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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내 이름은 김천재 (金天才).
재능이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그래서 내가 천재냐고?
나는 이 질문에 두 가지 답을 낼 수 있다.
하나는 예스요.
또 하나는 노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천재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후우…. 덥네.”
내가 방 창문을 열었다.
이 동네는 삼일에 한 번꼴로 미세먼지가 몰려온다.
삼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요즘에는 자고 일어나면 집 밖 주차되어있는 차 위로 황토색 먼지층이 생길 정도다.
덕분에 집을 환기하는 날이 매우 적다.
오늘같이 날씨가 좋은 날은 창문을 활짝 열어 바깥 공기 좀 쐬어야 한다.
‘중요한 날이니깐.’
시원한 바람이 창을 타고 들어와 커튼을 흔들었다.
털썩.
내가 책상 앞에 앉았다.
“천재라….”
어렸을 적부터 누구나 한 가지 꿈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가수나 배우가 되어 유명해지거나. 특출난 운동신경으로 슈퍼스타가 되는 그런 꿈 말이다.
사업을 잘하여 부자가 되는 것도 내가 말하는 꿈에 속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생의 목표.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녀석이 내 꿈이다.
나를 천재라고 불러주는 유일한 도구.
똑딱.
전원 버튼이 들어오며 컴퓨터가 켜졌다.
위이이이잉-.
오래된 컴퓨터라 그런지 팬 돌아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꿈을 이루기 위한 물건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빈약해 보이지만.
고수는 도구 탓을 하지 않는다.
달칵. 달칵.
내가 바탕화면 중앙에 놓여있는 [멸망의 땅: 라스트 게임] 아이콘을 더블 클릭하였다.
이어 황토색 화면과 함께 폐허가 된 도심을 걷고 있는 남성이 화면에 나왔다.
이게 뭐냐고?
내 꿈이다.
[아이디: rlawhtjs]
[암호: ********]
달칵.
[로딩중…….]
<본 게임은 19세 이용가입니다.>
<과도한 게임 이용은 건강에 해롭습니다.>
<멸망의 땅: 라스트 게임’은 게임 내 욕설 행위를 강력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황토색 화면에 가로로 되어있는 붉은 게이지가 천천히 올라가더니 게임이 실행되었다.
내 아이디 [GoIn물]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날아온 쪽지들이 순서대로 우편함을 채웠다.
[보낸이▶(짬킹): 고하!]
[보낸이▶(덕배): 드디어 오늘이네요. 영광의 순간이. ]
[보낸이▶(누렁):이 메시지는 영국에서 시작되었으며….]
[보낸이▶(4me자): 흑룡 기사단 전원 준비 완료.]
내가 쌓여있는 쪽지함의 모두 비우기 버튼을 눌렀다.
어차피 친한 사이라면 내게 직접 전화를 하거나 귓속말을 할 테니 말이다.
게임 속 폐허가 되어있는 도심 한복판을 유유자적 걷고 있는 노인.
해골 갑옷과 사신 낫을 들고 있는 이 삐쩍 마른 노인이 내 캐릭터다.
내가 헤드폰을 끼며 마이크에 작게 속삭였다.
“디소코드 접속한 사람 있나?”
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나.
“어. 닉진이 어서 오고.”
-지랄. 내가 먼저 왔는데.
“아. 그럼 인물이 어서 오고.”
-ㅋㅋㅋ 자기 자신한테 인사냐?
“응. 나는 내 자신이 항상 새롭고 반가워.”
낄낄거리며 대화를 하던 우리가 게임 속 폐허가 된 광장에서 만났다.
광장의 중앙으로 이동하자 닉진이와 나를 중심으로 많은 캐릭터가 몰려들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 게임의 랭킹 1위와 2위가 같이 자리를 했으니 시선이 모일 수밖에.
물론 랭킹 1위는 나다.
2위는 내 친구 닉진이 녀석이고.
-야! 저 캐릭터 그…. 그 사람 아니냐? 랭킹 1위 천재 고인물.
-어?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저기 저 옆에 캐릭터도 랭킹 2위잖아? 마교 전사 명닉진.
-오늘 랭커들이 전부 모이는구나.
주위로 몰려든 유저들이 우리와 함께 대화를 나누거나 스크린샷을 찍고 싶어 안달이 났다.
평소 같았으면 다른 유저들과 말 몇 마디 섞으며 잘난 척을 하거나 쓰지 않는 아이템을 뿌리며 위용을 뽐냈을 텐데.
오늘은 아니다.
‘멸망의 땅: 라스트 게임’의 진짜 마지막 날이니깐.
시간이 흐르자 우리를 필두로 많은 수의 유저들이 광장 안으로 모여들었다.
모두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뭐냐고?
[앞으로 5분 후 멸망의 땅 마지막 라운드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오오. 진짜 공지에 뜬 것처럼 마지막 게임이네?
-오랫동안 해왔는데…. 아쉽다.
-뭐, 어쩔 수 없지. 운영자가 돈이 없다잖아.
그렇다.
‘자금난에 의한 서버 종료’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이 게임의 서버가 문을 닫게 된 것이다.
그래도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게임이라 그런지 운영진들이 유저를 위해 마지막 이벤트를 준비해 주었다.
내용이 비공개라 어떤 이벤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마지막 게임까지 남은 시간: 4분.]
광장 중심에 있는 대성당 앞에 나와 닉진이가 자리를 잡았다.
우리를 필두로 게임 내의 대형 길드들이 줄을 지어 섰다.
마치 행진을 준비하는 군부대 같이 말이다.
붉은 십자 문양이 새겨져 있는 방패를 든 기사가 제일 앞줄로 나와 크게 소리쳤다.
-부대…. 정렬!
그의 뒤로 줄지어 있는 기사들이 줄을 맞춰 섰다.
[마지막 게임까지 남은 시간: 2분.]
이어 긴 생머리의 엘프족 캐릭터가 우리 앞으로 오더니 공손히 인사를 하였다.
물론 게임 내에 있는 이모티콘을 사용해서다.
[차카니: 고인물 오빠! ]
[고인물: 오랜만이다 카니야.]
[차카니: 이제 준비할까?]
[고인물: 그래. ]
엘프의 수장 ‘차카니’가 손을 휘젓는 모션을 하자 활을 든 궁수들이 활시위를 당겼다.
[마지막 게임까지 남은 시간: 1분.]
성당의 꼭대기로 올라가 주위를 확인해 보니. 개미처럼 많은 유저들이 마을 입구에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암살자, 마법사, 드루이드. 종류별로 다 모였네.’
이 정도면 게임의 유저가 다 모인 건가?
모니터가 마을 전체를 비추자 컴퓨터가 버벅거릴 정도로 랙이 걸렸다.
유저들의 분포도를 확인한 내가 성당 밑으로 내려왔다.
그리곤 마이크를 켰다.
“닉진아. 혹시 오늘 이벤트에 대해서 너희 삼촌한테 좀 들은 거 없냐?”
-어. 없고요. 우리 삼촌 저번 달에 잘렸고요.
“…… 그래.”
대화하는 사이 운영진의 마지막 시스템 메시지 창이 떴다.
[멸망의 땅: 라스트 게임. 최후의 대결을 지금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끝까지 생존하신 플레이어분에게는 깜짝 놀랄 선물을 준비해 놨으니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레디…. 고!!]
유저들이 술렁였다.
내가 키보드와 마우스에 손을 올려놓고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기다렸다.
꿀꺽.
침이 절로 삼켜졌다.
아직까지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전투 준비를 했다.
적막이 흐르는 폐허의 광장.
아무도 채팅을 올리지 않았다.
싸울 준비를 하느라 마우스에서 손가락을 때지 않는 것 같았다.
“…… 뭐냐. 왜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거지?”
-나도 모르겠네.
주위를 둘러보니 특별한 몬스터가 덤벼온다거나 운석이 떨어지는 그런 일은 없었다.
추가로 나온 시스템 메시지도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천천히 화면을 돌려 확인해 보니 이상한 점이 한 가지 있기는 했다.
내 머리 위에 빨간색 피케이 마크.
그리고 내 옆에 놈도, 그 옆에 놈도, 또 그 옆에 놈도.
‘아….’
이래서 ‘멸망의 땅’인가?
내가 운영진의 의도를 눈치를 챘을 때는 이미 광장 전체가 혼돈에 빠진 후였다.
엘프 녀석들이 당긴 활시위가 ‘탕!’ 소리와 함께 날아가 기사들을 덮쳤기 때문이다.
-으아아아악!!
-어, 어떻게 된 거냐.
-엘프. 엘프 연합에서 저희를 공격했습니다!!
[이사키: 뭐? 엘프 연합에서?]
기사장이 고개를 들어 엘프들이 있는 곳을 보았다.
엘프들이 재빨리 궁을 버리고 허리춤에 있는 단검과 등에 있는 방패를 치켜올렸다.
[이사키: 이게 무슨 짓이냐 차카니!]
[차카니: 눈치 없는 새끼.]
[이사키: 뭐라고?]
[차카니: 엘프 연합이여. 눈에 보이는 자들을 전부 죽여라!]
-우오오오오오!
유저들의 함성이 광장 안에 가득 찼다.
방금까지 정체 모를 적에 대한 방어를 준비하던 놈들이. 서로를 죽이기 위해 싸움이 붙었다.
“차카니….”
엘프들의 수장이라 그런지 판단력이 뛰어나다.
그나저나 이런 이벤트를 준비하다니, 운영진도 참 대단한 놈들이다.
[시스템 메시지]
[현 시간부로 멸망의 땅: 라스트 게임 마지막 스토리 진행을 시작합니다.]
[*멸망 모드 발동]
[최종 보스 루시퍼가 마을에 저주를 내립니다.]
[마을 내에 PK가 활성화됩니다.]
[적을 죽이고 살아남으십시오.]
[살아남은 최후의 1인만이 이 스토리의 결말을 볼 수 있습니다.]
유저들은 당연히 강력한 보스 몬스터나, 군단급의 병력이 이곳을 점령하러 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진짜 멸망이라는 단어를 보여줄 만한 이벤트를 가져왔다.
유저가 유저를 없애서 게임을 종료한다.
이 얼마나 신박한가?
내 손이 떨려왔다.
“…… 와! 죽이는데?”
-김천재. 이거 완전 우리를 위한 이벤트 아니냐?
“끝내준다. 야, 우리도 시작하자.”
-오케이.
잠깐 대화를 하는 사이 광장의 반이 쑥대밭이 되었다. 이곳저곳에 화살 비가 쏟아져 내리고 마법사들에 의해 불바다가 되었다.
닉진이의 야만 전사 캐릭터가 그 사이로 점프를 뛰어 들어갔다.
[명닉진: 죽기 싫은 놈은 알아서 피해라!]
쿵.
닉진이의 등장과 함께 근방에 있는 유저들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저 도끼에 스치기만 해도 캐릭터가 단방에 잘려 나가니, 싸우고 싶지 않겠지.
놈의 싸움을 지켜보던 내가 씨익 웃었다.
시작한 지 오 분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유저의 반절이 죽어 나갔다.
[최종 보스 루시퍼가 강림합니다.]
[플레이어는 마지막 전투를 준비해주십시오.]
‘뭐?’
다들 서로 싸우느라 최종 보스 루시퍼가 강림한다는 시스템 메시지를 봤는지 모르겠다.
-크하하하하!
비열한 웃음소리와 함께 마을 위에 게이트가 열렸다.
위이이잉-.
이어 마왕이라 불리우는 루시퍼가 나타났다.
“분수를 모르는 버러지들, 이제 그만 사라지도록 해라.”
[헬 파이어]
지면이 갈라지고 지옥의 불길이 솟아올랐다.
서로 싸우느라 정신이 없던 플레이어들은 마왕 루시퍼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조용히 싸움을 지켜보던 나는 성당의 꼭대기로 올라갔다.
“…… 완전체 루시퍼라.”
루시퍼가 나를 발견했다.
놈이 전속력으로 나를 향해 날아왔다.
“네놈!”
나는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주문을 외웠다.
“마지막 전투를 해보자고. 마왕 나으리.”
[죽은 자의 소생]
죽은 자를 모두 소생한다.
나의 부하로써.
* * * * *
캉!
두 개의 맥주캔이 부딪치며 청량한 소리를 내었다.
“아오…. 닉진아. 오늘 대박 아니냐? 설마 운영자가 그런 이벤트를 준비했을지 생각도 못 했다.”
닉진이 녀석이 클클 거리며 건배를 하더니 캔에 남아있는 맥주를 단번에 마셨다.
“…… 아오 쉬벌. 루시퍼 그 새끼는 왜 갑자기 나타난 거냐?”
“게임의 보스니깐.”
“아니! 유저끼리 싸우게 해주는 것처럼 하더니. 왜 갑자기 녀석을 소환해서-.”
“어차피 다 죽을 거였는데 뭐.”
닉진이 녀석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손으로 내 머리칼을 헝클었다.
“그나저나 이겼냐?”
“뭘?”
“루시퍼한테 이겼냐고. 너 말고 전부 죽어서 끝을 모르잖아.”
나도 놈을 따라 맥주를 한 번에 마셨다.
“…… 졌어.”
“졌어?”
“아마도?”
“아마도?”
“동시에 죽었긴 한데, 녀석은 다시 살아날 수 있으니 내가 진 게 맞겠지?”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죽었다는 거지?”
“그렇지…. 마지막에 생명력 게이지가 바닥나니깐 자폭해버리더라.”
“허허…. 그나저나 멸땅 운영진들은 옛날에 벌어놓은 돈도 많을 텐데. 서버 유지가 그렇게 힘들었나?”
“모르지.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니깐.”
“사정이라….”
그렇게 우리의 추억이 담긴 게임이 끝나게 되었다. 오랫동안 해서 그런지 시원섭섭하다.
녀석을 없애는 것이 ‘멸망의 땅’ 모든 플레이어의 염원이었는데.
내가 그 염원을 마지막에 이루어 줄 수 있었는데.
아쉽다.
너무 아쉽다!
술에 취한 나는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후우…. 루시퍼 그 새끼를 조졌어야 했는데.”
“천재야, 많이 마셨다.”
딸꾹!
“그런가….”
나는 씁쓸한 미소로 맥주캔을 들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다시 서버가 열린다면 이 게임의 끝을 다시 쓰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멸망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부여해서.
닉진이와 한잔 두잔 기울이다 보니 어느새 바닥에 누워 있었다.
옆에 늘어져 있는 소주병만 해도 다섯 병.
평균 주량 한 병 반인 우리가 이 만큼 마셨으니 그럴 만도 하지.
-하아아아암.
우선 자자.
* * * * *
얼마나 잤을까?
눈을 떴을 때는 내 방 불이 꺼져 있었다.
“아…. 춥다.”
덥다고 느껴서 열어놨던 창문을 통해 새벽바람이 들어왔다.
드르르르륵.
창문을 닫자 방안이 캄캄해졌다.
정전이 된 건가? 아니면 잠결에 내가 끈 것인가?
뭐 아무러면 어떤가?
내가 책상 위에 있는 스탠드 등을 켰다.
주황색의 전구가 방안을 밝히는 순간.
쾅!
등 뒤에서 물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뭐지. 시계가 떨어졌나?
내가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리곤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 뭔데?”
눈앞에 회사원 복장을 한 좀비 한 마리가 서 있었다.
-크익. 크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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