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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질 것도 없이 당연한 이야기다.
E-스포츠는 물량전이 아니다.
필요한 건 양이 아닌 질.
선수를 몇 명 보유하든 출전할 수 있는 건 결국 다섯 명이다.
교체 투입을 통해 전략의 다양화를 노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 잘하는 다섯 명이 더 든든한 게 실상이다.
때문에 중국이 아~무리 돈을 많이 투자해도 한계가 명확하다.
"마지막이 KTX? 확실해?"
"신뢰도 높은 정보에요. 모은 정보들을 종합한 거니 아마 십중팔구……."
하지만 선수가 아닌 코치진의 경우는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숫자에 상한선이 없다.
구단이 보유할 역량만 된다면 몇 명이든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
물론 코치진이 경기에 미칠 수 있는 영향 또한 한계가 명확하다.
아무리 좋은 전략도 선수가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평소였다면 약간의 어드밴티지에 지나지 않다.
"그러면 우리가 두 번째 세트에서 희생할까?"
"이미 IC가 한 점 땄으니까……. 그래주면 고맙겠는데."
"대의를 위해 희생 좀 해줘."
평소가 아니다.
국제전이다.
그것도 팀단위.
코치진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은 배의 배가 된다.
LPL의 헤드 코치들은 상대의 출전 순서를 거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들이 가진 역량이 엄청나게 뛰어나서.
혹은 코치 중에 영험한 무당이 있어서.
적어도 후자일 리는 없지 않은가?
"두 번째 세트는 우리 WA가 나갈게. GOO Tigers는 지난 IEM에서도 잡아봤으니까 승산은 넘쳐."
WA의 헤드 코치 이승덕이 넘치는 자신감을 표명한다.
WA는 IEM의 우승에 힘입어 1위팀 자격으로 출전했다.
하지만 최근 기량은 잘 쳐줘야 LPL 중상위권 팀이다.
나머지 세 팀에 비해 기량이 썩 출중하지 않다.
그에 반해 GOO Tigers는 한국 2위팀의 자격이다.
GOO Tiger가 더 낫다고 평하는 게 일반론이겠으나.
─WA 스피리트님이 GOO 도도갓님을 처치했습니다.
올해 초 IEM 조별 리그에서 GOO Tigers를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WA의 주전력은 한국 코치와 선수들이다.
한국팀을 상대하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약점을 파고드는 법도 꿰고 있다.
〈나 안 끝났어. 나 아직 월클이야~.〉
-나 아직 월클좌ㄷㄷ
-와, 스피리트 살아있었네
-구삼선의 저력……
-한국 선수한테 지다니 ㅠ.ㅠ
경기가 끝나고 인터뷰 자리.
WA의 정글러 스피리트가 외친다.
과거 삼선 블루의 정글러로서 위용을 떨쳤다.
중국에 가서도 여전히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과시한다.
─SKY 테이커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이어진 세 번째 세트는 버림패로 EDC가 출전했다.
아니나 다를까 테이커의 캐리를 막지 못한다.
SKY T1이 EDC를 가뿐하게 압도해버린다.
그렇게 한 점 내주기는 했으나 아쉬울 게 없다.
만약 EDC가 1,2 세트에 나갔다면 졌을 확률이 높다.
LPL의 코치진은 지금 이 대진이 가장 승산이 높다고 확신한다.
가장 강한 SKY T1에게 허무한 승리를 준다.
GOO Tigers는 팀상성인 WA로 잡아버린다.
상대의 출전 순서는 예상했던 그대로다.
이는 결코 우연이나 무당이 아니다.
"결국 예상했던 대로 정확하게 됐네요. 이걸 기뻐해야 하나……."
"세상 사는 게 다 그렇지. 괜히 심적 부담 가질 필요 있겠어?"
LPL의 코치진이 바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크게 세 단계로 분류된다.
정보를 받아 최종적인 확인을 하는 헤드 코치들.
그 아래에서는 수석 코치와 엘리트 코치들이 신뢰도 높은 정보를 추려낸다.
가장 말단인 일반 코치는 현장에서 뛰며 될 수 있는 대로 정보를 퍼나른다.
수십 명이나 되는 LPL 코치진이 굴러가는 기본적인 방식이다.
상대 LCK의 출전 순서를 정확히 맞출 수 있었던 연유다.
정보를 긁어 모아서 순도를 높히기까지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가 더해진다.
"솔직히 애들이 가장 고생이지."
"우리야 판단만 하면 되니까 그나마 덜하긴 하죠."
LPL 코치의 상당 수가 한국인들이다.
헤드 코치만 해도 네 팀 중 두 팀이 한국 사람이다.
WA의 이승덕과 EDC의 복준규의 경우가 그러하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한국인인데 중국팀을 위해 일하고 있다.
그 뿐이면 모를까 정보 유출을 이용해 전략을 짰다.
기본적으로 E-스포츠판은 고인물이다.
선수는 물론 코치와 감독도 다 얽히고설켰다.
사적인 대화에서 이따금 중요한 정보가 올라오곤 한다.
우리팀 XX 쓸 거임.
헐, 그 챔피언 좋음?
친구와 말하다 보면 무심코 떠들 수 있지 않은가?
이런 것들도 모으고 모으면 하나의 순수한 정보가 된다.
물론 해서는 안되는 짓이다.
하지만 팀에서 그걸 원한다.
그리고 애초에 공공연하다.
비단 중국이 사회악이라서 저지른다거나 그런 게 아니다.
한국팀들끼리도 그런 짓이 성행한다.
표면에 드러나지 않을 뿐.
"애들이 고생하면 도와줘. 다 알잖아 이 판."
"당연히 도와는 주죠. 근데 참 인간 관계라는 게……."
큰 대회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면 코치들의 관계가 불편해진다.
말은 하지 않아도 은연중에 다 알고 있다.
이거 혹시 내가 옛날에 떠든 게…….
가끔 이야기가 제기될 때도 있지만 백에 아흔 아홉은 묻힌다.
당한 놈이 병신이지.
말한 놈이 나쁜 거지.
쓸데없이 판 키우면 업계에서 일 못하는 수가 있다.
돌아가는 사정이 탐탁지 않다는 걸 안다.
이승덕과 복준규는 씁쓸함만 삼킨다.
"이제 Royal Club만 남았죠?"
"상대는 KTX 롤러코스터고."
이윽고 네 번째 세트가 시작된다.
구상했던 시나리오 중 가장 승산이 높다.
승패 스코어도 최적인 2승 1패의 상황이다.
"우리 Royal Club이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면 아쉬울 수도 있겠어요? 허허."
"뭐, 대의를 위해서니까요 하하……."
선수들은 물론 감독들 사이에서도 은연 중에 신경전이 오간다.
뒷담도 까고, 욕도 많이 오가고.
사이가 안 좋은 이들도 분명 있다.
Royal Clubd의 헤드 코치 황페이는 소문이 좋지 않다.
너무 대놓고 정보 유출을 이용한다.
도찐개찐 같아 보여도 적정선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이를 넘으니까 당연히 소문이 안 좋아질 수밖에.
하지만 이번 리프트 라이벌즈에서는 강제적으로 뭉쳤다.
왜냐!
구단주들 사이에서 합의가 오갔기 때문이다.
헤드 코치와 코치들은 전면적으로 협조해라.
이기는 방향이라면 자존심을 둘째로 해도 좋다.
돈줄인 푸얼다이가 명령하는데 어찌 반감을 가질 수 있을까?
'왕 샤오찬과 차오진핑 때문에 한계가 있을 줄 알았는데…….'
중국 생활 2년차인 이승덕은 그들의 관계를 들은 바 있다.
재벌 2세라고 꼭 사이가 좋은 게 아니더라.
그런데 이번에는 왕 샤오찬이 전면 양보했다.
찔릴 만한 짓을 해버린 탓이다.
상의도 없이 선수 자격으로 출전.
자신의 구단주인 장카이통도 화를 냈었으니 아마 확실하다.
푸얼다이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있었겠지.
그로 인해 소위 말하는 발언권이 축소됐다.
이승덕은 대략적인 사유를 유추할 수 있는 짬이 쌓였다.
'어찌 됐건 이기는 방향으로 가는 게 더 편한 것도 맞아.'
네 번째 세트.
그 승패로 리프트 라이벌즈의 최종 승리가 확정 지어질 수 있다.
* * *
무난하게 승리하리라.
예측되었던 리프트 라이벌즈의 결과는 처참하다.
맛밤의 패배는 그렇다 쳐도 GOO Tigers는 정말 예상 외의 결과다.
─현재 LCK 상황.jpg
역시 형이야 구하러 왔구나!
아니 나도 잡혔어
└그룹 스테이지에서도 지더니;;
└WA 요즘 폼도 안 좋지 않냐?
└교수님 해명 강의 좀요!
한국에서 워낙 잘하던 팀이다.
SKY T1을 빼고는 다 잡아.
SKY T1에게만 유난히 약했다.
최근 KTX 롤러코서트에 밀리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3대 강팀으로 인정 받는다.
스폰서도 안정되면서 재도약을 기다리는 팬들이 많다.
그런데 리프트 라이벌즈에서 꼴이 말이 아니다.
─GOO Tigers는 뭔가 내수용팀 느낌이네
해외팀 만나면 전투력 발휘 못하고 비실댐
└IEM에도 광탈했었지
└ㄹㅇ 그때 SKY T1이 나갔으면 씹어 먹었음
└리프트 라이벌즈 혼자 1승 2패잼ㅋ
└맛밤도 리프트 라이벌즈는 이겼다
국제 대회만 나가면 성적을 죽 쑨다.
심지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던 경기다.
두 번째 세트를 패배하자 LCK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세 번째 출전팀.
과연 어느 쪽으로 정해질지 이목을 모았다.
어느 쪽도 강팀이긴 한데 한쪽은 변수가 너무 많아!
〈SKY T1…… 타당하죠. 타당한 선택 같습니다.〉
〈이렇게 위기에 몰렸을 때는 보다 믿음직한 게 사실이에요. KTX 롤러코스터가 믿음직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그냥 솔직하게 말을 해ㅋㅋㅋㅋ
-킹 퍼
-오직 신만이 그 팀의 승패를 정해준다!
주사위를 굴려 일정 확률로 승리하다.
상대팀이 강팀이든 약팀이든 고려되지 않는다.
마치 그런 명제를 가지고 있는 듯한 기묘한 경기력을 보여준다.
덕분에 재미가 있는 건 사실.
실력이 뛰어난 팀인 것도 사실.
하지만 이런 외나무다리에서는 SKY T1이 보다 듬직하게 느껴진다.
─SKY 테이커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팬들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SKY T1이 네 번째 세트를 대선전.
EDC를 잡고 승점을 가볍게 따왔다.
-우리횽!
-캬~ 센빠이!
-우리 혀기 하고 싶은 거 다 해~
약속된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기뻐하고 있어서만은 안될 승리다.
이제 고작 한 점 따라잡은 것에 지나지 않다.
〈한숨 돌렸습니다. 한숨 돌렸어요. 5전 3선승제이기 때문에 1점 더 내주는 순간 끝이었거든요?〉
〈맞습니다. SKY T1이 큰 역할을 해줬습니다.〉
해설자들이 누구보다 잘 안다.
누구보다 절실하기도 하다.
자리가 참 가시방석이야.
경기장에서는 수만 중국인들의 응원이 쏟아지지.
지고 있는 상황에서 뭐라도 말을 짜내야 하지.
심적 압박이 대단할 수밖에 없다.
진심으로 한국의 승리를 누구보다 응원한다.
그렇기에 이번 네 번째 세트가 걱정된다.
그 걱정을 날려 버려주는 미소 한 방.
와아아아아-!
중국이다.
경기장에 찾아온 한국팬들!
당연히 몇 명은 있겠지만 절대 다수는 중국 사람들이다.
롤드컵도 아니고 리프트 라이벌즈 보려고 해외까지는 오는 팬들은 드물다.
우리나라가 워낙 직관 문제가 조성이 잘 안되어 있기도 하다.
LMS팬들의 역응원을 포함해도 이만한 환호는 불가능하다.
-레전설 보여주나?
-와, 웃고 있어
-팀이 지고 있는데 웃고 있어요!
-주인공의 등장인가?
전세계적으로 이미 어마어마한 인기를 쌓았다.
오히려 한국에서 유독 까이는 감이 있다.
레전설은 자타가 공인하는 스타급 선수.
그런 그의 얼굴을 카메라가 비친다.
불안한 기색은 커녕 미소를 띈다.
여유만만하다는 사실을 과시한다.
─4세트 큰 그림 보였다!
레전설 하드 캐리
돼지쉑 멱살 땀
코돈빈 '강타'
└기승전 강타 무엇?
└현실감ㅋㅋㅋㅋㅋㅋㅋ
└그것만은 안돼!
└말이 씨가 된다는데 이 새끼가……
여전히 경기력이 미쳐 날뛰는 선수다.
그 개인에 한해서는 실망한 적이 없다.
〈변수는 있지만, 그 변수를 뛰어넘고도 남을 캐리력을 보유한 선수죠.〉
〈레전설해버리는 거 아닙니까? 보여줘야 돼요!〉
〈지금쯤 아마 커뮤니티 게시판들이 난리 났을 겁니다. '그 미소' 라고…….〉
스타크래프트 시절 김영호의 미소가 떠오르는 광경이다.
안 그래도 무거운 어깨.
모든 한국 팬들의 기대와 관심이 쏠린다.
* * *
설마설마 했다.
상대하는 팀들이 무척 강한 것도 아니고.
적어도 1, 2세트에서 한 번은 이겨주겠지.
그리고 SKY T1이 설마 트롤이야 하겠어?
'트롤은 하지 않았는데.'
이미 트롤을 당한 상태였다.
GOO Tigers 쟤네들은 일부러 지나?
교수님이라서 실전이 원래 약하나?
마음 같아서는 묻고 싶을 정도다.
워낙 어이가 없다 보니 실소가 나온다.
그 장면이 하필 카메라에 잡혔나 보다.
현장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시발, 이런 기분이었구나…….'
이게 참 세상일이라는 게 겪어봐야 아는 법이다.
얼핏 보기에는 무언의 자신감.
김영호인데 당연히 이기지.
그렇게 생각했던 장면의 진실을 깨닫게 된 기분이다.
팀이 지고 있었을 때 어째서 웃었을까?
기묘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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