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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2층에서 3층으로 연결되어있는 계단.

그곳에서 빠른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다다다다다다-!

“김천재! 김천재!!”

마정우다.

녀석의 손에 빨간색 비상용 도끼가 쥐어져 있었다. 얼마나 급하게 달려왔는지 맨발이었다.

“여, 닉진. 아니 정우.”

“하아…. 하아…. 너 어떻게 된 거냐?”

“뭐가.”

“갑자기 어떤 여자가 뛰어와서 다 죽어간다고 하던데, 낚시였나?”

“…… 그랬지.”

녀석의 당황스러운 표정도 잠깐.

이어 정우가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곳곳에는 쓰러진 좀비의 시체들이 있었고, 초록색 액체가 복도의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김천재, 이거 내가 생각하는 그거 맞냐?”

“…… 상태창 보여?”

나도 그렇고, 앞서 달려간 유소라도 그렇고. 이 녀석까지 똑같은 행동을 했다.

정우가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어. 너도 보이냐?”

“그래.”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아니 꿈인가?”

녀석이 손으로 자신의 볼을 꼬집어보았다. 이어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정우가 이곳으로 오는 동안 극한의 고통을 느껴본 나는 저런 행동을 할 필요 없었다.

심장에 칼을 박아넣는 고통을 미리 느꼈는데 겨우 볼을 꼬집는 정도로 꿈에서 깰 수 없는 걸 아니깐.

“그렇게 해서 꿈에서 깨겠냐. 불알이라도 한 대 차봐.”

“미쳤냐?! 그건 꿈에서 깨는 게 아니라 다시 잠들걸.”

내가 낄낄거렸다.

이런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는 것도 신기하다. 하긴 정우와 함께라면 군대에서도 신났었으니깐 뭐….

정우 녀석이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었다. 밖에까지 나갈 필요 없는 우리는 복도에서 불을 붙였다.

치직. 치지직.

쓰읍. 푸후-.

나는 하얀 담배 연기를 손으로 걷으며 말을 이었다.

“너 지금 무직이냐?”

“그렇지. 너도 백수잖아?”

“아니. 상태창에 무직으로 뜨냐고.”

정우의 시선이 허공을 향했다.

“어.”

“그래. 그렇지….”

“…… 이거 꿈 아니냐?”

“글쎄. 나도 모르겠다.”

나는 녀석의 어깨를 툭 친 후 담배를 깊게 마시며 복도의 반대편을 향해 걸었다.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서다.

“거긴 왜 가?”

“보여주려고.”

“뭘, 야. 가지 마! 밖에 좀비들 득실거리고 있어. 여기 내려오기 전에 창밖으로 봤다고.”

“아, 됐고. 따라 와봐.”

내가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정우가 석연찮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따라왔다.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확인한 정우가 손뼉을 쳤다.

내가 조종하는 좀비 녀석 두 마리가 부서진 가구를 이용해 입구를 틀어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 저 좀비…. 혹시?”

“맞아.”

“어떻게 했냐?”

“어떻게 했을까?”

내가 트레이닝복을 슬쩍 걷어 상처 난 가슴을 보여주었다. 심장 쪽에 물들어 있는 내 핏자국을 보더니,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 설마…, 그걸 한 거냐?”

“그래.”

“죽으면 어쩌려고? 꿈이 아니었으면?”

“좀비한테 뜯겨 뒤질 바에는 그냥 자살하는 게 낫겠다 싶었어.”

“…… 하긴.”

입구를 막고 있는 두 마리의 좀비를 보며 우리가 담배를 태웠다.

쓰읍.

푸후-.

담배를 먼저 다 태운 정우 녀석이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내게 물었다.

“저 뼈다귀 새끼가 네 해골 병사라는 거지?”

“어.”

“…… 후우, 이제 어떻게 하냐?”

“뭘.”

“그냥 전부.”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 나도 몰라. 상황 파악부터 해야지. 너 혹시 핸드폰 터지냐?”

“어. 근데 아무도 전화를 안 받아.”

내가 핸드폰을 들어 정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로 옆에 있다면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깐.

뗄레레레레레레.

전화를 건 내 핸드폰만 신호가 울렸다.

정우의 핸드폰은 반응하지 않았다.

정우 녀석이 내 핸드폰 화면에 적혀있는 번호를 확인하더니 혀를 내둘렀다.

“이럴 수가 있나? 통신사에 문제가 있으면 애초에 신호가 가지 않는 거 아니냐?”

“…… 이거 그거랑 똑같잖아.”

“뭐?”

“설명해줘야 아냐?”

내가 손가락으로 심장을 툭툭 쳤다.

멸망의 땅: 라스트 게임의 첫 번째 라운드.

튜토리얼 게임이다.

마정우가 이해한 듯 ‘아!’라는 탄식을 내뱉었다.

“맞네…. 맞아. 생각해보니 멸망의 땅 첫 스타트 포인트가 집이구나.”

“마정우.”

“왜?”

“이게 만약 멸망의 땅이라면. 이 안에 분명 그놈이 있겠지?”“…… 그 악마 자식?”

내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렇지.”

“뭐…… 있지 않겠어? 여기가 멸망의 땅이라면.”

* * * * *

정우와 나는 2층부터 수색에 들어갔다. 벌써 몇 개의 방은 내가 확인한 상태라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띵- 동.

“안에 계십니까.”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띵- 동.

“있으면 대답하고 없으시면 강제로 열고 들어갑니다.”

또다시 대답이 없었다.

나는 문고리에 코를 가져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

짙은 소세지 냄새가 흘러나왔다.

‘역시.’

정우가 도끼를 크게 휘둘러 문을 내려찍었다.

부웅-

콰직!

흠집도 나지 않았다.

그로써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곳의 주인은 플레이어가 아니라 시스템이라는 것을.

“마정우, 뒤로 나와봐.”

“어? 어.”

삑. 삐빅. 삐. 삑.

띠링. 뜨루루루-.

204호의 도어락이 열렸다. 암호를 알지 못하면 절대 들어 올 수 없는 곳.

[‘애니메이션 오타쿠’의 방]

“…… 들어가자.”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애니메이션 오타쿠 녀석의 물건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먹다 만 감자 칩부터 정체 모를 일본 만화의 주인공 피규어.

그리고 녀석이 수집하는 요상한 물건들.

만화 속 케릭터들이 입는 전투 도구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내가 복도로 나가 반대편에 있는 마정우에게 소리쳤다.

“정우야, 이거.”

마정우가 고개를 돌려 사슬 갑주를 보았다.

“갑옷? 뭐냐 이거.”

“여기, 운영자 중 한 명의 방하고 똑같이 만든 장소라던데. 무슨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입었던 갑옷이래.”

“너는 이 방이 그런 방인 줄 어떻게 알고 있고?”

“내가 괜히 고인물이냐. 척하면 척이지.”

마정우가 멋쩍은 표정으로 이마를 긁적였다.

“나도 고인물이었는데.”

“나는 급이 다른 고인물이지.”

“어이고…. 그러세요? 지존 고인물이라서 좋겠수다.”

정우가 환하게 웃었다.

그가 마네킹에 걸려있는 사슬 갑주를 꺼내어 걸쳤다. 얼마나 무거운지 어깨가 축 처질 정도였다.

“오…. 괜찮은데? 그럼 이거 진짜 쇠로 만든 거냐? 묵직하네.”

“어, 방어력 몇이라고 나오냐?”

“방어력 3. 이동속도 –1.”

“좋네. 그 정도면 좀비한테 맞아도 끄떡없을 거야.”

“개꿀이네…. 이런 건 어떻게 챙길 생각을 했냐.”

“내가 괜히 1위였겠냐.”

사슬 갑옷을 빼고는 딱히 쓸 만한 물건이 없었지만, 그래도 충분한 결과였다.

초반에 방어력 3짜리 방어구를 구한 것 자체만으로도 좀비한테 죽을 일은 없으니깐.

장비를 챙긴 우리가 방에서 서둘러 나왔다.

튜토리얼을 쉽게 끝내려면 최대한 빨리 악마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 층에 있는 방의 개수는 총 4개. 2층을 전부 확인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 집과 유소라의 집은 열려있고. 남아있는 집은 단 두 개뿐이었으니깐.

“올라가자.”

“그래.”

“어? 생각해보니 아까 너 데리러 갔던 소라 씨는?”

마정우가 생각하는 듯 눈알을 돌렸다.

“모르겠는데. 나는 네가 급하다고 해서 그대로 달려오느라.”

“그냥 두고 왔어?”

“어.”

“뭐…. 상관없겠지.”

2층 수색을 마친 나는 마지막으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확인했다.

혹시라도 밖에서 밀고 들어오는 좀비들이 입구를 뚫었을까 해서였다.

계단을 확인한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뚫기는커녕 미동도 없었다.

하긴 튜토리얼인데 가구를 밀어낼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좀비가 있을 리가 없지.

“스켈레톤, 너도 이곳에 합류하도록.”

-키엑!

“천재야. 가자.”

“…… 그래.”

정우 굳은 표정으로 앞장섰다. 사슬 갑주를 입어서 그런지 자신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3층에 도착하는 순간 생각지 못한 상황이 우리를 반겼다.

모든 방문이 열려있다.

그리곤 복도에 사람이 한 명이 쓰러져 있었다.

빠르게 달려가 확인해보니 이곳의 건물주인 박동팔이다.

그의 흰색 머리칼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하아…. 하아….

그의 입에서 얕은 숨이 흘러나왔다.

정우 녀석이 손도끼를 들고 전후방을 경계했다. 혹시라도 나올 수 있는 적을 대비했다.

“아저씨! 아저씨!”

내가 동팔이 아저씨의 어깨를 툭툭 쳤다.

한참을 흔들자 건물주가 눈을 희미하게 떴다.

눈을 뜨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왼쪽 눈이 크게 부어 있었다.

누군가한테 맞은 게 확실하다.

“어…. 천재…. 아니냐….”

“아저씨. 어떻게 된 거예요?”

“그게….”

“예.”

“2층… 유소라…. 그년이… 나를….”

유소라?

유소라는 아까 정우를 부르기 위해 내가 3층으로 보낸 옆집 여자다.

그럼 좀비가 아니라 사람한테 당했다는 말인가.

아니! 유소라가 이 늙은이를 공격할 이유가 있나? 좀비랑 착각할만한 비주얼이기는 한데…….

“그 사람이 왜요?”

“그년이 나를… 내 머리를…. 망치로….”

“아저씨 머리를 망치로 때렸다고요?”

“…….”

더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알겠다. 하지만 유소라가 동팔 아저씨를 왜 때렸는지는 모르겠다.

이 상황에서 대체 왜?

‘…… 이상한데.’

나는 아저씨를 열려있는 방안으로 이동시켜 침대 위에 눕혀 주었다.

촤르르르륵-

커튼을 닫고.

탁.

전등을 켰다.

“소라씨가 아저씨를 때렸다는 거죠? 망치로.”

“그래….”

“왜 때린 거래요?”

순간 아저씨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스쳐 갔다. 이어 두 눈을 질끈 감아 표정을 굳게 만들었다.

“……”

아저씨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지그시 눈을 감을 뿐이었다.

“아저씨?”

“아…. 미안하다. 너무 아파서 잠시 정신이 날아간 것 같아….”

“소라씨가 아저씨를 왜 때렸냐고요.”

“그건 나도 모르지. 복도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길래 나가봤더니, 글쎄 그년이 내 머리통을!”

유소라가 건물주를 이유 없이 때렸다는 말인가? 그것도 망치로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건물주에게 말했다.

“알았어요. 우선 쉬고 계세요.”

나는 방 밖으로 나가 입구를 지키고 있는 정우에게 말했다.

“정우야. 나 약 좀 구해올게.”

“어. 근데 약을 어디서 구하게?”

“뭐, 다른 방 뒤지다 보면 뭔가 나오겠지. 보니깐 저 늙은이 머리만 살짝 찢어진 거라 소독만 하면 될 것 같아.”

“…… 알았어.”

* * * * *

비상약이 있을 만한 곳. 이 층에 단 한 곳이 있다.

303호

아마도 그 사람의 집에는 여러 가지 약품이 구비 되어있을 것이다.

나는 열려있는 문을 향해 소리쳤다.

“있으세요?”

대답이 없었다.

오늘따라 전부 비어있네.

조용히 안으로 들어가자 엉망진창이 되어있는 방이 보였다. 침대가 없어 땅에 널브러져 있는 이불과 여기저기 버려져 있는 주삿바늘.

“…….”

나는 숨을 죽였다.

안에서 인기척이 났기 때문이다.

“있으세요?”

밖에서 불렀을 때와 같이 대답이 없었다. 분명 방안에서 사람의 숨소리와 움직임이 느껴지는데 왜 말이 없는 것일까.

뚜벅. 뚜벅.

나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신발이 두 개?

방 현관에 여자 운동화과 남자 구두가 나란히 있었다.

분명 303호는 대학 병원에서 일하는 남자 간호사의 집인데.

어떻게 된 거지.

게다가 이 운동화.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본 적이 있다.

내가 알만한 여자가 착용한 운동화라면….

단 한 사람.

옆집 유소라다.

아는 여자가 엄마 말고는 유소라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황을 파악한 내가 대담하게 방 안으로 들어갔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일부로 걸음 소리를 크게 내었다.

“…… 나오세요.”

정적이 흘렀다.

“나오세요. 저예요, 김천재.”

끼이이이이익.

방 안에 있는 장롱문이 살짝 열렸다.

저기 있었구나.

왜 대답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

내가 장롱문을 확 열며 짜증을 내려는데.

-키에에에엑!

장롱 안에서 좀비 두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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