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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고된 떡상 -->
사람을 판단하는 것.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갈리지 않을 것이다.
다른 일들이야 첨단 장비, 수많은 인력 도입한다면 쉬워진다.
하지만 사람을 보는 건 그 어떤 현자도 실수할 수 있다.
"말랐긴 한데 뼈대가 좀 있는 편이네. 키가 165라고 했으니…… 24."
-미친 새끼ㅋㅋㅋㅋㅋ
-전생이 스토커신가ㄷㄷ
-현직일 수도 있음 누가 신고 좀
-은하 피셜 뜸 허리 24 맞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춘다.
왕년의 수련이 헛되지 않은 모양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근삿값에 불과하다.
"컨디션에 따라 25까지도 갈 수 있을 거 같은데. 죄송합니다. 1차 심사 탈락하셨습니다."
-무슨 컨디션까지 고려해!
-은하를 거른다고?
-얘 23이하 무조건 거름
-아니, 24면 감지덕지지 또라이야?
그래, 나 또라이다.
시청자들들 즐겁게 만들어주기 위한 또라이다.
엄격한 심사 기준이 있기 때문에 예외를 두는 건 옳지 않다.
-아, 정말요? 저 춤 열심히 준비해서 왔는데……
"하지만 But 평소 운동 열심히 하는 복근이라는 Fact. 제 Eye가 캐치했습니다. 고로 한 번 더 기회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회는 개뿔이ㅋㅋㅋㅋ
-이걸 한 번 더?
-춤은 보고 탈락시켜야 되자너ㅋㅋㅋ
기회를 주는 것이다.
만약 내가 일반적으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입사 시험을 치른다.
그런데 면접관이 되도않는 걸로 탈락시키면 너무 어이가 없잖아?
-되도않는 건 알고 있었구나……
-근데 여자가 허리가 생명인 건 맞짘ㅋ
-아무튼 가즈아~!
〈C. R. A. Y. O. N. 팝! 두둠칫 두둠칫 둠칫 둠칫~☆〉
흥겨운 댄스곡과 함께 무대가 막을 오른다.
여캠을 댄스시킨다는 게 은근히 희열이 있다.
심사의 과정으로서 어쩔 수 없이 살핀 결과.
"이분 허리 튕기는 거 보니까 플래티넘 가능성 있네. 1차 심사 합격, 합격 드리겠습니다."
-와, 정말요? 감사합니다!
-플래티넘 ㅇㅈㄹㅋㅋㅋ
-근데 1차 심사 다음은 뭐임?
해당BJ가 가진 여러가지 가능성을 바탕으로 1차 심사 합격자들을 추려낸다.
2차 심사부터는 진지하게 롤 포지션과 실력 등을 평가한다.
그리고 최종적인 3차 심사를 거쳐 팀원을 뽑는다.
-또 하비때처럼 밖에서 만나자고 껄떡대겠지
-레전설 패턴 파악 완-료
-반박 못하죠? 역겹죠?
'…….'
외모와 실력을 겸비한 파프리카TV의 차세대 여캠들을 발굴하기 위함이다.
보수적인 시선들이 인류 사회의 발전을 늦춘다.
그럴 시간에 가능성 있는 여캠이나 물어와!
-이 여캠 느낌 있다 링크 걸어줌
-응 낚시
-어, 진짜 쩌는데?
-와 허리 작살 난다 진짜ㄷㄷ
단순히 찾아오는 손님만 받는 게 아니다.
유비가 삼고초려를 했듯 찾아갈 준비도 돼있음이다.
시청자가 걸어준 파프리카TV의 다시보기 링크를 보아하니.
"오, 느낌 있는데? 이 정도 피지컬 마스터 노릴 수…… 쟤는 달래잖아. 카악! 블랙 당할래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걸 피지컬을 맞춰버리네
-피지컬 신빙성 급상승했자너ㅋㅋㅋ
삼초 고려했다.
익숙한 허리가 눈에 들어오네.
아무튼 이런 식으로 1차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벌써 적지 않은 수가 통과했다.
2차 심사는 팀원들과 같이 할 예정이다.
커스텀 방에서 1대1 대결도 하는 등 오래 걸려서 혼자 하기는 벅차다.
'생각보다 지원자가 많더라고.'
꿀냄새는 어찌나 잘 맡는지 한두 명이 아니다.
휴가를 겸해서 하는 건데 생각보다 많이 고생을 한다.
시청자들의 재미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한 몸 희생하고 있음이다.
* * *
최근 파프리카TV의 대세는 레전설이다.
불과 나흘 전만 해도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였지만 그렇게 됐다.
소문만 무성했던 복귀가 실화로 판명되며 삽시간에 관심이 쏟아졌다.
실시간 시청자 수 랭킹 1위는 당연하다.
오히려 쇼타임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레전설의 행보에 파프리카TV의 판도가 뒤바뀐다.
─[공포, 기괴] 인성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가진 남자……
북미 롤챔스 우승
멸망전 독보적인 우승 후보
파프리카TV 시청자 압도적인 1위
현재 레전설 방송 키면 대기업들이 하꼬가 돼버림 시청자 뺏겨서ㄷㄷ
└레전설 너란 남자……, 너란 쓰레기……
└여캠들한테도 인기 많더라
└나쁜 남자가 먹히는 건가?
└간만에 복귀해서 또 가뿐하게 전설 하나 찍어버리네
없는 시청자까지 끌어모으는 수준으로 방송이 미친 듯이 성황이다.
특유의 자극적인 컨텐츠가 이를 가능케 만든다.
물론 그 혼자 이룩해냈다고는 보기 힘들다.
커뮤니티에서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캠들이 왜 이렇게 성화인 거야?
어차피 대부분 다 떨어진다며?
이미 나온 애들 보면 사이즈 나오지 않나
자기가 참가하면 뽑힐지, 안 뽑힐지
타당한 의문이다.
단순히 떨어지는 것만도 아니다.
까놓고 말해서 자존심이 상한다.
아니, 니가 뭔데 사람을 판단해!
당하는 입장에서는 기분 나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자가 물 밀듯이 밀려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시청자 홍보 효과가 쩔잖아. 방송을 2~3만 명씩 보는데
└ㅇㅇ20따리던 애들 다음 날 보면 100명 보고 그러더라
└뽑힌 애들은 천 따리도 찍고 그럼. 안 할 수가 없지!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도 홍보가 된다는 게 크다.
수만 명의 시청자 앞에서 자신을 알릴 기회.
BJ들은 항상 바라지만 당연히 올 리가 없다.
왜냐!
소위 말하는 밥그릇 싸움이다.
다른 BJ의 방송을 구태여 키워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레전설의 컨텐츠는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공생 관계다.
─대기업BJ들 죄다 레전설 따라하고 있네ㅋㅋㅋ
가성비, 가성비 입에 거품 물 때는 언제고
시청자 생각한다면서 갑자기 여캠 뽑음
이 정도면 컨텐츠 도둑 아니냐?
└러이갓 말하는 거?ㅋ
글쓴이-ㅋㅋ러이갓 말고도 꽤 있음
└BJ들이 그러면 그렇지. 그래서 레전설만 봄
└레전설이 할 때만큼 감성 안 살더라
파프리카TV 멸망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쓰고 있다.
단순히 시청자 수가 많은 것 뿐만 아니라 다른BJ들의 방송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최소한 시청자들의 안구에는 긍정적이다.
물론 따라해도 가장 잘 나가는 건 결국 원조집이다.
방송감 차이도 있을 뿐더러 근본부터가 다르다.
BJ끼리 얽히면 나중에 꼭 말이 나온다.
혹시 둘이 뒤에서 썸 타는 거 아니냐?
돈 받고 의도적으로 키워주는 거 아니냐?
팬덤끼리 싸우기도 하고 별별 일들이 다 있다.
레전설의 팬덤은 레전설 하나 욕하기에 바쁘다!
독특하게도 그러한 특성을 지녔다.
더불어 프로게이머로서 신분이 확실하기도 하다.
─BJ방인아 충격 고백……, 레전설 남자로 보인다
사귀자고 하면 사귈 의향 있다
이에 레전설, 그녀 알아갈 생각 있어
레전설 방송감이면 우결 가능성 있을 듯ㄷㄷ
└아, 그 2차 심사까지 통과한 배꼽 예쁜 애?
└진짜일까? 대본이겠지??
└저렇게 예쁜 여자가 레전설을 남자로 보겠냐ㅋㅋ
└위에 댓글 쓴 애 레전설 주위 여자 클라스 모르나 보네
여캠들의 발언이 속속들이 터져 나온다.
BJ레전설에게 호감이 있다!
그 정도는 대수도 아니다.
적극적으로 어필까지 하는 여캠들이 드물지 않다.
아니, 한 명이 물꼬를 트자 너도 나도가 됐다.
파프리카TV의 부정할 수 없는 기둥이다.
그가 없을 때는 대체 어떻게 돌아갔나 의문이 들 정도다.
분명히 화제가 될 거라고는 상정을 했던 멸망전.
레전설이 참전함으로서 더할 나위가 없어졌다.
하지만 그것이 꼭 곱게만 보일까.
입장에 따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파프리카TV에서 중대한 공지사항을 하나 발표했다.
* * *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파프리카TV의 본사.
외부에 알려진 이미지와 달리 여느 회사들과 크게 다를 건 없다
독특한 건 파프리카TV의 BJ들일 뿐 사원들의 업무는 컴퓨터 작업이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유별나다.
바로 24시간 건물 불이 꺼질 날이 없다는 것.
사원들이 야근을 거의 밥 먹듯이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BJ들이 어디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정시 퇴근하겠는가?
방송하는 시간이 전혀 정해져 있지 않다.
새벽이 주 방송대인 BJ도 여럿 있다.
만약 사건이 일어나면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한다.
빠르게 처리 안 하면 기사 올라오고 막 난리가 난다.
심하면 방송통신위원회에 신고 당해서 위에서 공문 내려오고 장난 아니게 머리 아파진다.
현재 시간 새벽 한 시.
그래서 파프리카TV의 운영자들은 아직도 열일 중이다.
평소에는 한두 명이 남는 게 보통이지만 최근 비상이 하나 떨어져버린 탓이다.
"아오 레전설. 방송을 무슨 새벽 넘어서까지 하죠?"
"나 오늘 야근 없는 날인데 레전설 때문에 진짜……."
이따금 없는 일은 아니다.
시청자 수가 많은 대기업BJ들이 민감한 방송을 진행한다.
약간 수위가 있는, 사건이 터질지도 모르는 그런 방송 말이다.
운영자들이 실시간으로 모니터링을 하면 간섭을 해야 한다.
BJ들의 특성상 진짜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른다.
얼마 전만 해도 한 명 있었다.
"그래도 레전설은 간장맨처럼 미친 짓은 안 하잖아요?"
"간장맨 걔는…… 그냥 미친 거고. 레전설 쟤는 곱게 미치지 않아서 문제인 거고."
야근을 하는 사원 둘이 잡담을 주고 받는다.
직급은 같지만 입사 시기에 차이가 있는 선후배 사이.
주고 받는 화제의 내용은 같지만 알고 있는 지식의 깊이가 다르다.
"레전설 프로게이머 아니에요? 미친 소리까지 들을 사람인가."
"하늘 같은 선배의 말씀에 감히…… 아니다. 모를 수도 있지."
파프리카TV 운영자라고 BJ들을 잘 알지는 않는다.
어디 회사 입사하는 사람이 꼭 그 분야겠는가?
잘 모르는 듯한 후배에게 과거의 이야기를 해준다.
"에이, 말도 안돼. 여캠 엉덩이를 때리고 그런다고요? 그런 사람이 어떻게 프로를 해요?"
"하니까 문제지! 아무튼 말도 마. 종잡을 수가 없는 녀석이니까."
언제, 어떻게, 어디로 튀어도 이상하지 않은 초특급 요주의 대상이다.
정상적인 방송을 하다가 갑자기 선회해버린다.
심지어 시청자 수도 워낙 많아 관리가 힘들다.
결국 운영진들만 개고생.
하지만 길게 갈 고생도 아니다.
현직 프로게이머고 본인피셜로 오래 방송할 수는 없다고 말을 했다.
요 멸망전 기간 동안만 고생을 하면 되리라.
일반 사원들은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면 된다.
윗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파도 보통 아픈 일이 아니다.
"고생 많다. 마시면서들 해."
"본부장님, 퇴근 안 하셨군요!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이사직의 바로 아래에 위치하는 주요 임원이다.
야근을 하는 사원들을 독려하기 위해 본부장 김태형은 커피를 사왔다.
글자 그대로의 순수한 목적은 아니지만 말이다.
"뭐 문제는 없고?"
"예, 딱히 없습니다. 생기면 바로 팀장님을 거쳐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평소 일반 사원들과는 접촉이 없는 직급이다.
그냥 물어보기에는 약간 쑥스러웠다.
높은 사람들도 나름의 고민이 있다.
'레전설……'
일반 사원들은 모를 수도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팀장급만 돼도 다 알고 있다.
그가 파프리카TV 내에서 얼마나 찍혔는지.
사장이 그토록 노발대발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만에 하나 BJ로 복귀한다면 가만히는 안 있겠다.
커피를 사오는 길에 부디 건수 하나 잡혀있길 김태형 본부장은 바라고 있었다.
'뚜렷한 명분 없이 건드리기에는 너무 커버렸어.'
더 이상 일개 BJ로 볼 수가 없어졌다.
북미 지역의 롤챔스 우승.
프로게이머로서 인지도가 너무 높다.
그깟 프로게이머가 뭐 대수일까?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파프리카TV의 시청자 과반수가 로드 오브 로드 유저들이다.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여론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
최소한 그럴 듯한 건수가 하나 있어야 한다.
틈을 내주지 않는 용의주도함.
'하지만 계속 두고 보다가는 체면이 말이 아니야.'
마음대로 나가서, 마음대로 들어온다.
심지어 토이치TV라는 경쟁 플랫폼도 알리고 있다.
레전설이 직접 언급한 건 아니지만 시청자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오간다.
사장의 역정을 둘째 치더라도 반드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건수를 주지 않는다면 만들어서라도 해야 한다.
김태형은 대표BJ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 작품 후기 ==========
Q: 레전설 토이치TV 소속인에 멸망전 어떻게 참가함?
토이치TV의 한국 지부가 없던 시절입니다.
한국 시장에 진출 자체를 안 했으니, 경쟁 플랫폼으로도 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레전설이 토이치TV와 계약에 얽매어서 반드시 방송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고 일전에 나왔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