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설의 재림-380화 (380/443)

###380

<-- 신개념 해설 -->

콜드 브루 커피(Cold Brew Coffee).

일반적인 커피는 뜨거운 물을 부어 단시간에 커피액을 추출한다.

하지만 콜드 브루 커피는 차가운 물을 사용해 아주 천천히 추출 시간을 가진다.

길거리에 있는 카페 대부분에서 이런 콜드 브루 커피를 판다.

그렇기에 착각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일반 카페에서 파는 건 과정을 간략하게 줄인 침출식이다.

만드는 과정이 냉차와 흡사하다.

병에 넣고 간단한 방식으로 우린다.

왕린이 하는 점적식이야 말로 한 방울, 한 방울 인내가 필요한 전통적인 기법이다.

"이 티끌 한 점 없는 순수함. 국내 어느 커피 전문점을 가도 지금 내가 손에 들고 있는 텀블러만 못할 거야!"

순수하게 진심으로 내뱉는 감탄사다.

SKY T1의 감독이며 권위 있는 커피매니아인 박다균.

들고 있는 텀블러를 애지중지 내려놓으며 말을 잇는다.

"빈말로 하는 말이 아니야. 오늘 이상의 완벽한 커피는 내 인생 마셔본 적이 없어."

"내일 또 마실 텐데요 뭐……."

그날 우린 커피의 맛은 컨디션을 의미한다.

컨디션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소리다.

박다균의 극찬에도 왕린은 덤덤하다.

커피 물조절 장인.

그 명성은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맹연습을 한다고 커피를 소홀히 한 게 아니니까.

두 가지를 양립한 것도 아니다.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만류귀종.

경기력의 극에 이르자, 커피의 극에 이르자 자연스레 뒤따라온다.

'하지만 끝이 있다는 생각은 잘못됐어.'

핸드 드립 커피의 완벽한 물조절은 오직 왕린만의 것이다.

너무 완벽하기에 더 연습할 것도 없다.

그야말로 정점으로 이뤘다.

짧은 착각의 늪에 빠져 있었다.

커피는 결국 한 잔의 카페인일 뿐이다.

완벽한 커피를 우려낸다고 그날 경기를 반드시 승리하는 건 아니다.

'카페인에 취해 정작 중요한 것을 보지 못했지.'

한동안 방황했다.

이토록 완벽한 커피를 우릴 수 있음에도 어째서 자신은 패배한 걸까?

받아들이지 못하고 남탓에 투정에 추함만이 가득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들었다.

커피가 너무 뜨거워.

왕린은 짜증을 내기에 앞서 들고 있던 커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맛있게 우려졌음에도 뜨거워서 마실 수가 없다.

'냉정함을 잃었던 거야.'

자신의 상황과 똑 들어맞지 않은가?

그날 부로 왕린은 마음을 다스리기로 했다.

이에 가장 합당한 수행법도 만들어내는데 이른다.

바로 차가운 커피를 우리는 것이다.

콜드 브루는 천천히 한 방울씩 우러난다.

그 긴 과정을 보고 있으면 잡생각도 훌훌 날아간다.

결정적으로.

'콜드 브루 커피는 카페인이 적어서 건강에도 좋아!'

완벽하게 우려낸 콜드 브루는 고작 한 잔의 카페인이 아니다.

용량 대비 카페인도 적고, 맛은 비교할 수 없게 깔끔하다.

콜드 브루의 완성도는 나날이 발전한다.

"오오, 천사의 눈물……! 감격스러운 맛이야."

"감독님 저도 한 입만요."

박다균 감독이 테이커에게조차 한 입도 안 주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시간만 무려 한나절.

12시간 가량이 걸리는 아주 귀한 커피다.

왕린은 한술 더 떠 24시간 저온 숙성까지 시킨다.

기다림의 미학은 안 그래도 우러난 풍미를 극대화한다.

커피 물조절 장인의 극의가 박다균의 텀블러 안에 담겨있다.

'누구처럼 엔터키를 뽑을 필요가 없어.'

마음과 건강을 다잡자 실력은 상승했고, 잔실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지금의 자신을 막을 수 있는 적은 존재하지 않아.

마음속 확신은 결코 자만이 아니다.

─소환자의 전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흔들림 없는 눈빛.

왕린의 눈동자가 불타오른다.

* * *

첫 번째 세트가 시작했다.

SKY T1 대 KTX 롤러코스터의 결승전.

양팀 모두 스타급 선수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그러다 보니 초점이 갈린다.

과연 승부는 어디에서 갈릴까?

해설자들은 주요 관전 포인트를 탑라인으로 보고 있다.

〈왕린 선수가 T1 S팀에 있을 때와는 아예 다른 선수가 됐어요.〉

〈그때는…… 팬들 사이에서 혹시 바리스타로 고용된 거 아니야? 그런 농담도 있었을 정도죠. 물론 농담입니다.〉

-커피물조절장인이 또!

-클끼리 드립 욕심ㅋㅋㅋ

-세체바는 인정하자너~

프로게이머 중 가장 커피를 잘 탄다.

그 정도가 아니라 이미 바리스타 업계에서는 공공연하다.

세계 최고의 커피 물조절 장인이다.

어떻게든 모셔와야 하지 않겠나?

안타깝게도 현재 프로게이머로서 최정상의 자리에 올라섰다.

그런 왕린을 스카웃하려면 몇 억으로는 어림도 없다.

현재 진행되는 게임에서도 존재감이 엄청나다.

〈왕린이 킹인을 고통스럽게 압박하고 있습니다. CS 하나하나 허락 맡고 먹어야 돼요.〉

클끼리 해설이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카메라가 이미 이동해있다.

옵저버가 센스 있게 반응을 했다.

그런 게 아니라 너무 격렬해.

푸룽!

나무카이가 내뿜은 파동에 파이어뱃의 체력바가 움큼 파인다.

혹시 속박이라도 당할까 CS도 포기한다.

한참 쫄아 있다는 게 느껴진다.

〈하필 빅웨이브 타이밍에 다이브를 당해서…….〉

〈무사히 다 받아먹지도 못해요. 스킬샷 하나하나 맞을 때마다 심리적 압박이 대단할 겁니다.〉

빅웨이브 타이밍에 다이브.

탑솔러 입장에서 최악의 상황이다.

왕린이란 선수의 대단한 점은 그 타이밍을 만들어낸다.

상대가 못 봐주는 타이밍이니 빠르게 따자.

미리 정글러를 불러서 완벽한 설계를 해버린다.

물론 이 오더에 맞춰주려면 웬만한 선수로는 턱도 없다.

─SKY 뱅기님이 KTX 킹인님을 처치했습니다.

정글 그 자체.

現한국 최고의 정글이라 손 꼽히는 이유가 있다.

KTX의 코돈빈이 당겨진 라인을 이용해 갱을 시도했으나.

〈온지도 몰랐어요. 아니, 언제 도착했죠?〉

〈뱅기는 너무 자연스러워요. 그냥 그곳에 있었다. 나는 어디에나 있다.〉

-크~~

-뱅 "The Jungle God" 기

-그냥 쓱~ 올라와서 쓱~ 킬하고 가네

타이밍을 딱 맞춘 뱅기의 역갱에 오히려 당하고 만다.

SKY T1이라는 팀이 가진 무서움이다.

탑과 정글의 호흡이 완벽하다.

─KTX 레전설님이 SKY 뱅기님을 처치했습니다.

물론 완벽함은 그 이상의 완벽함에 무너져 내린다.

레전설의 리픈도 어느새 도착해있었다.

점멸이 빠진 뱅기의 거미여왕을 깔끔하게 잡아낸다.

〈합류전 수준이…… 관전으로 보는 저희도 헷갈리는데 선수들은 얼마나 정신이 없을까요?〉

〈한국 최고라 손 꼽히는 두 팀 아닙니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박빙의 승부에요!〉

선수들의 판단이 살아있다.

능동적으로 예측을 하며 플레이한다.

시간 차가 아닌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수준 높은 오더 때문에 야기된 해프닝이다.

〈잠깐 소용돌이가 격하게 일었습니다. 일단 상황을 정리해보자면…….〉

클끼리 해설이 양팀이 주고받은 손익을 계산한다.

SKY T1은 킹인을 말리는데 성공했다.

KTX는 레전설이 킬을 먹었다.

-슼이 이득이네

-ㅇㅇ 미드 한 웨이브 흘림

-왕린은 여전히 막을 수가 없고……

선방을 한 거지, 손해를 안 본 건 아니다.

단순하게 1 대 1의 교환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미드에서 킴지훈의 카시오가피가 라인 이득을 보았다.

〈레전설도 그냥 올라간 게 아니라 텔레포트를 탄 거에요. 스펠 차이가 나기 때문에 미드 주도권을 가져오는 게 쉽지 않을 겁니다.〉

다른 선수면 모른다.

안정감의 대명사 킴지훈이다.

봇라인도 팽팽해서 기울어질 전조가 전혀 없다.

경기의 관점이 괜히 탑이라고 이야기가 오간 게 아니다.

나무카이 대 파이어뱃의 구도.

나무카이가 주도권을 잡는 순간 파이어뱃은 인생이 고달파진다.

그리고 이를 세상에서 제일 잘 굴리는 게 바로 SKY T1 왕린이다.

해설진이 그렇게 말하자 시청자들도 다 납득한다.

그렇게 모두의 관심이 탑에 팔린 순간.

〈아, 킬각이다.〉

〈네?〉

객원해설로 나와있는 달래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바로 옆에 있던 클끼리가 말실수했나?

커버해주기 위해 숨을 고른다.

고른 숨을 채 내뱉기도 전에.

─KTX 레전설님이 SKY 킴지훈님을 처치했습니다!

눈 뜨고 코 베이는 듯한 기묘한 킬각이 터져버린다.

튼튼했던 돌다리가 코앞에서 무너졌다.

〈엄청난 피지컬 컨트롤~~!〉

말을 잃은 해설진을 대신해 강빈 해설이 소리친다.

엄청난 피지컬 컨트롤로 솔킬을 따냈다.

그렇게 세 단어로 설명이 가능하면 오죽 좋을까?

〈아니, 와! 근거는 있었거든요? 카시오가피가 아직 패시브 100스택 못 채웠고, 여눈 하나 달랑 있어요. 굳이 찾자면 이런 근거가 있기는 한데…….〉

킬각은 결코 아니지 않느냐?

김은준 해설은 헷갈릴 수 있다.

롤 프로게이머 출신이 아니니까.

그런데 클끼리 너는 알아봐야지.

〈이건 저도 억울합니다. 항소할 거에요.〉

〈동의합니다. 카시오가피가 다이브 당할 각은 아니었어요.〉

〈궁극기도 그냥 쓴 게 아니라 엇박자 타이밍으로 심리전 잘 걸었거든요?〉

레전설은 텔레포트를 들었다.

그 덕분에 탑에서 이득을 보았다.

대신 라인전 손해는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손해 볼 생각이 전혀 없어.

그렇게 말하기라도 하듯 눈 깜짝할 새다.

리플레이를 통해 보자 조금은 파악이 된다.

〈엇박자로 쏘아진 메두사의 눈을 엇엇박자로 피했습니다. 이게 우연이 아니라면 심리전에서 세 수 앞선 거에요.〉

〈아니, 이게 아앜. 저기서 어떻게 다이브 할 생각을 하죠? 저는 그것부터가 약간…….〉

당황스러운 상황임에도 킴지훈의 대처는 침착했다.

상대를 잘 끌어들여서 억박자로 메두사의 눈.

이를 간발의 차로 피하며 칼춤을 춘다.

-또라이 새끼……

-저게 딱 원콤이 나네

-킴지훈 상대로도 레전설을 하다니ㄷㄷ

미묘한 거리 조절이 킬각으로 이어졌다.

결과론적인 관점인지.

그런 생각도 들지만 역시 아니야.

〈저는 더욱 더 놀라운 게 잠깐 잘못 들었나 했거든요? 달래씨가 킬각이라고 하셨어요.〉

〈예, 스턴만 피하면 견적이 나오고 성훈…… 아니, 레전설 선수 성격이면 들어갈 것 같아서요.〉

왜 묻느냐는 듯 의아해 보인다.

대장금의 어린 장금이가 떠오른다.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했던 거잖아요? 어린 장금이가 당황할 만하죠.〉

〈방금도 킬각이라서 킬각이라 말하셨을 뿐이에요. 저희가 어리석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뇨, 아뇨. 사람마다 킬각은 다른 거니까요.〉

-진짜 사람마다 다르긴 하다

-뭐지? 개꿀잼 몰카인가?

-레잘알…… 여신님 객원해설 신의 한 수네

사람마다, 성향마다 킬각이 다르다.

하지만 저걸 킬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몇 명 없을 것이다.

〈누가 보면 예능처럼 대본 짜고, 캐릭터 만들고 그런 거라고 볼 수도 있는데 크크크큭…….〉

〈지금 이 경기가 짠다고 나올 수 있는 수준의 경기가 절대 아니죠. 애초에 짰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거겠지만.〉

롤챔스의 결승전이다.

이벤트 매치 그런 것도 아니다.

현재 진행형으로 양팀이 미친 듯이 치고 박고 있다.

이 치열함이 짜서 나올 수 있으면, 안 짠 경기는 드래곤볼급 파워 인플레가 예고된다.

〈확실히 탑급 선수들은 저희 같은 평범한 사람과는 사고방식부터가 다른 거 같아요. 레전설 집중 마크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예…….〉

어색한 대화가 오간다.

이게 참 눈치가 보인다.

그냥 모른 척 눈 감고 있어야 했나?

왜 자신 빼고는 못 알아봤는지 모르는 눈치다.

하지만 집중 마크를 부탁하겠대.

그렇다면 말을 해도 되겠지.

〈이거 열렸습니다. 열렸어요. KTX 뒤도 안 돌아보고 빼야 돼요.〉

〈지금 나무카이 괴물이거든요? 속박 들어가면 무조건 죽어요!〉

〈전멸 각이네요. 다 죽을 거 같은데.〉

〈전멸까지느…… 아니이?!〉

봇라인에서 일어난 대규모 교전.

SKY T1의 주도로 열리는 각이었다.

서로 텔레포트를 합류해도 앞라인 싸움이 안된다.

─KTX 레전설님이 학살 중입니다!

그렇다면 뒷라인부터 썰어버리겠다.

점멸과 순간적으로 들어간 광역 스턴.

그 위로 불바다 미사일이 일직선으로 깔렸다.

멀쩡했던 SKY T1의 봇듀오가 삭제 당하고 만다.

딜러진이 죽자 한타의 그림도 180도 달라진다.

나무카이가 괴물이긴 한데 힘이 센 괴물은 아니야.

〈나무카이가 생각보다 많이 단단하네요. 제가 저 챔피언을 안 해봐서 버틸 줄 몰랐어요.〉

〈아앜크큭…… 지금 전멸을 했냐, 안 했냐가 문제가 아니거든요?!〉

-김은준 죽으려고 하네ㅋㅋㅋㅋㅋ

-여신님 사석에서 이런 느낌이었구나

-해설 인생 10년 차 이런 경험 처음이야!

신개념 해설과 함께 한다.

========== 작품 후기 ==========

저번에도 말씀 드렸지만 저는 커피에 관해 문외한입니다

저 정도의 커피맛을 뽑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까지는 몰라요

하지만 소설 속 커피물조절장인에게는 불가능이 없다고 생각하고 봐주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