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시스템 메시지]
[경고! 스켈레톤 병사(일반) 1기 사망]
[현재 남은 스켈레톤 병사 1/2]
“어?”
“왜.”
“야 아까 그 사람들 쫓아가던 스켈레톤 뒤졌다.”
“벌써?”
정우 녀석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우선 숨어있자.”
“왜? 4층도 전부 확인했겠다. 그냥 가서 저 사람들이랑 합류하자. 우리는 아저씨랑 상관없다고 하면 되잖아.”
“이 몰골로?”
사슬 갑주를 입고 도살용 도끼를 든 남성과.
네크로맨서로 전직하여 악마의 붉은 눈을 가진 자.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은가?
“내가 잘 설명할게. 창문 열고 좀비 보여주면 바로 해결될 거야.”
“그런가? 그럼…… 아! 안 돼.”
“왜?”
“생각해보니 유소라 저 여자는 아까 내가 죽인 좀비를 봤어.”
“그럼 더 설명하기 쉽겠네.”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닐걸.”
“왜?”
“아까 사람들 움직이는 거 봤지?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서는 상태야.”
정우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래서?”
“유소라 그 여자. 아까 내가 죽인 좀비를 사람으로 오해했었어. 다른 사람들한테 나를 살인범이라 말했다면 일이 복잡해질걸.”
“그러니깐 창문 열고 좀비 보여주면 된다고. 그럼 오해도 풀리잖아?”
드르르르륵.
창문을 열자 좀비들이 우리가 있는 쪽으로 손을 뻗었다.
-키에에에엑!
대충 세어보아도 컴퓨터로 멸망의 땅을 플레이할 때보다 더 많게 느껴졌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창문 열기 전에 우리가 당할까 봐 문제지. 흥분한 사람들은 대화하려고 하지도 않잖아. 갑자기 여럿이 덤벼들면-”
“아이고, 걱정도 많으셔라! 너는 그게 항상 문제다. 최악의 상황을 먼저 생각하는 버릇.”
“죽기 싫으니까.”
“야! 걱정하지 말고 이번 일은 내게 맡겨. 잘못되면 이 도끼로 전부 조져버릴 테니깐.”
농담 반 진담 반이겠지만 정우의 눈에서 확신이 보였다.
마정우는 독불장군에다 단순무식이기는 해도 그만큼 믿을만한 놈이다.
이 녀석은 입 밖으로 꺼낸 말을 분명히 지킨다. 어렸을 적부터 약속은 꼭 실행하는 놈이었다.
그 끝이 좋던지 나쁘던지 말이다.
나는 마지못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알았다. 그럼 이번에는 네 말대로 움직여 보자.”
“그래! 나만 믿어.”
우리가 방을 돌아다니며 훔친 서랍장들을 전부 정리해 놓았다.
다른 이들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간 것을 들키면 큰일 나니 말이다.
두두두두두두두.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단체로 움직이는 발소리가 들렸다.
위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4층에 도착했는지 복도가 울렸다.
-아, 아까 그 해골은 대체 뭘까요?
-과학실 모형인 것 같은데. 누가 장난쳤나 봐요. 한 방에 와르르 부러지던데요.
-실 같은 걸 묶어서 움직였나?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 영감이 건물 안에 CCTV도 엄청나게 많이 설치했잖아. 그거로 우리 감시하고 있는 거 아니야?
CCTV?
나는 모르는 일이었다. 현관 입구 빼고는 건물이 낡아서 그런 것을 설치하지 않은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건물이었잖아?
5층으로 올라갔던 무리 중 제일 먼저 4층에 도착한 사람은 삐쩍 마른 남성.
트레이드 마크인 곱슬머리에 잠자리 안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 정우야! 천재도 같이 있었네?”
우리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다행이다.
저 사람은 이 건물 입주자 중 친분이 있는 남자 간호사다.
아까 확인한 302호의 주인.
정우가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동탁이 형! 어디 가셨었어요? 아까 방에 가니깐 없던데.”
“나? 아까 아래층 소라씨가…. 아니. 어떻게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올라오게 되었어. 그나저나 너는 복장이 왜 그러냐?”
“왜요?”
“왜냐고? 네 손에 있는 도끼를 봐. 갑옷은 또 뭐냐?”
“어….”
“어디 십자군 전쟁이라도 나가? 천재 너는 눈이 또 왜 그래? 아이돌 준비해? 야구 방망이는 또 왜 들고 있어.”
내가 정우에게 눈치를 주었다.
정우가 눈을 질끈 감더니 동탁에게 대답했다.
“…… 예.”
마지못한 그의 한 마디.
정우 녀석이 좀비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의 씁쓸한 표정 때문에 내가 말을 잇지 않았다.
계획한 대화하고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불길하기는 한데.
그래도 잘 해결된 것 같다……
동탁의 등 뒤로 두 명의 남녀가 내려왔다.
저 남성은 나를 모르지만 나는 저자를 알고 있다.
건장한 체격에 깍두기 머리.
저 사람은 스킨스쿠버가 취미인. 고등학교 체육 선생님이다.
어떻게 알았냐고?
가끔이지만 스킨 스쿠버 교재와 자신이 근무 중인 학교의 물건들을 건물 앞에 내놓기 때문이다.
나는 쓰레기라며 내놓은 그의 물건을 가끔 주워왔기 때문에 잘 알 수 있다.
그가 버린 아령과 스쿼트 머신은 아직도 잘 쓰고 있다.
체육 선생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가슴을 부풀리며 우리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심까. 김두식임다.”
[‘김두식’ 플레이어가 ‘김천재’님을 경계합니다.]
정우와 내가 동시에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김두식이 우리를 흘깃 훑어보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이거 이거, 지금 보니 아래층 게임 폐인들 아니신가?”
“…… 폐인이라뇨. 친하지도 않은데 말이 좀 무례하시네요.”
“폐인이 아니면 뭐야? 하루 종일 게임만 하는데.”
나는 눈썹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럼 프로 게이머들은 전부 폐인인가요? 대체 무슨 논리로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네요.”
“무, 무슨 논리냐니. 너희가 프로 게이머야?”
“예, 저 게임에서 랭킹 1위에요.”
“1…… 위…… 그럼 저 옆에 녀석은?”
마정우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2위입니다.”
김두식은 할 말이 없는지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됐다! 너희들이 그 게임 하느라 쿵쿵거려서 다들 시끄러워 잠을 못 자는 건 알고 있냐?”
나랑 언제 말을 섞어 봤다고 자꾸 반말이지? 볼수록 짜증이 나는 인물이다.
“쿵쿵거리는 건 아저씨가 버피 체조한다면서 크게 뛰어서 그런 거죠. VR 게임은 제 자리에서 움직이는 거라 쿵쿵거리지 않습니다.”
“뭐?”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세요. 저희는 아랫집이고 아저씨가 윗집인데 저희가 쿵쿵거리겠어요? 아저씨 윗집인 건물주 아저씨가 쿵쿵거리겠어요?”
“이, 이 녀석이!”
말싸움이 커질 것 같자 그의 옆에 있는 여자가 우리 사이로 손을 흔들었다.
유소라다.
슬그머니 그의 뒤쪽으로 숨는 것으로 보아 우리를 경계하는 것이 확실했다.
“아…. 안녕하세요. 두식씨, 그만하세요.”
“하지만 소라씨-”
“저희끼리 싸울 때가 아니잖아요.”
“…….”
나는 김두식을 무시하고 유소라에게 말했다.
“소라씨.”
“…… 천재씨.”
“아까 어디 가셨었어요? 정우 혼자 내려오던데.”
“……”
그녀가 고개를 떨구었다.
내가 다시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천재씨가 빨리 가라고 해서 열심히 뛰었더니. 정우씨 집에 도착하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어요.”
“아….”
“다리에 힘이 풀린 데다가, 정우씨가 제 말을 듣는 순간 너무 빨리 뛰어가셔서…. 따라갈 수가 없었어요.”
나는 그녀의 말을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리는 괜찮아요?”
“네…….”
“정우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아마 정신이 없어서 그런 것 같은데. 제가 사과 할게요.”
유소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그녀가 표정을 풀자 체육 선생도 부풀렸던 가슴을 내렸다. 저렇게 하면 강하다고 생각해서 한 것 같은데.
위험할 정도로 멍청한 사람인 것 같다.
조심해야지.
동탁이 형이 들고 있는 소화기를 내게 건네주며 말을 이었다.
“천재야. 이거 네가 챙겨라.”
나는 들고 있는 야구 방망이를 보여주며 손이 없다는 것을 티냈다.
“예? 소화기를요?”
“아, 너도 짐이 있었지.”
“근데 그 소화기는 뭐에요?”
“이거? 어…. 너 지금 안 바쁘지?”
“…… 왜요?”
“안 바쁘면 우리랑 같이 밑에 좀 같이 내려가자.”
“밑에?”
알고 있지만 천연덕스럽게 모른 척을 했다.
근데 이 소화기는 왜 챙긴 걸까? 진짜 건물주 아저씨를 죽이려는 건가.
“그… 너 건물주 아저씨 알지?”
“예.”
“그 사람이 있잖아….”
동탁이 형이 뒤로 돌아 유소라의 얼굴을 힐끗 보더니 굳은 표정을 지었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은데 듣고 싶지 않다.
내가 말꼬리를 잘랐다.
“저희가 꼭 같이 가야 하는 일인가요?”
“어? 어.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있으면 도움이 되는 정도?”
결국, 우리가 없어도 된다는 말이다.
저렇게 말하면 거절하기도 쉽다.
“정우랑 저는 나중에 내려갈게요. 옥상에 두고 온 물건이 있어서요.”
“이 밤에 옥상에?”
“예. 아까 담배 피우고 핸드폰을 두고 와서요.”
“…… 알았다. 그럼 빨리 챙겨서 내려와. 우리 먼저 2층으로 가 있을게.”
“알겠습니다.”
내가 고개를 살짝 숙여 눈인사하자 그들이 곧장 4층에서 떠났다.
자신들이 어떻게 될지도 모른 채 말이다.
* * * * *
터벅. 터벅. 터벅. 터벅.
이 건물의 주인인 박동팔이 발을 쩔뚝거리며 걸었다. 그는 유소라를 찾고 있는 듯 그녀의 방을 샅샅이 뒤졌다.
장롱부터 시작해서 목욕탕까지.
붉어진 얼굴이 그가 얼마나 흥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년. 이 망할… 년. 잡히기만 해봐라….”
혼자 독백하는 대화에서 알 수 있을 정도로 박동팔은 유소라에 대한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가 화장실 수도꼭지를 틀더니 녹물로 피투성이의 얼굴을 씻어냈다.
“쉬벌…. 물탱크 수도관이 또 지랄인가.”
피는 닦아냈지만, 물에 섞인 중금속 때문인지 그의 피부가 부어올랐다.
박동팔이 화장실 거울을 보더니 비열한 웃음을 내뱉었다.
악마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기이한 웃음이었다.
“감히 망치로 내 머리를 때려? 완전 이 노인을 죽이려고…. 그깟 엉덩이 한 번 만졌다고…. 이 망할 년이….”
쿵! 쿵! 달칵.
박동팔이 장롱 안, 옷걸이를 거는 쇠봉을 꺼내더니 허공에 휘둘렀다.
부웅-. 부웅-.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나도 막 나가도록 하지. 법을 벗어난 행동에는, 똑같이 해줘야-”
박동팔이 등 뒤에 있는 무언가를 감지했는지 빠르게 뒤로 돌았다.
콰직!
“크아아아아악!”
박동팔이 비명을 지르며 땅에 쓰러졌다. 조용히 다가온 좀비 녀석이 그의 어깨를 강하게 물고 있었다.
-키헤에에엑.
좀비가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같이 쓰러지며 껴안았다.
“이, 이, 이! 미친!”
박동팔이 쇠봉을 자신의 등 뒤로 휘둘러 좀비를 쳤다. 서너 방을 치자 어깨를 깨물고 있는 좀비가 ‘툭’ 소리와 함께 옆으로 쓰러졌다.
-키이익….
낮은 신음과 함께 좀비가 정신을 잃었다.
박동팔은 좀비를 보며 숨을 거세게 몰아쉬었다.
“뭐야, 이건.”
그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극심한 고통이 어깨에 몰려왔다. 박동팔은 비명 한 번 질러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처럼 두 눈을 감았다.
얕은 숨을 쉬고 있기는 했지만,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다.
“하아…. 추워…. 허허… 이상하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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