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설의 재림-387화 (387/443)

###387

<-- 왕 샤오찬 -->

작년 롤드컵이 끝난 직후.

그러니까 2014년의 11월 말이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한창 바쁜 때였다.

'그때는 윈터 시즌이라는 게 있었으니까.'

없는 나라도 있고, 있는 나라도 있다.

이를 테면 한국은 윈터 시즌이 존재했다.

없는 나라들도 이름만 다른 대체체를 가졌다.

하지만 게임사의 정책 방향에 따라 폐지.

선수들의 휴식기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보면 고마운 배려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프로게이머는 하루 쉬고 다음 날 출근하는 일반적인 직장이 아니야.'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 몇 년이나 한다고.

한창 전성기일 때 빠듯하게 활약해서 땡겨야지.

나만 가지고 있는 생각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나로서는 괜히 더 조급하다.

롤이 E-스포츠화 된지 3년 됐는데 나는 3년 차에 데뷔했다.

우승도 하고 잘 나가는 건 좋지만 롤판이 망하면 뭐 먹고 살아?

그러던 차에 괜찮은 기회가 왔다.

중국에서 프로게임단 컨설팅 인재를 구한다.

겸사겸사 인터넷 방송 플랫폼도 키울 예정이다.

'하비가 중국 시장에 욕심이 좀 있더라고.'

토이치TV가 이 분야에서 업계 선배다.

중국 기업과 협력 관계를 가질 생각이다.

그러니까 내가 파견되어서 도와주면 고마울 거 같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비의 부탁이니 들어줬다.

중국에서 외노자 생활을 하게 된 계기였다.

중국 내의 치열한 경쟁 사회에 뛰어들어 보자.

"까고 보니 부자들의 돈 놀이였죠."

"에이, 풋볼매니저 같은 거지."

"형은 그걸 현실에서 하잖아요!"

어차피 실직 기간이니 돈이나 벌어야지.

그런 느낌으로 중국에서 반년간 활동했다.

그렇다고 막 팀에 속해서 경기를 뛴 건 아니고.

'중국은 규칙들이 특수해서.'

하비의 설명대로 컨설팅에 가까웠다.

게임단을 꾸리고, 팀을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보람도 느끼고 그랬는데 생각한 것과는 사정이 달랐다.

나는 약간 성장 드라마 느낌을 원했다.

재벌 2세가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사업 컨텐츠를 구상해 자신의 회사를 키우는 그런 건 줄 알았다.

'성장 드라마는 개뿔이.'

이미 돈이 많아.

그것도 억 단위가 아니라 조 단위로 있어.

참고로 10억, 100억, 1000억 다음이 조다.

"나름 진지하게 하는 거야. 취미욕도 채우면서."

"그래요. 롤판의 만수르죠."

"만수르 그분 만큼은 아니지! 조금 부족해."

조금 부족하다는 거 자체가 참 기묘한 표현이다.

지금 내 눈앞에 만수르보다 조금 부족한 사람이 있다.

말도 통하다 보니 동네형 같은 느낌이라 가끔 까먹긴 하는데.

"형 덕분에 이제 먹고 살 걱정은 없는 거 같아요. 망해도 나중에 PC방 창업은 하겠지."

"그걸로 뭐 어떻게 먹고 살아~. 페라리 몇 대 박살 내면 남는 것도 없겠다."

"비유의 대상이 참 어메이징하네요."

원래 이런 느낌의 형이다.

상식의 핀 포인트가 어긋났다.

부자 동네의 접촉사고 기본은 페라리, 부가티, 람보르기니일 테니 그럴 수도 있는 노릇이다.

아무튼 코돈빈이 위험하다.

"니 팬 겁나 많잖아. 똥강아지팬도 그렇고."

"유리야."

"그래, 유리야. 한국 가서 잘 있어?"

유리야의 별명이다.

유리야도 중국에 잠깐 데리고 왔었다.

그때 방송 플랫폼 계약을 하면서 일면식도 틔었다.

이 형이 은근히 유리야 팬이야.

'유리야팬이 은근히 많긴 해.'

나랑 합동 방송만 하다 보니 본인은 잘 모를 뿐이다.

중국어도 말만 할 줄 알지 읽을 줄은 몰라.

팬들이 뭐라 하는지 번역해줘야 안다.

그렇게 중국에서도 절찬리에 멍청했던 유리야.

한국에 돌아간 이후로 근황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코돈빈이 집적댔다는 이야기가 중국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퍼진 모양이다.

"그리고 결승전 크크…… 진짜 영입할까 이참에?"

"가지실래요?"

"지금 팀에는 좀 그렇고 2팀 하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약간 든다."

물론 코돈빈도 갈 생각이 전혀 없을 것이다.

코돈빈은 KTX의 프렌차이즈 선수다.

이를 테면 SKY T1은 테이커가 있지 않은가?

말하자면 팀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간판 스타다.

SKY T1에 비하면 모지란 감은 솔직히 있네.

그래도 의리가 있으니 웬만하면 안 갈 거다.

'이 형이라면 돈으로 의리를 파탄낼 수도 있긴 해.'

실제로 그런 짓을 저지른 사람이다.

지금 내 앞에서는 굉장히 재밌고 유쾌한 형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아닐 수 있다.

전형적인 인생 마음대로 사는 재벌 2세다.

"딴 건 몰라도 형이랑 밥 먹으면 혀가 업그레이드 되는 기분이라 좋은 거 같아요."

"여기 맛있지? 내 식당이야."

"여기 말고도 많겠죠."

"당황도 안 하네?"

뭐 한두 번이어야지.

여기도 있고, 다른 데도 있겠지.

맛있으니까 자기 식당으로 샀을 수고 있고, 다른 식당의 쉐프를 연봉 배로 주고 빼왔을 수도 있다.

'부자들의 세계라는 게 익숙해지면 안돼.'

근데 혓바닥은 살짝 익숙해지고 싶긴 하다.

중국의 코스 요리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다.

무슨 요리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맛있어.

이 형이랑 같이 다니면 매끼 이런 거 먹는다.

가끔 간단하게 먹을 때도 색다른 맛을 느낀다.

하다못해 과일을 먹어도 이 세상 과일이 아니야.

"그냥 우리팀에 와서 롤드컵 우승 한 번만 해줘. 하고 싶은 거 다 해준다."

"형, 저 그럼 진지하게 귀국 못해요. 이미 북미도 한 번 해버렸는데."

"까짓 안 하면 되지~. 중국에서 살아. 평생 책임져 줄게!"

진짜 돈 막 쓰는 형이다.

그렇다고 나쁜 사람은 또 아니다.

토사구팽, 달면 쓰고 쓰면 뱉는다.

폼 떨어지고 안 좋은 일 생기고 그랬다고 잘라내고 그러진 않는다.

'그래서 친하게 지내는 거기도 하고.'

사실 안 그래도 친하게 지내긴 할 거다.

나는 딱히 퇴물이 될 생각이 아직 없으니까.

적어도 롤판 망할 때까지는 곰국처럼 우려먹어야지.

어디 가서 떵떵거리진 않아도 돈 부족해서 고민하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다.

지금 내가 먹고 있는 이 전복찜.

전복에서 스테이크 같은 기분을 느끼기는 처음이야!

이런 것도 먹으면서 행복하고 싶다.

"일단 뭐 아시겠지만 저도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성적부터 내야 돼요."

"안쓰럽다 안쓰러워~. 그래도 언제 다시 올 거지?"

"기약 없는 약속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합니다."

딱히 매정한 말이 아니다.

당장 나도 앞길이 어떻게 될지 예측이 안 간다.

갑자기 하늘에서 우르르 꽝꽝! 뭔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알아.

'리얼루다가.'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럴 만했구나.

납득할 여지는 생겼지만 여전히 어떻게 풀지는 미지수다.

이번 리프트 라이벌즈 기간 동안 심사숙고 해볼 요량이다.

고민이 있는 건 나 뿐만이 아닌지.

왕 샤오찬이 심각해진 얼굴로 독한 백주를 쭉 들이킨다.

"점심부터 뭐 그런 걸 마셔요. 화이트 와인 잘 어울리는데."

"형이 고민이 하나 있다. 들어줄래?"

"들어는 줄게요."

들어주는 정도야 뭐 어렵겠는가?

그런데 이번에는 양보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안 들어주면 진짜로 삐질 거 같은 그런 분위기.

"팀 옮기라는 말도 안되는 요구만 아니라면야……."

"분명 말했다. 그치?"

"그리고 계약 사항과 사회적 물의를 빚는 것만 아니면……."

"안 빚어. 안 빚어 충분히 상식 내야."

큰 그림 하나 정도 그려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부탁을 들어주면 나중에 내 부탁도 들어줄 거 아니야.

구구절절 조건도 붙였고, 상식 내라면 힘들 것도 없지.

한 가지 까먹고 말았다.

수십억원을 페라리 차사고 단위로 센다.

상식의 핀 포인트가 제대로 어긋난 인간이다.

"나 프로게이머 하려고!"

이 형이 드디어 정신줄을 놨나 보다

* * *

리프트 라이벌즈.

전세계가 참여하는 대규모 스케일은 아니다.

롤드컵과 컨셉이 겹치는 대회를 또 만들 이유는 없을 테니까.

실력대가 비슷한 세 지역끼리 묶인다.

한국 LCK의 경우 중국 LPL과 대만·홍콩·마카오 LMS다.

사실상 한국과 중국의 대결이 아니냐는 평이 짙었으나.

─FW 카사님이 GOO 조토진님을 처치했습니다!

상상치도 못한 결과가 나오고 있다.

LMS의 신생팀 플래시 울프가 한국의 강호 GOO Tigers를 상대로 밀어붙인다.

무려 카정에 의한 솔로킬이 나왔다.

〈카사 선수의 감이 매서웠습니다. 너 유령 먹으러 올 거잖아? 거미줄을 펼치고 있다가 잡아 먹었어요!〉

국제 대회답게 건너와 있다.

LCK의 정규 해설인 클끼리의 말대로 매서웠다.

상대 정글이 어디로 올지 사전에 예측하고, 대기하고 있다가 생존기가 빠진 틈을 제대로 노렸다.

─FW 카사님이 학살 중입니다!

정말 뜻밖의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정글 차이를 바탕으로 플래시 울프가 선전하고 있다.

물론 확 무너진 것도 아니고 한국 특유의 운영을 살린다면 모르는 일이지만.

〈라인전 상황도 딱히 앞서는 게 아니라 진짜 모르겠는데요?〉

〈이거 지면 LCK 첫 패배입니다. 긴장해야 돼요 GOO Tigers!〉

-조토진 이노오오옴! 교수님 특강 빼먹었구나

-아니, 이건 그냥 쟤네가 잘하는데?

-대만팀도 생각보다 꽤 하네……

상당히 불안하게 진행되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

듣도 보도 못한 대만의 팀 하나가 한국의 강팀 GOO Tigers를 잡아버렸다.

〈물론 생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적인 기준에서 저평가 받을 팀은 아니거든요?〉

〈리프트 라이벌즈에 나왔다는 것 자체가 각 지역을 대표하는 팀들 아니겠습니까~?〉

진용준 캐스터의 외침대로 리프트 라이벌즈는 각 지역 강팀들의 축제다.

스프링 시즌과 섬머 시즌의 순위를 토대로 1~4위 팀들이 대표가 된다.

플래시 울프 또한 LMS에서 인정 받는 강팀 중 하나라는 소리다.

〈LMS의 새로운 맹주입니다. 플래시 울프, LMS 섬머 시즌의 우승팀으로 무시해서는 안될 저력을 갖춘 팀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네요.〉

-그놈의 맹주

-클끼리 언어 번역: 각 지역의 맹주=내수용팀

-내수용 실력은 아닌 듯? GOO Tigers 잡을 정도면 잘하는 거지

이미 보여주었다.

너무 큰 코 세우고 있다가는 다칠 수 있다는 걸.

그룹 스테이지에 불과하긴 하지만 신선한 충격이다.

〈등골이 서늘한데요? 요즘 국제 대회 성적이 그렇게 좋지가 않잖아요 LCK가.〉

〈불과 얼마 전까지 롤챔스를 진행했어서 잊을 수가 있는데 저희 지난 롤드컵도, IEM도 속된 말로 죽 쒔습니다.〉

김은준 해설의 말대로 죽을 푹푹 쒔다.

준우승이라는 애매한 성적에 머물렀다.

누군가에게는 만족하고도 남는 자리일 수 있지만 한국에게는 아니다.

와아아아아-!

정말 만족스럽지 않아하고 있는 팀이 등장한다.

우승은 할 뻔했으나 결국은 하지 못한 KTX 롤러코스터.

한국의 자존심을 세워 달라고 한국 팬들은 분명 빌고 있다.

-경기장 환호 미쳤는데?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갔나

-ㄴㄴ 리프트 라이벌즈 정도에는 안 가지

대부분 현지 팬들이다.

그러니까 중국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환호성.

〈레전설 선수의 인기가 현지에서도 하늘을 찌르네요.〉

〈글로벌 스타죠. 토이치TV 소속으로 익히 활약상을 보였고, 정확하진 않지만 중국에서도 활동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데이터에 근간한 훌륭한 설명이다.

하지만 고작 데이터로 알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폐쇄적인 성향이 짙은 중국은 정보 공유가 잘 안된다.

구글도, 유튜브도 자기들이 따로 만들어 쓸 정도다.

자세히 알려지지 않은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물론 유명팀에 대한 정보는 별개다.

〈중국의 3위팀으로 출전한 IC입니다. 시즌2부터 보신 팬분들은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에요.〉

중국의 유서 깊은 강팀이었다.

시즌2 이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강팀들이 몰락하는 건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그러다 작년 구단주가 바뀌게 됐다.

새로운 구단주의 대대적인 투자가 빛을 발했다.

스프링 시즌 우승을 차지하는 등 새출발을 하고 있다.

다른 나라 일이니 잘은 모르겠지만 뭐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그 나라에도 강팀이 있고, 약팀이 있고, 사건사고가 있겠지.

한 가지 만큼은 이해가 잘 안돼서 문제다.

-저 선수 뭐지?

-나이 좀 들어 보인다

-왕 샤오찬? 듣도 보도 못했는데

-어, 나 저 사람 알아!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는 선수 한 명이 이목을 끌어모은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추천과 코멘트& 원고료 후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