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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진 독점 체제 -->
'게이머들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두 개 있어.'
하나는 택배 오는 거고.
다른 하나는 전화 오는 거다.
게임 중에 뭐 하라고 하면 진짜 싫어.
엄마가 밥 먹으라고 하는 건 나중에 먹는다고!
어느 정도 상쇄가 가능한데 이 두 가지는 애매해.
후자인 유리야의 전화가 기다려도 끊기지를 않고 있다.
〈여보세요~ 선배 통화 돼요?〉
"왜. 용건."
-리야에요?
-헐, 리얀갑다
-먼저 전화도 거는 사이네ㄷㄷ
-아니, 성심성의껏 좀 받아라. 여자 전화를 무슨
그럼 여자 전화는 성심성의껏 받고, 남자 전화는 대충 받아도 돼?
그런 게 바로 남녀 차별 아니야?
'사실 그래도 되긴 하는데.'
사실 그러는 게 순리다.
고추 새끼들 생각하는 건 다 비슷하겠지.
하지만 But 나 레전설, 21세기 남녀 평등의 수호자로서 그딴 거 없다.
〈저 지금 지하철 타려고 걸어가고 있어요.〉
"그래, 기어가진 않을 거 아니야."
〈근데 지금 너무 어둡고, 근처에 사람도 없어요…….〉
-헐, 리야 불땅해
-리야 혼자 오기 무서운가 봐
-그래서 뭐 어쩌라고 지금 솔랭 중인데
-전화 받다 죽으면 면죄부 가능?
나 같은 진성 혼모노들이 몇 명 있네.
게이머 입장에서 겁나 짜증 난다.
이러다가 갱킹이라도 오면 어쩔 거야.
잼구라 다행이지.
잼구의 셀줄아니가 돌진해온다.
돌진하며 궁극기를 일직선으로 날린다.
「혹한의 대지가 주는 선물로 생각해라!」
안 그래도 요즘 김영란법이다 뭐다 시끄러운 시기다.
마음만 받으며 가벼운 무빙으로 피한다.
궁극기를 흘리고 사슬을 맞히며 QR.
─적을 처치했습니다!
유리야 뒤통수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아니, 그래서 뭐 어쩌라고?"
〈선배 바빠요? 혹시 게임 중이에요?〉
-전화하면서 따버리네……
-자연스러운 잼구
-리야야, 뒤통수를 조심해!
그래, 게임 중이야.
이 안 좋은 시국에 전화를 걸어온다.
잼구는 점화로 보내버렸지만 유리야의 전화는 차마 보낼 수가 없다.
'꼭 선비 같은 애들이 있거든.'
감정 이입 겁나 하는 물소 새끼들!
여자 전화 끊으면 라그나로크라도 오는 줄 안다.
물론 유리야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고 한다.
〈헉…… 전화하다가 캐릭터 죽으면 큰일 나겠죠?〉
"알면 끊어."
〈여기 엄청 어둡고 껌껌한데 그냥 제가 죽는 게 낫겠죠……..〉
-리야야!!
-어디야? 지금 당장 구출하러 간다
-리야 구조대 출동합니다. 파원 구함 (1/5)
-상남자 특) 여자한테 밤길 혼자 가라고 함
이걸 감성팔이를 한다고?
시청자들이 난리법석이다.
당연하게도 가르쳐줄 리가 없다.
'가면 얼마나 껄떡대려고.'
여캠의 전화였다면 큰 그림 오지게 잘 그리네.
속으로 감탄사를 쏟아냈겠지만 유리야다.
그런 잔머리가 돌아갈 아이가 아니다.
밤길이 정말 무서운 모양이다.
친구들과 너무 늦게 헤어졌다고.
내가 들려줄 수 있는 대답은 정해져 있다.
"리야야, 당연한 걸 묻지 마. 니가 죽는 게 낫지."
〈히잉……, 알겠어요. 저 그럼 혼자 무사히 갈 수 있도록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갈게요…….〉
-말넘심……
-진짜 쓰레기다 이 새끼는
-쓰레기인 걸 알았지만 이건 좀 심한데?
.
.
.
채팅창에서 선비들이 폭주한다.
아니, 일반 시청자들도 난리가 났다.
도네 쏘면서 욕하는 건 이득일까, 아닐까?
'잘은 모르겠지만 나는 분명 오래 살 거야.'
이렇게나 많이 욕을 먹는데 오래 안 살 리가 없겠지.
천년 만년 장수해서 동방삭 뺨을 칠지도 모르겠네.
그럴 기세로 채팅창이 지금 통제가 안되고 있다.
"그럼 지금 내가 게임 탈주하고 유리야 만나러 갈까? 아직 라인전도 안 끝났는데?"
-ㅇㅇ
-탈주하는 순간 신고할 거임!
-세 계 정 부 버 스 터 콜
-뭘 골라도 ㅈ된다 ㅇㅈ?
미친 새끼들 아니야.
나는 그냥 확실하게 대답했을 뿐이다.
그리고 애초에 죽을 위험 자체가 없잖아.
우리나라 치안이 세계 1위다.
심지어 도시 국가인 싱가포르가 2위다.
나라가 좁을수록 당연히 치안 관리하기가 쉽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쳤다는 거다.
얼마나 안전하면 기지배들이 술 쳐먹고 새벽에 돌아다녀.
다른 나라에서 그러고 다니면 뭘 당해도 싸다는 소리가 나온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나라가 다른 만큼 상식이 다를 수는 있다.
놀랍게도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의 상식이 그러하다.
안전이 당연한 나라에서 살면서 무섭기는 뭐가 무서워!
"횡단보도 건널 때 손 들고 다니고, 모르는 아저씨가 사탕 준다고 따라가지 말고! 이거 두 가지만 지키면 안전해."
-응, 아니야
-기득권인 남성 입장에서 말하는 거 역겹네요
-우리나라가 얼마나 여성에게 위험한지 모르시나요? 빼애애애액!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전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모든 통계 자료가 뒷받침하며, 외국인들이 감탄을 금치 못하는 나라지만 입장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 레전설, 이해심이 깊은 남자야.
'이해심이 조금만 덜 깊었으면 귀싸대기를 때렸을지도 몰라.'
그럴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긴 하다.
하지만 말이 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냥 평소처럼 대했을 뿐이었는데.
-속보 레전설 여혐
-속보가 아니고 상식이지ㅋㅋ
-리야 그렇게 갈구면서 이런 것도 신경 안 써주네……
-어휴, 매국노 새끼 나라도 팔아먹더니 이제는 리야도 팔아
채팅창에서 불꽃이 튀긴다.
아무 말 대잔치가 열리며 별별 소리가 다 나온다.
'그렇다고 내가 여기서 탈주하면 그건 또 그거대로 욕을 하겠지.'
총체적 난국이라는 소리다.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방법.
유리야 엉덩이 때리는 거 말고는 생각이 안 나.
내 안의 악마가 자꾸 속삭인다.
잔다르칸: 때려버릴까?
나: 참아!
채팅창에 올라오는 시답잖을 불만들을 해소할 단 하나의 방법.
"닥쳐 이 씹새끼들아! 노트북 키고 데이터로 게임 하면서 간다."
-상 남 자
-진짜로……?
-와, 프로게이머가 게임 대충하는 거 역겹네요
-이 와중에 깔 거리 찾는 새끼도 있네ㅋㅋㅋ
이 이상의 해결책이 없잖아.
CS를 받아먹으며 노트북을 켠다.
그리고 귀환 타이밍에 재접속을 시도한다.
방송은 가면서 여유 있을 때 적당히 틀었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들리던, 안 들리던 교정할 시간 없으므로 찡찡대지 마세요."
-ㅇㅇ들림
-근데 좀 울린다
-BJ님 마이크 울려요!
-여기 어디임? 강남인가
역시나 하지 말라고 해도 할 사람은 나온다.
정말로 교정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지금 마우스도 터치패드로 대신 하고 있고 말이 아니야.
─제동빠(리심)님이 PafreecaTV 잼구(셀줄아니)님을 처치했습니다!
쟤는 말도 아니고, 소도 아니고, 개도 아니고 뭔지 모르겠다.
잼구는 그냥 잼구일 뿐인가.
열심히 걷고 있는 와중에도 게임은 진행되고 있다.
탑라인에서 일어난 2대2의 교전.
잼구의 셀줄아니 소위 갱승을 내버렸다.
노트북이라 체크하지 못해서 오히려 이득 본 기분이다.
하지만 2대2다.
잼할의 트롤킹이 미쳐 날뛴다.
자칫 무리하는 듯 보였으나 트롤킹의 패시브.
─PafreecaTV 잼할(트롤킹)님이 제동빠(리심)님을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된다.
아니, 의외로 잼할은 복불복 느낌이 있다.
'잘할 때는 잘해.'
못할 때가 훨씬 더 많아서 문제지!
상남자처럼 물러서지 않겠다는 불굴의 의지.
그 뚝심이 이따금 예상치 못한 이변을 만들어낸다.
-오, 잼할 저걸 결국 잡아버리네
-패시브로 살았어ㄷㄷ
-캬~ 상남자식 대처법!
-레전설은 뭐함??
나?
지금 열심히 걷고 있는데.
강남 밤거리가 어둡지 않아서 다행이다.
"택시가 왔기 때문에 택시 타면서 게임 할게요. 아, 오지게 끊기네."
-진짜로 게임은 하네……
-게임 하면서 마중 나가는 상남자
-진정한 상남자의 대결이 시작되는가?
대결이고 나발이고 게임이 끊긴다고!
게임이 점점 묘하게 되자 말이 나온다.
아니, 미드 킬 먹고 캐리 안 하고 뭐함?
유리야 뒤통수(르풀랑): 지금 택시 타고 여사친 마중 가고 있어요. 양해 좀
징계즈칸(나루):ㅇㅎ…… 그렇군요. 그러면 어쩔 수 없죠ㅎㅎ
의외로 이해해주는 분위기다.
애초에 변명 자체가 현실성이 없다.
유쾌한 드립이라고 아마 생각을 하겠지.
"근데 원래 현실은 소설이나 드라마 이상이야."
-진짜로 가고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까;
-칸 성격 죽었나? 이걸 참네
-프로끼리 싸우면 안되지ㅋㅋ
하지만 진행되는 게임의 상황이 점점 급격해진다.
라인전이 끝나면 파밍만 하는 걸로는 안된다.
순간적인 판단과 빠른 합류가 중요시 된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유리야 뒤통수님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게임을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냥 평소 피지컬을 발휘할 수 없을 뿐이다.
또 할 수 있는 콤보의 가짓수가 명확하다는 점.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 더블 킬!
PafreecaTV 잼할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내 살아 생전에 이런 광경을 보다니.
같은 팀일 때는 왜 저렇게 해주지 못했을까?
서운한 감정이 일지만 솔직히 내 잘못도 있다.
징계즈칸(나루): 아니, 르풀랑 킬 따고 혼자 쏙 빠지면 어캄?
유리야 뒤통수(르풀랑): ㅈㅅㅈㅅ 지금 지하철 걷는 중이라
징계즈칸(나루): 아하, 그렇구나.그럼 제가 참아야죠……
징계즈칸(기가 나루): 하지만 난 못 참아. 르풀랑을 혼내주고 싶어
-속마음 나와버렸죠?
-분노조절장애챔을 플레이 하는 분노조절장애인ㄷㄷ
-칸 엔터키 조립 완료ㅋㅋㅋ
게임의 상황이 자꾸 묘하게 흘러간다.
나는 말리지 않았는데 아군이 못하네.
아이러니하게도 잼잼 듀오가 소환자의 전장을 지배하고 있다.
징계즈칸(기가 나루): 아, 개빡치네
징계즈칸(기가 나루): 안돼 로빈!
징계즈칸(기가 나루): 안돼에 나오지 마!
징계즈칸(나루): 우리 멘탈 잡고 열심히 해보죠
-지랄 낫네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칸 지금 속으로 한 20스택 쌓았을 듯
-누가 칸의 엔터키 좀 뽑아봐!
멘탈이 나간 나루가 던지기 시작하며 게임이 점점 더 말린다.
그렇다고 내가 하드 캐리를 할 수도 없는 상황.
설상가상, 지하철로 들어오며 중간에 한 번 튕기기까지 했다.
결국 게임을 지고 말았다.
뭐, 한 판 정도 진다고 세상이 무너지겠냐만은.
눈앞에 유리야가 있으면 괜시리 미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죄송해요오……"
"죄송할 짓을 대체 왜 해?"
-꼰대 선임의 무적 논리
-레꼰대 시동 걸렸죠?
-리야야…… 새 친구를 찾아보자!
리야와 지하철역에서 합류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댁에 가면 늘 반겨주는 누렁이가 생각나네.
'걔처럼 핥지는 않아서 다행이구나.'
하지만 여기까지 온 것부터가 다행이 아니다.
그리고 내심 오면서 겁나 답답했다.
그냥 택시를 타면 되잖아.
"내가 택시를 타고 여기 오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 아니니 이 빡대가리야?"
"그치만, 그치만……."
-그치만…… 이런 행동이 아니면 오니쨩 내게 관심도 없는 걸!
-도네 미쳤냐ㅋㅋㅋㅋㅋㅋ
-이걸 도네가 살리네
게임에서 트롤하든 현실에서 트롤하든 어차피 마찬가지다.
유리야 엉덩이 닦아주는 게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나름의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게 다 내가 젠더 감수성이 부족하기 때문이겠지.'
이철희의 무적논리 급이다.
왜 나를 찾았는지 솔직한 마음으로 이해가 안된다.
혹시 나한테 갈굼 받는 게 취향인 거야?
나 레전설, 여러 취향 존중해주긴 하지만 그건 좀 그래.
핑와 성애자 크하하 이후 처음으로 식겁했다.
식겁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유리야와 함께 택시를 타고 얘네 아파트에 도착했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더럽게 큰 아파트.
1층부터는 보안도 좋으니 괜찮겠지.
그 1층으로 가는 길에 수상한 사람들이 보인다.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이 서너 명 모여있다.
별 일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가끔 그런 게 있다.
소위 말하는 위화감.
왠지 사건이 생길 것 같은 느낌.
명탐정 코난은 1년 365일 온다는 바로 그 촉이다.
"유리야씨 맞으시죠? 잠깐 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저희 수상한 사람 아니에요. 파프리카TV에서 나온 거에요~."
껄렁껄렁한 반협박조.
안 좋은 예감은 이상하게 잘 맞는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추천과 코멘트& 원고료 후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