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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아웃 스테이지 -->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솔직하게 소름끼쳤던 부분이다.
'달래가 말을 잘 들어.'
그것도 매우.
상식적으로는 당연하다.
솔로랭크도 아니고 대회 무대다.
장난을 치기에는 자리가 무겁다.
설사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더라도 타협해야 한다.
그 타협을 너무 잘해줘.
'뭐지? 얘가 철이 들었나?'
일말의 가능성을 생각했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신경을 살살 건드려봤다.
지각한 걸 빌미로 주인님 플레이도 해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가 부들부들대면서 잘 참아.
'원래 앙칼진 년이 복종 시키는 맛이 있지.'
물론 교육적인 관점에서 하는 이야기다.
엇나간 학생을 지도해준다.
교육자로서 더 없는 카타르시스…… 아니,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실제로 달래가 내 학생이기도 했다.
학창 시절, 두 살 연상이지 않았는가?
종종 달래의 공부를 봐줬던 추억이 있다.
"달래야, 너 귀싸대기 한 대만 때려도 되냐?"
"때려죠."
"아니다……. 힘이 없다."
어째서 킬 양보도 하면서 말을 잘 들었을까.
이유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준 만큼 빼먹히고 있다.
"주인님~ 좀 세워봐요. 팔딱팔딱."
"힘이 없다고 이뇬아……"
안 그래도 일정이 고된데 경기 끝나자마자 야단이다.
하비를 향해 필사적인 눈초리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제지가 없다는 건 밀약이 있었다고 밖에는 생각이 안된다.
'모르긴 몰라도 계약 사항 중에 분명 있었을 거야…….'
나를 어떻게 해도 상관을 안 하겠다는 조건.
어쩔 수 없이 동행해서 강제로 치렀다.
완전히 짜였다는 기분이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좋냐?"
"행복해."
"그래, 그럼 된 거야……."
나 하나의 희생으로 팀의 화합을 유지할 수 있다면 보람이 있다.
달래의 피부가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는 듯한 건 기분 탓이겠지.
'마음 같아서는 혼내주고 싶다.'
웬만하면 내가 혼내준다.
그런데 오늘은 어쩔 수가 없다.
경기에 전력을 쏟아부어서 힘이 없다.
그리고 남자랑 여자는 구조적으로 달라.
소모하기 때문에 부담이 많이 된다.
솔직히 여자가 너무 유리한 게임이야.
"다 좋아. 다 좋은데…… 너 자꾸 경기 중에 이상한 말하지 마라."
"뭐래, 너나 잘해."
"아니……."
나도 좀 장난끼가 있긴 하다.
오프 더 레코드 올라왔길래 깜놀했다.
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장난으로 한 거고.
'얘는 자꾸 엄마, 엄마 하면서 선으로 줄타기를 해.'
그러다가 한 번 엇나가는 순간 이즈한테 일단 궁 쓰게 되는 거야.
시즌2 롤드컵에서 훌륭한 예시가 있다.
그 사건이 만약에 지금, 그것도 한국 롤드컵 와중에 터지면 빼도 박도 못한다고.
"니 이미지 관리도 해야지. 연예인이잖아? 인신 공격은 알아서 주의 좀 해."
"와 개꼰대."
니 걱정돼서 하는 소리다.
나랑 별 의미 없이 주고 받는 만담.
일반인 시점에서 보면 굉장히 소름끼칠 수가 있다.
'시어머니는 나도 좀 많이 소름끼쳤잖아 리얼루다가.'
경기 도중에 닭살 돋아서 직접 만져보기까지 했다.
어떻게 그런 상상까지 하니 정말.
할 수도 있는데 단계를 거쳐가면서 해야지.
"엄마 드립은 인신 공격이니까 에둘러서 말해. 알겠어?"
"눼이 눼이~."
"알아들었으면 됐고."
"그럼 임신 공격은?"
그건 소름끼치는 정도가 아니잖아!
오빠 나 두 줄 나왔어.
상상만 해도 두려우니까 그런 소리 하지도 마.
'물론 내가 춘자가 싫다는 건 아닌데.'
나 레전설, 보수적인 남자다.
동방예의지국의 후손이다.
준비되지 못한 임신은 아이를 위해서라도 절대 일어나면 안된다.
"몰래 임신 공격하는 수가 있으니까 깝치지 마라?"
"……농담이지?"
"니 하는 거 봐서.'
에이, 한창 바쁜 때인 거 아는데 말도 안되지.
달래가 요즘 사방팔방 활약 중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분명 그러하다.
'그런데 얘는 진짜로 할까 봐 무서워!'
인터넷 유머에 가끔 올라오는 구멍 뚫린 고무!
남 일이지 않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는다.
나를 엿먹이기 위해서라도 저지를지 모른다.
'오히려 지금 알아서 다행일 수도 있어.'
만에 하나의 사태를 미리미리 대비해야지.
내 몸의 안전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
정말 세상 일들이 꼭 남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요즘따라 자신감 넘치는 애들이 많이 보이네.'
이따금 올라오는 도발들.
특히 북한 관련에서 툭 하면 터진다.
그런 일이 나에게도 터질 수 있다는 사실이 커뮤니티를 들썩이고 있다.
* * *
충격.
이변.
그 어떤 단어로도 믿기지가 않는다.
원래 세상사 한 날 한 시에 죽고자 맹세한 도원결의도 깨지기 마련이다.
녹아웃 스테이지인 롤드컵은 언제든 탈락할 여지가 있다.
그래도 두 팀이나 경기하는데 한 팀은 이기겠지.
─위기의 LCK를 구원할…… 단 한 명의 남자
궆
믿습니다 주님……
└임프트와 맏따의 이름으로 매멘……
└매멘은 뭐야!
└씨불얼충들 그새를 못 참고 기어 나오네;
첫 날 경기를 승리한 삼선 레드를 제외한 두 팀이 멸망했다.
졌지만 잘 싸웠다!
그런 말을 해주는 것조차 민망하다.
3 대 0의 대패.
경기 시작 전 여유가 만만했기에 더욱 쥐구멍을 찾고 싶다.
뇌신도 또다시 재평가X5를 받겠구나.
그런 예상이 주를 이뤘던 커뮤니티의 반응이 180도 달라졌다.
한 명의 주적이 생기고 말았기 때문이다.
어쩐지 한동안 잠잠하다 싶었다.
─실시간 우즈의 김정은급 도발 원본.txt
지선양Q. 롤드컵에 출전한 최고의 원딜러 중 한 명이라는 평가가 있잖아요.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돼지쉑A. 다른 지역 원딜러들 중에는 그렇게 강한 선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LPL은 원딜러가 모두 강력하다. 삼선 블루의 알파카가 한국에서 가장 잘한다고 들었지만 직접 겨뤄보니 큰 압박을 느끼진 않았다.
└삼선 블루 잡고 신났네. 지선좌 고생이 많다ㅠ.ㅠ
└진짜 생긴 것부터가 김정은ㅉ
└김정은이랑 데칼코마니ㅋㅋㅋㅋㅋ
└하…… 근데 경기를 져서 할 말이 없다
안 그래도 한국팬들에게 밉살맞은 이미지가 찍힌 선수다.
얼마 전 솔로랭크에서 터졌던 바로 그 사건의 주인공이다.
삼선 블루전을 완승한 우즈의 인터뷰.
그 하나하나가 한국 유저들의 심기를 자극한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긴 것도 아니고 졌다.
그것도 심지어 처참하게 패배했다.
─우즈 기사에서는 한국 솔로랭크도 언급했었네ㅋㅋㅋㅋ
Q. 솔로랭크에서 일어난 파문 때문에 한국 팬들이 실망이 컸다. 오해라도 봐도 되겠나?
A. 한국의 솔로랭크에는 이상한 유저들이 많다. 특히 중국 유저들을 차별하는 행위가 심각하다. 잘못은 전적으로 그들에게 있다.
└돼지쉑 뻔뻔한 거 보소
└차별을 한데 무슨ㅋㅋㅋ
└아니, 중국인이 왜 굳이 한국 서버 와서 소란 피는 거지?
└최소 영어로 말하던가 진짜 착짱죽짱……
경기 후 승리 후 인터뷰의 내용이 널리 퍼진다.
안타깝기는 하나 반박할 수가 없다.
원래 패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한국의 팬들로서는 삼선 레드가 부디 결승전에서 복수해주길!
대진표에 의하면 만날 가능성은 결승전 뿐이다.
아니, 한 가지가 더 있었다.
Q. 토이치TV와 4강에서 만나게 됐다. Royal Club과 마찬가지로 3 대 0의 전승으로 올라갔다. 따로 전략을 준비한 게 있나?
A. 특별히 한 것은 없다. 하던 대로 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한다.
Q. 솔로랭크에서 레전설과 이슈가 됐었던 걸로 안다. 역시 솔로랭크는 솔로랭크일 뿐인가?
A. 레전설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솔로랭크와 대회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4강에서 만나 그 사실을 증명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경기를 승리하면 신이 난다.
들뜬 기분으로 말을 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리고 중국팬들은 오히려 그러한 발언을 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큰 실수를 저질렀다.
건드려서는 안될 선을 넘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짓 하다 호되게 당한 선수가 그날에도 있었는데?
─이 시각…… KTX A팀…… 숙소 상황……
입 털고 졌는데
자신들이랑 똑같은 짓 하는 선수 있어서 싱글벙글
└하지만 감독은 부글부글
└흑막훈이 뭘 잘했다고 부글부글ㅋㅋㅋ
└솔직히 딱 까메오 레전설 차이였지
└믿는다…… 갓전설 빛전설……
「KTX A 까메오」
47분 전。
우리가 우승을 노리는데 누가 막을 쏘냐!
레전설? 덤비라고 해!
으컁컁컁컁!
자신감을 내비친 직후 바로 참교육을 받았다.
제 2의 희생양이 될 것인지.
아니면 까메오와는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줄지.
─난 솔직히 기대하고 있다
우즈가 레전설을 참교육 해줄지도 모른다고
우즈는 삼선 레드가 참교육 시켜줄 수 있지만
지금 기회 놓치면 레전설은 누가 또 참교육 시켜줄지 몰라 ㄹㅇ루다가
└ㄹㅇ이자너ㅋㅋㅋㅋㅋ
└이게 진짜 멸망전
└까메오는 그냥 재미삼아였는데 얘네 둘은 혼모노지
└솔랭에서부터 악연이ㅋㅋㅋㅋ
일각에서는 다른 이야기도 나온다!
그도 그럴게 밉살맞은 이미지로는 둘째 가라면 서럽다.
데뷔 이전부터 논란 제조기라 불리며 항상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런 레전설과 우즈의 구도.
한국팀의 경기가 아님에도 한국팬들에게 귀추가 주목된다.
하지만 시간의 순서상 먼저일 수가 없다.
당장 떨어진 불부터 걱정해야 한다.
다름 아닌 삼선 레드 대 EDC의 경기.
만약 삼선 레드가 진다면 최악의 경우까지 갈 수도 있다.
* * *
로드 오브 로드 월드 챔피언컵 4강.
4강이라 쓰고 준결승전이라고 읽는다.
경기의 중요도가 더욱 높아진 만큼 경기장 또한 반영된다.
〈여기는 대한민국 서울! 서울의 올림픽체조경기장! 올해 우승컵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카운트 다운이 벌써…… 시작됐습니다.〉
진행 또한 이전 경기들과는 다르다.
진용준 캐스터가 잔뜩 폼을 잡고 목청 높여 이야기한다.
준결승전, 세미 파이널.
오늘 경기의 승자가 결승전의 주인공이 되기 때문이다.
〈롤드컵 본선에 참가한 열여섯 개의 팀 중 벌써 열두 팀이 탈락을 했고, 그 팀 중에는 한국의 두 팀 또한 포함돼 있습니다.〉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무려 1만 5천 명에 달하는 관중들이 지켜보고 있다.
오늘의 경기를 매우 크게 기대하고 있는 그들 한 명, 한 명이 매우 엄숙하다.
한국팬들은 부디 삼선 레드가 승리해주길.
중국팬들은 부디 EDC가 마지막 한국팀을 꺾어주길.
엄숙하고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진용준 캐스터의 진행이 이어진다.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마지막 관문! 세미 파이널! 이것저것 다 생략하고 바로 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경기에 나설 두 팀을 큰 박수로 맞아주시길 바랍니다. From LCK!〉
살아남은 마지막 한국의 대표팀 삼선 레드가 무대에 입장한다.
한국팬들의 높은 환호 소리와 박수가 울린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뜨겁다.
〈이에 맞서는 From LPL!〉
중국 1위로 진출한 EDC.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며 올라왔다.
아니, 만만하다면 결코 올라올 수가 없는 자리다.
중국팬들의 환호성이 쏟아진다.
한국팬들이 높였던 목소리 이상이다.
한국에서 열린 롤드컵일 텐데 어째서?
롤드컵 4강에 중국팀이 무려 두 팀이나 진출했다.
중국팬들은 거의 축제 분위기다.
그 응원을 위해 바다 건너 중국에서 대거 찾아왔다.
나라가 크고, 인구수가 많다는 사실이 여실히 느껴지는 광경이다.
놀랍게도 올림픽체조경기장의 과반수를 중국인이 채웠다.
멀리서 찾아온 그들은 엄청난 단합심을 보여주고 있다.
-무슨 여기가 한국이야 중국이야……
-홈스테이지 이점 ㅇㄷ?
-제발 이겨줘 삼선 레드!
커뮤니티와 중계 플랫폼의 채팅창에서는 응원의 목소리가 높지만 현장의 열기가 보다 선수들에게는 와 닿는다.
과연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국팀, 삼선 레드가 EDC를 꺾어줄 수 있을 것인지.
긴장이 집중되는 가운데 카메라의 초점이 잠깐 멈췄다.
-헐……??
-와 진짜 졸예다. 역대급 관중녀라고 올라오겠네
-아니, 저거 달래 여신님이잖아!
-관람 오신 듯? 빡대가리야도 있어!
채팅창은 물론 현장까지 갑자기 소란스러워질 만도 하다.
그만한 존재감을 뽐내는 이들이다.
문제는 그 사이에 있는 한 명.
레전설이 팝콘을 뜯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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