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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5층에 도착한 나와 정우는 역할을 분담했다.

하나씩 확인하다가는 늦을 것 같아서다.

“정우. 네가 저쪽 끝부터 확인해. 내가 여기부터 할게.”

“알았어.”

정우가 복도 끝으로 달려갔다.

띵- 동. 띵- 동.

네 개의 방의 종을 전부 눌렀다. 반응하는 집은 단 한 곳.

501호뿐이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정우가 반대편 복도를 지켰다.

나는 반응하는 501호 앞에서 조용히 대답을 기다렸다.

발걸음 소리가 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폰에서 남성의 어눌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구쉐요?

“마이클?”

-눼에.

“문 열어. 나 김천재야.”

-오! 천재 킴!

끼이이이익.

[‘마이클’ 플레이어가 ‘김천재’님에게 호감을 나타냅니다.]

가끔 나와 함께 족구를 하던 주한미군이다. 근육질이지만 운동 신경이 뛰어나지 못한 흑인.

흑인이라고 하면 또 인종차별 발언이라고 할 것 같은데.

아니다.

서로의 닉네임이다.

이 새끼도 나를 옐로 몽키라고 부른다.

“야, 흐긘.”

“왜에, 옐로 몽키.”

“너 혹시 집에 이상한 일 없었어?”

“이상한 일?”

“어, 비켜봐.”

내가 마이클의 허리를 옆으로 밀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좀비의 흔적은 없었다.

‘왜지?’

좀비는 밑에서 위로 올라온다.

2층에 있던 내 방은 1층이랑 가까우니깐 그들이 나타난 것이 이해된다.

하지만.

3층과 4층에서는 좀비가 왜 나왔던 것일까?

내가 알고 있는 튜토리얼이랑 다른 건가?

좀비들이 직접 방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지정된 방에만 나타나도록.

그렇다면 좀비들이 나타나는 기준은 무엇이지.

잠깐 생각해보자.

좀비가 나온 방이….

총 세 군데.

내가 사는 202호.

동탁이 형의 집인 303호.

건물주 딸이 사용하는 404호.

“…….”

22, 33, 44.

이런 공식인가?

그렇다면 5층에는 505호가 나와야 하는데 504까지 밖에 없다.

그 말은 5층에 좀비가 나오지 않거나.

혹은 내가 모르는 제3의 공간에 놈이 있다는 말이다.

마이클이 나를 뒤따라 방안으로 들어왔다.

“천재 킴. 방에 신발을 신고 들어오면 어떻게 해요?”

“미안.”

녀석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나가요. 당장.”

“아니. 온 김에 너는 보여줘야겠다. 이리 와봐.”

내가 창문을 열고 마이클에게 밖을 보여주었다.

창문을 통해 빛이 새어 나가자 올림픽 경기장에서 유명 스타가 콘서트를 하듯 좀비들이 손을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키에에에엑!

-크하악.

-키엑!

마이클의 표정이 굳었다.

“처, 천재 킴! 점비에요! 점비!!”

“그래. 지금 밖에 좀비 보이지?”

“뻐킹 어썸!”

놀라서 다행이다.

평소의 이 녀석의 성격이라면 저 좀비를 보며 코스프레 정도로 생각할 것 같았는데.

밖에 있는 놈들이 좀비인 것을 알아채서 다행이다.

사실 유소라의 반응 때문에 좀 걱정하기는 했었다.

내가 좀비에 대해 말했을 때 믿지 못하는 눈치였으니깐.

마이클이 녀석들을 단번에 좀비라고 판단을 내렸다면.

밑에 층의 정상적인 인간들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마이클. 너 좀비 무섭지?”

“…… 당연하죠우.”

“그럼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마스크 써.”

“마스크, 오케이.”

마이클이 서랍장을 열어 황사 마스크를 꺼내더니 빠르게 썼다.

“그리고 좀비랑 싸울만한 무기를 좀 찾아봐.”

“묵이?”

“웨폰. 웨- 폰.”

“오! 웨폰. 저 있어요.”

“뭔데?”

마이클이 침대 위에 있는 베개를 들더니 그 안에서 권총을 꺼냈다.

철컥.

“웨폰. 이거면 충분?”

베개에서 권총이 나왔다.

“그, 그거 진짜 총이야?”

“눼.”

녀석이 탄창을 꺼내어 내게 보여주었다. 정말로 실탄이 꽂혀 있었다.

심지어 첫 탄이 공포탄도 아니다.

내가 침을 꿀꺽 삼켰다.

“총이 왜 집에 있어?”

“부대에서 줬어요우.”

“아니. 부대 밖으로 어떻게 들고 나온 건데? 화기는 영외로 못 가져오는 거 아니야?”

“영외? 영외가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작전 중이라 저는 가지고 나올 수 있어요우.”

“작전?”

“순찰 작전!”

공무 수행 중이라는 거구나.

미국인들은 침대 맡에 총을 소지해놓는다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

베게 속에 숨겨놓는 사람도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이 상황에서 총이 있으면 좋지 뭐.’

“혹시 먹을 만한 거 있어?”

“먹을 만한…, 초콜릿 있어요우.”

“물은?”

“물도 있어요우.”

마이클이 냉장고를 열어 페트병을 꺼내었다. 아직 뚜껑도 뜯지 않은 새것이었다.

갈증에 목이 타는 나는 컵도 없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크아!”

“천재 킴! 입대고 마시면 어떻게 합니까!”

“입 안 댔어. 띄우고 마셨어.”

“아….”

“됐고, 이제 나가보자. 밖에 네 베프있다.”

“…… 베프?”

* * * * *

마이클과 함께 방 안에서 나오자 정우가 환하게 웃었다.

“오. 이거 흐긘 마이클 아니야?”

둘은 족구팀에서 환상의 커플이라 불린다. 같이 하는 경기에서는 전승 무패를 자랑할 정도로 굉장한 기록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몽키 정우! 갑옷 멋있어요우.”

“고맙다. 너도 군복 입으니깐 멋있네. 군인이라고 했었지?”

“예스, 아임 솔져!”

별것 아닌 일에도 서로 칭찬을 주고받는다.

족구팀에서도 회식 때마다 활력소를 맡은 마이클, 녀석 덕분에 우리의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군인이라서 그런지 듬직하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담뱃불을 붙이며 정우에게 말했다.

“마정우, 건물주 아저씨 방은 확인해봤어?”

“어. 좀비는 아무 데도 없었고. 네가 말한 대로 금반지랑 금목걸이 좀 챙겼어.”

정우가 환하게 웃으며 금으로 된 액세서리들을 내게 보여주었다.

“좋아. 악마는?”

“없었어.”

“5층에도 없으면…. 옥상을 확인해 볼까?”

정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닫혔어. 아니, 막혔어.”

“막혔다고?”

“어. 그냥 문이 잠긴 게 아니라. 결계로 막혀 있더라. 도끼로 내리쳐 봤는데 아무 반응도 없어.”

그럼 옥상은 튜토리얼 내에 허가 지역이 아니라는 건데.

내가 머리를 긁적였다.

“5층에 있는 방은 전부 확인한 거지?”

“어.”

2층에도 없고.

3층에도 없고.

4층, 5층에도 없으면.

악마는 대체 어디 있는 거지.

빨리 찾지 못한다면 좀비들이 폭주해 버릴 텐데 큰일이다.

초보들이 이 게임의 튜토리얼을 두세 번씩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악마 때문.

악마만 찾으면 쉽게 지나갈 수 있는 이번 라운드가 못 찾으면 고난도의 게임으로 바뀌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이 낙오하게 된다.

우리 또한 악마를 빨리 찾지 못한다면 위기인데….

내가 핸드폰 시계를 확인했다.

정확하게 한 시간 반이 흘렀다.

악마가 반응하기까지 앞으로 30분 남았다.

혹시 거긴가.

“1층.”

“어?”

“1층에는 우리가 안 갔었잖아.”

“…… 설마 악마가 거기 있으려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1층밖에 없다.

시스템상 악마는 눈에 띄는 곳에 배치하게 되어 있고. 2층부터 5층까지의 눈에 잘 보이는 곳은 우리가 전부 확인했다.

정우가 착잡한 얼굴로 속삭였다.

“설마 그 좀비가 득실득실한 곳에 가야 하냐?”

“아마도.”

어쩔 수 없다.

나도 가고 싶지 않지만, 튜토리얼을 쉽게 끝내려면 가는 수밖에.

“다들 따라와.”

나는 복도 중간쯤에 있는 소화전을 열었다.

돌몰 말려 있는 소화 호스가 보였다. 주먹으로 소화전 안에 있는 벽면을 강하게 치자.

쾅!

콰직.

벽이 무너지며 안쪽에 있는 구급상자가 보였다.

[보급 상자]

뚜껑을 열자 경험치 캡슐 세 개가 있었다.

“생각보다 적네.”

“여기에 경험치 캡슐 있는 건 어떻게 알았냐?”

“첫 번째 라운드에 경험치 캡슐 키워드. ‘마지막 층 소화전.’ 잊지 않고 있으니깐.”

“너 진짜 기억력 좋다. 나는 게임 초반부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

“그러게, 이 머리로 공부를 했어야했는데.”

“게임 안 하고 공부했으면 아까 그 좀비한테 벌써 죽었을 걸?”

“……그런가?”

우리는 캡슐을 하나씩 삼켰다.

꿀꺽.

황금빛이 머리 위쪽으로 한 바퀴 돌았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양의 경험치를 얻지는 못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 챙길 수 있는 건 전부 챙겨야지.

“자-. 이제 가자.”

떠나려는 순간 홀로그램 시스템 메시지가 내 눈앞에 떴다.

[시스템 메시지]

[경고! 좀비(일반) 2기 사망]

[현재 남은 좀비(일반) 0/2]

뭐?

내가 다급한 목소리를 내었다. 대기시켜놓은 좀비가 쓰러졌다는 것은 누군가의 공격을 받았다는 것.

“마정우!”

정우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어?! 어 왜.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 깜짝 놀랐잖아.”

“비상사태. 1층에 둔 내 좀비들 전부 죽었다.”

“뭐? 왜?”

“모르지. 이거 컴퓨터가 아니라서 화면 전환이 안 되니깐.”

“하….”

우리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마이클이 눈치를 보았다.

“죽었다? 누가 죽었어요우?”

“아, 몰라. 닥쳐, 마이클. 우리가 먼저 말 걸기 전까지 조용히 하고 있어. 오케이?”

“닥쳐? 오케이.”

“오케이. 닥쳐.”

* * * * *

<그 시각 2층>

좀비가 된 건물주 박동팔이 입에서 초록색 액체를 질질 흘리며 복도를 걷고 있었다.

“키에에엑. 유…. 소라…. 크하아아악….”

그의 뒤로 회사원 좀비 수십 마리가 뒤따라왔다.

때마침 건물주를 혼내주기 위해 뭉친 세 명의 남녀가 2층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도착한 사람은 소화기를 들고 있는 간호사 장동탁.

“박동팔!!”

우렁찬 그의 외침이 2층에 울려 퍼졌다. 귀가 따끔한 좀비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키에에에엑!

장동탁이 안경을 살짝 내리더니 자신의 눈을 비볐다.

“어……. 뭐지?”

이어 체육선생 김두식과 유소라가 뒤따라 내려왔다.

김두식 또한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눈을 껌뻑였다.

눈앞에 영화에서나 볼법한 좀비들이 떼를 지어 오고 있으니 굉장히 혼란스러울 것이다.

유소라가 놀란 듯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독백했다.

“좀… 비.”

그녀의 속삭임을 들은 장동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좀비?”

“아까 천재씨가 말했어요. 좀비라고.”

“…… 그런 게 실제로 있다고요?”

“보세요.”

김두식이 걸어오는 좀비 중 제일 앞장선 자의 얼굴을 보더니 크게 소리쳤다.

“박동팔! 박동팔이다!!”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소리를 지른 김두식마저 말이다.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박동팔이 완벽하게 좀비화되어 있었다.

느릿느릿하게 걷는 그의 발걸음이 더욱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이 상황을 믿지 못하는 장동탁이 앞으로 한 걸음 나와 그들을 향해 소화기를 조준했다.

탁.

안전핀을 빼고.

“모두 뒤로 물러서!”

손잡이를 당겼다.

푸슈슈슈슈슈슈-!!!

하얀색 분말이 전방을 향해 세차게 분사되었다. 잠깐이지만 좀비들이 가려졌다.

공격에 성공한 장동탁이 미소를 지었다.

그것도 잠시.

분말이 걷히며 시야가 트이자 좀비 무리의 앞장서있던 박동팔이 갑작스레 달려왔다.

다다다다다!!!

“키야아아아악!”

“으아아악!!”

팍.

그대로 어깨를 깨물었다. 장동탁이 소화기를 놓치며 주저앉았다.

털썩.

너무 순식간이라 반항할 틈도 없었다.

쉬이이이이이-

장동탁이 오줌을 지렸다.

‘흐에에엑’이라며 신음을 내뱉었다. 그의 바지에서 흘러내린 노란 액체가 땅을 적셨다.

그 와중에도 다른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남아있는 힘을 다하여 입을 열었다.

“도… 도망가…. 도망… 가…. 도망가!”

“키에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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