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설의 재림-378화 (378/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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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개념 해설 -->

서울 올림픽 체조 경기장.

그냥 이름부터가 겁나게 넓어 보인다.

실제로도 넓어서 1만 5천석이라는 좌석 수를 자랑한다.

작년 롤드컵의 준결승전을 치렀던 장소다.

가끔 롤챔스의 결승전을 위해 대관하기에 E-스포츠팬들에게 친숙하다.

금일 오후 5시, 2015 섬머 시즌의 결승전이 이곳에서 치러질 예정이다.

현재 시각은 오후 2시.

경기가 시작되려면 아직 세 시간이나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르게 찾아온 팬들에 의해 인산인해를 이룬다.

"늦게 왔으면 좆될 뻔했는데?"

"와, 벌써부터 줄 선 거 실화냐……."

SKY T1 대 KTX 롤러코스터.

결승전이 성사됐을 때부터 화제의 온도가 딜 미터기를 뚫었다.

인터넷에서 워낙 말도 많고, 굉장히 놀라운 매치고 한다니까 한 번쯤 가보고 싶다.

그래서 평범한 E-스포츠팬 김철수는 큰 마음 먹고 친구들과 결승전 티켓을 끊었다.

괜히 관람 갔다가 실망만 하고 돌아오면 어떡하지?

오면서 나눴던 이야기는 까맣게 잊은지 오래다.

어디를 둘러 봐도 사람 밖에 안 보여.

컴퓨터나 폰으로만 볼 때는 몰랐던 현실이다.

앞으로 몇 시간만 지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올 거란 생각에 흥분했다.

"아링 포스터 세밀함 봐라. 집에 하나 가져가면 안되나?"

"저기 코스프레한 누나들도 있어!"

결승전이라는 게 경기 보고 끝! 이 아니다.

여러가지 행사와 이벤트를 겸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듯, 일찍 오면 좋은 볼거리가 널려있다.

물론 퀄리티는 조금 떨어진다.

아니, 가슴으로 느끼는 캐릭터인데 가슴이 없으면 어떡해!

다소의 아쉬움은 아무래도 상관없을 정도로 호기심과 기대심이 일행을 움직인다.

"캐릭터 상품 스토어…… 경기 시작 직전에 왔으면 때려 죽여도 못 샀겠다."

"미리 와서 다행이지."

"할 일도 없고 여친도 없는 백수 대학생이라서 정말 다행이야!"

결승전을 관람 온 김철수 일행은 감탄하고 있다.

별 거 안 하는 거 같은데 의외로 재밌어.

늦게 온 남들은 얻지 못할 기회다.

캐릭터 상품들을 쭉 살펴본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줄이 길게 서있지 않다.

여유롭게 마음에 드는 상품 한두 가지를 골라 담는다.

"근데 왜 포근한 마우스패드 같은 건 없는 거지?'

"만들면 떼돈 벌 거 같은데……."

"고퀄리티 피규어는 곡 남캐만 있네. 거지 같은 야흐오."

대체 왜 안 팔까?

대체 왜 안 만들까?

이 새끼들은 돈을 벌기 싫어서 환장을 한 걸까?

의문이 들긴 하지만 그런 욕하는 재미도 포함이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이들과 함께 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흥이 겨워진다.

"오늘 축하 공연 누구냐."

"걸즈데이가 와주나?"

"에이, 걸즈데이 비싸서 못 쓸 걸. 여자친구래."

설렁설렁 이벤트 행사장을 둘러본다.

코스프레 누나에게 사진을 부탁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세 시간이 지나간다.

정작 결승전은 관람하지도 않았는데 오늘 하루를 충실히 보낸 느낌이 든다.

가슴으로 느끼는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하시는 분들이 계신 덕이다.

철수 일행은 맛있어 보이는 푸드 트럭 앞에서 적당히 줄을 섰다.

곧 경기가 시작된다.

사람들도 처음 도착했을 때에 비하면 세 배, 네 배는 북적인다.

한 공간에 이토록 사람이 많으니 답답하기도 하지만 뭔가 친구 같은 느낌이라 편하다.

'오기를 잘했네.'

처음 오는 길이라 헤매기도 하고 그냥 집에 가서 볼까~.

생각했던 철수 일행은 어느새 즐기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했다.

어차피 대학교 방학.

여친도 없고, 알바도 안 하고 롤이나 하던 일상에 활력소가 인다.

두웅! 두웅-!

경기장 방향에서 웅장한 북소리가 울려 퍼진다.

점점 짧아지는 주기가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다.

이제 곧 시작하려는 하는구나.

푸드 트럭 줄이 생각보다 줄어들지 않아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먼저 선 덕분에 목표했던 간식 거리를 친구들과 합심해 모을 수 있었다.

바로 경기장에 가서 입으로도, 눈으로도 즐겨야지.

"어?"

"야, 야! 걸그룹 곧이야. 빨리이!!"

친구들의 재촉에도 철수의 고개가 고정돼있다.

세 시간 가량 행사장을 서성거렸음에도 본 적이 없는 퀄리티다.

하지만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익숙한 아링의 뒤태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 * *

말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지각하는 일은 당연히 없다.

경기를 치르는 당일.

선수들은 최소 한 시간은 먼저 와서 대기한다.

약속 시간에 철저하자는 예의 그런 거 이전에.

'현장의 느낌에 익숙해져야 되거든.'

아무리 경력이 많은 선수라고 해도 경기장에 설 때 일말의 긴장도 하지 않는 베테랑은 드물 것이다.

집에서 얌전히 게임하는 거랑은 느낌이 달라.

일단 나만 해도 가끔 껌을 찾는 편이다.

야구 선수들이 그러하지 않는가?

처음에는 남들이 씹길래 맛으로 씹었는데 이후로는 그냥 뭔가 컨디션이 좋아지는 거 같아서 씹게 됐다.

큰 의미까지야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나은 경기를 펼치기 위함이다.

경기장에 미리 도착해있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니가 있냐고."

차라도 한 잔 마시려고 들린 선수 대기실에 익숙한 뒤통수가 보인다.

겁나 도도한 척 요염하게 앉아있다.

지가 무슨 얼음공주인 줄 알아.

"꼬우면 니가 나가든가."

"나는 경기 해야 되잖아!"

말 같잖은 소리를 하고 있어.

코스프레어가 선수 대기실에 있는 게 이상한 거지!

우리팀 선수들이 쭈뼛쭈뼛 들어오기 난감해 했던 이유가 너 때문이었네.

"너 보러 온 건데. 경기 잘 하라고."

"아니……, 그렇게 말하면 화낸 내가 쓰레기 같잖아."

이 년 봐라?

달래가 되도 않는 착한 척을 해온다.

나한테는 정말 씨알도 안 먹힐 소리인데 다른 사람한테는 잘 먹혀서 문제다.

"와, 방금 소리치는 거 봤어?"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선수 대기실 근처에서 일을 하고 있는 스태프들.

왠지 나를 향해 눈초리를 보내오는 기분이다.

지들끼리 수근수근 댄다 이수근도 아니고.

"이러지 말자 달래야."

"뭐래."

"착한 척 내숭 그만 떨고 왜 온지나 불어봐."

스태프들은 직업상 입이 무거울 테니 어디 가서 떠들지는 않겠지.

그리고 다 오해다.

얘 나 곤란하게 만들려고 일부러 이러는 거다.

"진짜로 너 보려고 온 건데?"

"아니이!"

"진짜라고 확!"

손톱 세우지 마.

날카롭잖아 그거…….

무섭게시리 왜 이래 정말.

아무래도 진짜는 진짜였던 모양이다.

'코스프레어가 왜 온지는 모르겠지만.'

얘가 코스프레 하는 게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딱히 놀랍지는 않아.

길가다 마주치면 놀랄 만한 외모라서 그렇지.

잘은 모르겠지만 일 때문에 왔을 테다.

"세상에…… 실물 처음 본다."

"대박 사건!"

"저, 저 작년에 경기 끝나고 악수 한 번 했었는데 혹시 기억하세요?"

꼴에 나름 인지도가 있어서 팀원들이 알아본다.

지난 롤드컵 때는 선수 생활을 했으니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호들갑을 떠는 게 심상치가 않아.

대화를 잠자코 들어보니 좀 날리고 다니나 보다.

이곳저곳에서 여러가지 활동을 한다는 건 알았다.

1년이 지난 지금은 그 이상으로 많이 유명해진 듯하다.

'난 TV 같은 걸 안 봐서 몰랐지.'

요즘 솔직히 TV 잘 안 보잖아.

옛날처럼 무조건 보는 시대는 지났다.

그리고 나는 내 일도 있고, 부업도 있고 해서 시간이 정말 없다.

공중파에도 출연하는 등 연예인 뺨 친다고 한다.

얘는 왜 짜증 나게 볼 때마다 더 유명해지지.

3시에 먹었던 점심이 갑자기 소화가 안된다.

「진달래, '맥심' 한국판 표지 모델 이어 해외 진출까지 '청신호'」

「진짜 아링보다 더 아링 같다? 아링 그 자체 진달래!」

「게임에서 뻗어나간 인연 '진달래', 해외 모델 업계 이미 주목.」

코돈빈이 기사를 보여주자 방금 체했다.

이거 100% 걸렸어.

로드 오브 로드 홍보 담당으로 전세계에서 활동하며 국내에서도 아무튼 엄청 버는 거 같아서 배 아파 죽겠다.

"이번에 아링 신스킨 나오면 녹음도 하신다는 이야기 있던데 혹시 진짜에요?"

"아직 제가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에요."

"와, 경기도 잘하시는데 아름다우시고 개인적으로 너무 팬이……."

달린 새끼들 치고 물소가 아닌 새끼가 없어.

허탈하다 허탈해.

여자로 태어나지 못한 죄인가.

'내가 여자로 태어났어도 달래처럼 살긴 했을 거야.'

인생 사는 법을 아는 친구야 정말.

인기가 없을 수가 없지.

배가 너무 아프다.

"야……. 적당히 하고 가라. 우리 이제 슬슬 경기 준비해야 된다."

"쟤 말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있다 원할 때 가세요."

"네. 근데 어쩌죠? 저 이제 해설 준비하러 가야 해서요."

그래, 좀 꺼져.

위장약 필요할 일 생기기 전에.

"아니, 뭐 해설 준비?"

"나 오늘 객원해설이야. 실수하면 씹어줄 테니 각오해라? 다른 선수분들은 말고요."

손바닥 키스를 날려 보내더니 선수 대기실에서 나갔다.

잠시 패닉 와서 못 피했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딱히 불교를 믿는 건 아닌데 이게 제일 어감이 좋아.

코돈빈이 바론을 뺏겨도 흔들리지 않던 멘탈이 나갈 거 같다.

* * *

이따금 있는 일이다.

정규 해설자 이외에 객원해설이 포함된다.

약간 이벤트성 느낌도 있고, 신선함을 더하려는 목적도 있다.

늘상 같은 느낌으로만 진행된다.

아무리 퀄리티가 높아도 식상할 수 있지 않은가?

삼시세끼 밥이 편한 사람도 가끔은 햄버거를 먹고 싶은 것과 마찬가지다.

〈전현직 프로게이머들과 코치, 감독분들이 객원해설로 종종 나오죠. 드문 일은 아니에요.〉

〈구얼밤 출신인 선수들은 한 번씩 다 나온 적이 있잖아요?〉

-클끼리가 꽂아준 거였어?

-클선실세ㄷㄷ

-매일라이프는 해설도 잘하던데

방송사 입장에서도 달가운 일이다.

실제 시청률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인기가 많은 선수.

이를 테면 맛밤 게임단의 에이스인 매일라이프가 객원해설로 나왔을 때는 여파가 대단했다.

이외에도 일반팬들에게도 친숙한 코치나 감독도 나올 때가 있다.

뭔가 다른 목적이 있다기 보다는 그냥 재미삼아.

정말 재미삼아 연예인도 나오곤 한다.

지난 롤드컵 8강

우주대스타 김희철이 객원해설로 출연했다.

오프게임넷이 출연료를 맞춰줄 만한 급이 아닌데 본인이 한다고 하니까~.

〈호칭을 달래 선수…… 라고 불러야 할까요? 아니면 달래씨?〉

〈삼촌 같으신 분인데 그냥 편하게 달래라고 부르세요.〉

-용준좌 조금 서운해 보이는데?

-남자는 나이 먹어도 오빠라고 불리고 싶지ㅋㅋ

-캬, 달래갓……

-춘자ON만 참자!

맥락만 보자면 같다.

최근 연예계에서 주가가 높아진 달래.

오프게임넷의 제의를 받아들여 금일 결승전의 객원해설로 나왔다.

하지만 과연 연예인인지?

근 반년 사이에 그런 이미지가 생겼다.

하지만 불과 1년 전만 해도.

〈前프로잖아요? 그것도 롤드컵을 우승한!〉

〈그때는 팀이 잘해줬죠. 저는 뭐 한 게 있나요.〉

〈당시 해설을 했기 때문에 알지만 달래씨의 활약이 눈부셨어요. 우승 지분이 높았다는 건 부정할 여지가 없습니다.〉

지난 2014년.

토이치TV팀 소속을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무려 롤드컵 우승이라는 프로게이머 최고의 영광을 달성했다.

그녀 자신이 겸손하게 웃어 넘기지만 사실 대부분의 1류 프로가 악을 쓰고 해도 달성하지 못하는 업적이다.

〈저도 선수 시절에 롤드컵에서 나름 활약을 했지만 겨우 준우승에서 그쳤었죠.〉

〈그거 궁금해 하는 사람 지금 있나요?〉

〈……없겠네요.〉

-클끼리ㅋㅋㅋㅋ

-입구컷

-용준좌 완전 사신이네ㅋㅋ

롤판에서 어지간한 프로게이머보다 훨씬 더 유명하고, 인기 또한 많다.

그런 달래가 객원해설로 참여한다.

안 그래도 높은 이번 결승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집중되고 있는 이유다.

물론 이는 부가적인 여흥에 불과하다.

메인 이벤트는 당연히 선수들의 경기.

명실상부 한국 최고라 손 꼽히는 두 팀의 결승전을 앞두고 있다.

와아아아아-!

서울 올림픽 체조 경기장.

1만 5천 석의 좌석이 가볍게 매진될 만하다.

현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의 함성 소리가 사방에서 쏟아진다.

걸그룹의 공연과 뜻밖의 객원해설로 안 그래도 고조됐다.

그 이상의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의 등장이 이목을 모은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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