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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에는 눈, 이에는 이 -->
파프리카TV.
인터넷 개인 방송.
이견이 갈릴 수는 있지만 부정은 할 수 없다.
예로부터 단 세 글자에 의해 움직였다.
〈멸망전도 하나의 대회고, 롤유저가 하는 컨텐츠인데 롤을 가장 잘하는 프로게이머를 포함시키면 안된다? 말도 안되는 룰이지.〉
다름 아닌 어그로.
모든 개인 방송을 요약하면 바로 어그로다.
어그로에 살고 어그로에 죽는다.
어그로를 더 잘 끄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멸망전에 참여하는 한 명의 BJ로서, 그리고 파프리카TV를 좋아하는 시청자로서 얘기를 드리는 거에요. 음~ 말도 안돼 안돼.〉
-우두루급 태세 전환ㄷㄷ
-그렇게 깔 때는 언제고 말 바꾸네
-러이갓 레전설 싫어하지 않았음?
BJ러이갓의 방송에 1만 5천 명의 시청자가 모였다.
갑작스레 중대 발표를 시전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이라 함은 레전설의 멸망전 참전.
〈채팅창에서 자꾸 몇몇 분들이 어그로 물타기 하는데 이건 말을 바꾸는 게 아니지. 프로게이머가 일반BJ 신분으로 참여하는 게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거고, 이벤트 목적으로 같이 으쌰으쌰 하는 건 취지가 다르잖아 진짜로~.〉
일련의 이야기가 나오게 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겨우 수 시간 전 낮, 공지사항이 올라왔다.
BJ레전설의 방송국이었다.
「With Girls Day. SEE 2014. 08. 29 PM 11 At RoyGad」
딱 한 줄.
딱 한 줄이다.
하지만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글자가 눈에 띈다.
└똥폼 오질나게 잡네;;
└걸즈데이는 뭐임? 내가 아는 그 걸즈데이 맞음?
└걸그룹 걸즈데이? 러이갓 방송?
└뭐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내용 자체는 뻔히 읽힌다.
문제는 그것이 사실일 확률이 있을까 하는 부분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BJ러이갓의 방송에서 진위가 풀리고 있다.
〈내가 레전설, 성훈이랑 오래 안 보다 보니 서먹서먹하게 됐는데. 이번에 전화를 하면서 서로 BJ로서 지향하는 바가 충돌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지금 여기서 다시 말씀 드리는 거에요.〉
특유의 속사포처럼 빠른 어조로 설명에 들어간다.
요약을 하니 간단하다.
레전설이랑 화해했고, 이벤트를 밀어주고 싶다.
-이벤트? 뭔 이벤트?
-걸즈데이는 또 뭐에요?
-아니, 그래서 레전설 멸망전 하는 거 안 하는 거
말이 빠른 건 좋은데 잡소리도 많아서 문제다.
그런 러이갓 특유의 방송 진행은 어그로를 굉장히 잘 끈다.
하지만 최근에는 레전설에 완전히 밀려 기를 못 쓰고 있었다.
파비의 위의 일비.
일반BJ인 주제에 파프리카TV판을 잡아먹고 있다.
러이갓 입장에서는 섭섭하기도 하고 서운함을 느꼈다.
〈우리끼리는 다 풀렸지. 하지만 시청자들은 그렇게 안 볼 수도 있고 하니까 또 합방을 하면서 레전설팬들과 러빡이들도 화해를 하자는 그런 취지. 음~ 좋잖아.〉
합방.
합동 방송의 준말.
두 BJ가 한 방송에 나오면 그게 합방이다.
팬들의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는 이야기다.
평소 방송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더불어 좋아하는 인기BJ들의 사이가 돈독해진다면 흡족할 따름이다.
다만, 궁금하다.
혹시 하는 이야기가 정말인지.
단순한 어그로에 불과했던 건 아닌지.
나오고 만다.
두꺼운 문이 열린다.
끼익.
문고리가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들어온다.
한 명의 남자.
네 명의 여자.
말을 꺼내기도 전부터 채팅창이 미쳐 날뛴다.
-헐
-아니, 진짜로 걸즈데이라고?
-레전설 너란 남자…… 너란 쓰레기……
-실화였어??
차원이 다른 어그로.
격이 다른 스케일에 잡아먹힌다.
* * *
우연찮은 일이다.
일전에 하나 약속을 잡은 적이 있다.
'조금 너무 오래된 일이긴 하지.'
연락을 받았던 시기가 묘했다.
하필 밖에 나와있던 날이었다.
-저 집에 가면 바로 받으러 갈게요. 그때까지만 맡아주실래요?
「아, 네. 집에 언제 도착해요? 저희도 스케줄 같은 게 빡빡해서…….」
그래서 잠깐만 물건을 맡아 달라고 했다.
그 잠깐이 거의 3개월 정도 걸렸다.
「저기요! 헬로우비너스 싸인 언제 받아가실 거에요!」
토라진 듯 귀여운 내용의 까톡이 와있더라.
걸즈데이의 멤버 중 하나인 소라라는 분.
이런저런 사건이 있다 보니 친분이 생겼다.
내가 복귀했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한 모양이다.
원래는 내가 연락을 먼저 하는 게 맞다.
물건을 맡아주고 있었으니 당연하다.
'근데 진짜로 까먹고 있었어.'
떠올린 적도 있었는데 먼저 연락하기 좀 그렇다!
솔직히 대단하신 분들이잖아.
팬은 아니지만.
그런 대단하신 분께서 내 방송을 보았다고 한다.
"많이 힘드셨겠어요. 자세한 사정은 모르긴 하지만서도……."
물건을 받을 겸해서 찾아갔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정도는 괜찮은 모양이다.
누가 연예인 아니랄까봐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기다리고 있었다.
대화를 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이 감정 이입을 한 듯하다.
방송 컨셉 아니었는지, 실제로도 사이 안 좋은지.
막 그런 것도 물어봤는데.
'나도 컨셉이면 좋겠다 리얼루다가.'
사실 그대로를 말해줬다.
연예인이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겠는가?
기본적인 신뢰가 없을 정도의 사이는 아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섞다 보니 나왔다.
"제가 도와줄 수는 없을까요?"
약간 화가 난 듯한 어투다.
드라마 좀 많이 본 듯한 감정 이입이다.
마음은 고맙게 받겠는데 댁이 뭘 도와줄 수 있다고.
'의외로 있었다는 이야기지.'
물론 여러가지 제약이 걸리는 건 있다.
하지만 된다는 것 자체가 대박이다.
떠오른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현재.
"내가 그래서 작년 파프리카TV 시상식 때 그토록 시크릿 방식 고쳐야 한다고, 한다고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투명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안타깝다는 거야 진짜로~."
-그놈의 시크릿 방식ㅋㅋ
-파프리카TV가 지들 마음대로긴 해
-러이갓 입터는 속도가 무슨 래퍼네
러이갓의 집이자 사무실에서 방송을 진행 중이다.
옆에서 듣고 있자니 귀가 따갑다.
말 속도가 빠르다 보니 압도되는 감이 있다.
파프리카TV의 정치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재다.
'꼬시는 건 쉬웠어.'
러이갓은 굉장히 계산적인 사람이다.
나쁜 의미로 하는 소리가 아니다.
BJ만큼 영악해야 하는 직업이 없다.
말도 잘해야 되고, 줄도 잘 타야 한다.
특히 시청자들의 여론에 민감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조건만 맞아 떨어지면 대화가 통한다.
BJ가 원하는 게 무엇이겠는가?
어그로다.
그리고 시청자다.
-걸즈데이 보러 왔어요!
-와, 진짜네 진짜
-유아 키가 러이갓보다 더 큰 거 실화?ㅋㅋ
연예인인 만큼 사적인 방송은 당연히 금지다.
하지만 한 번쯤은 매니저를 설득할 수 있다.
만남의 장소를 러이갓의 집으로 하기로 했다.
"이만한 분들을 햄스터 우리만한 제 집에 초대할 수 없으니 클라스가 있는 러이갓형과 사전 협조를 통해서 이곳 사무실에서 뵙기로 했습니다. 따라서 방송 진행도 러이갓님 방송으로 하게 됐으니 이점 양해 바랍니다."
"저는 괜찮은데……"
"아, 지방 방송 끄시고요."
-지방 방송ㅋㅋㅋ
-감히 소라한테 막말을?
-레전설 무슨 걸즈데이랑 인맥이 있냐;
문제가 될 수 있는 발언을 일체 금한다.
걸즈데이의 방송 출연에 깔린 전제다.
그래서 막은 거지 오해하면 안된다.
'아무튼 러이갓과 합방을 하는 이유는 하나야.'
여론을 하나로 합쳐야 한다.
반대쪽 여론의 중추가 바로 러이갓이다.
파프리카TV에서 나를 제외하면 가장 영향력 있는 BJ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즉, 내가 사라지면 가장 이득을 볼 사람이다.
이해 관계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막말로 레전설 빠지면 멸망전 누가 볼 거야? 우리 충신 러빡이들 제외하면 반도 안되는 게 팩트잖아 팩트. 누구를 위한 멸망전인지, 이대로 상처만 남은 멸망전이 될 것인지 진지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성이 있다는 거지."
-그건 맞네
-솔직히 시청자랑 흥행 위해서면 레전설 있어야지
-ㅋㅋ러이갓 태세 전환하는 거 왜 이리 웃기냐
-러이갓이 말은 잘함
이렇듯 반대쪽 여론에 있는 팬들을 재설득시킨다.
중대 발표와 걸즈데이라는 어그로.
벌써 3만 명이 넘는 시청자들이 모이게 됐다.
시청자 수는 실시간으로 상승 곡선을 쭉쭉 그린다.
물론 어그로 한 번 끌자고 초청한 걸즈데이가 아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랑 걸즈데이가 친분이 있잖아요."
-몰라
-걸즈데이에 레전설 묻히지 마라
-어, 열받네?
-'그 사건'은 기억하는데ㅋㅋ
"아니…… 같이 이벤트전도 하고 그러다 보니까 카톡도 주고 받고 가끔 일반 게임도 하고 그래요."
친분이 없게 생겼나?
걸즈데이의 광적인 팬들이 많은 모양이다.
아무튼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름이 아니다.
"걸즈데이랑 제가 팀을 하나 짜서 멸망전 참가를 하려고 합니다. 지난 스프링 시즌 결승전 이벤트 매치처럼."
-ㄹㅇ? 걸즈데이가 한데?
-뒤에 실물이 있으니까 설득력이 와 닿네
-근데 문제는 파프리카TV가 허락하냐지
여러가지 채팅들이 올라온다.
다소 억지스러운 것은 맞다.
"근데 나만 억지를 당할 필요는 없잖아.'
그러니까 나도 하나 하자고.
여론 통합이 순조롭게 이루어진다.
"기존 멸망전 컨셉에 더해 프로게이머와 인기 연예인이 흥까지 북돋아주면 모든 비제이와 팬들이 인정하는 레전드 멸망전이 나오는 건데 이걸 안 할 이유가 있냐 이 말이야. 씹오지잖아 얘들아~."
씹오지는 말빨로 우두루 뺨을 치고 있다.
환영할 수밖에 없는 미끼까지 던져졌다.
사실 적극적인 참가는 아니긴 하다.
'나는 참가할 수 있는데 걸즈데이는 바빠.'
스크림을 보장할 수 없다.
연예인이 어디 보통 바쁠까?
그런 주제에 자꾸 버스 태워 달라고 연락을 해온다.
'시간을 못 낼 건 또 없다는 소리지.'
몇 경기 뛰는 멸망전 정도는 치를 수 있다.
시청자들에게는 그것만으로도 희소식이다.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니, 와 레전설 클라스 미쳤네
-걸즈데이와 친분ㄷㄷ
-오늘부터 레전설 팬하겠습니다^^
롤팬들 사이에서는 특히 인기가 더하다.
이벤트 매치에도 나오는 등 롤을 좋아한다.
TV화면 너머 멀기만 한 연예인이 친숙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따질 것도 없는 걸그룹으로서의 영향력.
인지도라는 면에서 비교 자체를 불허한다.
그러니까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하다.
"유리야 특별법, 레전설 특별법 다 좋아요. 있을 수 있다고 칩시다. 그러니까 이참에 하나 더 만들자고요."
걸즈데이 특별법의 재정이다.
* * *
파프리카TV에서 가장 지대한 시청자를 자랑하는 BJ 둘이다.
그 영향력은 다른 모든 BJ의 총합을 뛰어넘는다.
어그로까지 더해지자 가히 압도적이다.
불과 하루 아침에 여론이 뒤바뀐다.
─재투표 결과 나왔다!
반대 1표
찬성 7표
이번에는 김상오표까지 포함ㅇㅇ
└상오…… 낙동강 오리알
└반대 1표 땅오야??
글쓴이-강민식이라는 게 세간의 정설
└ㅋㅋㅋㅋ그냥 찌발랐네
투표에 의해 정해졌던 일이다.
갈아엎는다면 방법 또한 같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이루어진 투표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다.
─러이갓 진짜 영악하다
우승각 안 나오니까 입장 바로 바꾸네
걸즈데이 합방으로 시청자 달달하게 땡기고
└레전설이랑 오해였다고 설명하던데?
글쓴이-이해 관계 보고 화해한 거겠지……
└어휴, 음모충. 순수하게 좀 바라봐라
└원래 러이갓이 정치 잘하긴 해ㅋㅋ
반대측의 사실상 대표였다.
시청자 수, 영향력 등이 가장 많으니 당연하다.
러이갓이 손바닥을 뒤집자 여론 또한 하나로 합쳐진다.
멸망전은 BJ와 시청자가 만드는 컨텐츠.
파프리카TV가 하는 건 결국 개최일 뿐이다.
하나가 된 여론을 무시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파프리카TV는 지들 하던 그대로 똑같이 당한 거임
평소에도 완고했으면 씨알도 안 먹혔지
갑자기 팀 하나를 만들어 달라는 꼴이잖아?
근데 특별법 만들고 그 ㅈㄹ하니까 민심 다 잃어서 진압 안됨ㅅㄱ
└핵심 정확히 꿰뚫네
└전화 받은 운영자 어버버하는 거 개웃겼음ㅋㅋ
└한 방송에 시청자 8만 명 까지 몰린 거 어제 처음 봤다!
└나도 그 일원이었음 뿌-듯
시청자들 스스로 멸망전의 흥행을 지켜냈다.
뿌듯해 해도 될 만한 일이다.
갑질을 하는 등 걸핏하면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파프리카TV.
보면서도 내심 불만이 안 쌓일 수가 없었다.
민심의 단합이 이루어낸 쾌거라고 할 수 있다.
파프리카TV의 중심이 다시 한 번 이동한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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