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콰직!
내 식칼이 뱀파이어로 변한 박동팔의 심장을 뚫었다.
일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우리를 향해 걸어오던 좀비들마저 움직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처, 천재 킴!”
내 뒤에서 마이클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위에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왜 내려온 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잘 됐다.
이참에 녀석들도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야 하니 말이다.
나는 영웅이 아니다.
혼자 고통의 무게를 짊어지며 모두를 지켜 내는 것은 내 성미에 맞지도 않고.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필요 없는 활동을 하는 것 또한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살아남고 싶을 뿐.
유소라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또다시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아악!
어디부터 본 것일까.
모르겠지만 어차피 이 모든 것은 내 계획 안에 있었다.
약간 틀어졌다고 해서 잘못될 일은 없다.
그대로 진행하자.
내가 정우를 향해 소리쳤다.
“마정우. 앞에!”
“어? 어!”
다시 좀비 녀석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넋 놓던 정우가 도끼를 휘둘러 녀석들을 견제했다.
정우가 지치기 전에 빨리 박동팔을 끝내야 한다.
앞서 소환한 스켈레톤 전사들도 전부 쓰러졌으니 말이다.
내가 담배를 내려놓고 식칼의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아 박동팔의 심장을 향해 더욱 깊숙이 박아 넣었다.
콰직.
박동팔의 가슴이 피로 젖었다. 뱀파이어의 힘을 얻어서 그런지 혈흔이 새빨갰다.
그냥 빨간 것이 아니라 선홍빛의 붉음.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피가 그의 머리까지 적셨다.
박동팔이 나를 밀어내려 손을 뻗었다.
피로 물든 손으로 내 얼굴을 휘저었다.
“김…. 천재…. 이게 무슨….”
나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그의 손을 밀쳐내며 대답했다.
“바, 박동팔. 당신은 살아 있으면…. 안 돼.”
“크흐윽…. 왜…. 대체…. 왜….”
“범죄자니깐.”
치부를 들킨 듯 박동팔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이어 이마에 핏대가 섰다.
“내가…. 범죄자라고?”
“다른 사람들은 모르던데. 나는 알고 있어. 딸의 방이라면서 비워둔 방. 거기에 매번 다른 젊은 여자들이 왔다 갔다 하던데.”
“…….”
“거기까지는 나랑 상관없기에 모르는 척했어. 하지만, 오늘 당신이 유소라에게 저지르려고 했던 짓.”
“그, 그건!”
“닥. 쳐.”
박동팔이 최후의 저항을 시작했다.
오른팔로 내 목을 붙잡고. 손목이 없는 왼쪽 팔을 휘둘러 내 머리통을 쳤다.
팍! 팍!
몇 대 안 맞은 것 같은데 내 머리 위에 있는 생명력 게이지 바가 조금씩 줄어드는 게 보였다.
[생명력: 132/160]
아프다.
정말 아팠다.
뱀파이어의 특성으로 젊음을 되찾아서 그런지 정말 힘이 강했다.
어렸을 적 한 주먹 했다던데.
진짜인가 보구나.
나는 한 손으로 머리를 가리고. 땅에 놓았던 담배를 주워 깊게 빨아들인 후.
쓰으읍-
푸후!!!
박동팔의 얼굴을 향해 길게 내뿜었다. 잠깐이지만 녀석의 시야가 가려졌다.
이어 가슴팍에 박혀있는 식칼의 손잡이를 놓고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팍! 팍! 팍!
난타전이었다.
녀석과 내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질을 잘하지 못하는 나는 망치처럼 계속해서 내려찍었다.
십중팔구라고, 휘두르던 주먹 중 한 방이 박동팔의 눈을 가격했다.
눈을 맞은 박동팔이 ‘아악’ 소리와 함께 내 목을 잡던 팔을 놓았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내가 그대로 놈의 팔을 잡고 암바를 걸었다.
뿌득!
녀석의 오른 팔꿈치에서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크학!
피범벅이 된 박동팔이 침과 피가 섞인 액체를 입에서 토해내며 분노어린 포효를 내뱉었다.
“김천재 이 개색기야!!”
분무기처럼 뿌려진 녀석의 핏방울이 내 얼굴에 튀었다.
나는 입을 꽉 닫았다. 뱀파이어의 피에는 소량이지만 마비 성분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어 팔꿈치로 놈의 얼굴을 계속해서 가격했다.
팍! 팍! 팍! 팍!
놈의 머리 위에 있는 생명력 게이지가 빠르게 줄어드는 게 보였다.
이대로라면 금방 끝낼 수 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쉬지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
퍽!
“크…. 허…. 억.”
이어 박동팔의 고개가 힘없이 지면과 맞닿았다.
털썩.
“하아…. 하아….”
끝이다.
내 머리 위로 황금색 빛이 한 바퀴 돌았다.
경험치를 충족했는지 레벨업을 했다는 뜻이었다.
“망할 늙은이.”
나는 박동팔의 머리 위에 손바닥을 올려놓고 작게 속삭였다.
“리바이브.”
[시스템 메시지]
▶리바이브 (마나 소모: 3)
-시전자의 레벨 수 만큼 죽은 자를 소생하여 언데드로 만듭니다.
[박동팔(뱀파이어) 플레이어를 소생시킵니다.]
[플레이어 소환 영입으로 인하여 인구수 2개를 사용합니다.]
*남은 마나: 15
허공에 붉은색 해골 문양이 빛을 내며 나타나더니 박동팔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치지지지직!
“크아악!”
낙인이다.
놈이 내 소환수가 되었다는 일종의 증명서.
[소환 목록]
-박동팔(뱀파이어) 1/1 : 대기 중
[시스템 메시지]
[‘최초의 플레이어 지배자!’ 칭호를 획득합니다.]
[소환 레벨이 +1 증가합니다!]
[소환 레벨 ‘3’ 달성]
[하수인의 공격력과 방어력, 체력이 소폭 증가합니다.]
“후우….”
드디어 끝났다. 뱀파이어 영입.
※ 신규 영입: 뱀파이어
레벨: 1
생명력: 220/220
마나: 0/0
체력: 22 공격: 30
방어: 25 속도: 18
▶흡혈 (마나 소모: 0)
-상대방의 피를 마셔 생명력을 회복합니다.
▶오! 청춘이여. (마나 소모: 0)
-육체를 플레이어의 전성기로 되돌립니다.
꼭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놈을 사용하게 되다니.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숨을 크게 몰아쉬며 정우에게 소리쳤다.
“마정우!”
부웅- 부웅-!
좀비들을 상대하던 마정우가 뒤로 돌아 나를 보았다.
“왜!”
“복귀! 복귀! 복귀! 빨리 돌아와!”
“…… 알았어. 잠깐만!”
부웅-
콰직!
정우가 가까이 있는 좀비 녀석을 마무리하고 다시 돌아왔다. 머리 위에서 황금빛이 춤추고 있는 것으로 보아 녀석도 레벨업을 한 것 같았다.
정우 녀석이 숨을 거세게 몰아쉬며 내게 말했다.
“우리 X 된 것 같은데. 십오 분밖에 안 남았어.”
“…… 걱정하지 마. 어이.”
피범벅이 된 뱀파이어가 분노 어린 눈빛으로 일어났다.
나는 입에 물고 있는 담배를 빼서 녀석의 이마에 지졌다.
치지지직.
“크하아악!”
[‘낙인’ 발동]
[‘뱀파이어’의 충성심이 강제로 올라갑니다.]
“주인으로서 명한다. 최대한 빠르게 1층까지 길을 뚫어라.”
뱀파이어가 내 명령 하에 좀비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삼국지 속 여포가 일반 병사들을 상대하는 것처럼 일당백의 힘을 보여 주었다.
뱀파이어의 흡혈 능력과 청춘이라는 신체적 전성기가 굉장한 힘을 내었다.
게다가 내 능력으로 다시 태어난 언데드의 힘을 가졌으니 좀비 따위는 손쉽게 상대할 수 있다.
“보이냐. 마정우.”
“미쳤네. 튜토리얼에서 뱀파이어를…… 너 진짜 미쳤다.”
나는 얼굴에 묻을 피를 손등으로 닦아냈다.
“후우-. 이제부터는 미쳐야 살아남겠지.”
마이클이 유소라와 함께 내 뒤로 붙었다.
“천재 킴.”
“마이클. 무슨 일 있으면 무전을 치라니까. 왜 내려왔어?”
“걱정되서요우.”
걱정되서 내려왔다니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내가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 잘했어.”
“천재 킴. 괜찮아요우?”
“괜찮아. 마이클, 너는? 위에는 좀비 없었고?”
“없었어요우.”
“후…. 그래. 소라 씨, 소라씨는 괜찮아요?”
유소라가 백지장처럼 창백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괘…. 괜찮아요.”
“어디서부터 봤어요?”
“뭘요?”
“방금 전 일이요.”
“…….”
유소라가 고개를 떨구었다.
“어디부터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죽인 사람은, 아니 좀비는. 박동팔 아저씨예요.”
“예?!”
“저기 저 다시 살아나서 좀비들이랑 싸우고 있는 젊은이. 박동팔이라고요.”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뱀파이어로 변한 근육질의 박동팔이 날카로운 손톱으로 좀비들을 찢어내고 있었다.
유소라가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사람이 박동팔…. 그 미친 변태 새끼라고요?”
“예. 맞습니다.”
* * * * *
뱀파이어가 좀비들을 처리하며 길을 뚫는 동안.
우리는 놈을 따라가며 마이클과 유소라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겠지만 눈앞에 펼쳐진 모든 상황이 ‘멸망의 땅’과 똑같이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든 설명을 들은 마이클이 씁쓸하게 웃었다.
도박으로 전 재산을 잃은 사람이 끝내 현실을 받아들이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마이클 녀석은 군인이라서 그런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후 정우와 함께 다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몽키 정우. 그럼 나는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되나요우?”
“닥치고 따라오기만 하면 돼.”
“또 닥쳐? 오케이.”
그에 반해 유소라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마…. 말도 안 돼요.”
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에게 대답했다.
“뭔들 말이 되겠어요?”
드르르륵.
창문을 열고 밖을 보여 주었다.
빛을 본 좀비들이 반사적으로 우리를 향해 환호성을 내질렀다.
-키에에에엑!!
유소라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마이클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어쩜….”
나는 계단을 내려가며 그녀에게 물었다.
“소라씨.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이제부터는 결정하셔야 해요.”
“…… 어떤 결정이요?”
“저희와 함께 가시려면 어느 정도 각오를 하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내 얼굴을 보며 슬며시 말했다.
“…… 그렇게 할게요.”
성의 없는 대답이었다.
궁지에 몰려 어쩔 수 없이 내가 따른 선택에 끌려오는 듯한.
순간 짜증이 났다.
앞으로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녀는 짐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겠다.
내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소라씨. 방금 제가 동팔이 아저씨 심장에 칼을 꽂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아세요?”
“……”
“심장이 막 터질 것 같이 두근거리고. 미칠 것 같았어요. 칼로 사람을 찌르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손끝에 이런 느낌이 남는구나.”
”….”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렸는지 아세요?”
“모르겠어요….”
“저희와 함께 다니려면 소라씨도 이 정도 각오를 하라는 거에요.”
유소라가 고개를 떨구었다.
대화를 듣던 마이클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유소라를 보았다.
하지만 대화에 끼어들지는 않았다.
그도 현역 군인이기에 내가 왜 이렇게까지 말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유소라가 울먹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사…. 사람을 죽이라는…. 건가요?”
“앞으로 그런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거예요.”
“…….”
“할 수 있겠어요?”
지금 못 한다는 대답이 나온다면 나는 가차 없이 그녀를 버리고 가야 한다.
그녀가 이를 꽉 깨물고 감정을 억누르며 내게 대답했다.
“하…. 할 수 있어요.”
결의의 찬 표정.
의외였다.
그저 할 수 있다는 대답만을 바랬는데 유소라가 좋은 얼굴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거렸다.
그리곤 앞을 향해 걸어갔다.
정우 녀석이 내 어깨를 툭 치며 속삭였다.
“수고했다.”
“뭘. 가서 위로라도 해줘.”
“위로는 마이클이 해줄 거야.”
정우가 뒤로 돌아 환하게 웃었다. 턱 끝으로 유소라를 찌르자 마이클이 신호를 알아듣고 반응했다.
“소라유.”
“…… 네….”
“내가 지켜 줄 테니 걱정하지 마요우. 나 군인이라 엄청 강해요우. 근육 많아.”
유소라가 눈물을 닦으며 환하게 웃었다.
“고마워요.”
이렇게 네 명의 플레이어가 모이게 되었다.
나. 마정우. 마이클. 유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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