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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 -->
커피의 맛에는 한계가 있다.
어느 날 왕린이 떠올린 생각이다.
'더 좋은 원두, 더 좋은 장비, 더 세밀한 공법을 사용하면 가능은 하겠지만…….'
아주 조금의 미세한 차이다.
주위에서 그 차이를 느낄 만한 사람은 박다균 정도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맛있는 커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결정적으로 그렇게 커피의 풍미를 더 끌어올려도 의미가 없다.
그것은 재료와 수고가 더 많이 들어간 것일 뿐이다.
커피물조절장인으로서의 노하우가 아니다.
왕린은 오랜 시간 고민에 빠졌다.
자신의 커피 인생은 여기까지인가.
나에게 이토록 매정한 한계가 왔단 말인가?
'그렇지 않아.'
대답을 내렸을 때 그의 손은 따르고 있었다.
주전자의 입구 부분을 통해 커피 줄기가 쏟아진다.
그 미묘한 조절 또한 어떻게 보면 커피 물 조절의 한 갈래다.
커피물조절장인인 자신의 전문 분야다.
이 분야를 극도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
왕린의 머릿속에 새하얀 거품이 맴돌았다.
"그랬군."
박다균은 보온병의 뚜껑을 열어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늘상 애지중지 들고 다니던 보온병이다.
조금이라도 흔들리지 않기 어찌나 신경 쓴지 모른다.
출렁이며 보온병 벽에 부딪히다 보면 거품이 인다.
커피의 맛이 상하게 된다.
보통 사람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자신은 구별할 수 있기에.
"연한 우유 거품이 커피가 찰랑거리지 않도록 잡아주고 있어."
"별 거 아닙니다."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해온다.
박다균으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다.
마시는 사람에 대한 배려.
과거의 왕린에게는 찾아보기 힘든 두 글자다.
무엇이 그에게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인지.
그보다 더 우선시되는 건 다름이 아니다.
커피 애호가로서의 자존심이 흔들린다.
'분명 미미한 차이야.'
연하디 연한 우유 거품 뭉치.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여전히 토끼 귀와 스마일을 간직하고 있다.
커피물조절장인으로서 바리스타의 정점에 오른 왕린에게는 구태여 칭찬하기도 뭣한 테크닉이다.
단순히 외형이 귀여울 뿐만 아니라 섬세한 조절로 우유 거품이 최대한 늦게 녹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다 쳐도 우유 거품은 우유 거품이다.
커피에 조금은 녹아들었을 게 분명하다.
'따라 마시다 보니 알아채지 못했어.'
그렇게 변명할 수도 있는 거리다.
조금씩 마시는 게 아니라 기울여서 따른다.
윗층이 우유 거품이 거의 섞여 들지 않게 된다.
아니다.
그마저도 눈치챌 자신이 있다.
커피의 블라인드 테스트라면 이골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
"언제부터지?"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시치미 떼지마……!"
박다균은 분노를 삭힐 수 없었다.
커피 애호가로서의 자존심이 짓밟힌다.
왕린은 자신의 커피에 미량의 우유를 섞었다.
처음에는 세숫대야에 한 방울 떨어뜨리는 감각이었을 것이다.
그 양을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올렸다.
괘씸한 일이다.
자신이 라테를 싫어하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
"그래서입니다."
이심전심.
구태여 말로 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왕린은 박다균이라는 커피 애호가의 둘도 없는 친구다.
하지만 그는 오직 순수한 커피만을 즐긴다.
라테는 사도라며 한사코 배척한다.
친구로서 안타까운 일이었다.
「커피계의 유서인? SKY T1의 박다균 감독 막말 논란!」
논란의 친일 극우만화가 유서인은 말도 안되는 억지로 많은 이들의 비판을 산다.
커서인은 커피와 유서인의 합성어다.
자매품으로는 맛서인이 있다.
아무튼 박다균은 커피 애호가들 사이에서 강도 높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도 그럴게 했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범상치 않아.
유명한 발언으로는 대략 이 정도가 존재한다.
〈한국의 커피는 맛이 없다.〉
〈라테는 좋은 조리법이 아니다.〉
〈혹시 맛있는 라테가 있을까 찾아봤지만 다 맛이 없었다.〉
〈달게 먹는 건 미개하다.〉
〈라테는 사회적으로 맛있다고 세뇌된 음식.〉
〈커피 본연의 맛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달콤하게 흐리는 눈속임이다.〉
물론 첫 번째 발언에 대해서는 나중에 정정했다.
아니었다.
커피물조절장인만큼은 논외의 경지다.
문제는 이 이후로도 계속 논란을 낳고 있다.
심지어 어느 커피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당시 한 출연자가 라테에 대해 극찬하는 발언을 했다.
〈어느 지역의 카페에 갔는데 그 라테가 정말 일품이었어요.〉
그냥 상식적으로 봐도 전혀 오해될 게 없는 말이다.
설사 그게 누군가에게는 맛이 없다.
그렇다 쳐도 적어도 해당 출연자는 맛있게 느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박다균이 격앙하며 비판해왔다.
〈라테는 맛있는 게 아니라 '맛있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아니, 진짜 맛있었다니까요?〉
〈이제 불쌍해 보여요…… 맛있는 거 못 먹고 자랐는지…….〉
프로그램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졌던 것도 당연하다.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도 화가 날 만한 부분이다.
우리가 라테 맛있게 마시겠다는데 니가 뭔데?
그가 커피 애호가들 사이에서 커서인이라는 별명으로 비판 받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하지만 여전히 박다균은 라테를 싫어한다.
자신의 입장을 굽힐 생각이 전혀 없다.
"나를 설득해보겠다는 거야?"
"의미 없는 일이죠."
왕린은 누구보다 이를 잘 알고 있다.
설득을 해봤자 의미가 없다.
박다균은 코웃음을 쳤다.
이렇게 친구를 한 명 잃는 것인가?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보온병의 커피를 꿀꺽꿀꺽 마시고 있었으니까.
"한 잔 타드릴까요?"
"그, 그만둬!"
의미 없는 일이다.
왕린의 말은 이중적이었다.
어설픈 설득 따위 통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본인이 마시고 싶게 만들면 된다.
그리고 이미 그 지경에 와버렸다.
그야말로 신의 경지다.
'마, 말도 안돼. 내가 불순물이 섞이 탁한 커피를 원하다니!'
커피 애호가로서의 영혼이 말하고 있다.
이 커피는 맛있다.
부정하고 싶어도 혀는 거짓말을 안 한다.
"후후, 말로는 싫다곤 해도 입으로는 마시고 있군…… 사실 즐기는 거 아닌가?"
"내, 내가 그럴 리 없어!"
이런 불순물 섞인 탁한 커피 따위!
만약 조금 더 충분한 양의 우유를 탔다면 더 농밀한 맛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꿀꺽.
몸은 정직하다.
왕린의 카페라테를 원하고 있다.
또르륵.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
왕린의 손에는 어느새 매일유업 오리지널 1A등급 원유가 잡혀있었다.
"일반 우유보다 맛이 가벼워 고소한 맛은 떨어지지만, 우유 막이 생기거나 텁텁한 맛이 나지 않는 그 우유를?!"
"후후, 커피의 향을 살리면서 담백한 맛을 낼 수 있지."
커서인이라는 불릴 정도로 안티라테인 박다균조차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최고의 커피, 최고의 재료.
만드는 이는 커피물조절장인이다.
떨어지는 우유 줄기는 일말의 조급함도 허락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진다면 커피의 맛에 다이렉트다.
그럼에도 망설임 없이 그림을 그린다.
"오오……!"
받다균은 왕린이 만든 카페라테를 받아 들었다.
일반적으로 커피를 즐기는 방법은 향으로 맡고, 입에 머금고, 목으로 삼키는 세 가지 과정을 가진다.
라테는 여기에 눈으로 보는 과정이 추가된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겁다.
토끼 모양의 귀가 이토록 선명할 수가 없다.
자신은 어째서 이토록 멋진 라테를 거부해왔던 것인가?
'중요한 건 맛이야!'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커피다.
다름 아닌 커피물조절장인의 작품이다.
눈을 감고 음미하는 박다균.
이를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왕린.
"고만해, 미친놈들아!"
보다 못한 뱅기가 소리 질렀다.
* * *
SKY T1 대 KTX 롤러코스터.
전세계의 귀추가 주목되는 결승전이다.
〈SKY T1이 왕린 선수의 캐리로 첫 번째 세트를 가져가네요!〉
탑 차이가 승패를 갈랐다.
그렇게 단정지어도 될 만큼 적나라했다.
KTX 롤러코스터의 킹인도 못하는 선수가 절대 아니지만.
-킹인이 쪽을 못 쓰네
-잘하긴 하는데 아직 신인이라……
-세체탑 왕린 앞에서 기를 못 펴는구만
-슼은 왕형만 믿고 갑니다!
왕린에 비하면 손색이 있다는 게 세간의 정설이다.
그도 그럴게 현재 SKY T1의 핵심 선수다.
웬만큼 잘하는 정도를 넘어 최고 MVP다.
〈이번 롤드컵 MVP 포인트 순위가 SKY T1 내에서 1위, 전체 순위 2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SKY T1 내에서 가장 많이 MVP로 선정되었다.
테이커, 뱅기도 제쳤다는 소리다.
전체 순위는 2위에 머물러있기는 하나.
〈1위가 레전설 선수죠?〉
〈맞습니다. 만약 LCK 기준이었다면 오늘 경기의 결과와 상관 없이 레전설 선수가 대회 MVP를 받았겠지만…….〉
LCK와 롤드컵은 기준이 다르다.
김은준 해설이 간단하게 설명한다.
MVP 포인트가 차곡차곡 쌓이는 LCK와 달리 롤드컵은 우승팀의 최다 MVP가 대회 MVP로 직결된다.
-우승하는 순간 왕린 몸값 난리 나겠네
-거의 28억은 받겠는 걸?
-ㄹㅇ 중국이면 28억 주고도 모셔갈 듯
-먹튀각ㄷㄷ
롤드컵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로드 오브 로드(Lord Of Lords) 대회다.
당연히 전세계 관계자들이 주목한다.
활약하는 선수는 몸값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뛴다.
대회 MVP라면 노후 대책은 다 짰다고 봐도 될 정도다.
MVP 쟁탈이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경기 시작에 앞서 사전 인터뷰에서 왕린은 말했다.
〈저는 솔직히 레전설 선수가 왜 MVP 1위인지 잘 모르겠거든요~.〉
레전설이 MVP 1위인 이유는 그냥 받을 사람이 레전설밖에 없어서다.
만약 그가 SKY T1에 있었다면 절대 1위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실질적인 MVP 1위임을 완강히 주장해왔다.
─왕린은 옛날부터 레전설한테 죽어도 안 지려고 하네
손가락에 꼽기도 민망할 만큼 많이 털리지 않았냐?
아직도 승부욕 불태우는 거 보면 어떤 의미로는 대단해
└ㅋㅋㅋㅋㅋ
└둘이 앙숙이지
└레피셜: 걔는 개노답 삼형제 첫째다
└레전설한테 첫째라고 인정 받을 실력ㄷㄷ
과거까지 따지면 상대 전적이 안 좋다.
하지만 과거는 어디까지나 과거.
현재의 왕린과 과거의 왕린은 다른 사람이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는 말이 아니라 실력적인 평가가 180도 달라졌다.
2014년도의 왕린은 기대치 이하.
솔로랭크에서 떨친 위상을 반절도 보여주지 못했다.
〈왕린 선수가 포텐이 터진 건 확실히 SKY T1 통합한 올해 초부터에요. 스프링 시즌부터 정말 꾸준하게 발전해왔고 현재 최정점, 세체탑에 가장 근접한 선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라인전은 원래부터 잘하는 선수였다.
챔피언폭과 운영 능력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 두 가지 단점을 극복하자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섰다.
〈탑라인 영향력 세상에서 제일 잘 주는 선수입니다.〉
〈그렇습니다. 단순히 라인전 찍어 누르고, 솔킬 따고 그러는 게 아니라 첫 번째 세트에서 보여줬듯 운영적인 움직임이 너무 좋아요.〉
깨달음을 얻고 환골탈태했다.
다른 사람이라는 표현은 더없이 적절하다.
지난 섬머 시즌 이상으로 개화한 왕린은 현재 SKY T1에서 가장 무서운 난적이다.
와아아아아아-!
이윽고 시작하는 두 번째 세트.
탑라인에서 또다시 사달이 일어난다.
킹인이 다리우트로 라인전을 맹렬하게 압박했지만.
〈아니, 와 이게 정말-! 왕오라 궁극기 터트리는 속도 말이 안되는데요오?!〉
〈초일류 바리스타의 라테아트처럼 물, 아니 우유 흐르는 듯 부드러우면서도 정교했어요.〉
-여윽시 커피물조절장인!
-국내 원탑 바리스타가 왕린이잖아
-왕린과 결혼하는 여자는 행복하겠다……. 아침에 일어나면 왕린의 커피를 마실 수 있겠지?
왕린의 끠오라가 솔로킬을 따냈다.
부드럽게 파고들어 맹렬한 기세로 쏟아진다.
마치 초일류 바리스타의 라테아트처럼 신속하면서도 정확도가 돋보인다.
〈또 탑캐리 나오면 이번 시즌 MVP 왕린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없죠?〉
〈우승하는 순간 세체탑 소리 듣는 거거든요!〉
자칫 무리수가 될 뻔했던 상황을 실력으로 극복해냈다.
그동안 당하고만 살아온 설욕.
풀어내겠다는 듯 왕린이 흉흉한 기세로 몰아쳐 온다.
========== 작품 후기 ==========
전부터 말해왔지만 저는 커알못입니다
라테에 대한 상식이 잘못 혹은 과장되게 기입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커피물조절장인에게는 불가능이 없다는 설정이니 그러려니 하고 봐주세요
오늘 한 화입니다
한화 아님ㅎ
컴퓨터가 고장 나서 하루종일 뭘 할 수가 없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