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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 -->
"이렇게 될 것도 말을 했지? 어떻게 할래?"
SKY T1의 박다균 감독.
뭐 하려고 하지 마!
대중에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져있다.
하지만 결코 이유 없이 하는 말이 아니다.
밴픽과 선수의 기량을 고려하고 하는 말이다.
혹시 모를 불필요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
'지금의 왕린이라면 뭘 하려고 해도 돼.'
모든 선수에게 다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현재 왕린의 기량은 최고조.
오히려 주도적으로 게임을 이끌기 바란다.
문제는 상대가 레전설이다.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지금의 구도라면 차라리 초중반을 무난히 넘기는 게 낫다.
"신작인 콜드 브루 라떼입니다. 작품명은 타천사의 눈물 정도로 할까요."
"오오……!"
한 잔의 커피가 불안을 종식시킨다.
언제 준비했는지 텀블러를 건네온다.
받아들은 박다균은 감격을 금할 수 없었다.
1초에 한방울씩 떨어뜨려 8~12시간씩 걸쳐 우려낸다.
콜드 브루가 ‘천사의 눈물’이라는 별칭을 가진 이유다.
흑요석처럼 짙은 농밀함을 뿜어야 할 텐데 어째선지 탁하다.
바로 우유를 품었기 때문이다.
왕린이 아니면 흉내도 내지 못할 수준 높은 라테아트다.
불과 한 경기 전만 해도 라테 따위 거들떠도 안 보던 그지만 이제는 다르다.
'탁해진 천사의 눈물…… 그래서 타천사! 이만큼 이 커피에 어울리는 이름이 있을까?'
그 이름에 전혀 손색이 없는 맛을 품고 있다.
감격의 눈물까지 촉촉히 더해지며 풍미를 더한다.
그렇게 박다균 감독이 커피 마시는 사이 경기는 이미 시작했다.
"뱅기야, 언제 오냐."
"늑대 먹고 있어요."
"그거 먹고 탑 와."
현재 SKY T1의 운영은 안정감 중시다.
안전하게 반반만 가도 상대가 던져준다.
그렇게 되면 절반이 넘는 확률로 이긴다.
일련의 전략은 보란 듯이 먹혀 들었다.
첫 번째 세트가 바로 그 절반.
두 번째 세트가 절반의 이상.
상대가 던져준 덕분에 승리를 챙겼다.
SKY로선 전략을 고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주도적인 플레이를 안 하는 건 아니다.
'저 양반 또 저러네.'
정글러인 뱅기로서는 답답할 수도 있다.
아니, 나도 내 동선이 있는데 마음대로 강제한다.
그 이유에 대해 도착하면 알게 된다.
─아군이 KTX 코돈빈(구리가스)를 지목!
적의 갱킹 도착 타이밍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자칫 배치기 점멸을 당해 위험할 수 있는 타이밍.
왕린의 적절한 오더와 뱅기의 빠른 합류로 위기를 흘린다.
이것이야 말로 왕린의 주특기다.
정글이 아닌, 탑의 시점에서 정글러를 부린다.
그렇게 SKY T1은 탑이 보다 성장할 수 있도록 투자한다.
"뱅기야, 언제 오냐."
"저 유령 먹고 있……."
"그거 먹고 탑 와."
얼핏 과도해 보이는 감도 있다.
정글러가 노예도 아니고, 여친도 아니고 왜 이렇게 부르냐?
따듯한 속마음을 모르기에 할 수 있는 소리다.
정글러 입장에서도 실업자인 것보단 낫다.
라이너가 자신 있는 오더해주면 일이 편해진다.
하물며 그 각을 더욱 세심하게 넓힐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선수다.
와아아아아-!
관중석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알아챈 팬들로서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아니, 와드를 박았는데 대체 왜 안 보여?
해설진들이 오도방정을 떨 만도 하다.
〈아니, 이거 설마 시야 체크가 안된 건가요?〉
〈안 보이는 거 같죠? 구리가스 움직임이 이건 그냥 몰라요!〉
-흑염룡 봉인 해제
-맵과 하나가 되신……
-협곡 그 자체ㄷㄷ
SKY이 자꾸 탑을 노린다.
KTX도 그걸 알기 때문에 탑을 봐준다.
구리가스가 와드를 박아주고 정글링을 하러 갔다.
그 와드에 당연히 비쳐야 한다.
그런데 바로 옆에 있는 뱅기가 보이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맵과 동화되어 상대의 눈을 속인다.
콰락-!
그러한 현장의 반응을 당연히 알 리가 없다.
와드가 박혀있으니 압박을 할 타이밍이다.
레전설의 다리우트가 도끼를 휘두른다.
도끼날이 스치며 끠오라의 체력이 뭉텅 깎인다.
본래라면 기분이 좋아야 할 딜교환.
뒷골이 쎄하다는 걸 감각적으로 알아챘다.
〈알아챘어요! 하지만 늦었습니다!〉
하지만 늦었다.
이미 지척까지 다가왔다.
김은준 해설이 다급하게 외친다.
왕린의 끠오라가 다리우트를 찌른다.
그 직전에 점멸을 사용.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만약 맞았다면 계속해서 따라온다.
문제는 한 명 남았다는 사실이다.
뱅기의 거미여왕이 평타로 툭툭 건든다.
휘익!
각을 좁히고 쏘는 실뭉치.
그 하나에 다리우트의 목숨줄이 걸렸다.
관중석 이곳저곳에서 다시 탄성이 터져 나온다.
〈뱅기 선수도 정말 침착하게 각 좁히고 스턴 노렸는데…… 피했어요. 구사일생했습니다.〉
맞았다면 볼 것도 없이 죽음이다.
코앞까지 다가온 죽음에서 살아나갔다.
레전설이 침착의 침착을 삼키며 실뭉치를 피해냈다.
-와, 저걸 피하네
-맞았으면 100% 죽었음
-노린 놈이나, 피한 놈이나 ㅁㅊㄷㅁㅊㅇ
뱅기의 갱각은 날카로움을 넘어섰다.
상대가 철통 같은 대비에서 없는 틈을 만들어냈다.
그런 완벽한 갱각에서 살아 돌아간 레전설도 훌륭하다.
팬들로서는 가히 다행인 일이지만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총평을 하자면 결국 SKY가 이득을 봤어요. 구리가스도 탑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대각선의 법칙이 시행된 것도 아닙니다.〉
〈맞습니다. 그 이득이 결코 작다고도 볼 수 없겠고요.〉
김은준 해설이 짚고 넘어가는 이유가 있다.
다리우트 대 끠오라의 구도에서 점멸의 의미는 각별하다.
이미 커뮤니티에는 설레발을 치는 글들이 다수 올라왔다.
─(성지 예약) 왕린이 레전설 솔킬 딴다
끠오라가 다리우트 카운터잖아?
안 그래도 잘 파고드는데 점멸 있으면 다리Q를 확정으로 피할 수 있음
└안 싸워주면?
글쓴이-지금 탑 봐봐. 안 싸워주게 생겼나
└레전설이 무리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뱅기가 탑 대놓고 밀어주는 이유가 있지!
SKY T1의 조합 특색은 안정감이다.
성장을 하여 상대와의 반반 구도를 유도한다.
하지만 왕린만은 뱅기의 보조를 받아 성장하고 있다.
사이드 라인 주도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다.
끠오라가 다리우트를 이기게 만든다.
그 순간은 의외로 머지 않았을지 모른다.
콰락-!
레전설의 기세가 조금도 죽지 않았다.
오히려 끠오라가 들어와주길 기다린다.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며 라인을 푸쉬한다.
'웬만한 실력자도 쫄아서 들어갈 엄두를 못 내겠지.'
그 패기에 전혀 압도되지 않는다는 듯 왕린은 미소짓는다.
자신은 다르다.
변수 또한 착실하게 계산하고 있다.
만에 하나 상대가 제법 버텨도 점멸 차이.
끌기와 반격의 눈치 싸움 따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사방에서 궁극기만 터트려도 킬각이 확실하게 나온다.
샤악!
각이 보이자마자 망설임 없이 뛰어든다.
왕린의 끠오라가 궁극기를 걸었다.
도끼질을 피해 점멸로 파고든다.
또르륵……!
왕린의 머릿속에서 고독했던 수련이 떠오른다.
커피물조절장인은 노력 없이 이룬 경지가 아니다.
완벽한 완급 조절을 위해 수도 없이 액체를 따르고, 따르고, 또 따랐다.
단 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물아일체.
물과 완벽하게 일체가 되어 어떻게 퍼질지 예측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섬세하기 그지없는 라테아트를 불과 1주일만에 대성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그 모든 수련을 바로 지금 쏟아 붓는다.
물 흐르는 듯한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약점 세 곳을 터트렸다.
상대의 반항과 무빙이 거칠긴 하다.
하지만 이미 남은 약점은 옆구리 하나 뿐이다.
쿨타임이 돌아오는 찌르기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려던 그때.
'어?'
찌르기의 쿨타임이 돌지 않는다.
왕린이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도끼날이 매섭게 찍힌다.
* * *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왕린과 과거에 이러저러한 악연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내가 왕린을 특별히 저평가하진 않는다.
'개노답 삼형제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욕을 먹는 것도 욕을 먹을 가치가 있어야 먹는 거다.
나한테 욕을 먹어봤다면 어디 가서 자랑스러워 해도 된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욕을 많이 먹은 세 사람이라면 더더욱.
한 명, 한 명이 나름 인지도가 있다.
첫째인 왕린은 당시부터 상당히 유명했다.
특유의 단세포가 발목을 잡으며 밑바닥이 빤히 보였을 뿐이다.
'그때도 실력 하나는 괜찮았어.'
그 실력의 근간에 대해 얼핏 들었다.
커피 맛에 비례한다는 터무니 없는 소리 말이다.
깊게 생각해본 적도 없는 루머였지만 기회가 생겼다.
채 몇 달 지나지도 않은 일이다.
어느 날 달래가 호들갑을 떨더라?
왜 그러나 했는데 커피 구입에 성공했기 때문이란다.
'와인도 아니고 커피 구입한 게 뭐 대수라고.'
집에 바리스타를 고용해도 될 만큼 버는 주제에.
그런데 그 커피가 다름 아닌 왕린의 것이었다.
솔직하게 약간 질투심도 일었다.
커피가 맛이 있어봤자 얼마나 맛있겠어?
나랑 왕린의 사이가 변변찮은 거 알면서.
그렇기에 정색하고 음미했다.
'새로운 지평선을 들여다 본 기분이었지.'
조금이라도 흠이 있다면 가차 없이 까내리자.
일어났던 생각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기존의 가치관을 뒤흔드는 콜드 브루였다.
물론 내가 커피의 세계를 잘 알지는 않는다.
맛본 커피라고 해봤자 자판기 커피, 편의점 커피, 체인점 커피 세 종류다.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커피에 돈을 쏟아붓는 괴짜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왕린의 커피라면 투자할 만도 해.'
전세계 인구가 70억이다.
극소수만 있다 쳐도 엄청 많다.
어째서 왕린이 커피물조절장인인지, 애호가들에게 극찬을 받는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시에 왕린에 대한 이미지도 개선되었다.
이만한 실력이라면 고집을 가질 만도 하다.
무뚝뚝하고 고집불통이지만 실력 있는 장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콰락-!
그런데 롤은 커피 타는 게임이 아니다.
구태여 설명하기도 뭣한 부분이다.
커피 타는 거랑 대체 뭔 상관이야?
'무슨 바리스타 타이쿤도 아니고.'
2000년대에 폴더폰 게임으로 나왔으면 유행했을 것 같은 타이틀이다.
약간 이세계물 느낌 섞으면 능력치도 살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현실에서는 커피 실력과 게임 실력은 상관이 없다.
각을 내주자 아니나 다를까 들어온다.
점멸로 무식하게 파고들어 약점을 터트린다.
노력은 가상하나 들어온 시점에서 결말이 정해져 있다.
''이걸 대체 왜 힘들어하는지 모르겠는데.'
세간에서는 끠오라가 다리우트의 카운터다.
그런 이야기가 오간다고 한다.
전 세트만 해도 킹인이 속수무책 당했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다리우트로 끠오라를 상대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후배에게 상대법을 전수해줄 겸 각을 내줬다.
우지끈!
찌를 때 적절히 잘 당기면 된다.
찌르기가 취소되며 쿨타임이 줄어들지 않는다.
점멸도, 찌르기도 빠진 끠오라는 영원히 약점을 터트릴 수 없다.
「진정한 힘을 목도하라!」
그리고 그 사이 다리우트의 패시브가 활성화된다.
공격력이 심각할 정도로 많이 증가한다.
상대는 피도 줄줄 새며 저절로 체력이 빠진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제 딴에는 궁극기를 씹어보려고 눈치 싸움을 한다.
하지만 이미 죽어있는 상대다.
크로커다일이 호수를 마신 알라바스타의 호위단과 싸우지 않았듯 적당히 농락하다 잡는다.
'그렇게 따지면 내가 악당이 되나?'
아무튼 이토록 간단한 방법이 있다.
왕린이 미친 듯이 춤을 추다 알아서 자멸한다.
커피를 굉장히 잘 타는 건 인정하지만 근본적인 실력 차는 여전하다.
'옛날에 비하면 노련해진 것도 맞고, 섬세한 컨트롤도 돋보이기는 했어.'
정글 콜도 잘 하고, 점멸로 킬각도 날카롭게 노려왔다.
그런데 그거랑 커피가 대체 뭔 상관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커피를 잘 타면 전업을 하던가.
결정적으로 섬세한 컨트롤은 내 주특기다.
나는 살면서 인스턴트 커피 말고 타본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혹시 했다.
나도 사실 커피 엄청 잘 타는 거 아니야?
은퇴하고 바리스타 하면 개꿀일 수 있겠다.
설마 하는 마음에 시도해봤는데 달래가 뱉었다.
'……떠올려보니 욕 나오네.'
내가 욕설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 달래에 한해서는 가끔 나온다.
사람이 정성껏 타준 걸 어떻게 뱉을 수가 있어.
애초에 본인이 욕 듣는 걸 좋아하기도 한다.
물론 침대 한정이지만 아무튼 좋아하는 건 맞다.
커피 실력과 게임 실력의 상관 관계를 여기서 무너뜨린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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