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아포칼립스-9화 (9/215)

9화

“천재 킴. 근데-”

“닥치라니까.”

“저 물건 좀 챙겨오면 안 되겠습니꽈?”

“물건?”

“가방 좀 챙겨올게요우.”

“…… 알았어. 시간 없으니깐 빨리 챙겨. 1분 준다.”

“1분 오케이!”

마이클이 자기 방안으로 뛰어갔다. 무엇을 챙기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빨리 복귀했다.

밀리터리 백팩에 한가득 챙긴 물건들. 미리 준비된 가방을 챙겨 나온 것처럼 빵빵했다.

“갑시돠.”

“아니, 군복까지 입었어?”

“눼.”

내가 시계를 보았다.

1분 밖에 지나지 않았다.

“너 진짜 군인이구나.”

“옛. 썰!”

“가자.”

준비를 마친 우리가 4층으로 내려왔다. 이곳에서 챙겨야 할 물건은 딱히 없었다.

굳이 가져가자면 그나마 괜찮은 능력치를 가지고 있던 ‘하늘하늘한 실크 블라우스’.

빠르게 내려가는 길, 내가 401호에서 블라우스를 챙겼다.

“마이클. 이거 가방에 넣어.”

“천재 킴. 여자 옷도 입어요우?”

“아니. 물어보지 말고 그냥 좀 넣어.”

“오케이.”

입지도 않을 옷을 왜 챙기냐고?

유소라가 내 제안을 받아 합류한다면 그녀에게 줄 만한 아이템이다.

뭐, 좀비들을 직접 맞닥뜨린다면 내 제안을 거절할 수도 없겠지.

다다다다다다.

3층으로 내려온 나와 정우가 간호사인 동탁이 형의 방에 들렀다.

아까는 정신이 없어서 그냥 왔는데. 이번에는 그의 방에서 주사기를 한가득 챙겼다.

언젠가는 쓰일 것 같아서 말이다.

[‘텅 빈 주사기’ 획득]

우리가 마이클의 가방에 물건을 챙기는데.

-꺄아악!

유소라의 비명이 들렸다.

소리가 멀지 않았다.

같은 층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말이다.

방 밖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보니 계단 쪽에서 뒷걸음질 치는 유소라가 보였다.

내가 그녀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소라씨, 무슨 일이에요!”

“조조조조조-”

“좀비요?”

“예! 좀비!”

이제야 내 말을 믿어주겠군.

좀비라는 존재를 머릿속에 확실하게 받았으니 말이다.

“마정우. 전직할 때까지는 무리하지 마. 괜히 흥분해서 좀비한테 물리면 곤란하니깐.”

“알았어.”

고개를 돌려 마이클을 보았다.

“마이클, 너는 후방을 경계하도록 해.”

마이클이 얼굴을 찡그렸다.

“후장… 경계?”

“후! 방! 뒤를 보라고! 아니 그런 단어는 어디서 배워오는 거야?”

“오우! 후방, 후방 오케이.”

내가 열을 올리자 정우가 어깨를 잡았다.

“진정해.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 전부 파티에 넣을 거야?”

“아니. 동탁이 형하고 유소라만. 그렇게 하면 벌써 다섯 명 꽉 찼어.”

“…… 유소라? 저 여자는 어디에 쓰게.”

“두 번째 라운드. 이 게임에서 그 직업은 여자만 얻을 수 있잖아.”

“…… 아!”

나는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린 후. 정우의 등을 툭 치며 방 밖으로 나왔다.

벽까지 몰린 유소라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양손을 휘젓고 있었다.

회사원 좀비 한 마리가 유소라의 앞까지 도착했다. 놈의 입에서 질척한 액체가 흘러 떨어졌다.

-키에에엑!

나는 땅을 박차고 나가서.

샥-

식칼을 휘둘러.

콰직!

좀비 녀석의 머리를 떨어뜨렸다.

“괜찮아요?”

“어…, 예….”

나는 유소라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녀를 일으켜 세워 보니 다리가 떨리고 있었다.

아직 이동까지는 무리인 것 같다.

내가 마이클을 불러 그녀의 옆에 세워 놓았다.

“소라씨. 마이클하고 같이 있어요.”

“예? 예….”

“마이클, 너는 이분 잘 지키고 있어. 무슨 일 있으면 우리 부르고.”

“오케이. 천재 킴. 이거 들고 가요우.”

마이클이 가방에서 무전기를 꺼내어 내게 주었다.

“어? 워키토키? 이건 또 어디서 났어.”

“보급. 순찰 보급.”

“좋아.”

[김천재 플레이어 ‘워키토키’ 획득]

[워키토키: 단거리에서 사람의 목소리를 중계하기 위해 사용하는 휴대용 무선장치.]

내가 워키토키를 챙겼다.

정우를 앞장세워 2층으로 내려와 보니 가관이었다.

벌써 반대쪽 복도 끝부터 우리가 있는 곳까지 좀비들이 꽉 차 있었다.

-키에에에엑!!

-크하하아악!

튜토리얼에서 이렇게 많은 좀비를 상대해보기는 처음이다.

컴퓨터로 할 때도 5마리가 넘어가면 많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내 눈앞에만 서른 마리 이상이 있다.

놈들이 기이한 자세로 머리를 떨며 제자리에 서 있었다. 시력이 낮고 청각에 예민한 좀비를 잘 표현한 것 같았다.

터벅.

내 발걸음이 복도에 울리자 모든 좀비의 시선이 우리를 향했다.

정우가 도끼를 치켜들고 내게 물었다.

“너무 많은데.”

“…….”

“해볼 거야?”

내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하는 수밖에.”

치직. 치지직.

쓰읍.

푸후-.

-크할. 크할. 유…. 소라….

응?

무리의 맨 앞에 있는 좀비의 상태가 이상하다.

회사원 좀비들과는 전혀 다르게 긴 팔 카라티와 통 큰 면바지였다.

눈에 힘을 주어 자세히 보니 박동팔 아저씨다.

이곳의 건물주 말이다.

“박동팔?”

“어? 정말이네?!”

“저 아저씨 어떻게 좀비가 된 거지? 녀석들에게 잡히면 산 채로 잡아 먹혔을….”

머리가 번뜩였다.

설마 잡아먹히기 전에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로 죽은 건가?

“천재야. 리바이브로 저 아저씨 데려올 수 있어?”

“가능은 한데.”

“한데?”

“…… 좋은 생각이 났어.”

-유…. 소… 라…….

박동팔의 왼손에 누군가의 머리채가 잡혀 있었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지만 누군지 구별 가능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곱슬머리가 눈에 확 들어왔기 때문이다.

정우가 소리쳤다.

“동탁이 형! 저 미친 늙은이가.”

“정우야 진정해. 동탁이 형 아직 살아있다.”

“어?”

“내 리바이브 주문이 먹히지 않아. 아직 숨이 붙어 있나 봐.”

“…… 살아있다고?”

겉모습만 본다면 살아있다고 말하기 힘든 상태다. 빠른 속도로 갈변한 그의 피부가 벌써 썩어 보이는데다가.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가 몸을 적시고 있었다.

회사원 좀비보다 더 처참한 몰골이었다.

정우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박동팔 저 미친 새끼. 플레이어가 감염됐으면 의식이 남아 있을 텐데. 저렇게까지….”

“마정우. 내가 주문을 끝낼 때까지 네가 뒤에 회사원 좀비들을 막아. 할 수 있지?”

“주문?”

“어.”

“나 혼자 막으라고?”

“너 혼자.”

나는 성수 봉투를 꺼내어 정우에게 건네어 주었다. 내 말뜻을 이해한 마정우가 입 꼬리를 올렸다.

“…… 재밌겠는데?”

녀석은 언제나 그랬다.

어렸을 적부터 혼자 여러 상대와 싸우는 것을 좋아했었다.

물론 결과가 좋은 적은 몇 번 없었다. 전투에서 혼자 여럿을 상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단 한 번만 경험 해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우 녀석은 항상 일당백의 승부를 좋아했다.

전사의 투지.

“가자, 정우야.”

정우가 성수 봉투를 뜯어 자신의 몸에 부었다. 저렇게 한다면 언데드 몬스터, 즉 좀비들은 정우의 몸을 만질 수 없게 된다.

“오카이!”

우리가 동시에 달렸다.

나는 뛰는 동시에 주머니에서 닭 다리뼈를 꺼내었다.

그리곤 스켈레톤 소환 주문을 두 번 외웠다.

[시스템 메시지]

▶스켈레톤 소환 (마나 소모: 2)

-시전자의 레벨 수 만큼 뼈를 매개체로 해골 병사를 소환.

남은 마나: 18

[소환 목록]

-스켈레톤(폐급) 2/2 : 전투 준비 완료.

두 마리의 스켈레톤 병사들이 땅에서 일어났다.

닭 뼈의 강도가 낮아 전사보다는 마법사가 나왔으면 더욱 효율이 좋았을 텐데.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압도적으로 약한 스켈레톤 전사들이 좀비를 상대하려면 그들의 약점을 노려야 한다.

“좀비의 다리를 노려라!”

스켈레톤 전사들이 자세를 낮추고 좀비의 다리를 향해 태클을 걸었다.

균형을 잃은 좀비가 뒤로 밀리며 도미노처럼 줄지어 쓰러졌다.

다다다다.

복도가 울렸다.

순식간에 좀비들과 거리를 좁힌 나는 박동팔의 왼팔을 향해 식칼을 휘둘렀다.

샥-

그의 팔목이 잘려 떨어졌다.

탁.

손목이 떨어짐과 동시에 머리채를 잡혔던 장동탁의 몸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이어서 달려온 마정우가 회사원 좀비들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부웅-

팍!

단 방에 좀비의 머리가 떨어졌다. 정우 녀석은 역시나 운동 신경이 좋았다.

아직 전직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친 듯한 반사 신경으로 좀비들의 공격을 피하며 차례차례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좀비 중 몇몇은 마정우의 몸을 잡아보려 했지만, 닿는 족족 손이 성수에 녹아내렸다.

박동팔의 양옆을 지키는 좀비들이 쓰러졌다.

나는 박동팔의 목을 잡아 땅에 쓰러뜨렸다.

털썩.

이어 놈의 상체 위로 올라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강하게 눌렀다.

“키에에에엑…. 김… 천재….”

“박동팔. 지금 의식이 남아 있지?”

“키에엑!”

박동팔이 발버둥을 치며 내 목을 잡으려 했다. 한쪽 손이 잘려 나갔기에 내게 크게 반항하는 것을 불가했다.

그래도 플레이어가 좀비로 변해서 그런지 회사원 좀비와 비교해 힘이 좋았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짧게 이야기하도록 하지. 좀비의 생명력은 3일. 3일이 지나면 죽는다. 그 말인즉슨 당신은 3일 뒤에 죽는다는 거야.”

“키에엑….”

“나는 당신을 다시 살려낼 방법을 알고 있어. 좀비에서 벗어나 다시 살고 싶다면 ‘예스’를 누르고. 싫다면 ‘노’를 누르도록 해.”

“키엑…. 무…. 슨….”

무슨 소리냐고?

지금의 박동팔은 좀비가 되어버린 플레이어.

나는 그를 되살리는 방법을 한 가지 알고 있다.

물론 인간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와 같은 플레이어로써 같이 멸망의 땅에 살아갈 수 있는 존재.

[뱀파이어]

나는 식칼로 손가락을 살짝 그어 상처를 만들었다.

좀비 플레이어가 인간의 피를 섭취하면 두 가지의 선택권을 가지게 된다.

그대로 좀비로 남을지.

뱀파이어로 다시 탄생할지.

물론 좀비로 변한 상태에서 의식이 있다는 조건에서만 할 수 있는 전직 시스템이다.

그는 지금 의식이 남아 있다.

또옥.

내 손가락에서 떨어진 핏방울이 그의 입술을 적셨다.

박동팔이 입술을 핥았다.

조건은 만족했다.

이제 그가 선택할 시간만 남았을 뿐.

“내가 당신의 한쪽 손을 남겨 놓은 이유는 단 한 가지. 내 조건을 받아들일지 말지 선택하게 하기 위해서야.”

“크에에엑…….”

“조건을 받는다면 다시 살아날 거고. 아니라면 죽게 될 거야.”

그의 눈알이 내가 아닌 허공으로 돌아갔다.

뱀파이어 전직에 관한 설명과 함께 선택 사항이 나왔겠지.

그의 손이 움직였다.

검지가 허공을 향했다.

‘예스’인가 ‘노’인가?

박동팔의 손가락이 좌측에 멈추었다.

답은 ‘예스’.

뱀파이어의 길을 선택했다.

녀석이 포효했다.

“크아아아아악!!!”

전기에 오른 것처럼 강하게 몸을 떨었다.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구멍이라는 모든 구멍에서 초록색 액체가 흘렀다.

좀비에서 뱀파이어로 변이하는 과정이다.

컴퓨터 모니터로 보던 2D 화면과 전혀 달랐다.

고약한 냄새가 복도를 채웠고. 죽음에 가까운 높은 비명이 고막을 찔렀다.

그의 변이과정을 지켜보는 내가 미소를 지었다.

계획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좀비를 상대하던 정우 녀석이 두 귀를 막고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김천재!!”

“멈춰! 오지 마!”

“…… 알았다!”

이어 박동팔의 몸에서 빛이 나더니 입 밖으로 그의 송곳니가 길게 튀어나왔다.

머리칼이 금발로 변하고.

눈동자와 손톱, 발톱이 붉은색으로 변하였으며.

몸이 탄탄한 근육질이 되었다.

20대의 청춘의 박동팔.

뱀파이어의 특성으로 젊어졌다.

“하아…. 하아….”

“동팔 아저씨. 정신이 돌아왔어요?”

“처, 천재. 김천재. 네가 날…. 살렸구나. 유소라 그 망할 년만 아니었어도….”

“…… 아저씨. 눈앞에 상태창 보이세요?”

“사, 상태…. 이거 말하는 건가?”

박동팔이 천천히 눈알을 움직여 허공을 보았다. 자신의 상태창을 보는 것 같다.

“직업에 뭐라고 적혀 있죠?”

“뱀… 파이어. 뱀파이어라고 적혀 있어.”

“뱀파이어 확실해요?”

“그… 래.”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다.

내 손에 들려있는 식칼의 날이 반짝였다.

부웅-

콰직!

“이제 꺼져!”

로그인 더 아포칼립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