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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 -->
부진은 있어도 몰락은 없다.
SKY T1의 명장 박다균의 명언이다.
지난 섬머 시즌 우승을 하고 인터뷰를 쏟아냈다.
2014년 솔직하게 부진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SKY T1은 SKY T1이다.
한국 최고, 아니 세계 최고로 나아간다.
롤드컵을 코앞에 두고 포부를 밝혔다.
굉장히 멋진 말이 아닐 수 없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놀림감이 돼서 문제지.
─부진은 있어도 부인은 없다……
꼬치 곧 30대 중반인데 왜 연애 소식이 없냐?
└뭔가 바뀌었는데?
└몰락이 아니고 부인ㅋㅋㅋ
└일과 결혼했다는 게 세간의 정설
글쓴이-윗댓글 꼬치형임? 변명 좀 추한데
물론 팬덤 사이에서 나오는 말이다.
우리 감독님 능력 있고, 잘생겼는데 왜 여자가 없을까?
SKY T1의 미드라이너 테이커는 이러한 대답을 한 적이 있다.
〈그건 굉장히 어려운 질문인데……, 아직은 전망을 알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전망도 알기 힘드리 만큼 어두컴컴하다.
테이커조차 그 각이 보이지 않는다.
연애 빼고 완벽한 남자.
박다균이 더욱 살갑게 다가올 만하다.
롤판팬들은 영락없이 그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커서인.
커피 애호가들에게는 이미 정답이 나왔다.
어째서 그가 결혼 따위 거들떠보지도 않는지.
와아아아아아-!
거대한 직육면체의 사방향 모니터를 독차지하고 있다.
단 한 명만이 우뚝 서있다.
SKY T1의 탑라이너 왕린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완벽한 물조절…… 아니, 칼조절이었어 왕린!'
맹렬하게 몰아친다.
어느 때는 부드럽게 꺾는다.
왕린이 순식간에 다리우트를 토막냈다.
저 조절 솜씨로 커피를 만든다면?
꿀꺽!
침이 넘어간다.
대답은 간단하다.
왕린 이상으로 완벽한 커피를 타주는 여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커피 애호가의 자존심을 걸고 박다균에게 타협은 없다.
〈왕린 오늘 폼이 미쳤는데요?!〉
〈괴물! 나라는 괴물!〉
-괴라는 나물!
-Nara is monster
-괴물 나와줘야지ㅋㅋ
그 딱히 궁금하지 않은 타협과 상관 없이 경기는 진행되고 있다.
끠오라가 또다시 다리우트를 솔킬 낸다.
사이드 라인의 균형이 무너진다.
이렇게 되면 SKY T1은 경기 풀이가 간단하다.
본대는 거창하게 할 없이 안정감만 추구해도 된다.
왕린이 스플릿만 돌아도 승기가 서서히 넘어오는 구도다.
〈이렇게 되면 결국 KTX 롤러코스터는 이지선다로 가는 거에요.〉
클끼리 해설이 구도를 설명한다.
KTX 롤러코스터가 왕린을 막는 방법.
하나는 몇 명이 내려가서 왕린을 잡는 것이다.
심플하지만 그만큼 단점도 명백하다.
왕린이 시간을 끄는 사이 바론이 먹힐 수 있다.
혹은 이니시가 걸려서 본대가 전멸할지 모른다.
〈바론 쳤어요! 쳤습니다!〉
〈KTX 롤러코스터 승부수 띄우나요?!〉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은 이니시를 거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끠오라는 어쩔 수 없이 올라와야 한다.
하지만 SKY T1은 굳히기 운영 잘하기로 첫 손가락에 꼽히는 팀이다.
이는 박다균 감독이 내린 기본적인 운영 지침이기도 하다.
결국 KTX 롤러코스터는 다른 방식으로 한타를 유도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바론을 치는 것,
-개불안한데
-아아, 미래가 보여
-예언자, 선지자 속출ㅋㅋㅋㅋ
-강타의 신!
KTX 롤러코스터라고 어찌 이를 모를까.
울며 겨자 먹기다.
킹인의 다리우트가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다.
SKY T1은 세 마리의 토끼를 노린다.
왕린의 끠오라는 그대로 사이드를 푸쉬.
본대는 상대가 바론을 잡는 순간을 노린다.
바론 스틸과 더불어 한타 대승까지 가져오려는 심산이다.
콰광쾅!
조금, 아주 조금이다.
혹시 모를 상대의 바론 버스트.
제아무리 코돈빈이라고 100%는 아니다.
발걸음이 조금은 조급했다.
그 잠깐의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레전설의 귤플랭크가 나무통을 폭발시켰다.
〈대박! 나무통 대박! 세 명 터트렸어요!〉
〈아니, 잠깐 으아악-!!〉
리메이크 직후의 귤플랭크는 나무통을 최대 다섯 개까지 저장 가능했다.
한 번 터트려도 세 발이 남는다.
세 번 연속으로 간다.
콰광쾅쾅-!
앞점멸로 뛰어들어 평타로 터트렸다.
세 발의 화약통이 강물을 피바다로 만든다.
한 발만 맞아도 허리가 휘청이는 광역딜이 연속으로 들어갔다.
─트리플 킬!
KTX 레전설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상대가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위에서 쏟아진다.
엄호 포격이 또 한 차례의 광역딜을 선사한다.
한타를 혼자 한다는 게 무엇인지 정녕 보여주었다.
〈아~~~~무것도 못했어요!! 아자르 잘 컸고, 테러스티나 잘 컸고 다 잘 컸는데 손도 못 쓰고 그냥 녹아버렸습니다아!〉
김은준 해설의 발음이 새어버릴 정도로 흥분할 만도 하다.
상상으로조차 해보지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한타를 지배해버리는 레전설.
〈폭군! 게임 밸런스를 혼자 무너뜨립니다! The 킹갓엠퍼러 레전설!〉
〈레전설해버렸다고 단순하게 포장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게임 혼자 합니다 혼자!〉
-레친 새끼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시바아아알!
-킹갓엠퍼러 입에 쫙쫙 붙네ㅋㅋㅋㅋㅋ
-아니, 뭐야 이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극도로 불리했다.
사이드 라인만 밀리는 게 아니다.
성장 차이까지 나는 상황에서 바론을 쳤다.
안 그래도 불리한데 바론을 무난하게 잡을 수 있을 리 없다.
치는 과정에서 체력도 깎이고, 진영도 좁혀진다.
한타를 아무리 잘해도 승산이 희박하다.
그렇다면 혼자서 한타를 캐리해버린다.
슈퍼 플레이라는 개념의 상위 호환을 선보인다.
해설진들이 침이 마르도록 격찬을 쏟아내는 것도 당연하다.
〈심지어 두 번째 화약통이 치명타로 들어갔어요. 그와중에 테러스티나가 점멸 반응을 했지만 범위가 너무 넓어서 휘말렸죠.〉
〈이러면 공짜 바론. 공짜 바론이긴 한데…….〉
상황이 너무 들떠있다.
그러다 보니 잠시 잊었다.
KTX 롤러코스터의 정글이 누구인지.
그래도 설마설마 한다.
지금 이 상황에서 바론을 뺏긴다고?
이번에 한 번은 먹어줄 만하지 않아?
─레드팀이 바론 백작을 처치했습니다!
설마가 결국 사람을 잡는다.
홀로 살아남았던 뱅기의 랙싸이.
스틸 시도 후 장렬하게 전사했지만 남는 장사다.
〈뱅 The Jungle God 기…… SKY T1이 위급한 상황에서 결국 해내네요.〉
〈여기서 바론을 뺏기는 건 진짜 쫌-!!〉
-강팀준 개빡
-나도 빡친다 시발
-아암아ㅣ;만이;ㅁ나ㅓㅣ;만ㅇ;ㅏㅁ니;아ㅓㅁㄴ;
-코돈빈 개새끼야아아아아!
두 해설의 성향이 갈리는 부분이다.
클끼리와 달리 김은준은 진심으로 노한다.
바론을 먹었으면 전세가 180도 역전되는 상황이었다.
반대로 먹지 못하자 분위가 싸해져.
사이드 라인은 속수무책 뚫리고 있다.
왕린의 끠오라가 킹인을 사정 없이 찌른다.
─SKY 왕린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바론 버프에 힘입어 솔킬을 냈다.
포탑 다이브를 가까스로 성공시켰다.
힐 장판으로 다시 체력을 원상복귀.
─블루팀의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블루팀의 억제탑이 파괴되었습니다!
한 끗 차이였다.
죽고 아니고를 떠나서 억제탑이라도 막았다면.
〈강화 귀환이 아니라서 아…….〉
김은준 해설의 한숨과 함께 경기의 향방이 또다시 묘해진다.
* * *
1분이 지났다.
시계를 보니 그러하다.
"괘, 괜찮니?"
잠깐 감고 있던 눈을 떠보니 코치님이 보인다.
대답 대신 고개를 살며시 끄덕인다.
나도 모르게 말문이 잠깐 막혔다.
'생각보다 멘탈 데미지가 있나 보네.'
황신의 저주.
알고 있는 마당이다.
이런 상황도 나올 수 있다고 염두에 두었다.
바론 뺏기는 일이 어디 하루이틀도 아니고.
반대로 말하면 상대의 바론 버프를 뺀 거다.
그런 긍정적인 생각도 할 수 있지 않은가?
'근데 상황이 자꾸 최악으로 맞물려.'
소위 말하는 나비 효과.
바론 버프를 등에 업은 끠오라가 다이브를 성공했다.
한 끗 차이로 억제탑을 깨고 살아 돌아갔다.
그래도 귤플랭크다.
코어템이 갖춰질수록 괴물처럼 세진다.
오늘 결승전을 위해 일부러 대회에서 꺼내지 않았다.
상대가 방심해서 한 번 살릴 수도 있으니까.
기회가 왔고, 칼같이 잡아 들었다.
그 역량을 백분 살리기도 했는데.
'아니, 한타를 혼자 쓸어버렸는데 지는 게 말이…….'
말이 안되는 게 맞다.
지는 게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지경이다.
황신의 저주가 상상을 뛰어넘으리 만큼 강력하다.
바론 스틸은 오히려 둘째, 셋째다.
킹인도 제정신이 아니고, 알파카도 끊기는 일이 잦다.
팀이 전반적으로 컨디션 난조를 보이는 총체적 난국이다.
"나는 왜 강타를 쓰지 못하는 걸까……."
"형 잘못이 아니에요. 제가 라인전에서 밀린 게 제일 커요."
두 가해자가 서로를 위로한다.
경기 시작 전 사전 인터뷰 방송이 떠오른다.
SKY T1에게 최악의 결승전을 만들어주고 싶다!
'그 대상이 조금 달라진 거 같지?'
SKY T1이 아니라 나한테 최악의 결승전을 만들어주고 있다.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를 만큼 멘탈이 말이 아니다.
첫 번째 세트에 이어 두 번째 세트까지 패배.
하지만 한숨 돌릴 시간도 없다.
당장 다가올 다음 세트를 준비해야 한다.
어떻게든 이겨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텀이 있다.
5전 3선승제의 세 번째 세트.
휴식 시간이 다소 길게 배정된다.
그렇다고 한들 턱없이 짧지만 없는 것보다야 낫다.
그리고 이미 답은 나와있다.
결국 문제는 다름이 아니다.
'탑의 균열이 너무 커.'
킹인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상대가 너무 잘해서?
그것도 분명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가장 첫손에 꼽히는 이유는 긴장이다.
지난 섬머 결승 때도 킹인이 왕린에게 밀리는 감은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만큼 현장의 압박감이 대단하다.
신인 치고 잘한다, 신인 같지가 않다.
결국은 신인이라는 게 느껴지긴 한다는 소리다.
프로 무대는 처음 치고 잘한다고 봐주는 경우가 없다.
"리야야."
"엉덩이…… 때리게요?"
부들부들! 부들부들!
무언가 징조를 느낀 듯하다.
포식자를 앞에 둔 초식 동물의 눈동자를 하고 있다.
'물론 때리고 싶긴 해.'
언제 어느 때든 기회만 생기면 찰지게 두들기고 싶다.
사정을 모르는 이가 듣는다면 변태냐?
얄궂은 오해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도 한 번 두들겨 보면 얼씨구나~!
민족의 얼이 되살아난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덩~기덕 쿵더러러러~ 자진모리 장단을 연주한다.
"히잉……."
그만 참지 못했다.
나 자신의 이성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잠깐 화장실 가는 길에 한 번만 두들겼다.
'자진모리 장단은 자제해야지.'
상상으로만 했다 상상으로만.
사람이 상상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착잡한 심정으로 볼일을 보고 돌아오자 다른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리야는?"
"먼저 갔어."
개뻔뻔한 년.
순간 욕 나올 뻔했다.
물론 딱히 따지면 잘못은 없는데 지고 있으니까.
'인생……'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달래가 눈앞에 보인다.
말이 일상복이지, 일반인 기준으로는 인스타에 한 세 장쯤 올리고 1분 단위로 체크할 만한 인생샷이다.
근데 지금 중요한 게 그게 아니라.
"화났어?"
"지금 고민 중이야."
화를 내야 될지.
사실 고민하는 것도 웃긴 일이다.
애초에 이겼으면 화를 낼 일 자체가 없었을 테다.
'달래가 딱히 잘못한 것도 아니고.'
여러모로 일이 꼬였을 뿐이다.
여기서 달래한테 화를 내는 건 추하다.
자기가 못 이기니까 어떻게든 합리화하는 짓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쓸래?"
"뭘?"
달래가 자신의 입을 가리킨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다.
다행히 휴식 시간이 길게 배정돼있고, 나는 바람을 오래 쐬러 갔다 와도 괜찮은 입장이다.
일단 한 발 빼고 생각하자.'
원래 머리가 아플 때는, 고민이 될 때는 한 발 빼는 게 최고다.
복잡하게 이러저러 따지 말고 당장의 일을 급선무한다.
달래와 잠시 화장실을 들어갔다 나왔다.
현자가 찾아오며 머리가 개운해진다.
돌파구는 이미 생각해두고 있었다.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해서 문제지.
'관건은 탑이야.'
탑이다.
탑의 기세를 꺾어 놓아야 한다.
최근 메타에서 주도권을 쥔 탑라이너의 캐리력은 정글러 이상이다.
강타의 신이고, 황신의 가호고 이전에 탑 차이가 가장 대조적이다.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은 하나.
그 방법을 드디어 실행할 수 있어졌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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