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설의 재림-440화 (44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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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추정의 원칙.

대한민국 헌법 제27조 제4항에 의거한다.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너무나도 당연한 법이다.

있지 않으면 곤란할 법이다.

사건이라는 건 항상 증거가, 근거가 제시돼야 한다.

'최근 사회가 미쳐 돌아가면서 유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비윤리적인 행각이 일어나고 있긴 한데…….'

뉴스에서 보면 정말 얼토당토않은 일들이 간혹 보인다.

우리나라가 법치 국가가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세상이 각박하다 보니 나로서는 걱정이 된다.

"증거 있냐고요 증거!"

-목소리 톤이 이미 범죄를 저지른 3류 악당의 단말마인데?

-네, 피고측 변론 잘 들어꼬요

-일단 얼굴이 범죄자

얼굴 가지고 사람을 오해하면 안되지!

그렇게 따지면 세상에 억울할 사람 얼마나 많아.

박성웅, 마동성 이런 분들도 수갑 채울 거야?

'내가 만만하니까 하는 소리겠지.'

그런 분들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할 거면서.

아무튼 방송을 켜자마자 갑작스런 사태에 직면했다.

채팅창에 터무니 없는 추측과 비방이 난무하고 있다.

─나도그렇긔님이 1,000원 후원!

다른 게 증거가 아니구요, 역으로 생각해보면 그 일이 없었다는 것을 입증할 수도 없잖아요?

-옳소! 옳소!

-님 혹시 천재?

-캬~ 그런 방법이

.

.

.

어디 감성팔이 하는 사이비 뉴스에서나 나올 법한 헛소리도 올라온다.

겁나 놀라운 건 이에 동조하는 인간이 있다.

가만히 보자 채팅창 물타기가 가관이다.

이마를 부여잡고 짙은 한숨을 내쉰다.

"어디 가서 귀싸대기 왕복으로 쳐맞을 소리 하지 마시구연."

-헐 인성 실화?

-레전설 막말 논란!

-와, 실망입니다 레전설님

-프로게이머가 이래도 되는 건가요??

언제는 안 그랬냐 확 마!

보자 보자 하니까 사람이 보자기로 보나.

지들이 당하면 뒷목 잡고 환장할 놈들이.

'드라마 피노키오 1회부터 20회까지 앉은 자리에서 강제 시청시켜 버리고 싶네.'

헛소문인 걸 왜 제가 증명해야 합니까?

네가 증명해야지. 네가 소문의 당사자니까.

시험지를 훔쳤다는 누명을 쓴 주인공은 선생님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전 지금 교무실을 나가면 선생님이 바람 피는 걸 목격했다고 소문 낼 겁니다.

뭐……? 대체 무슨 근거로?

소문의 당사자시잖아요. 해명 못하시면 사직서 써야 할 것입니다.

소문의 당사자.

한국 사회에서는 일단 죄인으로 보는 경우가 너무 많다.

비단 사회 이야기할 것도 없이 학창 시절만 따져봐도 그러하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억울하지 않다는 부분이다.

리야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 됐다.

롤드컵 결승이 끝난 당일의 뒤풀이때였다.

* * *

롤드컵 여정이 대략 5주가 걸렸다.

한 달 하고도 1주일이 넘는 시간이다.

절대 짧다고는 볼 수 없는 여정을 함께한 셈이다.

'리야가 정말 고생이 많았어.'

물론 본인이 자원해서 온 거다.

내가 권유하기도 했지만 결국 본인이 받아들였다.

중간에 귀국하라고까지 했는데 괜찮다며 남은 거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당연하게 생각하진 않는다.

같이 지내면서 힐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기분이 꿀꿀할 때 리야 엉덩이 두들기는 것만큼 좋은 해소거리가 없다.

소라-「성훈씨 우승 축하드려요! 바로 일 있어서 직관은 못 봤어요 ㅠ.ㅠ」

하비-「바쁘셔서 못 보겠지만 끝나면 연락 줘요?」

똥강아지-「선배 선배 선배 선배 선배 선배……」

.

.

.

그러니 만큼 광적인 문자 버스터콜도 쿨하게 용서해준다.

평소 같았으면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형인데 기분이 좋다.

왜냐?

'롤드컵을 우승했기 때문이죠!'

누군가 묻는다면 그렇게 대답하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들떴다.

진이 다 빠져 녹초가 된 상태지만 약속은 지킨다.

나 레전설 의리 빼면 시체인 남자다.

"야, 똥강아지."

"왜용?"

리야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 본다.

결승전이 끝난 직후.

원래 계획은 적당히 밥이나 먹고 숙소에서 푹 자려고 했으나 어쩔 수 없다.

《그럼요…… 대회 다 끝나고요. 바쁜 일 다 한 후에는요. 놀아주실 수 있는 거죠……?》

조그마한 입으로 조심스레 쫑알쫑알 지저귄 그 말 잊지 않았다.

솔직히 졌으면 잊었을 수도 있는데 이겼으니까.

속물 같지만 언제나 결과는 중요한 법이다.

남은 반나절 정도는 어울려주기로 했다.

오늘처럼 기쁜 날이면 빡대가리야 짓을 해도 화가 안 낫겠지.

그간의 노고를 치하 해줄 겸 여기저기 가고 싶은 곳에 다 가줄 예정이다.

"여기요. 여기요. 엄청 맛있어요."

"그래애?"

혼자 있을 때 여기저기 다 싸돌아다닌 듯하다.

그 중에서도 맛있는 식당 별점 매겼다면서 쫑알쫑알.

일단 간단하게 빡슐랭이라고 이름 짓겠다.

"여기 바움쿠헨 엄청 똥글똥글해요."

"그래?"

빡슐랭 2,3스타들을 돌아다니고 있다.

맛집 기행 다니듯이 한 그릇씩만 시켜서 먹는다.

이런 단란하고 오붓한 시간도 나쁘지 않은 거 같아.

'치이고 살았던 일상이 치유 받는 느낌이랄까.'

리야가 치유쪽 캐릭터이긴 하다.

적당히만 깝치면 데리고 놀 때 재밌다.

문제는 언제나 적당히 깝치지 않는다는 부분이다.

"여기요 치즈 엄청 맛있어요. 집에 갈 때 꼭 사갈 거에요. 우리집 근처에 빵 맛있게 하는 베이커리 있는데요……"

"그래."

리야가 눈치를 챘을지 모르겠다.

지금 내 그래가 캐낸에서, 토이치에서, 콩머스로 변했어.

그래, 그래, 그래…… 같은 그래지만 목소리 톤이 전혀 다르다고.

빡슐랭 스타들을 돌아다녔다.

나름대로 유익한 시간이기는 했다.

중간에 팬들도 만나서 사인도 해주고, 도망가기도 재미는 있었는데 문제는.

"아파용! 으하아아앙!"

"빡 대 가 리 야아!"

그만 참지 못했다.

리야의 머리를 그만 으스러뜨릴 뻔했다.

잔다르칸: 때려버릴까?

나: 참아!

내 안에 깃든 악마를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힝…… 기운 없다고 해서 방심했는데."

부들부들! 부들부들!

유리야가 진동 모드가 되었다.

까불 줄도 알고 제법 성장했다.

'방심했다고 육성으로 말도 하고 놀라운 일이야.'

확실히 기운이 없어서 웬만하면 화도 안 내려고 했다.

그런데 그런 거 있잖아.

배가 불러도 디저트를 먹을 배로 따로 있어요!

녹초가 돼도 유리야를 때릴 힘은 따로 있어요!

"혹시 맛이 없었어요……? 진짜 맛있는 곳인뎅."

"맛있었어."

"근데 왜 때려욧!"

오 반항도 할 줄 알아.

잠자코 맞던 그 옛날의 유리야가 아니다.

잔다르칸: 키킥, 말 만해. 난 피를 좋아하거든.

나: 안돼. 유리야는 나만 때릴 거니까.

내 안의 악마가 점점 커지고 있다.

"내가 밥을 먹으러 왔지 후식을 세 곳이나 쳐먹으러 왔냐?!"

"아파요오오!"

머리에 빨간 손가락 자국이 찍힐 정도로 혼찌검을 내줬다.

심지어 오는 길에 길거리 푸드트럭에서도 크레이프를 먹었다.

그때는 지친 몸에 혈당을 더해주는 거 같아서 괜찮았다.

그런데 무슨 디저트짐만 세 곳을 더 다녀.

'빡슐랭은 무슨 디저트 전문이야?'

아무래도 믿고 걸러야 할 듯싶다.

몇 대 쥐어 박아주자 히잉댄다.

그 옛날의 유리야다

유리야는 유리야다.

그러고 보니 다른 약속도 하나 했었다.

《살 조금이라도 더 빠지면 그대로 비행기 수화물칸에 넣어 가지고 보내버린다?》

히잉!

유리야의 울음소리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너무 바빴던 나머지 잊고 있었다.

"히잉!"

"음, 토실토실하네."

엉덩이를 한 번 두들겨 보니 이상 무.

나와의 약속도 잘 지키고 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나도 데리고 놀아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디저트랑 식사가 다 되는 곳이 있어. 갈래?"

"헐~ 그런 곳도 있어요?"

있지.

가기도 싫어도 갈 거지만.

원래 이런 날에는 가줘야 한다.

'뭐, 당연히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는데.'

원래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없다고 생각하니까 찾기 힘든 장소다.

있다고 생각하면 모르는 장소에서도 보인다.

사람들의 풀린 눈.

떠들썩한 고성방가.

이런 곳은 대충 방가방가 하면서 번화가에서 눈치껏 찾으면 된다.

"방가방가 햄토리처럼 생겨 가지고."

"저 그렇게 귀여워요?"

귀엽긴 하지.

근데 햄토리는 쥐새끼잖아.

햄토리 보고 햄스터 키웠는데 어린 시절 얼마나 트라우마가 됐는지.

'지들끼리 잡아먹어.'

틈만 나면 장롱 뒤에 숨고.

냉장고 뒤에 숨었을 때는 최악이었다.

그나마 어디에 숨어있는지 확신이라도 들면 다행이지 못 찾기라도 하면…….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저 완전 건강해요! 모르셨어요?"

리야가 씩씩하게 외친다.

하나도 믿음직스럽지는 않지만 잔다르칸이 한 3초만 프리딜 해도 넉다운이 될 것 같지만.

'오늘은 그런 날이 아니니까.'

리야를 아껴주고 싶은 날이다.

좋은 경험도 시켜주고 싶다.

술집에 데리고 왔다.

"여기 분위기가 별로에요……."

"원래 술집이 다 그래."

떠들썩한 분위기.

카페 같은 왁자지껄이 아니다.

처음 오는 사람은 얼을 타게 되는, 그런 위압감이 있다.

'대학가와 달리 아저씨들이 즐비하지.'

심지어 서양 아저씨들이라 쪼꼬만 리야는 더욱 그런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람 사는 곳 다 비슷하다.

내가 여러 곳 다녀봐서 알지만 술집 만큼 익숙해지면 편한 장소가 없다.

"저, 저 술 못 먹어요."

"괜찮아. 음식도 팔고, 니 좋아하는 달달한 것도 파니까."

술집 음식은 기본적으로 맛있다.

종류도 다양하다.

왠지는 모르겠는데 다 그래.

'간이 세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가격대도 비싸다.

술집 음식은 그러한 공통점이 있다.

적어도 오늘 만큼은 그런 거 따지는 날이 아니다.

"오늘 같은 날도 안 마시면 언제 마실 건데?"

"언제 마셔요?"

나: 붙잡아.

잔다르칸: 끼야호우!

리야에게 억지로 맥주를 맥였다.

"엑, 써요……. 왜 마시는지 모르겠어요."

"음식이랑 같이 먹어봐. 그럼 달라."

"콜라 마시면 안돼요?"

응, 안돼.

히잉…….

물 대신으로 찔끔찔끔 마신다.

독일은 물이 서비스로 안 나오기 때문에 반강제다.

리야를 괴롭히는 즐거움을 쌓아간다.

대회 기간동안 마시지 못했던 음주도 마찬가지다.

원없이 마시고 원없이 써도 된다.

오늘은 그러라고 있는 날이다.

후식이 아닌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2차에 향했다.

'리야도 성인인데 이번 기회에 술을 배워야 하지 않겠어?'

리야가 술을 안 마시는 이유는 간단하다.

알코올에 약해서.

그것도 있는데 그보다 더 단순한 이유다.

"달콤해요! 맛있어요."

적당한 바에 데리고 왔다.

칵테일을 시켜주자 좋아한다.

다행히 근처에 그럴 듯한 곳이 있었다.

'외국에는 바가 많아서.'

우리나라였다면 찾는 것도 버거웠겠지만 외국은 기본적으로 정착이 돼있는 문화다.

하지만 바에는 슬픈 전설이 있지.

"무슨 전설인데요?

"난 전설 따윈 믿지 않아."

그때로부터 벌써 2년이나 지났다.

맥주를 몇 입 마시고 와서인지 헬렐레하다.

전혀 기억 못하는 듯 경계심도 없이 마신다.

'근데 이번에는 괜찮아.'

당시에는 음흉한 목적이 있었다.

그래서 소위 레이디 킬러라 불리는 칵테일을 먹였다.

도수 높은 알코올에 공기를 먹여 부드럽게 만들고, 달달한 맛을 가미하는 그것이다.

당시와 지금은 딱히 목적이 없다.

그리고 술을 좋아하게 만들어주고 싶다.

트라우마를 준 입장에서 좀 그렇긴 한데 어차피 본인이 기억을 못하고 있으니까.

"좋은 게 좋은 거야. 많이 마셔."

"딸꾹! 좋은 게 좋은 거에요오?"

그럼에도 워낙 약하다.

햄토리 같은 녀석이다.

한두 잔 마시자 알딸딸한지 혀가 꼬인다.

그렇게 그 날은 재밌게 둘이서 놀았던 걸로 기억한다.

* * *

'그래, 내 기억에서는 말이야.'

술을 마시고 나면 가끔 그런 게 있다.

전날에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이 모호해.

알코올이 몸에 들어가면 벌어지는 마술이다.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 떠올랐다.

당시의 나는 술결에 헷갈렸던 것 같다.

그 바람에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는데 아무튼.

"증거가 없잖아요 증거가."

솔직하게 찔리는 게 사실이다.

나도 그 뒤처리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애초에 리야가 떠벌리고 다닐 애가 아니다.

-증거 있는데?

-설마 커뮤니티 안 봤나

-사진 다 찍혔죠? 빼도 박도 못하죠? 역겹죠?

무언가 착오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채팅창에서 올라오는 제보.

증거가 무려 있었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추천과 코멘트& 원고료 후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어제 새벽 3:30쯤에 439화 뒷부분 수정했습니다 맥락에서 차이는 없어요

#01:56 뒷 부분 수정.

#느리게 느껴지는 건 그냥 너무 빨리 읽어서 그렇습니다

뒷부분에 축약된 결론만 보면 그렇게 느낄 수 있어요

마지막 파트다 보니까 과정을 다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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