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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롤드컵 초단기 특강 -->
프랑스, 영국에 이어 스페인이다.
롤드컵 때문에 별의별 나라를 다 가본다.
아무래도 유럽쪽은 흔히 가기 힘든 면이 있다.
"스페인은 뭐가 유명할까요?"
"알려고 하지 마. 어차피 넌 갈 일이 없어."
"히잉……."
유리야가 히잉댄다.
히잉히잉.
무슨 당나귀도 아니고.
'똥강아지처럼 생겨서 참.'
풀이 죽어서 고개를 푹 숙인다.
원래는 이보다 더 딜을 넣어도 나름 탱킹이 되는 녀석인데 최근 디버프가 걸렸다.
외국에 오랫동안 있다 보니 향수병 비스무리한 걸 앓는 모양이다.
"리야야."
"네……."
"너 오늘 왜 이렇게 못 생겼냐."
"흐에엥!"
그래서 내가 친히 놀아주고 있다.
바쁜 와중이지만 짬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팀 내에서 특별 대우인 데다 특히 오늘 같은 경기날은 말이다.
와아아아아-!
팔라딘 어쩌고 하는 경기장에 왔다.
SKY T1과 오리젠의 A조 경기 중이다.
오리젠이 원딜을 자르며 다소의 이득을 챙겼다.
경기장 유럽팬들의 환호 소리가 엄청나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이득이 맞을까?
과투자가 되며 SKY T1의 백업에 싸먹힌다.
"헐, 우리나라 팀이 이기고 있어요!"
"그렇구나."
우리나라팀이 이긴다니 다행인 일이다.
그런데 나는 졌으면 좋겠어.
차라리 오리겐이 올라오는 게 낫지.
'쟤네는 왜 대퍼를 안 하냐?'
팀에 상남자 잼할이랑 잼구 좀 넣어서 밸런스를 맞춰주고 싶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SKY T1이 무난하게 승리할 그림이다.
"너 만약에 저팀이랑 우리팀이랑 붙으면 누구 응원할 거야."
"어, 어 그러니까…… 우리팀이요!"
"왜 대답을 2초 망설여, 죽을래?"
"죄송해용……."
여느 때와 다름없이 뇌에 버퍼가 걸린 모양이다.
그 이유가 SKY T1팬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유리야가 오물조물 음식을 주워 먹고 있다.
참고로 이곳은 일반 좌석이 아니라 VIP석이다.
'플래티넘석, 다이아몬드석 그런 거 말고.'
VIP석이라고 실내에 위치한다.
선수들이나 관계자는 원하면 올 수 있다.
일반인들도 추첨을 통해 기회가 주어진다.
딱히 뭐 별 건 없지만 실내라는 것 자체가 좋다.
이 쌀쌀한 10월에 실외가 아닌 것만으로도 어디야?
그리고 한 가지 소소한 특권을 가질 수 있다.
"맛이 그냥 그래요."
"너 왜 이렇게 입이 고급지냐?
"저, 저 맛있는 거 엄청 잘 알아요. 펩시콜라랑 코카콜라도 눈 감고 다 맞췄어요. 진짜에요."
보는 눈이 있어서 차마 때리지는 못하겠다.
이렇듯 경기를 보며 식사를 즐기는 게 가능하다.
정식 식당이 아니기 때문에 퀄리티는 그저 그렇지만.
'평타는 치는구만 뭐.'
전체적으로 스페인이 영국보다 음식이 난 듯싶다.
그럼에도 맛이 없는 이유는 입맛 때문이겠지.
시무룩한 얼굴이 내 안의 가학심을 자극한다.
"저 요즘 살 빠졌어요……."
"다이어트는 건강에 좋은 일이지."
"다이어트 안 했어요! 그냥, 그냥…… 입맛이 없어요."
아무래도 추측이 정확히 들어맞았나 보다.
얘가 입맛이 없을 정도면 심각한 건데.
오늘 밥은 그렇다 치고 호텔 밥도?
"프랑스 밥이 제일 맛있었던 거 같아요!"
"그냥 평생 여기서 살아라. 돗자리 펴고."
괜찮은지 아닌지 모르겠네.
리야 성격을 감안하면 아마 후자일 것이다.
모르는 나라에 하루종일 갇혀있으니까 몸과 마음이 피폐해질 만도 하다.
"근데요. 그냥 묻는 건데요……."
"뭐."
"저 혼자 있을 때 시장 같은데라도 가면 안될까요?"
똘망똘망한 눈동자로 호소해온다.
시장에서 기념품이라도 사고 싶다.
우리 것도 살 테니까 보내줬으면 좋겠다.
그냥 솔직하게 말해.
싸돌아다니면서 놀고 싶다는 거잖아.
쇼핑하고, 관광지 돌아다니고, 맛있는 거 사먹고.
'이 괘씸한 녀석 같으니라고!'
팀원들은 지금 자는 시간도 아껴가면서 피땀 흘려 연습하는데 혼자 놀아?
단체 생활에서 개인 행동하면 안된다는 거 못 배웠어?!
딱히 같이 죽자는 논리로 묶어두는 게 아니다.
"리야야."
"네."
"혹시 너 유럽에서 여자 혼자 다니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설마…… 나쁜 아저씨들이 소매치기 같은 거 해요?"
리야가 아는 나쁜짓의 최대치인 듯하다.
그 정도면 내가 염려도 안 하지.
알아서 조심하면 되고, 만에 하나도 당해도 금전적 손해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만 살면 치안에 대한 감각이 무뎌질 수 있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다.
그나마 비교할 수 있는 곳이 싱가포르.
그런데 싱가포르는 도시 국가라서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그냥 한 마디로 전세계에서 가장 월등하게 안전하다.
이런 나라에서 살다 보니 다른 나라도 비슷하지 않을까?
무심코 생각할 수 있는데 몇 번 가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게 돼.
"영화 테이큰 봤지?"
"저 봤어요. 봤어요! 너무 재밌어서 테이큰3도 개봉한 당일에 동생이랑……."
신나 가지고 쫑알쫑알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떠든다.
내가 지금 너랑 영화 감상회를 열자는 게 아니야.
돈독한 남매의 우애도 니들끼리 찾았으면 싶다.
유리야의 벌어진 입을 칠리 새우로 틀어막는다.
"그 테이큰1에서 딸내미가 인신매매단에 납치 당한 곳이 바로 이곳 스페인 마드리드야."
"허억!"
리야가 깜짝 놀랐는지 눈을 땡그랗게 뜨며 입에 꽂아준 칠리 새우를 자기 접시에 떨어뜨렸다.
침도 같이 떨어졌다.
드러워 죽겠네.
"저 혼자 두지 마세요. 말 잘 들을게요. 말대답도 안 할게요. 시장도 안 갈게요오……."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생각 이상으로 테이큰을 감명 깊게 본 모양이다.
반응이 많이 과도하긴 하지만 만에 하나의 일을 생각하면 나쁘진 않다.
'어리바리해 가지고 진짜 납치 당할지도 몰라.'
외국의 경우 실제로 마피아 같은 게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소프트웨어는 맛이 갔어도 하드웨어는 준수한 아이다.
정말로 표적이 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내가 들었는데 요즘 동양인 수요가 급증하고 있대."
"히익……!"
추운 강아지처럼 몸을 바들바들 떨어댄다.
여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무서운 일이다.
이만하면 겁은 충분히 줬다고 본다.
"모르는 아저씨가 사탕 주면?"
"따라가면 안돼요!"
사탕 말고 좀 더 맛있는 거 사주면 따라가는 거 아니야?
걱정이 되긴 하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믿는다.
애초에 마피아들은 납치를 하기 때문에 그럴 일도 없다.
"저 최대한 버텨볼게요. 외롭고 힘들지만 선배랑 달래랑 팀원들 응원할게요. 그러니까 저 없는 곳에서 열심히 우승 힘내세요."
호텔에 혼자 두는 이유에 대해 납득을 마쳤다.
겁도 먹었으니 따로 사고를 치지도 않겠지.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된 것은 아니다.
"집에 갈래?"
"아니요."
리야가 황급히 대답한다.
손바닥을 휘휘 젓는다.
내가 딱히 화나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무슨 군대도 아니고.'
너네 군대 억지로 끌려온 거야?
아닙니다!
훈련소에서 조교가 하루에 한 번씩은 물어보는 말이다.
조교도 아마 신기할 테지.
자기는 끌려왔는데 훈련병들은 아니래.
군인 정신이 이보다 더 투철할 수가 없다.
"가도 돼. 괜찮아."
"혹시 저 필요 없어요……?"
대답하기 좀 애매한 부분이다.
반려견이라는 게 꼭 필요한 건 아니다.
키우는 사람보다 안 키우는 사람이 더 많잖아?
그리고 키우는 사람도 가끔은 옆집에 맡길 때가 생긴다.
'물론 리야 같은 경우에는 힐러 역할도 있어서.'
있는 편이 더 좋기는 하다.
근데 RPG게임에서 던전 깰 때 꼭 힐러가 필요한 건 아닌 것처럼 강요되진 않는다.
그러고 보니 얘 왜 데리고 왔지.
"너 처음에는 귀찮게 안 한다고 하지 않았냐? 여행 느낌으로 따라온다고."
"히잉……"
너도 올래?
별 생각 없이 물었다.
뭔가 소외시키는 것 같고 그래서 챙겨주는 느낌으로.
지가 온데.
응원하러 가겠대.
방송도 현지 가서 할 수 있고, 현지이기에 할 수 있는 방송도 있어서 일적으로도 문제가 없다.
'본인이 사서 고생할 뿐이지.'
물론 처음에는 자기도 그런 생각이 아니었을 거야.
히히, 여행이당!
맛있는 거 먹어야지~.
유명한 곳 가봐야지~.
정작 도착하니까 호텔에 묶여있어.
그리고 생각보다 무서운 곳이야!
흐아아앙!
"저 괜찮아요……."
"하나도 안 괜찮아 보이는데."
"진짜 진짜 괜찮아요."
"저기 마피아 있다!"
"히익!"
경기 끝나고 당장이라도 비행기 태워서 돌려보낼까.
딱히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어려운 일도 아니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어차피 집에 가도 또 방에만 있을 거고……, 여기서 선배 응원할래요."
그렇게 말하면 매우 기특해 보이지만 역으로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갈수록 수척해지고 그러면 신경 쓰이잖아.
안 해도 될 고생을 사서 할 필요가 없다.
"살 조금이라도 더 빠지면 그대로 비행기 수화물칸에 넣어 가지고 보내버린다?"
"네, 근데 어떻게 알아요?"
"들어보면 알아."
"히잉……."
번쩍 들어보면 안다.
엉덩이 한 번 때려보면 좀 더 정확해지고.
사실 후자는 딱히 필요 없는데 피부와 지방의 탄력 체크를 위해 추가했다.
"선배."
"응?"
"그럼요…… 대회 다 끝나고요. 바쁜 일 다 한 후에는요. 놀아주실 수 있는 거죠……?"
리야가 조심스럽게 조그마한 입으로 쫑알쫑알 물어온다.
탈락을 하든 우승을 하든 끝난 후라면 시간이 널널할 수밖에 없다.
기왕 유럽도 왔으니 관광 명소 한두 곳 정도는 둘러보고 가고 싶다.
'근데 모르긴 몰라도 진이 다 빠져서 잠이나 자고 싶을 걸?'
해외 여행도 처음이나 특별하다.
나중에는 잠보다 우선 순위가 밀린다.
섬머 시즌부터 강행군을 펼쳤던 피로가 쏟아질 게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똥강아지 산책 한 번 해주는 거야 어려운 부탁이 아니다.
"약속한 거에요? 어기면 안돼요?"
"내가 언제 약속 어긴 거 봤어?"
"아뇨, 아뇨. 믿을게요!"
사실 산더미 만큼 어겼다.
너무 많이 어겨서 일일이 새기도 좀 그렇다.
유리야 본인이 믿는다고 하니 타인이 왈가왈부 할 건 아닐 것이다.
'표정도 좋아졌고.'
잃었던 밥맛도 되찾았는지 아까 입에서 흘린 새우를 와구와구 씹어 댄다.
토실토실 살 찌워서 보다 엉덩이의 탄력도 돌아왔으면 싶다.
비교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가는 길에 체크해야겠다.
* * *
롤드컵 녹아웃 스테이지.
이름 그대로 한 번 지면 탈락인 토너먼트 리그다.
A조부터 D조까지 매일 하나의 조가 사생결단을 내고 있다.
〈한국에서 보시는 게임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2015 LOL 챔피언컵 8강 3일차 경기를 이곳 스페인 마드리드 팔라시오 비스탈그레 아레나로부터 현지 생중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진용준 캐스터의 힘찬 외침과 함께 C조의 경기날이 찾아왔다.
한국팬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날이다.
-으으…… 올 것이 왔구나
-오늘 둘 중 하나는 무조건 떨어지겠지?
-어느 팀 응원해야 할까
-ㅋㅋ이겨도 져도 욕 먹는 매치업
가능성이야 언제나 열려있었다.
다만 그 시기가 이르게 오고 말았다.
무려 8강에서 한국의 두 팀이 맞붙게 됐다.
C조 1위로 올라온 KTX 롤러코스터와 D조 2위로 올라온 GOO Tigers.
조추첨식에서 운명의 만남이 결정됐다.
한국팬들 입장에서는 아쉬운 일일 수 있겠으나.
〈LCK팀들이 쭉쭉 치고 올라간다면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하는 과정이잖아요?〉
〈맞습니다. 양팀 모두 조별 리그에서 크게 선전을 하며 올라온 만큼 이긴 쪽이 그 기세를 이어받아 결승전까지 쭉쭉 치고 올라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해설진들이 시청자들의 아쉬움을 정리해준다.
반대로 말하면 준결승 하나는 무조건 확보한 셈이다.
하지만 양쪽 팬덤 사이에서는 신경전이 한창일 수밖에 없다.
〈온라인 상에서 진행된 사전 예측 투표 결과에 의하면…….〉
현장에 나와있는 김수연 아나운서.
수많은 관중들 사이에서 마이크를 잡는다.
언어 문제상 오프라인은 못했지만 온라인 투표는 진행이 되었다.
〈KTX가 롤러코스터가 61%……! 근소한 차이로 앞서네요.〉
〈조금은 더 강팀으로 평가를 받고 있고 예선전에서 1위로 올라온 만큼 근거는 있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팬들의 투표다.
매 시즌 그러하듯 인기 투표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김은준 해설도 괜히 근거를 부르짖은 게 아니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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