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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롤챔스 섬머 시즌.
팬들은 당연히 LCK만 본다.
하지만 1부 리그인 LCK 말고도 리그가 존재한다.
바로 LML, 2부 리그 말이다.
2부 리그? 응, 좆밥 리그 안 봐~.
해당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도 데뷔 이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프로게이머?
당연히 LCK부터 치는 거 아님?
빙산의 일각처럼 튀어나온 그 화려한 무대만 눈에 띈다.
막상 데뷔를 할 때쯤 되면 현실과 타협한다.
에이, LCK 아니면 그냥 프로게이머를 안 하면 되지.
그리 쉽게 생각하기가 힘든 것이 프로 선수들의 입장이다.
이유야 여러가지 있다.
롤판도 스타판처럼 자리를 잡은지 오래됐다.
정말 어지간한 신인 아니면 1부 리그에서 기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연습생이나 서브로는 나름 받지만 주전으로는 거의 안 받는다.
해당 팀에 들어가는 것과, 주전으로 뛸 수 있는 건 천지 차이다.
그렇게 팀을 구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리던 와중에 2부팀들이 속삭인다.
우리팀 오면 주전 자리 약속해줄게!
그럼 갈까? 가서 경력 좀 쌓으면 LCK 갈 수 있겠지?
일반 취직 시장에서 대기업과 중소 기업의 관계라고 보면 된다.
'가서 현실을 파악하는 애들이 많지.'
현실의 벽에 무릎 꿇는다.
나는 고작해야 이 정도의 인간이었구나.
2부 리그조차 캐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구나.
하지만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피맥은 무명팀인 그리핀도르에 들어갔다.
밑바닥부터 신화를 써보자는 얼토당토한 생각을 가지고.
실제 LCK의 문을 거의 박차고 들어갈 뻔했다.
그 직전에 승강전에서 파프리카 프릭스를 만나 패배했다.
아니, 레전설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벽에 좌절하고 말았다.
"우리는 팀 차원에서 미드를 집중적으로 케어할 거야. 봇도 압박하면서 아래쪽에서 교전 열 거고."
한 번 뼈저리게 겼어 봤기에 대비책도 세울 수 있다.
피맥이 선수들의 앞에서 열띤 담론을 펼친다.
곧 진행될 경기의 기본적인 구도에 관한 해설이다.
당연히 몇 번이나 귀에 딱지가 앉도록 설명을 했다.
하지만 막상 경기에 들어가면 또 달라진다.
선수들이 개별적으로 판단하여 마음대로 해버린다.
"아, 나 혼자서도 이길 수 있다니까 형~."
"안돼. 절대 안돼. 세부적인 건 자율에 맡기겠는데 기본 틀은 지켜. 이게 마음에 안 들면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다른 의견을 제시해봐."
"……."
그리핀도르의 미드라이너 미키짱의 말문이 막힌다.
근거 없는 자신감.
사실 조금은 가질 만도 하다.
정규 시즌에서 그리핀도르는 KTX 롤러코스트를 잡았다.
그렇기에 4위라는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100% 선수의 실력 차로 이긴 건지.
"피맥형 말 들어."
"반박 모타죠? 아무 말도 모타죠?"
"아 닥쳐~. 나도 그냥 해본 소리니까."
다른 게임단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다.
감독은 선수의 윗사람.
그런 위계질서가 공공연한 곳이 한국 사회다.
실제 나이도 대부분 30대, 심하면 마흔 전후다.
스타크래프트에서 넘어온 선배님이기도 하다.
감히 말대꾸를 하는 게 불가능하다.
"네가 만약에 영화 쏘우에 나오는 폭탄 목걸이를 장착하고 게임을 한다고 생각해봐. 라인전 지는 순간 폭탄 목걸이가 터지는 거지. 그래도 할 수 있어?"
"아, 알았다니까요……"
"그래도 할 수 있다고 판단이 내려지면 허락해줄게. 그게 아니라면 팀플레이해. 이건 감독으로서의 명령이야."
그리핀도르의 부스 상황도 그러하지만 이유가 다르다.
감독의 권위에 짓눌려서?
아니, 순수하게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논리에서 압도 당하자 따를 수밖에 없다.
현장은 다르다는 이야기가 쏙 들어간다.
그리핀도르는 늘 선수들의 의견을 묻는다.
피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수였다.
그러다 보니 공감대 형성이 깊게 된다.
선수들과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난다.
굉장히 친한 만큼 감독보다는 형동생 사이로 지낸다.
하지만 공은 공, 사는 사.
경기에 영향이 갈 수 있는 엇갈림은 확실히 차단한다.
"우리팀은 진짜 민주적이라서 좋은 거 같아."
"난 안 좋은데? 나 겁나 고통 받을 거 같은데?"
"그럼 얼쑤 니가 의견을 내면 되지."
"낼 거 있어?"
"아뇨…… 없어요."
건설적인 의견을 낸다면 적극 수용한다.
만약 내지 못한다면 감독 말을 따른다.
그리핀도르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근본이다.
선수들과 감독&코치진이 수평 관계.
서로에 대한 진실된 이해를 바탕으로 단합한다.
피맥 감독이 가진 독특한 가치관과 리더십이 가능케 만들었다.
'첫 세트는 이전처럼 가면 승산이 높아.'
미드와 바텀을 위주로 게임을 푼다.
일련의 전략으로 KTX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레전설의 캐리력을 반쯤 봉쇄하는데 성공했다.
고작해야 절반.
나머지 절반은 상대의 스로잉이 채웠다.
최근 커뮤니티에서 대퍼라 불리는 바로 그것이다.
"나는 너희들이 KTX에 하나도 안 밀린다고 생각해. 정상적으로 해도 충분히 이기고, 상대가 실수하면 더 쉽게 이겨. 그러니까 괜히 긴장만 하지 마."
선수들 이상으로 투지를 불태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원래 지도하는 입장이 더 머리 아프다.
하지만 피맥은 개인적인 원한도 있다.
1년이 넘게 지났으니 웃고 넘어간다.
그러기에는 솔직하게 미련이 남았다.
'적어도 한두 시즌은 더 선수로 뛰고 싶었는데…….'
물론 코치도, 감독도 하고 싶으니 한 거다.
어쩔 수 없이 한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선수로서의 은퇴 시기가 앞당겨졌다.
더 고민을 할래야 할 수가 없는 여건.
스프링 시즌 승강전은 마지막 기회였다.
섬머 시즌에 다시 해보기에는 너무 늦다.
'만에 하나 승격을 해도 재계약도 걸리고, 반년을 기다려야 하고…….'
15년도부터 윈터 시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팀 입장에도 나이든 선수를 더 데리고 있기 애매하다.
당시 감독의 제안을 받아들여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
선수에서 코치로 전환.
이후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고는 있다.
그렇다고 미련까지 떨쳐지는 건 아니기에 바라고 있었다.
레전설을 잡고 원한을 푼다.
선수로서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이룬다.
오늘의 경기는 선수들에게도 중요하지만 자신에게도 무거운 자리다.
피맥 감독이 눈을 부릅떴다.
* * *
정규 시즌과는 다르다.
포스트 시즌부터는 매 경기의 중요도가 매우매우 높다.
〈5전 3선승제로 진행됩니다. 지면 그냥 끝. 탈락이에요. 이번 시즌을 마무리하는 겁니다.〉
잔인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원래 대회가 그러하다.
실력을 증명한 팀만이 올라갈 권한을 갖는다.
KTX 롤러코스터 대 그리핀도르의 경기.
-캬…… 데스 매치 오지네
-지면 롤드컵 진출도 ㅂㅂ?
-그래도 웬만하면 KTX가 이길 거 같은데
팬들로서는 촉각이 더욱 곤두선다.
SKY T1에 준하게 인기가 많은 KTX 롤러코스터.
만에 하나 떨어지기라도 하면 정말 초대형사고다.
글자 글대로 돈을 쓰레기통에 욱여 넣은 셈이다.
선수들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며?
그에 반해 그리핀도르는 다섯 명 전부 무명이다.
─그리핀도르 얘네들 존나 잘하지 않냐?
미드인 미키짱도 솔킬 빈도 높고
정글인 타잔도 갱킹 겁나 날카롭고
탑은 오더형 같은데 라인전 잘 버텨주고
봇라인 나는 듀오도 아마추어때부터 호흡 맞춰서 그런지 잘함
└ㅇㅇ 얘들 물건임
└로크도크 갠방에서 그리핀도르 FA나오면 해외팀들이 쓸어갈 거래
글쓴이-ㄹㅇ?
└잘하는 건 알았는데 그 정도야?
하지만 무명이라는 말이 실력이 없다의 동의어는 아니다.
이미 게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인정을 받은 물건들.
관련 증언이 나오니 일반 유저들도 솔깃하다.
FA, 한 마디로 재계약 시즌을 일컫는다.
해외팀들이 눈독을 들인다는 건 유효한 지표다.
그리핀도르의 주가가 날이 갈수록 올라가는 이유다.
─처음에는 피맥팀이라서 그냥 멋모르고 응원했는데
그리핀도르 진짜 보면 볼수록 물건이다
개개인이 탑급 선수들 못지 않게 잘하는데?
이런 애들이 묻혀있었구나 하고 소름 돋음……
└묻혀있었던 게 아니라 피맥이 키웠어
└피맥 빠는 게 아니라 진짜 피맥빨 맞음
└2부 리그에서 LCK로 올리고 포스트 시즌 뚫은 것만 봐도……
└갓 감독에 갓 선수들이 잘 만난 거지
우리가 인지도가 없는 거지 실력이 없는 건 아니야.
부족했던 경험도 차차 쌓아 올려지고 있다.
커뮤니티에서 골수 유저들은 말한다.
─진짜 그리핀도르가 일 낼 수도 있어
오늘 KTX 잡으면 진짜로 우승까지 직행 가능성 높아
아니, 우승도 충분히 가능하지
SKY T1도 한 번 잡았잖아?
└즐~
└그때는 로또 터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리핀도르 시즌3 SKY T1 K그림자가 살짝 보임
└대형 신인인 건 확실하지 ㄹㅇ
괜히 폭풍의 전학생이 아니다.
네이버 웹툰에서도 혼자 다 때려 부순다.
KTX 롤러코스터의 일방적인 경기가 되지는 않지 않을까?
꾸웨에에엑-!
현재 진행되고 있는 첫 번째 세트.
기괴한 울음소리가 소환자의 전장에 울려 퍼진다.
랙싸이가 궁극기를 발동했다는 신호다.
그 효과는 조건부 글로벌 궁극기다.
파놓은 땅굴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이동한다.
유틸기이기에 활용하기가 제법 까다롭긴 하지만.
구루룩-!
활용 여하에 따라서는 무궁무진하다.
바론 지역에 깔아둔 땅굴이 신의 한 수로 작용한다.
타잔의 랙싸이가 미드갱을 노린다.
예상하기 힘든 엇박자 타이밍의 갱킹.
땅굴 돌진에 점멸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다.
레전설은 믿기지 않는 반응 속도로 피해내긴 했다.
〈피했어요! 만약 에어본 맞았으면 꼼짝 없이 죽었거든요? 르풀랑이라.〉
〈깜짝 갱킹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긴 했는데…… 점멸 교환을 했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나빠요.〉
클끼리 해설의 말대로 레전설의 점멸을 뺀 것은 크다.
그리핀도르가 레전설을 제대로 공략한다.
그 중심에는 정글러 타잔이 있다.
〈역시 정글의 왕! 타잔! 이 선수가 설계 능력이 탁월합니다.〉
-땅굴 타고 바로 찌를 생각을 하네ㄷㄷ
-ㅁㅊ 저렇게 오면 어떻게 피해
-반응 속도 미쳐서 피하는 것도 참ㅋㅋㅋ
그리핀도르의 타잔은 큰 그림을 하나 그려두었다.
순간적으로 위치 특정이 까다로워진다는 난점.
곧바로 미드갱킹을 찌르는 동선을 짜두었다.
얼핏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중간에 와드가 있었다면 걸렸을 것이 확실하다.
귀환 타이밍에 땅굴을 유지시켜 놓는 것도 어려운 문제다.
그 어려운 걸 해내는 것이 일류 프로게이머.
아니, 일류에서 한 단계 위로 나아갈 수 있는 분기점이다.
정글의 왕이라는 별명이 즉석에서 탄생할 정도로 놀라운 기량을 떨친다.
〈오늘 경기에 대해 우스갯소리로 승패의 관건은 그 시간이다. 그 시간이 오면 지고, 안 오면 KTX가 이긴다. 그런데 그리핀도르의 경기력이 KTX 롤러코스터에 밀리지 않아요.〉
-'그 시간'
-대퍼 타임 말하는 거지?
-클끼리 커뮤니티 너무 많이 해ㅋㅋ
정말로 밀리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집요할 정도의 미드 라인을 공략.
그 전략이 맞아 떨어지고 있다.
레전설이 섣불리 움직이기가 힘든 환경이다.
아니, 라인전만 해도 고단하다.
점멸이 빠진 빅토리.
파앗!
사앗……!
르풀랑의 금빛 사슬이 빅토리를 향해 쏘아진다.
맞는다면 진짜로 죽을 수 있다.
점멸, 점화 다 박으면 킬견적이 나오는 상성이다.
좌아악-!
콰지지직……!
조금이라도 뒷무빙을 밟았다면 맞았을 각도의 샷이었다.
레전설은 앞으로 피하며 박아 넣는다.
쏘아진 광선과 궁극기의 위치가 절묘하기 이를 데 없다.
원래 자리로 돌아갈 거야?
풀딜 다 맞고 너도 점멸 한 번 빠져봐.
상대의 공세를 역이용하는 판단은 가히 레전설스러웠지만.
〈쇈 궁극기 탔어요! 미키짱 앞점멸! 모든 걸 쏟아붓습니다.〉
〈세상이 원망스럽겠지만…… 이 정도 투자하면 죽어주는 게 예의죠. 그리핀도르가 말합니다. 레전설 좀 죽어!〉
산 넘어 산.
클끼리 해설의 말대로 원망스럽다.
정글은 미드를 작정하고 찌르고 쇈까지 딜교환 중에 궁을 탄다고?
그리핀도르의 대 KTX 롤러코스터전 기본 전략이다.
지난 정규 시즌에서도 레전설에게 엄청나게 투자했다.
그 이상으로 준비해온 포스트 시즌, 쉴 새 없이 휘몰아친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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