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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다.
부족할 수밖에 없던 연습 시간.
경기 날짜가 가장 끝으로 잡히며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조금.
필요한 연습량에 비하면 여전히 터무니 없다.
과연 미국에 오는 결정이 맞았는지.
곱씹어볼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결과는 결국 수렴했다.
조추첨식을 계기로 마음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아나운서가 정말…… 참하시더라고.'
한국 남자들이 바라는 금발벽안 백인 여성의 이상(理想)이다.
이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조추첨식 도중 눈이 마주쳤다.
'이런 걸 보고 운명이라고 하는 거겠지.'
그녀는 마음의 창문을 통해 말했다.
경기를 이기고 인터뷰 자리에 서달라.
그리고 나는 응답했다.
당신의 하트를 가져가리라고, 그러니까 기다려 달라고.
참 공교로운 일이다.
나중에 알아본 바로 한국에서의 별명이 치즈 누나.
북미판 안경 누나라는 의미도 있다고 하더라?
안경 누나, 김수연 아나운서의 빈 자리를 채워주리라는 신의 계시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현재 곧 경기가 시작될 예정이다.
부스 안에서 바라본 경기장 내부.
관중석 이곳저곳이 찬란하게 빛난다.
외국인 미녀들이 혹시 희귀한 거 아닐까?
우리나라도 솔직히 예쁜 사람이 많지 않다.
특히 내 눈을 만족시킬 수 있는 수준의 처자들.
이곳 경기장에 산재해 있다.
아무리 내가 지금 오픈마인드, 허들을 낮추고 있다고 해도 상당한 수준이다.
심지어 다인종 국가답게 한 명 한 명이 자신의 색깔을 갖췄다.
"썽훈."
"……."
하비가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선글라스를 구비해 왔어야 했는데.
너무 뚫어지게 쳐다봤었나 보다.
"여친 없다. 썽훈 외롭다! 하지만 바람 나쁘다!"
"아니, 그러니까 여친 아니라고……."
말을 했음에도 믿어주지를 않는다.
언제 한 번 삼자대면이 필요해 보인다.
지금 당장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일.
경기에 들어가는 게 급선무다.
들어가기에 앞서 팬들과 소통의 시간을 가진다.
무대 위로 입장한다.
* * *
유투브 게이밍 대 토이치TV.
양팀 모두 이제 막 창단한 게임단이다.
당연하게도 고정 팬층이 옅을 수밖에 없다.
상식적으로 그래야 하겠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이다.
이전에 프로 경력이 있다.
하물며 선수 하나하나가 수십만의 고정팬을 보유했다.
〈특히 주장인 바르실 선수는…… 유투브 구독자가 100만을 넘어섰다고 하죠?〉
〈아니, 100만 명이나 되나요?!〉
〈실력적인 면도 그렇고 아시다시피 외모가 특출난 선수가 아닙니까?〉
아티러스의 설명에 재트가 깜짝 놀란다.
NA LCS는 캐스터와 해설자가 2인 1조다.
한국과 달리 역할이 보다 겹치며 친근한 분위기다.
선수에 대한 사적인 정보.
알고 있다면 거릴 것 없이 늘여 놓는다.
-Oh…… 경기장 꽉 찼나 본데?
-심지어 태반이 여성팬이야!
-그럴 만하지. 바르실이잖아 바르실
사실 선수 시절부터 실력적인 면이 엄~청난 선수는 아니었다.
분류를 하자면 잘한다.
하지만 특별히 잘한다고는 보기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인기.
그 근원은 눈에 띄는 외모 덕분이 컸다.
여성팬층이 유별날 정도로 많아 그의 경기날이면 늘 북적였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현장의 수많은 팬들이 유투브 게이밍의 등장을 환영한다.
여성 특유의 높은 고음이 경기장 안을 시끄럽게 울리고 있다.
〈바르실 선수 말고도 팀에 속한 선수들 전원 높은 인기를 구가합니다. 유투브 게이밍, 확실히 스타성이 있는 이색적인 팀이에요.〉
〈하지만 이에 뒤지지 않습니다! 토이치TV도 각 선수들이 다 유명해요. 아시잖아요 종나 몬하이!〉
재트의 외침에 현장의 관중들이 호응한다.
단순히 팬덤의 규모만 비교하면 유투브에 비해 작다.
미국 유저들이 라이브 스트리밍보다는 비디오 스트리밍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롤판의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전혀 밀리지 않는다.
숫자가 적을지언정 정예.
유투브는 라이트 유저들 위주, 토이치TV는 헤비 유저들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현장 반응이 좀 싸늘…… 한데요?〉
〈아, 깜빡 잊고 말씀을 안 드렸네요. 여성팬이 많은 선수가 있다면 그 반대의 선수도 있습니다!〉
여자를 함부로 대하는 그런 쓰레기가 있다고 하더라.
그런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점점 기정사실화가 되어간다.
그 본인이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 보니 빼도 박도 할 수가 없다.
경기장 이곳저곳에서 우~~~~!!
빗발치는 야유는 유난히 높은 음색이다.
여성이 내는 고음 이외에는 굉장히 특수한 경우일 것이다.
〈첫 등장부터 미움을 받고 있네요. 토이치TV의 주장 레전설 선수.〉
〈저도 방송을 한 번 봤는데…… 페미니스트더라고요.〉
〈페미니스트라고요? 그런데 여성분들이 싫어해요?〉
한국 방송에서는 섣불리 꺼내기 힘든 드립이다.
하지만 이곳 서양권, 특히 북미쪽은 자유롭다.
아티러스 캐스터가 말을 잇는다.
〈팀원들을 대하는데 있어 평등합니다. 팀내의 유일한 홍일점, 아니 LCS의 유일한 홍일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하비 선수까지 닦달하는 모습을 보이더라고요.〉
〈아~ Habi!! 래딧에 이야기가 많았죠. 정말로 나오는지 저도 궁금했어요!〉
전세계적으로 여성 선수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시즌2 롤드컵의 우승팀, TWA(Taiwan Asian)의 서브 서포터가 바로 여성 선수였다.
실제 경기에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을 뿐이다!
스크림에서 저평가를 당했다.
혹시 힘을 숨기고 있었던 거야?
그런 이야기가 나왔던 속사정 중 하나가 스크림에서는 그녀가 자주 출몰했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실력 좋은 여성 선수는 사실상 없다.
소위 말하는 킹리적 갓심.
합리적 의심이 대상이 된다.
전례가 없다 보니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는데.
〈일단 첫 세트 출전은 확정됐다고 합니다. 포지션은 서포터!〉
〈Oh~ 오늘 경기가 더욱 흥미로워지겠네요. 참고로 하비 선수도 인기가 굉장히 많아요. 현장팬들만 따진다면 팀 내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원래 직관팬은 양보다 질이다.
솔직히 인터넷 방송 스트리머의 팬들.
집에서 바지 벅벅 긁으면서 모니터, 혹은 핸드폰으로 시청한다.
귀찮게 저 멀리 있는 경기장까지 나가는 팬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하비! 하비! 하비! 하비!
유별난 감정을 가진 팬들은 걸음을 아끼지 않는다.
점점 더 빨라지는 템포.
경기장의 수많은 남성팬들이 응원한다.
물소떼의 합창에 의해 분위기가 더욱 달아오른다.
그런 그들조차 실드쳐주지 못한다.
아니, 않는다는 표현이 옳다.
레전설에 대해서는 우~~~~!
약속이라도 한 듯 야유가 빗발친다.
〈근데 저래 봬도 인기가 많은 선수에요.〉
〈인기는 많아요. 그만큼 안티도 많지만요! 안티팬들조차 사로잡을 경기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 소문이 헛되지 않다는 사실을요.〉
-□□□?
-박스박스!
-정말로 그가 정말 박스박스일까?
-마음 먹고 솔로랭크 쭉 돌리면 증명이 될 텐데……
애매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내로라하는 팀원들이 전부 인정했다.
레전설 그의 실력은 진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팬들은 보다 명확한 지표를 원한다.
이를 테면 솔로랭크의 순위 말이다.
그다지 돌리지 않아서 문제다.
왜냐!
할 일이 워낙 많고 바쁘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하비를 포함한 팀원들을 갈구는데 전념한다.
때문에 오늘 경기는 더더욱 의미가 깊다.
진정한 실력을 목도할 수 있는 순간이다.
솔로랭크도 아닌 만큼 빼도 박도 못한다.
〈레전설 선수를 어떻게 생각하냐요?〉
안 그래도 이목이 모아진 상태다.
불난 집에 더욱 부채질을 한다.
유투브 게이밍의 주장 바르실.
그의 손에 마이크가 잡힌다.
NA LCS에서는 굉장히 흔한 풍경이다.
사소한 도발도 눈치 보는 한국과는 다르다.
해설진들도 자유로울지언데 선수들은 더 하면 더 하지 덜하지는 않는다.
〈집에서 독서나 하는 게 났었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다음 경기는 보다 취미 생활에 전념할 수 있으니 꼭 나쁜 이야기는 아니지요.〉
현장 팬들의 반응이 열렬하다.
안 그래도 과반수가 그, 혹은 유투브 게이밍의 선수들 팬이다.
밉살맞은 선수를 저격하여 비꼬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조추첨식때 말했었죠? 독서가 취미인 레전설 선수입니다.〉
〈친절하게 프로필 설명이 나오네요. LCS의 자막팀이 열일을 하고 있나 봅니다.〉
해설진마저 표정 관리를 못하는 모습.
어느새 선수 소개 자막에 취미: 독서가 떠버린다.
NA LCS의 방송은 원래 유쾌한 느낌으로 진행된다.
자유의 나라 미국답게 감정 표현이 지극히 자유롭다.
아니, 웃긴 걸 어떡해!
웃긴 건 죄가 아니다.
-LOLOLOLOLOLOL~
-시작하기도 전에 한 방 먹었는데?
-한 방은 뭐야 세네 방은 먹었어! 이미 넉아웃 상태라고!
-멘탈이 나갔을지도 몰라 안 그래도 Shy한 친구니까!
커뮤니티, 그리고 중계 플랫폼들.
특히 유투브 라이브 스트리밍은 난리가 났다.
채팅창에 웃긴 이모티콘과 조소들이 가득하다.
매너가 나쁘다기보다는 흔히 있는 팬문화다.
일반 스포츠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상대팀을 놀리며 풍자하는 것이다.
그 멘탈 공격이 정말 먹혀버린 걸까?
토이치TV측은 유난히 조용하다.
주장인 레전설도 별다른 쓴소리를 하지 않는다.
기세가 넘어간 상황에서 첫 번째 세트가 시작된다.
* * *
살짝 충격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했을까.
'…….'
아니, 어느 정도 알기는 했다.
팬들과의 커넥션.
조금 소홀히 한 감이 있었다.
그럴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팀장으로서 책임감이 무겁다.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야 했고, 팬들과의 소통 쪽에 무게가 덜어졌다.
'솔직히 덜렁덜렁들은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어떻게 여성팬들까지……'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프로게이머를 하는 이유의 반절 정도에 해당한다.
인기로 여성팬들을 어떻게 해보자는 건 아니다.
그저 운명을 조금 찾고 싶을 뿐이지.
그런 여성팬들 사이에서 흉흉한 소문이 퍼졌다고 하더라.
설마 그 정도로 곡해한 팬들까지 있었다니.
원흉이 따로 존재했다.
상대팀 유투브 게이밍의 주장인 바르실의 팬이라고 한다.
지나가듯 봤는데 무슨 기생오라비 마냥 곱상하게 생겼다.
내가 진짜로 싫어하는 타입이다.
여성팬들이 쫄래쫄래 따라다니다.
그리고 우리 오빠 건들지 말라면서 오빠 부대.
바다 건너 미국의 애들도 상태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지금 심기가 매우 불편해.'
매우매우 불편해.
그런 상태에서 게임이 시작되고 만다.
진행되는 라인전 구도는 명백히 나를 의식했다.
화르르……
미니언들이 살살 녹아내린다.
모르피나가 자랑하는 라인 푸쉬.
타오르는 대지는 미니언을 녹이는데 특화돼있다.
'미드 라인의 반반 구도를 노리며 여차할 때 킬각을 잡겠다는 심산이겠지.'
최근 서포터로 자주 기용되는 챔피언이다.
토이치TV의 코치진들도 그렇게 예상했다.
그런데 갑자기 미드로 전환.
밴픽이 반쯤 꼬이는데 이른다.
심지어 내가 CC기가 생명인 트와이스 페이크를 픽했다.
카운터를 제대로 당한 셈이다.
통상적인 상식에 의하면 그러하다.
상대는 한 가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철컥-!
모르피나의 갑작스러운 점멸 속박.
시야 위쪽에 노텀까지 보인다.
최소 점멸은 빼겠다는 의도다.
'근데 그 의도가 너무 뻔히 보이잖아.'
니들이 날고 기었던 건 알아.
정직하고 느긋한 이 정의의 전장에서.
진정 살얼음판 위의 한 끗 싸움을 경험해본 적이 있을 리 만무하다.
파라랑~!
유체화의 순간 가속도로 비틀어 흘린다.
세 갈래 카드로 모르피나의 블랙실드를 벗긴다.
골드 카드를 박고 점사.
속박이 빠진 시점에서 모르피나의 딜은 위협이 안된다.
스르릉!
즉, 신경 써야 할 건 노텀 하나.
쏘아진 그림자 갈퀴길을 피한다.
역무빙을 밟으며 오히려 깊숙이 파고든다.
미니언과 함께 모르피나를 툭! 툭!
평타로 긁으며 노텀과 거리를 벌린다.
대놓고 무시하며 하나의 상대만을 노린다.
'너 점멸 없잖아.'
그리고 나는 있다.
노텀이 공포를 쓰는 타이밍에 맞춰 점멸.
오히려 따라가며 두 번째 골드 카드를 박아 넣는다.
─퍼스트 블러드!
적을 처치했습니다!
모르피나의 죽음.
당황한 노텀의 앞점멸.
쓴다고 한들 평타 한 방 뿐이다.
지속되는 유체화에 의해 다시 벌려진다.
'바르실이라는 얘가 원딜러였지?'
요즘 따라 원딜러들이 유난히 속을 썩인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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