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갑작스러운 공포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털썩.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좀비는 대체 뭘까.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 있다.
겁에 질린 나는 몸이 움직이지 않아 놈을 쳐다보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행색인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할로윈 데이 코스프레?
아니지, 3월에 무슨 할로윈 데이람.
깜짝 파티인가? 그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친구가 없는데 누가 나를 위해 깜짝 파티를 해줄 것인가.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천천히 호흡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서자 ‘삐빅’ 소리와 함께 내 눈앞에 홀로그램 화면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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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
이름: 김천재
직업: 무직
생명력: 100/100
체력: 9 공격: 9
방어: 9 속도: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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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파란색 테두리에 검은색 글씨로 도배되어있는 익숙한 화면.
너무나도 친숙해서 사용법을 전부 알고 있는 이 화면의 정체는….
내가 하는 게임의 메뉴 중 하나이다.
‘멸망의 땅: 라스트 게임’의 상태창.
‘꿈인가?’
내가 홀로그램 화면에 손을 휘저어보았다. 손이 지나가는 동안에만 잠시 연기처럼 흩어지더니 이내 다시 뭉쳐서 모였다.
어떻게 된 걸까.
꿈인가?
아 그렇지 꿈이겠지.
이게 현실이라면 말이 안 되지 않은가?
싶어 눈을 껌뻑이는데 귓가에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첫 번째 라운드, 시작합니다.]
“…… 뭐라고?”
-흐익. 흐이이이이익.
회사원 복장의 좀비 녀석이 화가 난 표정으로 다시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다행히도 행동에 제약이 있는 듯 움직이지는 못했다.
내가 벌벌 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엇이라도 들어야지 녀석에게 맞서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천히 시선을 돌리던 내게 물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야구 방망이: 공격력+5]
아이템의 설명창.
아까도 눈앞에 떠 있는 홀로그램 창을 보며 생각했지만. 너무나도 똑같다. 내가 하던 게임의 메뉴얼과 똑같다는 말이다.
잠시 생각하는 사이 좀비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걷는다기보다는 몸을 덜덜 떨며 천천히 앞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꺼, 꺼져.”
-크익…. 크이익….
“꺼지라고!”
좀비 녀석의 눈이 천천히 돌아가더니. 갑자기 나를 향해 달려왔다.
“흐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콰직.
“아악. 이 개 새끼야!”
좀비 녀석이 내 어깨를 강하게 물었다. 너무 아파서 ‘흐으윽’이라는 신음이 절로 나왔다.
이빨이 뾰족하지 않아서 다행이지, 조금만 더 날카로웠으면 물어뜯은 자리의 살점이 뜯겨 나갈 것 같았다.
“아아아아악!”
통증과 함께 녀석에게 느껴지는 공포감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놈이 무섭지 않은 건 아니다. 눈 옆으로 보이는 썩은 살점과 몸에서 뿜어내는 악취는 사라지지 않으니 말이다.
“뒤져!”
주먹을 굳게 쥐어 녀석의 머리를 쳤다.
퍽.
“뒤지라고!”
퍽!
“놔!”
퍽!
“놓으라고, 이 X발 새끼야!”
내가 좀비 녀석의 턱주가리를 강하게 내려찍었다.
퍼억.
놈의 턱관절이 빠지며 옆으로 쓰러졌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내가 발길질로 녀석을 계속 두드려 팼다.
퍽! 퍽! 퍽!
“죽어! 죽어! 죽어!!”
내 포효가 방안에 울렸다.
한참 동안 녀석을 때리자 숨이 가빠 왔다.
“후우-.”
“크이이…. 크이이이익….”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움직인다고?
좀비 녀석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지금까지 내가 때린 충격이 하나도 없었다는 듯 말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회사원 좀비. 눈에 익숙하다 싶어 생각해보니 멸망의 땅 초반부에 등장하는 놈이다.
설마 내가 게임을 꿈꾸고 있는 건가?
멸망의 땅 캐릭터 선택 이후의 스토리와 너무나도 똑같다.
‘…… 아니지.’
이렇게까지 아픈 꿈은 없을 것이다. 있다 하더라도 고통의 수치가 꿈에서 깨고도 남을 정도니깐.
공포에 질린 나는 시선을 돌려 야구 방망이를 들었다.
“…… 그래.”
부웅-
그리곤 방망이를 크게 휘둘러 좀비 녀석의 다리를 내리쳤다.
퍽!
손끝으로 묵직함이 느껴졌다. 좀비 녀석이 균형을 잃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놈이 주저앉은 채로 내게 피 묻은 손을 내밀었다.
“꺼져!”
퍽!
* * * * *
세상이 바뀌어 버렸다.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잠을 자는 사이 모든 것들이 황폐해져 있었다.
아니지.
모든 것이 내가 하던 게임과 똑같이 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아까 좀비에게 물린 상처가 붉게 부어올랐다. 이빨에 파인 곳이 벌써 썩어들기 시작하여 피부가 갈변했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꿈이 맞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통증이 컸다. 오토바이와의 교통사고로 뼈도 부러져 봤는데.
이 만큼 아프지는 않았었다.
“후우….”
침대 옆에 좀비 시체를 두고 있는 내가 핸드폰을 들었다.
뗄레레레레. 뗄레레레레.
신호는 가는데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누구 전화 좀 받아 보라고….”
시체 썩은 내가 방안에 진동했다. 숨을 쉬려 창문을 활짝 열자.
-키에에에에엑!
건물 밖으로 뗴지어 있는 좀비들이 보였다. 방에 켜놓은 불빛 때문인지 놈들의 시선이 전부 이곳으로 모였다.
-키에엑!
“뭐, 뭔데.”
당황한 내가 창문을 빠르게 닫았다.
쿵.
“시이벌….”
놈들이 이곳으로 올 것 같다.
불을 끄자.
달칵.
불을 끄는 순간 아까 쓰러진 좀비 녀석의 입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키에에에….
달칵.
다시 불을 켰다.
그리곤 암막 커튼을 쳐서 빛이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막아냈다.
“아…. 어쩌라고.”
침착하자.
침착하자 김천재.
쾅쾅쾅!
누가 내 원룸 문을 두드렸다.
“아악!”
문밖에서 비명이 들렸다.
-꺄악!
여자?
내가 야구 방망이를 들고 천천히 문 앞으로 걸어갔다.
“누구세요?”
“저, 저저저. 저 옆집 유소라에요.”
“어? 소라 씨.”
끼이이이익.
문을 열자 겁에 질려있는 유소라가 보였다. 손과 발을 심히 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여자도 나와 비슷한 광경을 목격한 것 같다.
“처, 천재 씨.”
“……”
“혹시 창밖을 보셨어요?”
“예.”
“이상한…, 이상한 사람들이….”
사람.
그렇구나, 이 여자는 밖에 있는 놈들을 좀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유소라의 사고방식이 나보다 더 정상적이다.
외형만으로 순식간에 좀비라는 판단을 내리는 내가 이상한 것일 수도 있다.
“꺄아아아아악!”
“왜, 왜요?!”
“저저저저, 저기에. 천재 씨 방에….”
유소라의 검지가 내 방안을 가리켰다. 그렇다, 아까 그 좀비 녀석이 쓰러져있었다.
놈의 몸에서 흘러나온 초록색 액체가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이 여자의 눈에는 일방적인 살인 현장으로 보이겠지?
꿈이라고 생각한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녀에게 말했다.
“저거 좀비예요.”
“좀…. 비?”
“예.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요. 바닥에 초록색 액체 보이시죠?”
“…… 죄송한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좀비 몰라요? 좀-”
윽!
나는 어깨를 부여잡았다. 갑자기 강하게 욱신거렸기 때문이다.
너무 아파 숨을 천천히 쉬자 독감에 걸린 것처럼 갑자기 몸이 으슬으슬하고 다리에 힘이 쭈욱 빠졌다.
내가 천천히 벽에 기대어 앉았다.
이렇게까지 아프다니. 꿈이 아닌가?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유소라가 입을 막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괘…. 괜찮으세요?”
괜찮겠냐? 라고 짜증을 내려다 그냥 고개를 푹 숙였다.
이 여자한테 말해봤자 뭐가 어떻게 되겠는가.
“좀비…. 영화 안 보셨어요?”
“…… 봤어요….”
“그런 좀비라고요….”
내 말을 믿지 못한다는 눈빛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나도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런 설명 없이 갑자기 세상에 좀비가 나타났다고 하면 어떻게 믿겠나?
게임도 아니고 말이야.
내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쓰읍-
후.
“소라 씨, 혹시 근처에 파란색 창 보이세요?”
“파란색 창? 이거 말하는 건가.”
유소라가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내게는 보이지 않지만, 그녀에게 보인다면 그건 분명.
유소라 전용 상태창이다.
“상태창이라고 적혀 있는 이거 말씀하시는 거예요?”
“…… 오케이. 소라 씨, 302호. 302호로 지금 당장 달려가세요.”
“302호요?”
“예. 거기 가서 벨 누른 후에. 명닉진이라는 애 좀 여기로 불러주세요. 아니지, 명닉진이 아니라…. 마정우, 김천재가 마정우를 찾는다고 하면 됩니다.”
“……”
“빨리요!”
“예? 예! 아, 알겠어요.”
유소라가 불안한 눈빛으로 복도 반대편을 향해 뛰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2층. 그녀가 빠르게 다녀온다면 오 분 안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열이 크게 나기 시작했다.
‘설마….’
이거… 혹시 그건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상황이 내가 알고 있는 그게 맞다면.
위험하다.
‘Z’ 바이러스 감염.
“후우.”
슬슬 눈이 감겨온다.
게임에서 표현되던 그 상황과 딱 맞아떨어졌다.
-키에에엑.
-키익!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복도 끝에서 몸을 삐걱대며 올라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입고 있는 옷을 보니 이 근처 학생들이다.
초점 잃은 눈동자와 절름발이 같은 걸음.
“망할.”
좀비다.
대충 세어봐도 열댓 마리가 넘는다. 이 짧은 사이에 좀비에 대한 공포 면역이 생긴 걸까?
이제는 무섭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죽음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웠다.
이게 꿈이라면.
또는 내가 게임에 들어온 것이라면.
이렇게 쉽게 끝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까와 같은 고통은 다시 느끼고 싶지 않다. 아니지, 이대로 당한다면 더 큰 고통이 몰려올 것이다.
씹고. 뜯고. 삼키고.
내 몸이 이리저리 걸레짝이 되어 놈들에게 먹혀버릴 것이니깐.
도망가기에는 이미 늦었다.
방망이를 휘두르기에는 힘이 남아있지 않고.
이 빌어먹을 바이러스.
기본 치료제라도 있었다면 감염 시간을 연장할 수 있었을 텐데.
잠깐.
이게 멸망의 땅과 같은 공간이라면. 내가 살아남을 방법이 하나 있었다.
아무나 하지 못하는 극단의 방법.
‘해보자.’
내가 남아있는 힘을 전부 짜내어 원룸 안으로 들어갔다.
“식칼…. 식칼….”
여기 있다.
마치 자신을 사용하라는 듯 주방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내가 야구 방망이를 내려놓고 식칼을 쥐었다.
[녹슨 식칼: 공격력+2 ]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 뭐 좀비한테 당해 뜯겨 죽는 것보단 낫겠지.”
어차피 이 상황에서 내게 남은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
나와 정우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자 ‘멸망의 땅: 라스트 게임’ 운영진이 게임 초창기에 만들어놓은 이스터 에그.
“…… 제발.”
부탁한다.
콰직!
“허억.”
칼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허어어억.”
상처 부위에서 피가 흘러넘쳤다.
“허억.”
털썩
나는 고통에 신음하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얕았나? 날을 갈아놓지 않아서 그런지 무뎠나.
심장까지 뚫고 들어가지 못했나 보다.
그저 고통만이 머리를 지배했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좀비의 발걸음이 가까운 복도에 울렸다. 이어 내 원룸 안으로 들어오는 녀석들이 보였다.
-크이익. 크이이익.
“……”
내 이마에 핏대가 섰다.
이빨을 꽉 깨물며 왼손으로 다시 식칼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는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어.
팍!
식칼의 손잡이를 강하게 쳤다.
“크하아악.”
눈앞이 번쩍였다.
띠링!
[시스템 메시지]
[‘김천재’ 플레이어님 ▶네크로맨서◀ 로(의) 전직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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