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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탑솔러의 나라 -->
조금 식겁할 뻔했던 게 사실이다.
'몬타니카호 출항이라니…….'
썩 좋지 않았던 예감은 맞아 떨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게임은 이겼지만 두 번은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바로 하비로 교체해 몬타니카호를 출항 금지시켰다.
그렇게 두 번째 세트를 이기고 현재.
"안녕하세요. 레전설 선수. 오늘도 놀라운 경기력 재밌게 봤습니다."
긴장되는 인터뷰의 순간이 찾아왔다.
별명 치즈 누나, 본명 엘리샤씨다.
해맑은 웃음이 매력적인 그녀다.
"재밌게 보셨다면 다행이네요. 이래 봬도 유머러스한 남자입니다."
"Calm Down. 래딧에서 인터뷰가 소개팅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거 아시나요?"
"……."
조금 오해를 받고 있다.
래딧은 서양권의 롤 커뮤니티다.
의외로 경박한 느낌이라 별의별 이야기가 오간다.
그 중 하나.
내 인터뷰 태도에 대한 비판글을 나도 봤다.
─레전설 그는 절대로 순수한 아시아인이 아니야
엘리샤에게 음흉한 눈초리를 보내고 있어
여기 이 사진을 봐!
└LOOOOL
└엘리샤는 그렇게 큰 편은 아니지 않아?
└크고 작고는 중요하지 않지. 그녀는 매력적인 여성이니까
└한 가지는 확실해. 레전설은 미국의 성추행법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를 거야!
'아니, 사람을 대체 어떻게 보고…….'
이래서 커뮤니티, SNS가 무서운 거다.
악의적 편집으로 사람을 순식간에 나쁜 놈으로 만드네.
딱히 진지하게 정색하는 건 아니다.
한 가지 오해를 짚고 넘어가고 싶을 뿐이다.
"제가 승리의 여신이 될 수 있도록 미소를 지어드리면 되나요? 여자친구는…… 서로를 알아간 후에."
장난스러운 제스처에 현장의 팬들이 폭소한다.
중국인팬들은 대부분 떠났지만 나머지 이들은 남았다.
인터뷰까지 보고 가는 관중은 적다는 걸 감안하면 상당한 숫자다.
무엇보다 분위기가 들떠있다.
'갑자기 밈이 됐는데…….'
개방적인 서양권에서는 별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But 동양인인 나로서는 심히 언짢다.
나 레전설, 함부로 이성 교제하지 않는 남자다.
팬들의 지적대로 내가 순수한 사람이 아니다.
엄격·근엄·진지 세 단어로 설명된다.
설사 장난이라더라도 선은 지켜줬으면 싶다.
"외람되지만 예로부터 제 고향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려왔습니다."
"Oh, 예의가 바르다는 뜻이겠죠?"
"한국은 유교의 나라이며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성 관계에 지극히 보수적입니다. 이점 알아주셨으면 하네요."
남녀칠세부동석.
일곱 살이 되면 남녀가 한자리에 같이 앉지 아니한다.
간단하게 설명을 읊조렸다.
어느새 공손한 자세가 된 엘리샤가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Sorry. 제가 한 걸음 띄어 있을까요?"
"부디 그래주셨으면 합니다. 남녀가 엄연히 유별한데 어찌 동석하여 사사로이 농담을 주고 받을 수 있단 말입니까?"
경기장에 갑분싸가 찾아온다.
엘리샤도 곤란한 기색이다.
이러한 갭을 원하고 있었다.
"However But, 마음을 전하는 데는 자유로운 나라입니다. 지금 이 1m 남짓한 거리가 제가 당신에게 가지고 있는 마음의 거리입니다. 우리가 나눈 대화로 이렇듯."
한 걸음 발을 디딘다.
그녀가 물러선 거리 만큼 내 쪽에서 다가간다.
현실 뿐만 아니라 마음속으로도 거리가 가까워진다.
"Seriously? 한국은 로맨틱한 나라군요."
"언제 한 번 찾아오신다면 환영합니다. 제가 안내해드리죠."
나와 함께 MVP를 받은 다른 한 명.
하비의 뜨거운 눈초리를 받으며 인터뷰가 끝이 났다.
* * *
여러모로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LMC 대 토이치TV.
서양권 롤 커뮤니티인 래딧은 특히나 뜨거웠다.
-Go Home LMC!
-Fucking Chinese!
-□□□ Carried USA!
.
.
.
사이트 관리자의 통제에서 벗어날 정도로 글이 미친 듯이 도배됐다.
마음속에 곱지 않은 응분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NA LCS에 와놓고 중국팀처럼 행동하니 당연히 밉보이게 된다.
롤드컵 기간이야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원래 국제 스포츠 리그는 국뽕을 마시는 맛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자국 리그에 온 외국 선수들이 적응을 안 한다?
자꾸 자기네 나라 걸고 넘어지며 비교를 한다?
밉상으로 보는 건 차별이라고 볼 수 없다.
─어제 LCS 스튜디오 현장 관람 갔는데 중국팬들은 얼척이 없었어!
편파 응원이야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야유가 Crazy……
누군가 지휘라도 하는 것처럼 한 뜻으로 움직이는 게 소름 그 자체야
└그 정도였어?
└중국인들은 늘 그래. 자신들만 생각하지
└새삼 놀랍지도 않아 LOL
└LMC가 이겼으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해!
현장의 오피셜을 담은 글들이 차례차례 올라온다.
중국인에 대한 악명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높은 게 아니다.
관광 산업이 발달된 외국은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다.
저 팀은 해로운 팀이다!
만악의 근원을 싹둑 잘랐다는 느낌이다.
그 통쾌한 경기는 팬층을 양산하기에 충분했다.
「LMC 완전 격파! 레전설이 보여주는 진정한 솔로캐리.」
「동방에서 온 학살자. Korean secret weapon! 레전설!」
「그는 어째서 책을 읽는가? 알고 쓰면 더 좋은 아이템.」
가히 환상적인 플레이를 선보였다.
북미 유저들은 특히 생소한 광경이다.
혼자 멱살을 잡고 캐리를 한다고?
북미의 메타는 겉보기에는 느긋해 보인다.
실상은 머리를 굴리면서 게임하는 선수들이 많다.
물론 캐리형 선수들도 있지만 그들 혼자서 게임을 어찌 하는 느낌은 없다.
메타가 그러한데 혼자서 뭐 어쩌겠는가?
혼자서도 어쩔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경기를 본 관중들로 하여금 도저히 잊을 수가 없게 만든다.
─Shit! 솔로랭크가 완전 독서가들 천지야!
이것 봐. 불과 5분 전에 진행한 랭크 게임이라고
무려 여섯 명이나 테자이와 비술을 올렸어
차라리 흡연충들이 많은 게 더 나을 정도야
└롤챔스를 열심히 봤나 본데? :O
└테자이는 잘만 쓰면 좋다고 생각하지만 비술은 너무 애매해
└하지만 레전설은 둘 다 올렸는 걸?
└그는 안 죽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좋은 쪽 예만이 나돌 수는 없는 일이다.
일부 솔로랭크 유저들에 의해 우주의 균형이 맞춰진다.
그만큼 파급력이 있다는 이야기다.
빛나는 스타성은 그야말로 발군이다.
꼭 좋은 쪽의 컨셉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하나둘 인연이 쌓이다가 고백하는 건 아닐까?
결승전 우승 후에 말이야!
조금씩 접근해간다는 동양의 연애 방식은 흥미로워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관심이 가
└엘리샤도 관심이 없는 것 같지는 않아
└엘리샤가?
└Oh, 그것만은 안돼. 그녀는 나 같은 겜돌이들의 오아시스라고!
└지금껏 깐족대는 선수는 많이 봐왔지만 아나운서에게 작업을 거는 선수는 생각도 해본 적도 없어……
호불호가 조금 많이 갈린다.
결혼 후 귀화를 한다면 환영이야!
안돼, 인터뷰를 보는 이유의 절반은 엘리샤라고!
물론 진지한 비판이지는 않다.
한국과는 팬문화가 사뭇 다르다.
선수의 독특한 컨셉을 일일이 지적하거나 엄근진 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진지하게 곱씹는 분석도 있다.
전략 노출을 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말을 돌리는 건 아닐까?
인터뷰에 하도 딴소리가 많이 섞이다 보니 킹리적 갓심이 지펴지기도 한다.
물론 일각에서다.
전체적인 대세론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레전설에 대한 평가, 이미지, 어느 쪽도 기울지 않았다.
─레전설은 알면 알수록 더 대단한 선수 같아
그에게 한계가 있다고 말했던 과거를 반성해
앞으로 얼마나 더한 캐리력을 보여줄지 오싹오싹할 정도야
└그는 AP챔피언으로는 테자이, AD챔피언으로는 비술을 코어템으로 가는 선수지
└심지어 하이브리드로는 둘 다 가!
└지금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플레이 스타일을 가진 선수임은 틀림없어…… 하지만 불안하기도 해
└맞아. 종이는 잘 찢기는 법이거든 : p
한 번 흐름을 타면 일방적으로 몰아세울 수 있다.
그것이 테자이의 영혼약탈자와 비술의 창이 가진 특성이다.
하지만 반대로 구매한 것이 최악의 선택이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아니, 오히려 흔할 정도다.
같은 가격대비 일반템보다 당연히 스펙이 안 좋다.
여차저차 잘 쌓아도 한두 번 죽어버리면 도로아미타불.
그래야만 했던 속사정이 있었다.
미국이라고 한국인이 없는 게 아니다.
자세한 사정을 아는 이들이 몇 명 나올 만도 한 일이다.
─OMG…… 나는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야
북미에도 롤챔스가 있나 찾아보던 도중 깜짝 놀랐어
레전설 그가 LCS를 뛰고 있다니!
혹시 무언가 이상한 짓을 하고 다니는 건 아니겠지……?
└Hey guy, 로드 오브 로드의 본고장은 미국이야
글쓴이-신경을 건드렸다면 미안해. 나는 그저 북미의 롤챔스를 처음 봤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야
└다른 나라의 리그는 잘 신경 쓰지 않으니 그럴 수 있지!
└Oh, Korean~ 레전설에 대해 잘 알고 있니? 우리는 너희 이야기를 듣고 싶어
몇몇 한국인 팬들에 의해 썰이 풀린다.
찾아보면 분명히 정보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추천글에 올라 수많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건 이야기가 다르다.
무엇보다 흐름을 탄 마당이다.
화제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레전설 그가 어떤 사람인지.
특히 레전설의 법칙이란 흥미로운 이론이 관심을 모은다!
─2데스 이상 하면 진다고……?
그러니까 조건이 무조건 2데스야?
예를 들어 10킬 2데스를 해도 지는 거야?
└맞아, 그는 실제로 비슷한 KDA를 기록하고도 졌어
글쓴이-어째서? 난 이해가 되지 않아
└그만큼 팀이 못했다는 거 아닐까?
└어떤 한국인 말로는 팀에 골드 티어가 있었대!
어처구니 없는 헛소문들도 딸려 올 수도 있는 법이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이 흥미를 더욱 돋우고 있다.
팀이 못했다면 저 실력에 우승을 못했을 만도 하네.
하지만 이는 동시에 방증하는 것이다.
아무리 그라도 패배를 안 하는 건 아니다.
잘하는 팀을 만난다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
초월자가 아니라 필멸자.
한계가 있는 사람이라는 소리다.
의아할 정도로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까지 정말 사람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B조의 전력이 상대적으로 세진 않아
북미의 핵심 팀들은 A조에 치중돼있는 상태야
조별 리그의 1위가 중요하긴 하지만 절대적인 건 아니잖아?
LMC처럼 단순 무식한 싸움 잘하는 팀이 유리한 조건이지
피지컬이 엄청나게 뛰어난 레전설도 마찬가지고
└맞아. 롤은 중요한 무대일수록 전략의 가치가 높아져
└Yes Yes! 미터스 같은 탑급 선수는 피지컬도 비등비등해
└미터스와 레전설…… Oh, 상상만 해도 짜릿해
└둘이 결승전에서 만난다면 엄청난 일생일대의 대사건이 될 거야!
미터스는 두 시즌 연속 우승을 거머쥔, Making한 現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슈퍼 스타다.
북미에서 테이커급의 위상을 가진 선수다.
심지어 침체기도 아니고 매우 잘한다.
지난 시즌과, 지지난 시즌의 우승팀이다.
A조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달리고 있다.
이 이상의 사치로운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그렇기에 더욱 기대되는 일이다.
팬들은 그 둘의 대결이 최종전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 * *
일요일 아침 오전 10시.
기상하여 커피를 마시는 버릇이 생겼다.
'원래 커피를 좋아하진 않았는데 서로 받아들이는 거지.'
미국애들이 쌈장 먹고, 김 먹는 것처럼 나도 하나 받아들인 셈이다.
휴게실 갈 때마다 커피 향기 풍기면 저절로 땡기게 된다.
하지만 오늘은 유난하게 고요하다.
정말로 몰랐던 사실이다.
자유롭고 유쾌하고 가벼운 느낌인 미국인들.
종교에 한해서는 사뭇 진지하더라?
일요일 오전 11시는 대부분 예배를 간다.
종교인 비율이 절대 다수라서 빌딩 안이 고요하다.
나를 제외하면 몇 명 서성이는 사람들이 간신히 보일 정도다.
그렇다고 나까지 종교 활동을 할 생각은 없지만.'
종교 활동을 열심히 했던 건 군대로 충분하다!
훈련병 때 햄버거, 소보루, 오예스 정보를 찾아다녔다.
일요일 정도는 편하게 쉬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까놓고 말해 귀찮잖아. 어떻게 매주 교회를 가.'
그런 종교 활동을 열심히 하는 지인이 한 명 있었다.
========== 작품 후기 ==========
손목 부상 부분 어떻게 할까 고민했는데
하루에 500포인트로 합의를 보려고 합니다(중반부 이상 가면 고민을 안 해도 되는)
혹시 의견 있으신 분 계시면 말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