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계단을 내려가던 유소라가 내게 물었다.
“천재씨.”
“예.”
“동탁 씨는… 어떻게 된 거죠?”
장동탁?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좀비 바이러스에 크게 감염되었다.
온몸이 갈변하여 피부는 썩어 버렸고. 의식을 잃은 지 오래다.
그냥 좀비 상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하지만 숨이 끊어지지 않아 내 수하로는 둘 수 없는 상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2층 바닥에 그를 두고 왔다.
괜히 데려오다 좀비로 변하여 바이러스가 옮으면 안 되니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에게 대답했다.
“…… Z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습니다.”
무심한 것 같지만 지금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유소라가 섭섭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죽는다는 말인가요?”
“빨리 치료하지 못하면요.”
“치료를 못 하면 죽는다는 말이네요.”
“…… 그렇죠. 시간이 흐르면 아까 보셨던 좀비로 변할 테고요.”
이어 정적이 흘렀다.
어쩔 수 없다. 치료제가 없는 튜토리얼에서 감염된 이상 그를 인간으로서 살리는 것은 어렵다.
물론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하다.
악마를 빨리 찾아내는 법.
[악마]만 손에 넣는다면 그를 다시 인간으로 돌릴 방법이 생긴다.
유소라가 손톱을 물어뜯으며 내게 물었다.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치료제를 찾아서 동탁 씨에게 먹이면 돼요. 스스로 먹을 수 없는 경우에는 주사로 주입할 수도 있고요.”
“그 치료제는 어디 있어요?”
“저도 모르겠어요. 이제부터 찾아봐야죠.”
“찾을 수는 있을까요?”
“그건 장담 못 합니다.”
“찾지 못한다면 어떻게-”
“방금 말씀드렸잖아요. 좀비가 된다고.”
그녀의 말이 내 신경을 긁었다. 자신도 챙기지 못하는 사람이 남의 걱정으로 머리를 채운 것 때문이다.
내가 정색을 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소라씨.”
“…… 네?”
“동탁 씨랑 어떤 관계죠?”
“그게 무슨….”
시선을 내려 그녀의 신발을 보았다. 평소에 신던 운동화랑 달랐다.
매일 같은 운동화만 신던 그녀의 신발이 왜 바뀌었을까?
장동탁 집에 있으니깐 못 신고 나왔겠지.
이 질문을 한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장동탁에게 연연하지 말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서로 어떤 관계인지까지는 깊게 알고 싶지 않다.
그저 살기 위해 머리를 굴리느라 예민해진 내 신경을 건드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소라씨. 동탁씨랑 연인이셨나요?”
[‘유소라’ 플레이어가 당황함을 내보입니다.]
“아, 아뇨!”
유소라가 윗입술을 핥았다.
“그럼 왜 이렇게까지 집착을 하세요.”
“집착이 아니라… 저를 지켜주던 분이라서요.”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도 전부 소라씨를 지켜주고 있잖아요.”
“……”
“소라씨. 마지막으로 말씀드릴게요. 이곳에서 제일 먼저 지켜야 할 것은 자신이지, 남이 아니에요.”
“…….”
“걱정하는 것은 자유지만 다른 이들까지 신경이 그쪽으로 가지 않도록 해주세요.”
“…… 알았습니다.”
앞서가던 정우 녀석이 뒤로 돌아와 등허리를 떠밀었다.
“야, 됐어. 그만하고 빨리 가자. 소라씨도 동탁이 형 이야기는 그만 하세요.”
“…….”
“저희도 그 형이랑 친해요. 천재 녀석도 아쉬워서 더 짜증내는 거니깐, 섭섭해하지 마시고요. 마이클! 너는 소라씨 안 챙기고 뭐 하냐.”
마이클이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어, 어! 소라 씨.”
“…… 말하세요.”
“이럴 땐 닥치고 있어야 해요우. 닥쳐, 오케이?”
유소라가 마이클을 째려보았다.
마이클이 멋쩍은 듯 구레나룻을 긁었다.
* * * * *
1층으로 내려오자 출근길의 지하철처럼 가득 찬 좀비들이 보였다. 자리가 없어 서로를 밀어내는 꼴이 참 우스웠다.
뱀파이어가 숨을 거세게 몰아쉬며 심호흡을 하더니 녀석들을 향해 달려갔다.
-키에에에엑!
“크하아아악!”
다수의 좀비 대 뱀파이어 한 명.
승자는 뱀파이어였다.
압도적으로 놈들을 밀어붙였다.
뱀파이어가 종잇장을 찢듯 좀비 녀석들을 갈가리 찢어 넘겼다.
“좋아.”
계단 앞에 도착한 내가 이 게임의 명령어를 내뱉었다.
“그룹 생성. 초대, 마정우, 마이클, 유소라.”
[세 명의 플레이어에 대하여 초대 응답 대기 중….]
“다들 눈앞에 있는 참가 버튼 눌러. 마이클, 파란색 버튼. 오케이?”
“파란 버튼? 오케이.”
[‘마정우’플레이어가 합류합니다.]
[‘유소라’플레이어가 합류합니다.]
[‘마이클 비치’ 플레이어가 합류합니다.]
[‘김천재’님의 그룹. 4/5]
새로운 홀로그램 창이 나타났다.
내가 속한 그룹의 인원과 상태를 보여 주는 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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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재’님의 플레이어 그룹」
-김천재: 양호(파랑)
-마정우: 양호(파랑)
-유소라: 양호(파랑)
-마이클 비치: 양호(파랑)
[양호(파랑): 생명력 90% 이상]
[보통(초록): 생명력 75% 이상]
[나쁨(노랑): 생명력 50% 이하]
[최악(빨강): 생명력 15%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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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이 내게 물었다.
“천재 킴. 이게 뭐에요우?”
“그룹 창. 같이 다니는 사람의 상태를 보는 거야. 멀리 있어도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어.”
“오우! 그룹 창!”
보통 그룹 생성은 튜토리얼 이후 자신과 마음이 맞는 플레이어가 생겼을 때 한다.
게임 초반인 데다가 유소라의 불안한 행동으로 인하여 그룹을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1층을 보는 순간 마음이 바뀌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좀비의 향연.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경험치 보너스.’
그룹의 인원에 따라 경험치 보너스를 받게 된다.
한 명당 5%씩 증가하니 네 명이면 25%.
잘하면 두 번째 라운드가 시작되기 전에 정우의 직업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띠링! 띠링!
우리의 머리 위로 황금색 빛이 한 바퀴 돌았다.
벌써 4레벨이다.
모든 게 순탄하다.
그래서 불길하다.
이 게임은 항상 그랬다. 이럴 때일수록 뒤에 꼭 안 좋은 일들이 생긴다.
지금 내게 생길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무엇일까?
튜토리얼에서 생길 수 있는 안 좋은 일이라.
“…… 마정우.”
“왜?”
“생각해보니 아까 그 근육쟁이는 어디 갔지?”
“근육쟁이?”
“어. 체육 선생.”
지금까지 잊고 있었다.
장동탁과 함께 움직이던 김두식의 모습이 보이지를 않았다.
내가 유소라에게 물었다.
“소라씨.”
유소라가 넋 놓다 대답을 한 듯 엇박자로 말했다.
“네? 아, 네.”
“김두식. 그분은 어디에 있어요?”
“아…. 그분….”
“예. 그 덩치가 엄청나게 크신 분이요.”
유소라가 입을 뗐다 붙이기를 반복하더니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도망갔어요.”
“예?!”
너무나도 어이없는 대답이었다.
내가 어안이 벙벙했다.
도망?
그중에서 누구보다도 강해 보이던 놈이 여자를 버리고 도망을 갔다는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다.
“언제요?”
“아까 좀비들을 처음 만났을 때….”
“그냥 도망갔어요?”
“…… 네. 동탁 씨가 좀비한테 물렸을 때. 도망가라고 해서…. 바로 도망가셨어요.”
“소라씨를 그냥 두고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덩치는 산만해서 겁은 제일 많았구나.
허풍선 자식.
나는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숨을 천천히 쉬었다.
“어디로 도망갔어요?”
“위층으로요.”
“위층?”
못 만났는데?
“네. 제가 무서워서 뒷걸음질 치고 있는데 계단 위로 달려갔어요.”
“…… 몇 층으로 갔는지는 모르고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우리와 마주치지 않았다는 말은 어딘가의 방에 숨었다는 것이다.
비겁한 새끼.
덕분에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김두식은 배신자다.
내가 마이클을 불렀다.
“마이클, 계단 위에서 누가 내려오면 바로 쏴버려.”
“계단 위?”
“사람이어도 바로 쏴. 경고하지 말고 즉시.”
“오케이. 바로 쏴.”
* * * * *
띠링!
1층에 있는 좀비를 전부 잡았을 때 모두의 머리 위에서 황금색 빛이 한 바퀴 돌았다.
레벨 5.
일반적인 직업의 전직 조건이 갖추어졌다.
5레벨 달성과 갖고자 하는 직업의 무기를 구하게 되면 1차 전직이 가능하다.
정우가 도끼를 머리 위로 들고 조용히 속삭였다.
“메마른 대지를 수호하는 영웅이여. 내게 힘을.”
도끼가 번쩍였다.
잿빛의 가루가 정우의 머리 위에서 눈처럼 내려 몸에 천천히 흡수되었다.
이내 전기가 오른 듯 몸을 벌벌 떨던 마정우가 무릎을 꿇었다.
털썩.
“후아!”
“…… 괜찮냐?”
정우의 턱수염과 머리가 길게 자라났다. 외관만 봐서는 완벽하게 야만 전사였다.
그는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상태창을 확인하듯 허공을 바라보았다.
“좋아…. 성공이야.”
“야만 전사 맞고?”
“맞아. 배정받은 스킬은… 강철 피부하고… 광전사의 포효. 와! 이거 초반에 완전 개꿀인데?”
“탱커 빌드네. 그 스킬 들고 죽을 일은 없으니 다행이다.”
마정우가 유소라 팔목에 있는 머리끈을 빌려서 위로 묶더니 기쁜 표정을 지었다.
드르륵.
쿵.
1층의 모든 방을 확인했지만 ‘악마’가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분명 2층부터 5층까지는 전부 확인했다.
옥상으로 가는 길도 막혀있었다고 했으니 더는 갈 곳은 없는데.
정우 녀석이 담배를 뻐끔뻐끔 피며 건물 밖으로 나가는 입구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부웅- 쾅!
그냥 유리임에도 불구하고 무언가에 막힌 듯 깨지지 않았다.
얇은 막이 유리를 지켜주는 것 같았다.
쓰읍-
푸후.
마정우가 다 피운 담배꽁초를 땅에 버리더니 시계를 확인했다.
“김천재.”
“어.”
“5분 남았다.”
“…… 후우.”
나는 두 눈을 감고 집중했다.
여기까지 오며 놓친 부분이 무엇일까.
분명 모든 방과 서랍은 전부 확인하였다. 심지어 이곳까지 오는 길에 있는 좀비들까지 전부 처리했다.
-키에에에엑!
현관을 통해 좀비가 들어왔다.
안에서 밖으로는 못 나가도.
밖에서 안으로는 들어올 수 있는.
기존 ‘멸망의 땅’ 시스템과 변함이 없었다.
“…… 정우야. 옥상으로 가는 길도 막혀있었다고 했지?”
“어.”
“그럼 1층부터 5층까지 전부 확인한 거 맞지?”
“그렇지.”
“…… 마이클.”
권총 위로 계단을 겨누던 마이클이 나를 보았다.
“불렀어요우?”
“가방 열어.”
“…… 가방?”
“그래. 네 가방 열라고.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좀 보자.”
마이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어 총구를 밑으로 내리더니 가방을 벗어 내게 주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하나씩 뒤져 보았지만 역시나 없었다.
“…… 고마워, 마이클.”
“무슨 일 있어요우?”
“아니. 덕분에 범인이 누군지 알겠어. 악마를 가져간 놈.”
“악마?”
내 행동을 지켜보던 정우 녀석이 벽을 걷어찼다.
쿵!
“설마 그 새끼가 들고 있는 거야?”
“…… 아마도.”
“아니, 그럼 왜 진작 말을 안 한 거지?”
“그게 무슨 물건인지 모르겠지.”
“하….”
유소라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처, 천재 씨. 그 새끼라는 게 누구예요? 찾으시는 악마라는 건 뭐고요?”
혹시 이 여자가 알고 있으려나?
“소라 씨. 혹시 조그마한 병 하나 못 봤어요?”
“병?”
“예. 검은색인데 손바닥만큼 작아요. 향수병 만큼이요.”
유소라가 손뼉을 쳤다.
짝!
“봤어요! 겉에 염소 얼굴 그려져 있는 병 말씀하시는 거죠?”
“예…, 예! 맞아요. 염소가 그려져 있는 검은색 병. 어디서 보셨어요?”
“두식씨가 가지고 있었어요. 어디서 주웠다던데, 주머니에서 떨어져서 줍는 걸 제가 봤어요.”
“언제요?”
“3층에서 2층으로 내려올 때요.”
“아 그 미친 새끼…. 정우야!!”
이야기를 듣던 정우가 빠르게 계단을 올라갔다.
내가 마이클에게 소리쳤다.
“마이클! 정우 따라가!”
“정우, 오케이!”
다다다다다다!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유소라에게 말했다.
“소라씨. 당장 2층으로 올라가서 1호부터 4호까지 화장실에 있는 샴푸랑 린스를 전부 꺼내요.”
“저저저저, 전부요?”
“예. 그리고 1층에서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에 뿌려요. 그럼 좀비들이 올라오지 못할 거에요.”
“…… 혼자서요?”
내가 유소라의 어깨를 잡았다.
“예. 할 수 있죠?”
그녀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것도 잠시, 굳었던 표정의 유소라가 억지로 웃어 보이며 나를 보았다.
“그럼요. 맡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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