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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장롱에서 두 마리의 회사원 좀비가 튀어나왔다.

너무 놀란 나는 잡고 있는 장롱문의 손잡이를 그대로 닫았다.

“스벌!”

쾅!

나를 공격하려 손을 뻗던 놈들이 구겨지듯 장롱 안으로 들어갔다.

-키에에에엑!

하아…… 하아……

“뭐, 뭔데. 왜 여기서 좀비가 나오는데?”

너무 놀라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여기 사는 남자 간호사와 유소라가 같이 숨어있을 줄 알았는데.

나를 처음에 공격했던 회사원 좀비와 똑같이 생긴 놈들이 들어있었다.

숨을 크게 들여 마신 후 천천히 내뱉었다.

심호흡하자 혼미했던 정신이 돌아왔다.

“…… 이 빌어먹을 새끼들이.”

끼이이이익.

장롱문을 여니 좀비 두 마리가 나를 반겼다. 아니 나를 죽이려 들었다.

-키에에에에엑!

내가 두 놈의 머리채를 잡아 밖으로 끌어냈다.

“일로와, 이 새끼들아.”

좀비 녀석들이 끌려오지 않으려 내 손목을 붙잡고 몸을 흔들어 저항했다.

무의미한 반항.

어쩔 것인가? 언데드 몬스터 중에서도 최하급이라 평가받는 회사원 좀비의 힘으로는 네크로맨서의 손길을 거부할 수 없으니 말이다.

드르르륵.

나는 창문을 열었다.

“꺼져!”

이어 좀비 두 마리를 차례대로 창밖으로 던져 버렸다.

던지면서도 아까웠다.

레벨이 좀만 더 높았으면 지금 만난 놈들도 부하로 사용했을 텐데.

아직 레벨이 낮아 두 마리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

부웅-

-키에에에엑!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땅에 떨어진 좀비가 터졌다. 3층에서 던졌는데 어떻게 몸이 터지냐고?

응.

썩어버린 좀비의 몸으로는 버티지 못할 충격이다.

특히나 최하급 좀비의 몸이면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레고 수준.

이 정도 충격은 버티지 못한다.

내가 창밖을 한 번 훑어본 후 다시 문을 닫았다.

나는 시선을 돌려 방 입구에 있는 신발을 보았다.

저 신발은 유소라 것이 맞는 것 같은데. 왜 이 간호사의 집에 있는 거지?

그냥 같은 모양의 신발인가.

알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아. 모르겠다.’

나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문 다음 간호사의 방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약통만 챙겨서 돌아가면 될 것 같은데 보이지를 않았다.

서랍부터 찬장까지 전부 뒤져 보았지만, 약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퀴 잡는 약밖에 보이지를 않았다.

“하……, 이 새끼 간호사 맞나.”

내가 땅에 있는 상자를 발로 걷어찼다.

팍!

치킨 뼈가 쏟아져 나왔다.

‘이 집도 치킨인가.’

널브러진 치킨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먹다 배가 불렀는지 반은 남겨있었다.

유소라네 집에서 본 치킨 상자와 똑같은 브랜드였다.

“…… 흐음.”

나는 그중 제일 단단해 보이는 닭 다리뼈 하나를 트레이닝복 안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닭 뼈’를 획득합니다.]

화장실은 어디 있지?

긴장과 놀람을 반복하다 보니 소변이 마려워졌다. 생각해보니 어제 밤새 술을 마셔놓고 화장실도 안 갔는데.

지금까지 참은 게 용하다.

소변이 터질 것 같아 빠르게 화장실로 향했다.

변기 커버를 올리고.

탁.

조준.

발사.

쫄쫄쫄쫄쫄쫄-

“후…. 좀만 더 늦었어도 바지에 쌀 뻔했네.”

소변을 다 본 나는 거울에 비친 천장을 보았다.

“…… 오호라.”

미세하지만 손가락 자국이 있었다.

먼지 가득한 손으로 깨끗한 벽을 만졌을 때와 같이 생긴 자국이었다.

의자를 밟고 올라가 주먹으로 천장을 치자.

쾅!

뚜껑이 열리며 그 안으로 구급상자가 보였다. 학창 시절 양호실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했다.

[보급 상자]

뚜껑을 열자 그 안에서 [경험치]라고 적힌 캡슐과 은색 가루가 들어 있는 투명한 봉투가 나왔다.

장염으로 입원했을 때 맞은 링겔 봉투와 똑같이 생겼다.

“…… 우선 이건 내꺼다.”

나는 경험치 캡슐을 물 없이 단번에 삼켰다.

꿀꺽.

황금빛이 머리 위쪽으로 한 바퀴 돌았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언데드 상태의 적을 공격할 때 쓸 수 있는 물건이다. 초반에는 이만한 물건도 없으니, 잘 챙겨놔야겠다.

* * * * *

소독약을 찾지 못한 나는 그대로 방에 돌아오게 되었다.

성을 지키는 기사처럼 단단한 자세의 정우가 나를 반겼다.

“왔냐.”

“어.”

“약은?”

“…… 못 찾았어. 그 너네 옆집에 사는 간호사 형 있지?”

“아, 그 사람.”

“그 집에도 구급약이 없더라. 간호사 맞나 싶네.”

정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새끼 간호사 아닌 것 같아. 우리한테 간호사라고 했는데. 출퇴근하는 곳이 병원이 아니라. 요 앞 사거리 클럽이더라.”

클럽?

순간 머리가 띵했다.

그럼 내가 가서 보고 온 주사기는 뭐지?

나는 성수 봉투를 들어 정우에게 보여주었다.

“너 이거 뭔지 아냐?”

“…… 헐! 그거 어디서 났냐?”

“보급 상자, 간호사 형 집에 있어서 가져왔어.”

“…… 꿀이네……”

“그렇지?”

나는 봉투를 다시 자켓 안 주머니에 넣었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 정신을 차린 동팔이 아저씨가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후우…. 이제 좀 괜찮구나.”

“죄송한데 약은 못 찾았어요.”

“괜찮다.”

박동팔이 몸을 일으켜 세우며 내 어깨를 잡았다.

“천재야. 소라 그년은 봤냐?”

“아뇨.”

“하….”

“근데 소라씨는 대체 왜 아저씨를 망치로 때린 거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네요.”

“……”

이 질문에 대답하기 싫었는지 내 시선을 피했다.

왜 말을 하지 않는 걸까?

그는 머리가 아픈 듯 한쪽 손으로 뒤통수를 잡았다.

“아….”

“괜찮으세요? 좀 더 쉬세요.”

“괘, 괜찮다.”

“무리하게 움직이시면.”

“괜찮대도!!”

동팔 아저씨가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 자신도 스스로의 행동에 놀랐는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이렇게까지 흥분을 하는 것일까.

대체 왜?

박동팔이 멋쩍은 듯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조용히 말을 이었다.

“소리 질러서 미안하구나. 우선 밖으로 나가도록 하마.”

“……”

동팔 아저씨가 중환자실의 병자처럼 기운 없는 발걸음을 떼었다.

부축해주려 했지만 그가 내 손길을 거부했다.

지금 혼자 가면 위험할 텐데.

그에게 뭐라고 설명을 해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밖에 좀비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유소라한테 한 대 더 맞고 골로 갑니다?

뭐라고 해야 하지.

이 늙은이를 설득할 방법을 모르겠다.

이런 대책 없는 꼰대에게 정상적인 대화 방법으로 말을 걸었다가는 또다시 짜증 섞인 말을 들을 게 뻔하니 말이다.

내가 머리를 긁적였다.

정우가 매서운 눈으로 동팔 아저씨를 보았다.

“뭐해요.”

“뭐, 뭐?”

“들어가서 좀 더 쉬어요.”

“됐다. 나는 유소라 그년을 찾으러 가야겠어.”

“…… 그 몰골로요? 아저씨 지금 머리통이 전부 피로 젖어서. 완전 귀신같아요.”

동팔 아저씨가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더니 흠칫 놀랐다.

“피, 피가 이렇게 많이 났었나?”

“찢어졌으니까요. 천재가 쉬라고 할 때까지 좀 쉬어요.”

“…… 아니다. 그래도 가야 해. 아니면 그년이 경찰에 신고할 거야.”

경찰에 신고?

이건 또 무슨 말이람.

정우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째려보았다.

“경찰에 신고한다고요?”

“아…. 아니.”

“그 여자가 아저씨를 왜 신고해요?”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그년을 신고한다는 거지. 내 머리통을 터트렸으니깐.”

하나부터 열까지 대화가 너무 의심스럽다.

지금 내 머리에 떠오르는 장면들은 부부극장에서 볼법한 막장 스토리들.

그런 것 있지 않은가.

늙은 노인이 잘 먹고 잘 자서 힘이 넘쳐 저지르는 일들.

‘설마…. 아니겠지.’

둘의 이야기를 듣던 내가 정우에게 손을 휘저어 동팔 아저씨를 보내라는 신호를 주었다.

건물주라서 살려주면 도움이 될 것 같았는데. 막상 말을 섞어보니 긍정적인 요인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드는 인물이다.

너무나도 꽉 막히고 보수적인 늙은이.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나? 어른이 아니라 그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이만 늘어버린 사람들.

몇 마디밖에 안 섞어봤는데 어떻게 아냐고?

응.

상대방을 파악하는데 이 정도 대화면 충분하다.

그와 동행하여 앞으로 생길 갈등을 생각하면 골치가 아프다.

정우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내가 방을 나가는 동팔 아저씨에게 말했다.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세요.”

예의상 해본 말이다.

전화가 안 되는 것은 미리 확인했으니 말이다.

동팔 아저씨가 무심한 듯한 말투로 한 마디 던졌다.

“알았다.”

그렇게 그가 떠났다.

나는 피우던 담배를 땅에 던져 지르밟았다. 정우가 떠나가는 박동팔의 뒷모습을 보더니, 방안으로 들어왔다.

치럭. 치럭.

그가 걸을 때마다 사슬 갑주가 쇠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김천재. 저 늙은이 그냥 보내?”

“어,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둬,”

“죽으면?”

“…… 재밌는 장면이 나오겠지.”

* * * * *

3층 수색을 마친 우리가 4층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오는 길에 건물주를 만났지만, 그가 우리를 못 본 체하고 2층으로 내려갔다.

유소라의 집으로 가볼 생각인가보다.

그녀가 2층에 없는 걸 알고 있지만 나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4층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정우에게 아까 만난 좀비에 대해 말해주었다.

“아까 그 간호사 형 방에서 좀비 두 마리가 튀어나왔어.”

“좀비?”

“어. 회사원 복장을 한 좀비. 내 방에서 한 마리 나왔었는데. 네 방에는 안 나왔냐?”

“…… 나왔으면 내가 죽었을걸?”

그렇지.

생각해보니 좀비를 만났으면 녀석이 나를 구출하러 와줄 수 없었겠구나.

계단의 끝에 도착하기 직전.

마정우가 조용히 하라며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을 가리켰다.

무슨 일이지?

정우가 자세를 낮추었다.

나도 녀석을 따라 상체를 수그렸다.

이어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거, 건물주 그 늙은이가 저를….

-괜찮으세요? 이 영감탱이 예전부터 안 좋은 소문이 있더만.

-미친 거 아니야? 내가 당장 내려가서 그 노인한테 따질게. 비켜봐.

-그, 그러지 마세요. 저희 전부 쫓겨나요.

유소라와 다른 주민들의 대화였다. 대충 들어보아도 내가 예상한 일과 일치하는 것 같았다.

정우 또한 이해했는지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2층과 3층은 전부 비어있더니 이곳에 사람이 몰려있을 줄이야.

위에서 들려오는 대화 중 간호사 형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 영감, 옛날부터 소문이 안 좋았는데, 오늘 본때를 보여줍시다.

-그래요! 건물주라고 뭐 별거 있어? 이렇게 된 거 다시는 까불지 못하도록 크게 혼내주자.

-그 영감탱이 틀니를 박살 내버리자고.

셋. 또는 넷.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자들의 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사람들은 아직 밖의 상황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

유소라는 나와 함께 좀비까지 봤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은 건가?

‘…… 아니면.’

박동팔 때문에 좀비에 대해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것인가.

-다들 준비되셨나요?

기세를 보아 곧 건물주 아저씨를 잡으러 갈 생각인 것 같은데.

일이 복잡하게 되었다.

혹시라도 삼자대면하게 된다면, 박동팔을 치료해준 우리는 곤란한 상황이 만들어질 것이다.

또각. 또각. 뚜벅. 뚜벅.

갑자기 녀석들이 계단을 향해 다가왔다. 이대로 간다면 마주친다.

‘일이 잘못되면 입장이 곤란해질 것 같은데…….’

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내가 정우의 등을 툭툭 쳤다.

“마정우.”

“어?”

그리곤 트레이닝복 안에 넣어 두었던 뼈를 보여주었다.

“깜짝 파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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