 잠깐만 쉬어도 되냐?”
“계속 쉬어도 돼. 어차피 튜토리얼 끝났잖아?”
“…… 그렇지.”
“야, 마이클! 가자.”
마이클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권총을 장전했다.
철컥.
“오케이.”
* * * * *
탕!
마이클의 권총에서 노란 빛이 레이저처럼 날아갔다.
프리스트의 회복 주문인 ‘힐’을 탄에 주입해서 쏜 것이다.
“성불하십시오.”
그의 공격을 마지막으로 건물 안에 있는 좀비들을 전부 마무리 지었다.
밖으로 나가기 전 유소라와 마이클에게 이 게임에 대하여 다시 설명해 주었다.
우리의 목표는 생존.
게임의 후반부에 도착할 때까지는 절대로 튀는 행동을 하지 말아라.
마이클과 유소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준비를 마친 우리가 밖으로 나가기 위해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걷는 내내 고약한 악취와 피비린내가 콧속에 진동했다.
내려오는 길, 바이러스에 이기지 못하고 죽은 장동탁이 보였다.
죽음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좀비로 변하지 않았다.
Z 바이러스 면역체계가 있는 사람이었다.
가끔 저런 플레이어들이 있던데, 이유는 모르겠다. 좀비로 변하지 않고 그저 죽기만 하는 그런 캐릭터.
1층에 도착한 나는 밖으로 통하는 유리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간다. 이제부터는 모두 긴장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깐.”
도끼로 휘둘러도 깨지지 않았던 유리문이 슬쩍 밀었는데 열렸다.
끼이이이익-
탁.
[시스템 메시지]
[두 번째 라운드를 시작합니다.]
쿠구구구구구구구.
우리 앞으로 탱크가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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