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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래 온 손님 -->
"영향이 없지는 않죠. 알게 모르게 사람의 심리라는 게 그렇고 그런 부분이 있기 때문에……."
휴게실에서 통화를 하는 중이다.
나도 내가 뭔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게 있다.
이기고도 진 거 같은 느낌이 들면 할 마음이 사라지지 않겠는가?
'LCS 제도가 좀 특이해.'
한국의 롤챔스와는 다른 면이 있더라.
조별 리그의 순위가 상당히 중요하다.
A조와 B조의 1위는 4강 진출이 자동으로 확정된다.
나머지 각조의 2~4위는 한 번 더 리그전을 거친다.
여섯팀 중 상위 두 팀이 4강에 진출할 수 있다.
따질 것도 없이 1위가 좋기는 하지만.
'승당 인센티브 적용이 애매해지잖아.'
일련의 이유로 방금 전 통화를 마쳤다.
계약 사항에 정확하게 명시돼있지 않다.
다행스럽게도 유도리 있게 진행이 되었다.
'유도리가 중요해 유도리가.'
군대에서도 유도리 없으면 답답하다.
아니, 이 정도는 해도 되잖아.
안된다고 목에 핏대 세우는 순간 분위기 싸해진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융통성 있는 우두머리다.
그 어떤 집단이든 우두머리가 막장이면 무너지게 돼있다.
토이치TV 게임단의 구단주 티미 몬테.
팀이 못할지언정 그 자신은 트롤이 아니다.
방증하듯 시원스럽게 최대 조건을 수락했다.
"그가 뭐라고 해요?"
"딱히 별말은 안 했는데……."
옆에서 신경쓰이는 눈치로 듣고 있었다.
하비의 눈빛에 의구심이 있어 보인다.
말해주지 않고서야 알 수 없는 속마음이다.
'재벌 2세들만의 세상이 있겠지.'
있는 집 자식들이 어찌 하고 사는지 들어봐야 머리만 아픈 법이다.
그녀가 말하고 싶을 때 들어주면 된다.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썽훈 어제 여친 잘 만났어요?"
"……."
아니, 이런 뜬금 물음은 너무 난감하잖아.
어디서 들은 건지 순간 식겁했다.
사실 어디서든 들을 만하긴 해.
'정보원이 한두 명은 아닐 테니까.'
어디 숙소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빌딩 내부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
오는 길에 당연히 1층 카운터를 거쳤으리라.
달래 외모에 화제가 안됐을 수는 없다.
아무리 동서양 미의 기준이 다르다고는 해도 어느 정도다.
그리고 달래는 서양 기준에서도 분명 우월하다.
얘가 길쭉길쭉 해서 모델형이다.
"둘이 가서 뭐했어요? 밥만 먹고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얘기도 하고 그랬지. 오랜만에 만난 거잖아?"
"무슨 얘기를 그렇게 오래 했어요?"
"……."
좀 신선한데?
나 이런 속박 싫어하지 않는 남자야.
대답을 조금 골라야 하는 부분이다.
변명을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칫 구차해질 수 있다.
게다가 하비가 눈치가 빠른 편이다.
한국말을 할 때는 뇌세포가 많이 소모되는지 0.5유리야틱한 그녀다.
영어를 쓸 때는 전혀 달라진다.
무엇보다 이미 웬만큼 알고 있는 마당이다.
"달래가 일 때문에 고민이 많더라고."
"일이요?"
"그 왜 있잖아. 모델일."
일단 이유가 있어서 만난 거라는 걸 어필한다.
이번 기회에 오해도 하나 풀고 싶다.
언제까지 오해 받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달래가 보기보다 여린 애야. 그래서 내가 가끔 상담을 해줘."
"흐응……."
"……."
의심의 눈초리가 가시지 않는다.
조금 정도는 풀어놓아도 될지 모르겠다.
사귀었던 건 사실이지만 과거의 일이다.
그리고 나에 대한 걱정도 하고 있더라.
"애 만들어오지 말라고 타박주더라고."
"베이비 메이킹?"
"아니, 섹스."
"Oh, 섹스!"
순식간에 0.7유리야가 돼버렸다.
저질 토크에 면역이 없는 듯하다.
평소에는 그렇게 적극적이면서 살짝 19금 이야기가 나온 정도로 부끄러운 기색이다.
"오해가 좀 풀렸어?"
"썽훈! 그런 이야기 옳지 않아요."
은근히 갭이 많은 하비다.
이런 갭 귀여워서 정말 좋다.
그리고 여자애들도 말만 관심 없는 척하지 싫어하진 않잖아.
'인간인 이상 싫어할 수가 없지.'
조금씩 말을 트는 것이다.
아무튼 오해를 푼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하비가 떠난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생각한다.
중국팀에 대한 대처법.
오늘 오전을 통틀어 훑어봤다.
코치진에게서 자료를 받아서 말이다.
'사실 자료는 별 게 없고 다 내 뇌피셜이긴 한데.'
이전부터 알고 있던 정보와 대조해보자 명확해졌다.
애초에 딱히 분석할 것도 없는 이야기다.
중국팀들의 성향은 간단하다.
그냥 간단함 그 자체다.
'계속 싸워.'
계속 싸운다 계~속!
허구헌날 싸움판을 찾으러 돌아다닌다.
물론 세세한 설명이 더 붙어야 함이 옳지만 요점만 따지면 틀리지 않다.
각 지역의 팀마다 특징이 있는 법이다.
북미가 느긋하다면 중국은 정확히 그 반대.
얼핏 한국과 비슷하게 보이면서도 전혀 다르다.
'우리나라는 근거가 있이 싸워.'
그러지 못하는 팀이 있을지언정 최상위권팀들이 노리는 목표는 비슷하다.
이따금 루즈한 경기가 나오는 이유가 그래서다.
근거가 없으면 서로 간잽이가 돼버린다.
그에 반해 중국은 그냥 싸우고 본다.
얼핏 단세포처럼 보일 정도로 빠꾸가 없다.
자세한 사정을 알고 보면 꼭 그래서만은 아니다.
'다른 선택지가 없거든.'
우리나라처럼 운영을 특기로 하는 나라가 아니다.
그래서 휘둘리기 전에 어떻게든 싸움을 건다.
그것이 중국팀들이 가진 게임의 자세다.
오로지 싸움을 걸고, 하는데 특화돼있다.
그 싸움을 굉장히 잘하기 때문에 곤란하다.
나는 몰라도 아군들이 쓸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하지.'
아는 이상 어렵지도 않은 일이다.
* * *
NA LCS.
미국, 캐나다, 그린란드가 포함된다.
멕시코 또한 일반적으로 북미지만 예외가 적용되어 중남미 리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방하는 지역이 지나치게 넓은 게 사실이다.
설사 롤챔스의 광팬이라 하더라도 직관을 오는 게 힘들어!
버스 타고 세 시간만 가도 멀미가 나오는 한국과는 다른 것이다.
최소 수 시간, 그것도 비행기를 타고 와야 한다.
다른 교통 수단으로는 며칠씩 걸릴 수도 있다!
어쩌다 그린란드 팬이 한 명 오기라도 하면 카메라 비춰주고 선수들이 사진도 찍어주고 난리가 난다.
때문에 NA LCS의 스튜디오 좌석수는 고작 200석 남짓하다.
북미라는 지역의 규모에 비하면 터무니 없다.
일련의 이유 때문에 만석이 지극히 드물다.
지난 유투브 게이밍 대 토이치TV.
양쪽 플랫폼 팬들의 신경전이 오가면 한 번 있었다.
그 한 번을 제외하면 만석에 가깝게 찬 적이 없는 것이 현장 사정이다.
온라인 쪽은 날이 갈수록 성화지만 현지에는 아주 뚜렷한 변화가 있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라 보인다.
관중석이 유난하게 시끄럽다.
〈Um…… 타지역 팬분들이 많이 와주신 모양입니다.〉
〈뜨거운 열기, 무척 좋아하지만 아직 경기가 시작하기 전이라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군요.〉
아티러스와 재트.
중계진들이 어영부영 분위기를 환기하다.
지리적으로 가까워 자주 찾아오는 단골 팬들의 심기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영어로 떠드는 거면 모른다.
하다 못해 부부젤라면 익살스럽기라도 하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모르고 듣는 게 원래 곤욕스럽다고는 하지만 중국어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
수십, 수백 명씩 가득 찬 중국인 단체 팬들.
채 경기가 시작하기 전임에도 데시벨이 세 자리를 주파할 지경이다.
그 소란스러운 현장에 응원의 당사자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팀 LMC입니다! 예상했던 대로 팬분들의 성화가 대단하네요. LMC를 응원하기 위해 멀리서 찾아와 주셨을 겁니다.〉
〈본래 LPL에 연고지를 뒀던 LMC잖아요? LMC의 팬이아니었던 중국분들도 응원하기 위해 와주셨을 수도 있어요.〉
〈양키스가 레드삭스를 박살 내줄 때처럼 말이죠?〉
〈에인절스의 팬으로서 생각하니 납득이 가네요.〉
야구 이야기다.
L.A에 연고지를 둔 에인절스는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로 이를 간다.
근데 솔직히 전력 차이가 너무 나서 발만 동동 굴리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레드삭스와 앙숙 관계인 양키스가 이따금 정의구현을 해준다.
에인절스의 팬들은 그때 만큼은 양키스를 응원한다.
금일 경기장이 북적이는 이유도 그래서가 아닐까?
불편한 단골 팬들을 이해시키기 위함이다.
온라인 상에서도 반응이 썩 유쾌하지가 않다.
그도 그럴게 중국인 단체 광광객들에게 당해본 경험이 한두 번씩은 있다.
-중국인들은 단체로만 다니지 않아도 욕 먹을 이유가 반절은 사라질 거야
-그들은 놀라워. 나는 절대 10명 이상의 친구들과 함께 다닐 수 없을 테니까
-10명이 뭐야. 그들은 100명씩도 같이 다닌다고!
살고 있는 지역이 관광지라면 특히 예민해지는 일이다.
관광을 와주는 것 고맙다.
그런데 쓰레기 좀 작작 버리고 작작 시끄럽게 해!
한두 마디 내뱉는 불만은 더할 나위 없는 본심이다.
현장과는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는 온라인 팬들.
당연하게도 그들 대부분이 북미 지역의 사람들이다.
저 밉살맞은 LMC가 제발 패배하길!
중계진들의 드립과 마찬가지의 논리다.
토이치TV의 팬들이 아닌 사람들도 목소리를 높인다.
〈드디어 등장했습니다 토이치TV! 저는 이 팀에서 한 명의 선수가 유난히 기억에 남아요.〉
〈하비 말이죠?〉
〈Oh, Please…… 제 여자친구도 롤을 해요. 지금 방송을 보고 있을 수도 있다구요! 하비도 분명 매력적인 선수지만 저는 그의 캐리력을 보다 높이 평가합니다.〉
아티러스가 굉장히 곤란해 한다.
연애 관계에서 사소한 오해가 곪아 터질 수 있는 건 비단 한국에서의 일만이 아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진정 높은 평가를 받는 선수가 따로 있는 것도 사실이다.
-□□□!!
-레전설이야, 그가 왔어!
-그라면 LMC를 시원하게 쓸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해
-나도 같은 마음이야. 레전설의 캐리력이라면 믿을 만하지
하지만 원래 기대와 실망은 항상 정비례하기 마련이다.
기대가 높았던 만큼 실망도 크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국내에서는 잘하는데 해외 성적이 안 나온다는 이유 하나로 밉보이는 게임단도 있을 정도다.
〈그런데 오늘 첫 경기는 하비 선수가 아니네요?〉
〈본래 메인 서포터로 배정된 선수에요. 저는 굉장히 낯이 익어요 아티러스도 안다면 함께 어떤가요?〉
〈당연히 모르지 않죠! 그는 토이치TV의 유명 스트리머니까요.〉
〈〈몬타니카호 출항이다!〉〉
함선을 의미하는 Ship이 몬타니카의 성이다.
몬타니카호는 그의 개인 방송에서 미는 밈.
고정팬인 시청자들도 달갑게 외친다.
-오 첫 출항이야!
-어째서 메인인 그가 서브처럼 나오지 않았던 거지?
-글쎄, 확실한 건 그의 실력은 결코 하비에 뒤지지 않아!
솔로랭크의 성적이 마스터 상위권.
주포지션이 서포터라는 것은 감안하면 지극히 높다.
방송적인 위트 또한 대단하여 고정팬층이 두터운 편이다.
그의 첫 출전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아니, 아껴뒀다가는 목소리도 있을 정도다.
그도 그럴게 오늘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무대다.
〈오늘의 경기 결과가 B조 1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 보입니다.〉
〈양팀 모두 4승 전승을 거두고 있으니까요! 이기는 쪽은 B조의 1위라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한 걸음 크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사실상의 B조 1위 결정전이다.
현장의 관심이 유난히 높은 데에는 일련의 사정도 밑바탕 되어있다.
중국 팬들 입장에서는 LMC가 이기는 걸 당연히 바란다.
반대로 북미의 팬들은 이번에야 말로 저지됐으면 싶다.
뜨거워진 관심 속에서 시작하는 첫 번째 세트.
하비가 빠진 것을 제외하면 크게 유별나지 않다.
분명 겉보기에는 지극히 일반적인 조합의 구성이다.
-미달리?
-미드 미달리가 아직도 가능해?
-창이 너무 안 좋아졌어. 테자이를 풀로 채워도 이전 만한 위력은 안 나올 걸?
조금 독특한 챔피언이 하나 나왔을 뿐이다.
리메이크 이후 처절한 평가를 받고 있는 미달리.
아이덴티티였던 핵창이 거의 반토막 나면서 애매해졌다.
피격 범위 또한 좁아져서 포킹 챔피언으로서는 의미가 상실됐다.
하지만 챔피언 자체의 평가는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
북미 지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는 말이다.
로드 오브 로드에서 한국은 또 하나의 이명이 있다.
탑솔러의 나라.
말하기라도 하듯 어느새 자연스럽게 바꿔 들었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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