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설의 재림-398화 (398/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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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승 준우승 -->

코돈빈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다 생각이 났다.

일전에 유리야한테 몹쓸 짓을 저지른 적이 있다.

어쩔 수 없는 불상사였다곤 하지만 심한 감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심한 정도가 아니었지……

-유리야 그 정도로 화난 거 처음 봤음

-그때 막 술 먹여서 기절시키지 않았나?

-유리야 맛남?

충신지빡이님이 퇴장 당하였습니다.

무슨 맛이 나는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아니.

귀 정도는 빨아봤는데 푹 삶은 삼계탕 맛이었다.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언급은 할 수 없다.

'그런데 그런 걸 묻는 건 여성 스트리머에 대한 실례지.'

요즘 애들은 정말 개념이 없다.

가만히 두면 꼭 선을 넘는 애들이 나와.

강제 퇴장이라는 본보기로 엄히 다스린다.

물론 이해를 아예 못하는 건 아니다.

파프리카TV나 그런 쪽이었으면 십중팔구다.

여캠이 여캠한다고 다 그렇고 그런 관계가 있겠지.

하지만 나와 유리야의 관계는 클린하다.

불가피하게 클린하다.

'나도 로맨스를 즐기고 싶은데 애잖아!'

애를 상대로 무슨 로맨스를 해.

로빈슨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

무인도에 떨어지면 콩쥐팥쥐처럼 부려먹을 자신은 있다.

"아무튼 제가 밖에 나왔습니다."

-역시 뜬금없는 새끼;;

-그 비 제 이

-근본력 무엇

-본업 돌아오니까 활기차졌누ㅋㅋ

택시를 타고 이동 중이다.

아무리 대회 기간이라 해도 짬은 있는 법이다.

선수들의 개인 연습 시간이 괜히 있겠는가?

그리고 나름 유의미한 시간이다.

KTX 롤러코스터에 날개를 달아줄지 모른다.

유리야의 집 근처에 도착해 내린다.

혹시 모를 이상한 애들을 대비해 카메라를 닫는다.

꼭 보면 스토커짓 하고 그러는 애들 있어.

농담이 아니라 실례가 적지 않다.

'남자도 아니고 여자들은, 특히 유리야는 얼마나 진동을 떨겠어.'

내가 BJ 경력이 있기 때문에 사생활 보호는 철저한 편이다.

반면 BJ 경력이 있기 때문에 프로 의식도 산재해있다.

방송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희생하곤 한다.

"제가 장난삼아 코돈빈 선수가 결승전 전날에 불상사를 당한다. 그러면 준우승 징크스가 적용되지 않지 않을까? 그런 이야기를 했었잖아요."

-코돈빈 선수……?

-이 새끼 선 긋는 거 보소

-확신범이야 확신범

-목소리만 들리는데도 사악하다

목소리만 들리니까 사악하다고 뇌에서 변조하는 거지!

내 인상이 얼마나 포근하고 따듯한 남자인데.

그런 오해를 하면 진심으로 섭하다.

"저는 시청자님들이 너무 장난스럽게 오해를 한다, 과민반응을 한다. 그런 생각도 잠깐 했는데 떠올려보니 일전에 비슷하게 저지른 적이 있었어요. 저 말고 13번 성훈이가……."

-13번 성훈이ㅋㅋㅋㅋㅋㅋ

-지금은 15번 성훈이냐?

-레전설 다중인격설

-이 새끼 위트 있는 척 유머로 넘기려 하네

좀 넘어가 주라.

사람이 살다 보면 불가피하게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승리를 위한, 팀을 위한 최선책인데 그것이 도덕적 잣대에서 다소 어긋나는 경우가 생긴다.

13번 성훈이의 경우 얼마 전까지 군생활을 했다.

그러다 보니 군인 정신이 박혀 있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한 희생적 사고방식이니 이해를 해줘야지.

"그러니까 이번에는 먼저 사과를 하고 그 다음 몹쓸 짓을 저지르는 역순으로 가보겠습니다."

-미친 새끼가ㅋㅋㅋㅋㅋㅋ

-왜 갑자기 유리야?

-또 뭐 하려는 거야 대체……

-리야아아!!

유리야의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일단 무릎을 꿇고 절을 한다.

한 번 느껴본 적이 있는 익숙한 블록 도로다.

부자 동네다 보니 블록도 비싼 거 쓰네.

따듯한 햇살 탓에 주저앉은 느낌이 나쁘지 않다.

돗자리를 폈다면 그대로 피크닉이 될 듯한 기분이야.

'하지만 피크닉을 하러 온 게 아니지.'

고개를 꺾듯 올려보자 유리야의 보금자리가 보인다.

아파트 21층.

동생에게 듣기로 어제 늦게까지 방송한 탓에 지금 리야는 숙면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평일 이 늦은 오전에 아직도 자고 있다고?

직장인에 대한 실례이므로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럴 듯한 이유도 붙였으니 바로 실행에 들어간다.

"빡대가리야아!!"

* * *

전방에 힘찬 함성 5초간 발사!

제대를 하고 나면 꼭 한 번 다시 해보고 싶다.

그만한 개방감을 느낄 수 있는 행위가 별로 없어.

간만에 폐 근육을 있는 힘껏 활용한 느낌이다.

군인물이 빠지다 보니 옛날 만치 동네가 떠나가진 않았지만 아무튼.

딩동!

유리야네 현관문을 두드린다.

1층은 간첩, 아니 동생의 협조로 통과했다.

귀를 기울이니 바깥에서 엄마엄마엄마엄마 야단이 난 소리가 들려온다.

"엄마엄마엄마. 뭐에요. 왜 찾아오신 거에요."

실제로 어머니가 집에 계신 건 아니고 유리야 본인이 찾을 뿐이다.

계셨으면 나도 이런 짓을 저지르진 않았겠지.

나 레전설, 절도가 있는 남자다.

"리야야."

"네?"

"여캠 다 됐네?"

그 와중에 비비를 발랐네.

고양이 세수도 했는지 머리카락에 물이 묻었다.

치장할 생각이 떠오르는 것보면 어엿한 여캠이야.

"왜 연락도 없이 갑자기 와요옷…… 저 자고 있었는데."

"그래야 더 재밌잖아."

-으악ㅋㅋㅋㅋㅋ

-재미에 희생 당하신……

-'그 쓰레기'

-리야 생얼도 예뻐!

하지만 아직 잠은 덜 깬 모양이다.

머리 흐트러진 게 아주 가관이다.

처녀귀신이 친구 하자고 하겠어.

"헉! 지금 방송 하시는 거에요?"

"어."

"여자는 얼굴이 생명인데…… 그리 방송 하면 안돼요오."

"그럼 평소에 좀 잘하던가."

빵떡 같이 나오면서 캠빨 따지는 척을 해.

정말로 잠이 안 깼는지 평소 같은 고음이 안 올라간다.

내 고막이 손상 받을 일이 없어서 잘됐다.

"읏차."

"꺄, 꺄아…… 왜요? 왜 드는 거에요??"

"좀 뺐네? 내가 자극을 준 보람이 있구만."

-스트리머님, 카메라 초점 흔들려요

-이거 설마……

-레전설이라면 한다

-유리야 또 들었나 봐ㅋㅋㅋㅋ

옛날 같았으면 한손으로 번쩍 들어 가지고 삼국지 관우 마냥 풍차를 돌렸을지도 모르는데.

이게 참 선수 생활도 하고 나이도 들다 보니까 힘이 드네.

결국 업는 것으로 합의 봤다.

"저 신발! 저 신발!"

유리야가 신발이라도 신겠다.

신발이라도 신고 납치를 당하겠다!

하도 많이 당하다 보니 체념을 했나 보다.

'지가 무슨 신데렐라도 아니고 신발을 왜 이렇게 찾아.'

하지만 안 신은 게 더 재밌기 때문에 그대로 나왔다.

옆에서 보고 있자니 발가락을 꼼지락꼼지락.

작은 생물 같아서 귀엽다.

그래서 먹어보기로 했다.

이영돈PD를 본받아 한입 해보았다.

아까 맛을 궁금해 하시는 시청자분이 계시길래.

"일단 식감은 쫀득하고요. 맛은 좀 짜요. 위생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씻어 먹는 걸 권장합니다."

"흐아아아앙!"

-리야 운다

-뭐 하는 짓이야 미친놈아!

-또라이 새끼;;

-프로가 이래도 되냐??

프로가 뭐 별 거라고.

KTX 롤러코스터는 토이치TV에 적을 뒀다.

메인 스폰서가 토이치TV라는 이야기다.

방송을 장려하면 장려했지 막지는 않아.

'장려는 아니어도 참가상은 주겠지.'

듣고 보니 살짝 살 떨리긴 해.

하지만 다 방송이니까 하는 짓이다.

이런 방송은 원래 다 사전 협의가 돼있다.

"정말요?"

"그래."

"저는 아닌 거 같은데…… 기억에 없는데……."

-저건 진짜로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인데

-그 쓰레기가 또

-리야둥절

-리야아아!!

가끔 보면 방송이라고 짜고 치는 사람들 있잖아?

반대로 안 짜고 치는 사람도 있어야 우주의 균형이 맞지.

나도 내가 뭔 소리 하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왜 이렇게 무겁냐!

"하…… 존나 무거워."

"저 안 무거워요오!"

"군장을 FM으로 멘 기분이야. 택시 언제 오냐."

체력이 떨어졌나.

일단 들어보니까 입감은 간다.

저번에 만났을 때보다 한 다섯 근 덜 묵직해진 거 같아.

다이어트를 권유했더니 잘 따르고 있나 보다.

따로 통제까지는 안 들어가도 될 듯하다.

근데 가벼워졌어도 그냥 들기가 버거워.

"엉덩이 잡지 마요오."

"두툼해서 잡기가 편해서 그래."

"흐아아앙!"

-미친놈앜ㅋㅋㅋㅋ

-완전 성희롱 아니냐?

-미투각

아니, 내가 지금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아?

유리야를 업은 채 거의 한 10분을 걸었다.

택시를 탈 수 있는 인근 도로까지 겨우 나왔다.

"유리야가 신발도 안 신어서 계속 업고 있어야 한단 말이야!"

"흐에에엥……."

-누가 그러래?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변명도 에디슨급으로 기발한 새끼

-기발한 혀놀림

오는 길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어찌나 의아하게 쳐다보시던지.

내가 얼굴이 두꺼워서 망정이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

유리야는 그냥 멍청해서 눈치를 못 챘고.

"방구 뀌지 마라."

"안 꼈어요오!"

"그냥 뀌지 말라고. 혹시 꼈냐? 왜 이렇게 뜨끔하지?"

엉덩이를 잡고 있기 때문에 엄청 신경 쓰인다.

다이렉트로 묻어 날 거 아니야.

그거까진 먹방을 찍진 않는다.

-우리 업계에서는……

-진짜 아 뭐라 할 말이 없다;;

-난 부러운데

-등에 가슴 닿는 거 아님??

닿는다.

근데 나는 C컵 이하는 가슴으로 치지 않아.

남자들도 약간 살집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만져봐도 돼.

'그게 여자 가슴 A컵 내지 B컵이야.'

좀 모으니까 겉보기에 있어 보이는 거지.

실상은 안타까움 그 자체다.

그리고 무슨 중·고등학생도 아니고 가슴 닿는 걸 신경 써.

"한 달래 정도는 돼야 가슴으로 쳐줄 만 하는 거지."

-그건 ㅇㅈ

-달래님은 진짜 와…… 개쩔지

-E컵 아니었나?

-난 작은 것도 좋은데ㅎㅎ

그건 현실과 타협하는 거야.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큰 게 좋지.

커서 최소한 나쁠 건 없어.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법이야.'

먹어본 사람만이 아는 건데 차마 말을 하기 애매한 부분이다.

아무튼 택시를 잡아 타고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

"저 추워요오."

"기사 아저씨 히터 좀 부탁드릴게요."

기사 아저씨가 굉장히 미심쩍은 눈초리로 룸미러를 통해 쳐다본다.

적어도 포주는 아니니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둬주었으면 한다.

"저, 저 신발도 없고 잠옷만 입고 있는데 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에요……."

유리야는 잠옷 바람이다.

섹시한 부류는 아니고 실용성이 높아 보이는 그런 옷이다.

수건처럼 두꺼워서 따듯한 소재고 기본 분홍색에 하얀 땡땡이 무늬다.

"잠옷이라도 섹시한 거 입었으면 내가 업고 오진 않았을 거 아니야. 니 잘못이니까 반성해."

"전 편한 게 좋아요오!"

-이게 유리야 잘못이야?

-리야 잠옷 귀여운데ㅋㅋ

-현실도 방송 그대로인 리야

-근데 섹시한 거였으면 방송 사고였지……

방송 사고 아니야.

얘가 입었으면 그냥 안타까웠을 거야.

사춘기 딸아이가 화장품을 덕지덕지 바른 모습을 본 아버지의 기분처럼.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리야는 신발이 없기 때문에 다시 업힌다.

망설였지만 마땅히 다른 해결책이 없었으므로.

"저 시집 다 갔어요……."

"엄살은."

"근데 어디 가는 거에요 정마알!"

그 정도로 시집을 다 가면 개그우먼들은 평생 미혼으로 살아야지.

제물을 업고 천천히 이동 중이다.

사실 혼자 와도 됐는데.

'뭔가 나 혼자 오면 손해 보는 기분이라서.'

유리야를 함께 데리고 왔다.

기왕 고생할 거면 같이 하자고.

나름대로 계산이 서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여기서부터는 방송 화면을 끌게요. 어쩔 수가 없어서 그러니까 마음에 안 드시면 나가세요."

-스트리머분 태도가 마음에 안 드네요

-레전설이 레전설하고 있을 뿐임

-오직 소리로만 경기를 판단한다!

다른 핸드폰을 꺼내서 통화를 한다.

원래 방송용 폰이랑 두 개 들고 다닌다.

"네, 네…… 아, 마중 나오신다고요?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유리야와 함께 온 곳은 다름이 아니다.

아주 대단하신 분이 사시는 장소다.

허락을 받지 못하면 대면도 못해.

'세상 정말 거꾸로 돌아간다.'

나는 군대에서 2년 허송세월 보내고 뼈빠지게 외노자 생활하다가 한국 돌아와서 준우승하고 있는데.

누구는 얼굴 좀 반반하게 태어났다고 인생 날로 먹네.

'그런데 뭐 어쩌겠어~ 아쉬운 사람이 우물 파야지.'

코돈빈을 아끼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다.

우승을 하기 위한 두 번째 방안.

보기 좋은 떡을 보러 왔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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