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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
마지막 다섯 번째 세트가 끝났다.
KTX 롤러코스터가 우승을 거머쥐었다.
선수들은 부스 안에서 달콤한 승리의 과실을 맛보고 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카메라는 돌아간다.
관객과 시청자들의 눈동자는 멈추지 않는다.
패배한 팀을 응원하던 팬들의 쓰라림도 마찬가지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
2 대 0으로 앞서가고 있었는데 대체 왜?
3,4세트는 그렇다 치지만 마지막 세트는 너무 실수가 많았다.
〈큰 그림은 SKY가 분명히 앞섰어요. 전체적인 경기력과 집중력도 우위! 오늘 결승전 중반까지만 해도 SKY의 틀림없는 우승이라고 저는 내심 결론 짓고 있었습니다.〉
김은준 해설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있었다, 과거형이다.
경기를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믿기지 않는 기적과도 같았던 과정을 되짚는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저희들도 안 보이는데 선수들은 더 했을 거잖아요?〉
〈맞습니다. 말하자면 안개 속이에요. KTX는 한 번 길을 잃었습니다.〉
까마~득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
행인이 아무리 튼튼하고, 힘이 넘쳐도 길이 안 보면 걸을 수 없다.
결승전 중반까지만 해도 KTX 롤러코스터는 분명 길 잃은 나그네였다.
〈레전설이 길을 열었습니다. 보아라, 저기에 길이 있다! KTX가 우승의 고지를 점령했습니다. 이번 롤드컵의 결승을 그렇게 총평하고 싶어요.〉
SKY T1이라는 안개 속을 줄창 헤맬 줄 알았다.
경기의 끝을 예상했던 건 김은준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반전의 반전을, 그조차 뛰어넘을 반전이 한 명의 선수로부터 시작됐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조금 시간이 걸렸다.
KTX 롤러코스터의 선수들이 무대 위로 올라온다.
쏟아지는 환호성은 오직 한 선수를 가리키고 있다.
〈정말 말도 안돼요! 이 선수! 이 팀의 포텐셜! 올 한해 최고의 반전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기복이 있다는 건 그만큼 상한선이 높다는 거고, 완성되었을 때 무섭다는 소리에요. 먼 길을 돌아온 KTX 롤러코스터가 드디어 트로피를 거머쥡니다!〉
레전설을 포함한 선수들.
높게 치켜든 트로피는 한 가지를 가리킨다.
우리들이 바로 롤드컵의 우승팀, 세계 최고의 팀과 선수들이다.
지구 저 반대편, 유라시아 대륙 저 끝의 독일에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인다.
한국 롤드컵이 아니기 때문에 진용준 캐스터는 안 나온다.
대신 유럽의 캐스터가 인터뷰를 진행한다.
〈던지지만 않으면 당연히 이기죠.〉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뻔뻔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럴 만한 실력을 차고 넘치게 보여줬다.
중계 플랫폼에서 팬들의 찬사가 터져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갓전설! 빛전설! 대전설!
-카메라 잘못 조정한 거 아니냐? 빛밖에 안 보인다
-2대0에서 패패승승승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성 빼고 다 완벽한 그는 도덕책……
오죽하면 해설진들조차 우승팀을 결론 짓고 있었다.
위기의 KTX를 벼랑 끝에서 구원해냈다.
3,4세트 탑을 쳐부수고 압도적인 캐리.
마지막 세트에서 상대의 저격을 강제시켰다.
그 SKY T1이 당황하여 자멸해버렸을 정도다.
일각에서는 다른 의견도 제기되고 있지만.
─레전설 이 새끼가 진짜 악독한 새끼인.EU
코돈빈 바론 뺏기는 쿨타임 돌아오자마자 교체 시킴
└쿨타임 예상했누ㅋㅋㅋㅋ
└이걸 각을 봤다고?
└질 것 같으면 바론 하나 공짜로 주자너~
└5세트 교체 판단이 ㄹㅇ 신의 한 수였다
선수 교체는 전략적인 선택이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판단이기도 했다.
SKY T1이 얼을 타버린 이유 중 하나로 해설자들이 이미 설명을 마쳤다.
〈강타 변수가 없…… 아니 적었다는 점도 분명 있기는 했는데 매번 쓸 수 있는 전략은 또 아니었죠.〉
〈동의합니다. 의외성도 한몫 했어요. 안 그래도 레전설 저격으로 골머리를 썩는 SKY에게 결정타를 먹였던 것 같습니다.〉
-'그 변수'
-강타 변수가 없어져ㅋㅋㅋㅋㅋ
-이걸 두 번 죽이네
지나친 오해는 선수에게 실례가 되는 말이다!
무엇보다 선수 본인이 만족한다.
코돈빈은 웃고 있다.
해맑게 웃고 있다.
─???: 우승을 못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
모르겠는 걸?
└당-당
└이 거만함 무엇ㅋㅋ
└돈빈이형, 이제 뻔뻔해지기로 한 거야?
└누구보다 잘 알잖아요 형……
KTX 선수들의 배려로 홀로 트로피를 올려든다.
선수 인생 최초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감격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더 이상 무관의 제왕이 아니에요. 위대한 정글러만이 남았습니다!〉
-무관의 제왕ㅋㅋㅋ
-준우승 아티스트였지
-드디어 악마를 물리치고 우승을 ㅠ.ㅠ
-이러다 성불하는 거 아니야?
클끼리 해설의 말미가 떨어진 순간 화면이 흐릿해지며 방송에 잠깐 지연이 생겼다.
다시 영상이 연결됐을 때 코돈빈 선수는 보이지 않는다.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자리의 주인공은 따로 있으니까.
입에 침이 마르도록 격찬을 해도 과함이 없는 선수다.
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클끼리 해설이 말을 잇는다.
〈아마추어 때부터 기대를 모으던 선수였습니다. 데뷔하기만을 학수고대하던 팬들과 관계자들이 많았어요. 하필 군대를 가게 되면서 시기가 애매해졌는데…….〉
청춘의 2년을 그냥 생으로 뺐다.
그에 대한 보상은 없다 시피하다.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태어난 죄.
적어도 레전설은 그렇게 말을 해도 이해를 받을 만하다.
프로게이머에게 가장 중요한 전성기가 지나갔다.
그래서 붙은 별명도 있다.
언럭키 테이커.
재능도 실력도 있었지만 운이 너무 안 좋았다.
이 선수가 데뷔했다면 테이커 이상의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이제는 그 별명을 떼야죠! 뗄 때가 한~참 지나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핫한 선수에요. 전세계 게임 관계자들이 레전설을 군침 흘리고 있을 거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습니다.〉
명실상부, 이름과 실상이 똑 들어맞는다.
가히 전설 이상의 존재로 거듭났다.
커뮤니티만 봐도 예전과는 반응이 다르다.
─레전설 우승 기념 꺼라위키 사건사고 총정리.txt
유리야 학대
하비 성추행 의혹
여성 비하
E-스포츠계의 을사조약
.
.
.
└응 까방권이야
└시기하는 새끼 나올 줄 알았다ㅋㅋㅋㅋ
└추천 누른 놈들 반으로 갈라져서 죽어라
└어휴, 남 잘되는 꼴 못 보는 한국인 종특ㅉㅉ
수많은 안티팬을 보유했다!
사건사고를 한두세네 개 일으킨 게 아니다.
하나하나 찾기 힘들 까봐 꺼라위키에 친절하게 등재돼있다.
실력 하나는 의심의 여지가 없음에도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린 이유다.
유교 사상이 깊은 한국답게 도덕적 해이를 철저하게 규탄한다.
하지만 오늘 만큼은 면죄부를 받아도 되지 않을까?
와아아아아아아아-!
전세계적으로 이미 난리가 났다.
세계 최고의 선수!
몸값이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을 거라는 건 불보듯 뻔하다.
롤드컵의 우승은 안 그래도 드높은 레전설의 위상에 날개를 달았다.
─???: 레전설 선수 팬입니다! 싸인 한 장 부탁드릴게요
제일 아래에 해주세요
└계약서였어……?
└은근슬쩍 영입ㅋㅋㅋㅋㅋㅋㅋㅋ
└제일 아래래 시발ㅋㅋㅋ
└설명충이 살렸다!
커뮤니티가 폭발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제는 더 깔 것도 없다!
매국노?
응, 한국 우승시켰어.
더할 나위 없는 커리어 하이를 구가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 기세가 쭉 이어질 전망이다.
그래서 더욱 아쉬운 사람도 있겠지만.
─솔직히 레전설을 왜 뽑냐?ㅋㅋ
왜 뽑았냐고 시발련들아!
└박다균 감독 화났누ㅋㅋ
└레전설만 아니었어도!
└SKY T1의 무패 행진이 드디어……
롤드컵 결승전의 결과.
아쉬운 사람도 있을 수밖에 없다.
모두가 만족하는 결말은 존재할 수가 없다.
하지만 새로운 슈퍼 스타의 탄생.
한국의 위상을 새로이 드높인 자리.
뜻 깊은 순간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레전설은 해외 오퍼 미치도록 들어오겠다
레전설이 들어간 팀=롤드컵 우승
그렇게 봐도 되는 수준 아님?
└맞지ㅋㅋㅋ
└국내에서도 영입 1순위 될 걸?
└이미지가 좀 걸렸는데 이제는 아니니까
└그 쓰레기ㅋㅋㅋㅋㅋㅋㅋㅋ
프로게이머는 이미지가 중요하다.
연봉과도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는 부분이다.
단순히 실력과 정비례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애초에 기업들이 스포츠 팀을 만드는 이유부터가 홍보다.
유명한 선수가 들어오면 홍보 효과에 직결된다.
그런데 그 선수가 이미지가 안 좋다면?
실력과 이미지.
이 두 가지가 연봉의 기본 조건이다.
레전설은 두 마리의 토끼를 누구보다 확실하게 잡았다.
─레전설 말투는 띠꺼웠지만 게임은 진지했음.Gif
마지막 세트 한타 대승하고 미드 밀 때
알파카 상대 우물로 달려가서 죽고, 팀원들 일어나서 환호하는데
레전설 혼자 마지막까지 넥서스 점사해서 부숴지는 거 확인한 다음 일어났음
└헐, 방송 딜레이 때문인 줄 알았는데
└그 신수 우물ㅋㅋㅋㅋ
└천재지변 일어날까 봐 꼼꼼한 거 보소
└당연하게 캐리하는 새끼……, 그래서 더 멋진 새끼!
실력은 이전부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애매했던 이미지도 우승을 계기로 개선된다.
책임감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며 팬들에게 찬사를 낳고 있다.
주가가 치솟지 않고 배기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이번 2015년의 롤드컵.
주인공은, 최대의 특혜자가 레전설이라는 건 자명하다.
순풍에 돛 단 듯 술술 풀린다.
분명 그래야만 했다.
* * *
난리가 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LCK, 롤챔스만 해도 그러할지언데 롤드컵의 우승이다.
「준우승의 징크스를 깨다? KTX 롤러코스터 대망의 롤드컵 우승!」
「KTX 롤러코스터, SKY T1 잡고 우승…… LCK 섬머의 설욕 성공!」
「한국 E-스포츠 전세계를 매료시키다! 전세계 1억명 동시 시청.」
인터넷 기사는 물론 공중파에도 소개되며 이슈가 되고 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KTX 롤러코스터라는 팀으로만 한정해도 그러하다.
'그런데 나는 더하지.'
지난 2014년에 이어 올해도다.
팀을 우승시킨 주역으로 명성이 퍼진다.
대충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기사들이 주르륵 한두 페이지가 아닐 정도다.
「어제 적이 오늘의 아군! 레전설, 롤드컵 한국 우승에 이바지하다.」
「레전설이 들어간 팀이 우승한다? 전세계 게임단 레전설 잡기 열풍!」
「LoL 1세대 '코돈빈' 감격적인 롤드컵 첫 우승! 레전설이 이뤄냈다.」
실제로 벌써부터 성화다.
KTX를 통해 공식적인 제의가 오는 것은 물론.
내 개인적으로도 물밑 접촉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한두세네 곳이 아니다.
당연하게도 해서는 안되는 일이기는 하다.
『계약 기간이 남아있는 선수에게 게임단이 직접 접촉하여 설득하는 것을 금한다.』
일명 템퍼링이라는 불리는 행위는 E-스포츠 판에서도 금기시되고 있다.
하지만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이 정도는 해도 되지~ 뭐, 이런 느낌으로.
'원래 세상 일이라는 게 다 그래.'
안되는 일일수록 얻는 것도, 기회도 많은 법이다.
서로 나쁜 놈이 되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 정도는 나눈다.
굉장히 흡족한 조건들이 여러가지 나왔는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안녕하세요. The 킹갓 엠퍼러 레전설입니다."
한국에 귀국했다.
돌아오자마자 여러가지 할 일이 많다.
하지만 나 레전설, 초심 잃지 않는 남자다.
오랜만에 개인 방송을 켰다.
켠지 몇 분이나 됐다고 수천 명의 시청자가 몰려온다.
이 기세면 10만 명은 일단 가뿐하게 돌파할 듯 보인다.
'킹갓 엠퍼러인데 이 정도는 기본 아니겠어?'
클끼리 해설이 다른 건 몰라도 밈 같은 건 잘 만든다.
나를 표현하는 수식어로 부족함이 없지 않아 있다.
그래도 그럭저럭 쓸 만하다는 건 인정한다.
아무튼 방송을 켠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임도 보고 뽕도 따고, 다 먹고 살려고 하는 거지.
내심 기대하고 있던 채팅창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해명해!
-레전설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와, 믿었는데……
-해명 못하죠? 역겹죠?
대체 뭘?
내 실력의 비밀을?
유유백서도 아니고 격세 유전을 한 건 당연히 아닐 거 아니야.
"뭐? 내가 리야랑 사귄다고?"
우승 이후 첫 번째 개인 방송.
자연스레 수금 타이밍을 잡을 작정이었다.
갑작스러운 사태가 터지며 수금은 커녕 해명 방송이 되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추천과 코멘트& 원고료 후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언럭키 테이커라는 표현은 원래 1화에 추가하려고 했는데
반반무 수정 제한 때문에 못 넣고 있어요
수정 제한 풀리면 넣겠습니다
#새벽 3시 21분 뒷부분 수정 맥락은 비슷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