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9
<-- 왕 샤오찬 -->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인생 마음대로 사시는 왕 샤오찬.
그동안 쭉 고민하고 있었는데 인정하려 한다.
'설마설마 하는 건 그냥 한다고 보는 게 맞겠네.'
얼마 전 어처구니 없는 부탁을 들었다.
프로게이머를 하고 싶어.
지나가던 초딩이 말한 거라면 '귀여운 녀석 어디 한 번 재주껏 굴러보려무나'.
그런 인성질까진 안 해도 웃고 말 것이다.
하지만 이 형은 왠지 진짜로 할 거 같아
농담이 아니라 정말 해버릴지도 몰라.
여러가지 이유를 대면서 말렸다.
진심으로.
정색하고.
"제 마음이 아직도 전달이 안됐어요?"
"와……, 잘하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잘하는 줄은 몰랐다. 20분? 25분?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어~."
리프트 라이벌즈에서 치른 첫 경기.
이기긴 이겼는데 과정이 참 신선하다.
딱히 대퍼를 했다는 게 아니라.
'형이 왜 거기서 나와…….'
상대 선수가 낯이 익어!
마치 얼마 전에 같이 밥을 먹었던 거 같아.
착각이 아니었길래 짜증 나서 즈려밟았다.
말렸으면 적당히 알아 들어야지.
너무 심하게 터트린 감도 있다.
그래서 근황 좀 보러 들렀더니.
"스크림이랑 완전 다르더라. 상대가 너라 그런가?"
"당연히 다르죠."
"크~~ 진짜 미치게 잘해. 안 느껴봤으면 이 정도인지는 몰랐을 거야."
내가 댁 경험담을 들으러 온 건 아닌데.
오히려 트라우마를 주려고 노력했던 건데.
가해자를 상대로 감명 깊은 경험이었다며 늘어놓는다.
'만약 내가 농구 선수들 사이에서 경기를 한다.'
잠깐 상상해보았다.
체격도 크고, 움직임도 클 테니 일단 압도 당할 테지.
그리고 볼 움직이는 속도도 페이크도 장난 아닐 거야.
경기 내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힘들 것이다.
아마 이 형도 비슷한 느낌을 느끼지 않았을까?
대충 틀리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근데 왜 이렇게 굳세요 형은? 인생 경험이 많아서 체력이랑 저항력도 높나."
"일부러 죽인 거야……?"
"그냥 대놓고 노렸는데."
그 정도로 죽이면 웬만한 프로게이머들도 트라우마 생긴다.
증상이 깊고, 얕고 개인 차이가 있을 뿐.
이를 테면 지난 결승전에서 황금수염도 뻘플을 썼을 정도다.
하지만 이 형은 딱히 프로게이머가 아니다.
그냥 순수하게 올~ 프로게이머들 개쩜!
이 이상의 감정은 느끼지 못했을지 모른다.
"솔직히 장난이 아니잖아요. 선수들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
"나도 장난 아니야~."
맞다.
장난스럽기 그지없는 형이지만 인생을 장난으로 사는 사람은 아니다.
천상의 주민으로서 서민들을 장난감처럼 바라본다.
그런 오만과는 의외로 거리가 있다.
사람을 보는데 딱히 선입견을 가지지 않았다.
학벌, 외모, 재산 다 두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본다.
이 형이 했던 말 중에 하나 인상 깊었던 말이 있어.
〈난 친구를 만날 때 돈이 많든 적든 신경 쓰지 않아. 어차피 다들 나보다 돈이 없으니까.〉
잘난 척을 한다기 보다는 자신이 잘났다는 것을 확실하게 아는 사람이다.
자신도 틀릴 수 있다는 걸 아는 인간이다.
자존심은 있지만 교만은 아니다
"내가 차마 쪽팔려서 말을 안 했는데."
"말하지 마요 그럼."
"너 나가자마자 연습생으로 들어갔다."
"……."
이 형이 딱히 유별난 게 아니다.
중국에는 취미로 게임단 차린 푸얼다이가 많다.
어지간히 유명한 팀들은 구단주, 혹은 후원자가 푸얼다이라고 봐도 될 정도다.
자신이 돈이 많고 게임을 좋아해.
그래서 프로게임단을 하나 차렸어.
그런 부자가 있으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뭘까?
바로 프로게이머랑 노는 거다.
듀오 해야지~.
버스 타야지~.
어이가 없긴 한데 정말로 그런다.
자신의 팀에서 선수들을 소집해서 같이 논다.
그런데 그게 일반 게임 한두 판 즐기고 끝이냐?
그 정도로 끝날 거면 수백억 하는 프로팀을 인수하지도 않겠지.
'풋볼매니저 하는데 1~2시간 하고 뿌듯하게 끝내진 않을 거 아니야.'
게이머인 이상 끝장을 본다.
돈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라고 특별히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승부욕이 강해서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하려고 본다.
"구단주들 중에서는 내가 제일 잘하잖아. 인정하지?"
"자랑은 아니지만요."
소위 말하는 접대롤.
솔직하게 한 적이 있다.
다들 티어가 은근히 높아서 최소 다이아5다.
'반 정도는 대리 티가 팍팍 났지만.'
티어에 대한 욕심이 있는 건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대리라는 게 성행하는 이유일 것이다.
달린 이상 과시욕은 누구나 있거든.
노력을 해도 다이아 티어에 가기 어려워.
그 경우 듀오를 하거나 가끔 대리를 맡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내 눈앞에 있으신 분은 나를 닦달해서 다이아3까지 갔다.
"형은 근데 그 이상은 진짜로 안돼요. 딴 게 아니라 나이 때문에."
"코치들은 그래도 마스터까지는 가능성이 있다고 하던데."
"있다고 하죠! 없다고 할까요 그럼? 형한테? 돈줄한테?"
"야, 돈줄은……."
아니, 현실이잖아.
윗사람한테 함부로 못 대하는 건 만국 공통이다.
심지어 푸얼다이끼리는 다 커넥션이 있어.
찍히잖아?
LPL에서는 취직할 생각을 말아야 돼.
"다들 너처럼 해도 상관없는데 나는."
"저는 여차하면 튈 데가 있으니까 이러는 거고. 보통은 담력이 안 받쳐주죠."
아무튼 이 형이 팀에 연습생으로 입단했다.
와~ 한국 드라마 좀 보셨나 봐요.
재벌 2세가 사원으로 입사하잖아.
딱 그런 느낌이다.
구단주가 연습생이야.
군대로 따지면 대대장이 이등병으로 온 거지.
"재밌었겠어요 정말."
"다 아니까 재밌진 않았어. 눈치 보이고 그랬지."
그걸 아시는 분이 그래쪄여?
하지만 정말로 눈치가 보였으면 3개월씩은 안 했겠지.
연습생 생활 하다가 신참 들어오면 개꿀잼일 거 아니야.
나 너보다 한 달 먼저 왔는데 반갑다!
어, 진짜?
우리끼리 하는 말인데 감독 새끼 존나 띠껍지 않냐?
어, 어…… 연습 시간 때 괜히 갈구더라.
"나중에 정체 밝히면 개재밌긴 하죠."
"그건 좀…… 너무 사악하지 않아?"
"……제가 그랬다는 게 아니라 그런 예가 있다는 겁니다."
한국 군대 고유의 전통이다.
나만 했던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형이 정색할 정도면 좀 심한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한 번 해볼 걸 그랬다. 참 너는 사악한 쪽으로는 머리가 잘 굴러가."
"연습생 더 하게요?"
"아니, 아니. 할 만큼 했지. 그래서 지금 데뷔를 해보려는 거잖아."
진심으로 프로게이머를 한 번 해보고 싶다.
그러니까 이게 쭉~ 활동을 하겠다.
이름을 떨쳐 보겠다!
그런 게 아니라.
"딱 한 판만 이겨보고 싶어."
"그게 얼마나 말도 안되는 요구인지 겪어보지 않았어요?"
"너희팀 정도면 힘들지. 근데…… 약한 팀도 있을 거 아니야."
그러니까 결국 이 형은 말하는 거다.
어떻게 좀 안되겠냐고.
깊은 한숨으로 심호흡을 대신한다.
"그럼 처음부터 나 있을 때 말하던가. 사고를 치고 말하면 치우기가 더 곤란하죠."
"너 존나 갈구잖아."
"그건 그래요."
그게 내 스타일인데 뭐.
중국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원래 학교에도 호랑이 선생님 있고, 착한 선생님 있고, 조용한 선생님 있고 그런다.
'그리고 또라이 한 명은 꼭 있지.'
나중에 생각하면 또라이가 가장 기억에 남아.
나는 남들의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학생들의 올바른 지도를 위해서라면 악마가 될 수 있는 그런 선생님.
'오랜만에 가볼까.'
IC 게임단의 숙소에.
* * *
왕 샤오찬.
나는 이 형의 돌발 행동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하는 편이다.
'긍정적으로 평가할 여지도 있다는 소리야.'
사업하는 사람이 해당 분야에 수박 겉핥기 식으로만 안다.
예를 들어 E-스포츠판.
단순히 게임 해서 이기는 대회 아니야?
딱 그 정도만 알고 있다면 실패의 지름길이다.
대전 게임에서 비싼 캐릭터 구매하는 거랑 뭐가 달라.
2억원에 샀다고 2억원값 해줄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실제로 많은 게임단에서 이로 인해 고충을 호소한다.
아니, 한국에서는 그렇게 잘하더니.
막상 중국 오니까 완전 똥차네.
'그래서 내가 나섰던 거고.'
이를 일찌감치 알아냈다.
어찌 알아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간에.
나라는 컨설팅을 구한 이유고 IC라는 팀을 돌봐줬다.
"오랜만이다."
"헐……."
IC 게임단의 숙소에 도착했다.
당시부터 알고 지내던 팀원 한 명이 벙찐 얼굴로 바라본다.
"나 없을 때 엔터키 다시 조립해 놓은 거 아니지?"
"아, 형. 저 프로 데뷔하고 완전 달라졌어요. 옛날 더사이 아니에요."
도착하자마자 바로 불심검문에 들어간다.
가장 문제가 많은 선수의 연습실 자리를 둘러 보고 있다.
'일단 애들 개념부터 잡아야지.'
프로게이머라는 다섯 글자 빼고 보면 그냥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 애들이다.
딱 개념 없기 좋을 나이다.
관리가 진짜 필요하다.
더사이는 그중에서도 요주의 대상이다.
솔로랭크에서부터 타자 치는 꼬라지가 사람이 아니야.
내가 큰 마음 먹고 사람 만들어준 대표적인 한 명이다.
"좋아. 엔터키 뽑아 놨네. 숨겨둔 예비분은?"
"숨겨둔 게 아니라 그냥 필요할 때 잠깐 쓰려고……."
"내놔."
너는 그냥 타자를 치지 마.
뭔가 치고 싶으면 핸드폰으로 쳐.
하도 솔로랭크에서 싸우는 일이 비일비재 하길래 엔터키를 압수했다.
'한 번쯤 생각하고 말하는 습관을 길러야 돼.'
감정의 노도에 휘말려서 일단 치고 보고.
그러니까 자꾸 별별 사건이 생기는 거지.
얘는 철 들기 전까지는 그냥 통제를 해야 한다.
"최근엔 막말 관련해서 사건 없더라? 잘 하고 있어."
"말했잖아요~ 저 옛날 더사이 아니라니까요?"
"막말 대신 탈주를 한다고 장안에 소문이 자자해."
"……."
요즘 한국에서 더사이 별명이 뭔 줄 알아?
별명이 무려 한 줄이다.
「더사이님이 게임을 종료했습니다!」
게임이 불리하거나 지가 빡치면 탈주한다고 붙은 별명이다.
타자를 못 치니까 이제 뭐 한 단계 진화하나?
내가 듣고 깜짝 놀랐어.
"요즘 한국 사회가 안타까운 게 체벌 문화가 사라졌다더라."
"당연하죠. 요즘은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 다 말로 해요."
"하지만 여긴 중국이지."
"……."
꼬우면 법에 호소해.
근데 정경유착이라고 들어봤지?
구단주 형이 공안이랑 아주 친해.
'신고를 한다고 그게 먹힐 거란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야.'
원래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법이다.
그렇다고 내가 누구를 때리고 그런 스타일은 아니다.
괜히 때리면 서러워져서 반항기도 돋아나고 그러는데.
"잘 하자. 야, 잘 하자고."
"잘…… 할 테니 아악!"
"많이 뭉쳤나 보네."
어깨를 조금 주물러줄 뿐이다.
이게 당하면 진짜 아파.
하지만 그을 수는 없어.
'그러면서도 친숙함이 느껴지는 방법이잖아.'
상병장쯤 되면 알아서 습득한다.
남은 군생활 연장되기 싫으니까.
얘들 다루는 법이야 어딜 가든 매한가지다.
"아…… 근데 형 왜 왔어요?"
"내가 못 올 곳 왔어?"
"아니, 그게 아니라 왜 오셨나 해서 헤헤."
고삐 풀린 망아지들이다.
한국인이든 중국인이든 마찬가지다.
더사이처럼 외지 왔다고 어깨 무거워지는 애들도 실제로 많다.
'까메오가 특히 문제였지.'
아무튼 인성과 기강 관련된 문제는 진작에 다 해결했다.
지금 IC에 큰 문제는 없어.
더 발전하고 말고는 지들 하기 나름이다.
그럼에도 들린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얼척이 없지만 반드시 하고 싶다는데.
구단주의 억지를 들어주기 위해 왔다.
"다른 애들은 어디 있냐?"
"경기 관전하러 갔을 거요."
"넌."
"저는 그냥 개인 연습하려고 헤헤."
연습은 개뿔이 쳐놀려고 왔겠지.
하지만 중국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
우리나라처럼 단체니까 무조건 같이 해야지.
이런 문화가 의외로 없다.
정말 의외긴 한데 현실이 그러하다.
한국에서 저러면 트롤이지만 중국에서는 이해해줘.
"돌아오는데 시간이 좀 걸리겠네."
"나중에 한 내일이나 다시 오시는 게……."
"오기 전에 끝내 놓고 싶으니까 책상 들어서 내가 말하는 위치에 옮겨 놔."
"네?"
"그럼 내가 하리?"
팀 연습은 온라인과는 다르다.
단기간에 팀의 합을 새로 맞출 방법.
오랜만에 잠깐 나라를 팔아먹어야 할 듯하다.
========== 작품 후기 ==========
내일 3연참을 올릴게요
다음 화의 끝이 애매한 바람에
올리는 시간은 아마 오전 7시가 될 겁니다
엊그제 말씀 드렸던 반반무 이벤트 규칙상 어쩔 수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