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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학경기장.
2002 한·일 FIFA 월드컵을 위해 세워진 바로 그 장소다.
아이러니하게도 2014년, 롤드컵의 결승전 장소로 사용되게 되었다.
현장에서는 수많은 이벤트가 진행 중이다.
게임 관련 상품 판매, 코스프레, 기타 등등.
직관팬들을 위한 푸짐한 행사들이 차례차례 열린다.
당연히 이는 메인 경기를 보다 의미 있게 기다리게 하기 위함이다.
현장에 온 사람이 어디 수백 수천 명 정도일까?
무려 수만 명의 군중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롤드컵 결승 E-스포츠 유료관중 4만명 신화를 쓰다!」
「2014 롤드컵 결승, 4만 관중 운집 E-스포츠 꿈의 무대로!」
「이매진 드래곤스 참석한 '2014 롤드컵 결승전'… 4만 관중 '인산인해'」
결승전을 학수고대하던 중국팬들이 티켓을 대거 취소하며 술렁였다.
하지만 그 빈 자리가 자연스럽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메꿔진다.
그도 그럴게 양팀 모두 결코 인기가 적은 팀이 아니다.
-현장인데 사람 짱 많아……
-짱깨가 버린 플래티넘석 먹었다 ㅍㅌㅊ?
-여친이랑 왔는데 너모너모 좋네요^오^
-인싸 코스프레 역겹죠?
당연하게도 인터넷의 열기는 그 이상.
수많은 롤팬들이 롤드컵을 기다리고 있다.
개막식에 앞서 초청 가수들의 행사 또한 말이다.
〈한국팬분들, 그리고 해외에서 오신 모든 분들 안녕하세요! 걸즈데이입니다~!〉
어쩌다 보니 롤팬들에게 굉장히 익숙해진 네 글자다.
유명 걸그룹임에도 친숙하다는 이미지가 있다.
이러저러 사건사고가 얽히고설켰던 결과다.
-'그 사건' 탓이 컸지
-아아, 그 사건 말인가?
-아니 그 사건이 뭔데 대체??
-뉴비 거르는 마법의 단어ㅋㅋㅋ
통칭 '그 사건'으로부터 시작됐다.
정말로 롤판이 발칵 뒤집어 엎어질 뻔했다.
당사자들이 알아서 잘 친하게 지내고 있는 듯하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어쩌면 그래서 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약간 들러리 입장으로 보일 수 있다.
롤드컵의 메인 초청 가수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분위기 띄우기 위해 불렀다고 달갑지 않아 할 수 있음에도 흔쾌히 수락했다.
2014 로드 오브 로드 월드 챔피언컵의 메인 초청 가수.
주제곡을 부른 4인조 그룹 이매진 드래곤스가 등장한다.
삼성 광고 등으로 한국 사람들에서도 익히 알려진 바로 그 록밴드가 맞다.
〈As a child you would wait…… And watch from far away~~〉
웅장한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며 경기장 내 관중들의 이목을 사로 잡는다.
약 5만석에 달하는 좌석 수.
그 대부분이 채워져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목청 높여 환호한다.
사실 이런 자리에 나와도 되나?
로드 오브 로드 게임사가 그렇게 능력 있나?
그런 소리가 살짝 나올 만도 한 세계적인 가수지만 뒷사정이 있다.
장본인들이 게임 덕후이며 롤을 좋아한다.
좋아하다 보니 주제곡과 행사도 뛰게 됐다.
이매진 드래곤즈 최초의 내한 공연은 살짝 어이없는 이유로 정해졌다.
〈햐~~ 정말 명곡이네요. 유튜부 영상으로 봤을 때도 정말 좋았는데 라이브 공연은 완전히 색달라요.〉
〈가슴이 쿵쾅쿵쾅 대고 있습니다. 어깨가 더욱 무거워지는 듯한 건 기분 탓이 아니겠죠…!〉
해설진들은 이미 대기 중이다.
데스크에 앉아 경기 시작에 앞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앞선 공연이 워낙 임팩트가 깊다 보니, 그리고 이런 자리를 진행하는 건 해설자들도 처음이다 보니.
〈해가 갈수록 로드 오브 로드가 인기도, 규모도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 몸으로 체감이 됩니다.〉
〈저는 진짜 가감 없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결승전 직관 오신 분들은 느끼고 있을 거에요. 인생의 절반 손해 봤어!!〉
-저 드립은 수위 좀 높은데ㅋㅋㅋㅋ
-클끼리 드립 보따리 터진다!
-현장인데 ㄹㅇ 분위기 개쩔긴 함
단 한 번 최초로 있는 자리다.
오늘이 지나면 언제 또 열릴지 모른다.
한국, 인천, 롤드컵이 드디어 개막하려고 한다.
해설진들이 잡담을 나누고 있는 사이.
현장 무대에서는 가수들의 공연이 끝났다.
그리고 메인, 결승전을 치를 선수들과 스태프들이 무대에 위에 올라섰다.
〈Hello! Everyone! Welcome to 한국!〉
무대 중심에서 진용준 캐스터가 특유의 큰,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소리친다.
들을 때마다 성대가 걱정되지만 본인이 알아서 잘 하신다.
〈Final Stage 이곳! 인천문학경기장에 오신 여러분~~~ 안녕하세요오!!〉
지난 4주간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올라온 전세계 유일한 두 팀.
삼선 레드 대 토이치TV의 결승전이 막을 올리기 직전이다.
* * *
내가 웬만하면 긴장과는 인연이 좀 없는 스타일이다.
결승이라고 해봤자 뭐 별 거 있겠어?
가벼운 마음으로 착석했는데.
"리야야 손 좀 줘봐."
"제 손은 왜요?"
"어허! 달라면 줄 것이지."
"저, 저도 여잔데……."
어쩌라고 난 남자야.
세상의 절반은 여자고, 나머지 절반은 남자다.
어느 한쪽도 절대로 특별할 수가 없는 게 성별이다.
그리고 딱히 다른 마음이 있어서 달라는 것도 아니잖아.
"잠깐만요! 잠깐만요! 제 손으로 뭐 하려는 거에요!"
"속이 쓰려서 그래."
"속이 쓰린데 왜 제 손으로 배를 만지려고 해요……."
원래 배가 아플 때는 엄마 손이 약손이다.
유리야 손도 반쯤은 효력이 있을 것이다.
"히잉……."
"열심히 좀 꾹꾹 눌러봐. 옳지."
놀랍게도 효력이 있었다.
살짝 쓰릴 뻔했던 속이 가라앉는다.
정말로 지난 스프링 시즌 때도 느꼈다.
'리야가 노래하지 않는 바드 같은 거야.'
같이 있으면 정신적 긴장이 풀린다.
롤드컵의 결승전.
스태프 신분으로 부스에 데리고 온 또 하나의 이유다.
"혹시 저 막 경기 시키고 그러는 거 아니죠?"
"정신 차려. 선수 등록도 안돼있잖아."
"그쵸? 저 또 욕 먹는 거 아니죠?"
스프링 시즌 때 경기를 시켰다.
좋은 추억만으로 남으면 좋은데 악성팬들이 유난이었다.
그로 인해 나름 고충이 있었던 듯 눈치를 살살 보고 있다.
데려오는 과정에서 고생했다.
안 간다고, 또 뭐 시킬 거 같다고.
일일 매니저로 데려간다고 하니 갸우뚱하면서 결국 따라왔다.
'마음 같아서는 엉덩이도 때리면서 마음을 다 잡고 싶은데.'
아무래도 자리가 자리다.
너무 눈에 띄는 행위는 할 수가 없다.
무릎을 잠깐만 펴서 고개 위를 올려다 보면 사람, 사람밖에 안 보인다.
셀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관중들이 경기장에 모여있다.
유리야가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것도 그럴 만하다.
롤챔스도 아니고 무려 롤드컵.
"준비되셨으면 자리 체크해도 될까요?"
"아, 네. 하세요."
심판도 긴장했다는 사실이 목소리에서 느껴진다.
정식 경기는 시작 전에 심판진이 체크한다.
혹시 모를 부정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작업이다.
늘상 있는 일이니 그렇다 치고.
"어깨 좀 주물러봐."
"히잉……. 저 하녀에요?"
"그래, 드디어 네가 네 입장을 파악했구나."
한국인 심판도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지만 원래 각팀에는 고유의 룰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이는 일종의 징크스이기도 하다.
나는 유리야에게 봉사 받으면 성적이 잘 나오는 징크스가 있기로 방금 전에 정한 참이다.
'나중에 딸을 낳으면 유리야처럼 말도 잘 듣고, 나쁜 길로 안 빠지고, 조금 모자라더라도 착한 아이로 자라면 바랄 게 없겠다.'
너무 똑똑하면 아빠 싫어!
그런 소리 들으면 아마 상처 받아서 못 일어날 거다.
물론 좀 많이 모자란 거 말고 유리야보다 IQ가 10정도 더 높았으면 하는 희망사항이 있다.
'……딸과 대화하다가 빡대가리 소리하는 건 좀 그렇잖아.'
경기의 준비가 차차 진행되어간다.
* * *
삼선 레드의 부스 안.
토이치TV 쪽과 마찬가지로 경기 준비에 바쁘다.
선수들은 자리를 세팅하고 있고 코치진은 열심히 머리를 싸맨다.
"진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선수야."
"챔피언 폭만 넓은 게 아니라 포지션도 꼬여서……."
정말 무슨 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인간이다.
그러다 보니 경우의 수가 너무 너무 많다.
그 이름 높은 삼선 갤럭시 게임단의 코치진도 골머리를 썩고 있다.
"아직 닥쳐오지도 않은 일도 헛고민 하지 말고 차나 마시면서 긴장들 풀어."
""아, 예…….""
하지만 뇌신.
현장 경력 많기로 손에 꼽히는 최우룡 감독은 그저 덤덤하다.
스타크래프트 선수 생활, 코치 생활, 이제는 로드 오브 로드에서 감독 생활이다.
이런 자리 셀 수도 없이 많이 경험해왔다.
스타크래프트의 롤드컵이라 할 수 있는 WCG에서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을 했었다.
팀의 감독으로서 위엄 있는 태도로 아직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적은 코치와 선수들을 이끈다.
'레전설…….'
그런 그라도 고민이 없을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내색을 하지 않을 뿐이다.
삼선 블루가 패배를 경험한 만큼 심각하게 와 닿는다.
삼선 블루의 전력은 형제팀인 레드보다 고평가 받아왔다.
실제 커리어도 스프링 시즌 우승, 섬머 시즌 준우승에 빛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별 리그에서 연이은 참패를 겪어야 했다.
최우룡 감독을 제외한 코치진이 얼떨떨한 것도 그럴 만하다.
당시와 똑같은 코치진이고, 팀만 바뀌었을 뿐이다.
삼선 레드가 가진 전력으로 과연 승산이 있을까?
'전력은 충분해.'
아니, 그 이상이다.
전력 분석에 특화된 최우룡 감독은 평가해봤다.
객관적으로 삼선 블루와 레드 중 어느 쪽이 위인지.
스크림 성적이 이를 대변해준다.
삼선 레드는 블루를 상대로 승률이 1할 이상 앞선다.
그것도 게임의 승패를 빨리 정하는 스크림 기준에서 말이다.
'실제 대회라면 그보다 1할은 더 추가될 거야.'
형제팀임에도 블루와 레드는 색깔이 놀랍도록 다르다.
삼선 블루는 전형적인 한타 잘해서 이기는 팀이다.
삼선 레드는 운영을 그 어느 팀보다 잘한다.
팀의 메인 오더인 맏따가 이를 가능케 만든다.
라인전도 강해서 주도권도 쉽게 가져온다.
주도권을 가져오는 순간 운영 승리.
못 가져와도 운영을 통해 만회할 수 있다.
대회 게임에서 이보다 더 무서운 팀은 없다.
지금의 삼선 레드는 명실상부 세계 최강이다.
"감독님, 레전설…… 일단 탑으로 출전하는 듯합니다."
"그래? 그럼 예상 밴픽 준비해둔 자료 가지고 와."
삼선 레드는 완성형 팀이다.
리빌딩 이후 휘청였으나 이제는 자리 잡았다.
다대기의 빈 자리를 메꾼 게 아닌, 다른 색깔을 가진 팀으로 개화했다.
최우룡 감독은 스스로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팀을 만들어냈다.
남은 것을 보조하는 일뿐.
'탑으로 온다라…….'
결승전 밴픽이 어떻게 될 것인지.
당연히 수도 없이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그중에서 가장 난이도가 낮다고 판단한 것이 탑이었다.
이윽고 시작하는 첫 번째 세트의 밴픽.
삼선 레드는 준비해온 전략을 실행하기로 했다.
누군가를 저격하는 게 아닌 상대의 조합을 유도하자.
"파사딘 가져와."
"파사딘을…… 벌써요?"
"그래."
파사딘은 현재 1티어라고는 보기에는 애매한 챔피언이다.
리메이크와 조정을 거치며 과거의 위용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침묵이 있던 시절에도 선픽 감은 아니었다.
카운터를 맞을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하물며 대회.
초반에 심하게 압박 당하면 파밍조차 불가능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픽을 한다는 것.
당연히 노림수가 있다는 의미다.
아니나 다를까 상대는 가져가고 만다.
와아아아아-!
부스 바깥이 소란스럽다.
전용 헤드셋을 착용한 선수들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피부로, 공기로 진동이 와 닿는다.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간다.
'야흐오.'
하물며 토이치TV가 꺼내 들었다는 건 의미가 크다.
탑, 미드, 원딜 어느 라인으로 기용돼도 이상하지 않다.
까다로운 픽으로 작용할 수 있는 건 오히려 원하는 바다.
'비역슨은 궆이 어떻게든 할 수 있어. 문제는 레전설이야.'
밴픽에서 하책은 밴을 하는 것이고, 중책은 뺏어오는 것이고, 상책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신 있게 야흐오를 가져갔던 상대팀.
갈수록 주저한다는 게 느껴진다.
조합이 완성되어가자 불안해 한다는 게 보인다.
그도 그럴게 AD가 점점 많아진다.
미드 야흐오에 리심까지 했으니 당연한 이치.
'탑은 AP를 가져갈 수밖에 없겠지.'
토이치TV의 가장 큰 약점은 무엇일까?
그 답은 선수가 아닌 코치진에 있다.
전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뇌신, 최우룡 감독이 내린 해답이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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