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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게임이 시작된 지 두 시간이 흘렀다.

어디서 울리는지 모르겠지만 귀가 찌릿할 정도로 큰 괘종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대앵- 대앵- 대앵- 대앵-

이어 건물 안에 있는 모든 불이 껌뻑 껌뻑거리더니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전부 꺼졌다.

어둡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카만 어둠이었다.

5층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 자그마한 창고.

그 안에 숨어있는 김두식이 숨을 헐떡거렸다.

-하아…. 하아….

그가 조용히 독백했다.

“어떻게 된 거지. 왜 갑자기 전기가….”

천장에 대롱대롱 달려있던 전구의 불이 나갔다.

탁. 탁.

스위치를 눌러보았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겁에 질린 김두식이 핸드폰의 전원 버튼을 마구잡이로 눌렀다.

화면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빛이었는데 말이다.

“빨리 오라고…. 112…. 119…. 111…. 제발….”

그랬다.

그는 충전기와 전화기를 챙겨 이곳에 숨어있으면. 언젠가는 경찰이나 군부대에서 상황을 정리하러 올 줄 알았던 것이다.

김두식이 주머니에서 병을 꺼내어 꼭 쥐었다.

마치 신줏단지를 모시는 무속인처럼 말이다.

“신이시여….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기도하듯 읊조리는 그의 귀에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쇳소리가 섞인 높은 비음.

동굴에서 말하듯 울려 들렸다.

-이곳에 신은 없다.

갑작스런 목소리에 김두식이 기겁을 했다. 깜짝 놀라 들고 있던 병을 떨어뜨렸는데.

데구르르르-

앞이 보이지 않아 찾을 수가 없었다. 손을 천천히 뻗어 땅을 만져보았으나 잡히지 않았다.

“뭐… 뭐지? 잘 못 들었나.”

김두식이 어둠에 적응하기 위해 눈에 힘을 주었다.

시간이 흐르자 주변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사물이 정확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머리 위에 대롱거리는 전구를 구별 할 수 있을 정도.

부웅- 부웅-

김두식이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사람 두 명 들어가기 비좁을 정도의 창고라 허공에 손을 휘젓기만 하는 것으로도 주변 확인이 가능했다.

이어 날카로운 음성이 그의 귀를 찔렀다.

-그대를 만나러 왔다.

김두식이 그대로 굳었다.

천천히 돌아간 그의 고개가 문을 바라보았다.

조금의 빛도 들어오지도 않는 이곳.

기척이나 시선이 느껴져서 그곳을 바라본 것은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가 있다면 문 밖 말고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 발….”

그의 얼굴에 울상이 지어졌다. 손과 발이 떨렸다.

어둠 속에 갇힌 그가 문을 열고 나가려 발로 걷어찼다.

쿵! 쿵!

열리지 않았다.

나름 체격도 좋은 데다가 있는 힘껏 찬 것인데. 밖에서 누가 문을 막고 있는 것처럼 끄떡도 없었다.

“여, 열어. 열어! 열라고!!”

쾅!

-들어라.

세 번째로 귓속에 울린 차가운 목소리에 김두식의 몸이 얼어붙었다.

-이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주마.

“…… 누… 누구신가요? 아니 어디에 계신 거죠?”

어둠이 눈에 익었나 싶었는데 다시 한 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캄캄해졌다.

-여기다.

또각. 또각또각. 또가각.

김두식이 들고 있던 병이 소리를 내었다.

그의 앞까지 스스로 걸어오는 것 같았다.

-나를 잡아라.

김두식이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손을 뻗어 병을 들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소리로 위치를 파악한 것이었다.

-마셔라. 이 어둠의 주인으로 만들어 주마.

* * * * *

다다다다다다-!

우리가 빠른 속도로 방을 확인하며 올라갔다.

3층을 확인하던 도중 제일 끝 방에서 쓰러져 있는 서랍장을 발견했다. 아까는 분명 서 있었다.

김두식이 이곳을 들렀나?

끼이이익.

“정우야. 아까 이 방에 뭐 있었지?”

“책. 피규어. 기타.”

“그게 끝인가?”

“…… 아니. 공구 상자도 있었어.”

공구 상자.

없다.

서랍장을 전부 뒤져 보았지만, 공구 비슷한 물건은 단 하나도 없었다.

무엇을 하려고 들고 간 것일까?

“…… 혹시 이 새끼. 어디 방 안에 들어가서 완전히 막아 버리려는 거 아니야?”

“방을 막아?”

“드릴로 문고리 뽑아 버린 다음에 나무 몇 개 대고 못으로 박아버리면. 아무도 못 들어갈걸.”

“…… 뭐하러 그런 짓을 해?”

내가 손가락으로 허공에 물병 모양을 그렸다.

“악마를 가지려고.”

“아….”

“설명서만 보면 그럴듯하잖아.”

“…… 제길.”

“됐다. 빨리 가자.”

우리가 다시 달렸다.

계단을 단번에 두세 걸음씩 뛰어 순식간에 4층에 도착했다.

“마정우. 너는 마이클이랑 4층을 확인하도록 해. 나는 뱀파이어 데리고 바로 5층으로 올라갈게.”

“알았어. 찾으면 무전하고.”

“어. 조심해라.”

“너도.”

마정우와 내가 주먹을 맞부딪혔다.

김두식이 숨을 만한 장소가 어디일까? 겁에 질려 도망갔다면 무조건 높은 층으로 향했을 것이다.

“후우-. 코드 적용, 적 발견 시 명령 없이 즉시 전투 모드 돌입.”

[명령 코드 입력 완료.]

뱀파이어의 가슴팍에 ‘CODE:001’이라는 글자가 적혔다.

5층으로 올라가자 어둠이 우리를 반겼다. 모든 불이 꺼진 상태다. 복도 끝에서 기척이 느껴지는데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다.

조금의 빛이라도 있었으면 확인할 수 있을 텐데.

“……”

치직. 치지직.

내가 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멀리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주변을 볼 수 있을 정도의 빛이 생겼다.

뱀파이어가 앞으로 한 걸음 나왔다.

전방에 발톱을 길게 들이미는 것으로 보아 앞에 적이라 판단되는 놈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뱀파이어’가 수상한 생명체를 발견하였습니다.]

[전방 100m 이내에 적이 감지됩니다.]

설마 김두식 녀석이….

뱀파이어가 천천히 앞을 향해 걸어 나갔다.

뚜벅. 뚜우벅. 뚜우벅.

구두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아직 어둠에 눈이 익지 않은 나는 계단 앞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과연 무엇일까.

모습을 알지 못하는데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스톱.”

나는 뱀파이어를 멈추었다.

“……”

기척이 가깝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나는 허리춤에 있는 무전기의 버튼을 살며시 눌렀다.

삐빅.

안테나 밑으로 빨간 불이 들어왔다.

“5층, 불길한 기운이 느껴진다. 5층, 불길한 기운. 지원 바람.”

삐빅.

내가 상체를 낮추고 식칼을 굳게 잡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이클 녀석에게 권총을 빌려오는 건데.

댕앵- 대앵- 대앵- 대앵-.

괘종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되었나?

시계를 보니 게임이 시작된 지 정확하게 두 시간이 흘렀다.

“후우….”

늦었다.

그래도 악마의 위치를 알게 되었으니 놈이 폭주하는 것만 막으면 될 것이다.

튜토리얼에서 이렇게까지 불결하고 불길한 기운을 뿜는 것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악마.’

가자.

내가 뱀파이어에게 명령을 내렸다.

“나와 같은 그룹 안에 있는 자를 제외한 모든 생명체를 처리해라.”

“……”

부웅-!

갑자기 복도 반대편에서 강풍이 불어와 우리를 밀었다. 나는 식칼을 굳게 쥐고 주변을 경계했다.

적이 갑자기 덤벼올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뱀파이어가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샥-! 샥-!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데 왜 저러는 걸까? 둘 중 하나일 텐데.

미쳤거나, 적의 환술에 걸렸거나.

놈이 손을 뻗는 방향을 향해 내가 눈을 굴렸다.

혹시라도 어둠을 틈타 무엇인가 움직이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샥-!

“…….”

있다.

무엇인가 있다.

다만 뱀파이어의 움직임보다 훨씬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생명체였다.

-가소롭구나.

응?

차갑고 날카로운 음성이 복도에 울렸다.

김두식의 어벙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그의 한 마디에서 단호함이 느껴졌다.

“…… 악마구나.”

-나를 아는가?

“잘 알지. 최후의 악마이자 멸망을 가져오는 사나이.”

-…….

“루시퍼.”

팟!

5층에 있는 모든 불이 켜졌다.

이어 복도 반대편에 서 있는 검은 피부의 사나이가 보였다.

김두식이다.

그의 머리 위로 치솟아 있는 자그마한 두 개의 뿔. 성난 황소처럼 올라가 있는 그의 눈꼬리.

코와 입에서는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설마 했는데, NPC가 아닌 플레이어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갔다.

‘김두식…. 최악이군.’

김두식의 입이 움직이지 않았는데 목소리가 들렸다.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지?

내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 글쎄.”

녀석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터벅. 터벅.

그의 걸음에 맞춰 뱀파이어가 뒤로 물러났다.

나는 저런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 그가 본능적으로 물러났을 뿐.

“…….”

녀석의 기세에 물러서던 뱀파이어가 다시 공격 준비를 하였다.

기다란 손톱으로 녀석을 겨누고 송곳니를 드러냈다.

뱀파이어는 싸우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놈과 정면으로 싸워서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제길.’

정우하고 마이클은 왜 이렇게 늦는 거지?

-맞서겠는가?

“…… 그렇지. 그래야지.”

-내 존재를 알면서 덤비겠다는 건가.

“너를 알기에 싸우려는 거다. 모르면 싸울 생각조차 들지 않았을 테니깐.”

악마로 변한 김두식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재밌군.

놈이 기합을 넣었다.

“크합!!”

와장창창창!!

5층에 있는 모든 유리창이 깨졌다.

이어 악마 김두식이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몸이 찌릿찌릿할 정도로 강력한 기운이 내 몸을 감싸 안았다.

두두두두-

그의 발이 닿는 곳마다 지면이 검게 물들었다.

뱀파이어가 나를 슬쩍 보았다.

‘공격 준비’만 시켜 놓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 다음 명령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아직이다. 아직이야. 내가 명령할 때까지는 절대로 움직이지 마.’

빠르게 다가온 김두식이 가만히 서 있는 뱀파이어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부웅-

반원을 가르며 날아온 놈의 주먹이 뱀파이어의 명치에 꽂혔다.

퍽!

‘억’ 소리와 함께 뱀파이어가 배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머리 위를 보니 생명력 게이지가 반절 정도 떨어져 있었다.

단 한방에 반절.

두 방이면 사망이다.

그렇다는 말은 나도 놈의 공격을 한 방은 버틸 수 있다는 것.

‘…… 그래.’

다행이다.

이로써 녀석에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나는 쥐고 있던 식칼을 바닥에 내려놓고 두 팔을 벌려 김두식을 반겼다.

아니, 루시퍼를 불러들였다.

-항복인가.

“…….”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어금니를 꽉 깨물고 그를 기다릴 뿐.

승리를 위해서.

터벅. 터벅. 터벅. 터벅.

-마지막으로 묻겠다.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지?

“…….”

-말하지 않으면 죽는다.

나는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좋지.”

-…… 어리석은 놈.

루시퍼가 주먹을 쥐었다.

가까이서 보니 피부가 아크릴 물감으로 덧칠해놓은 것처럼 매끄러운 검은색이었다.

새로 산 가죽 재킷처럼 말이다.

부웅-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놈의 주먹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그 순간 내가 바닥 내려놓았던 식칼을 발로 찼다.

빙글빙글 돌며 바닥을 기어간 식칼이 뱀파이어 앞에 멈추었다.

녀석의 주먹이 내 얼굴에 닿기 일보 직전.

“거래 신청.”

[시스템 메시지]

[‘김천재’ 플레이어님이 ‘김두식’님께 거래를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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