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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설의 재림-233화 (233/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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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할수록 새록새록 떠오른다.

북미 서버는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서버가 달리 없었으니까.'

한국에서 롤을 하려면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왜냐!

한국 서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유럽, 중국 서버를 하기엔 낯설다.

언어 자체가 통하지 않으니 당연하다.

북미는 한국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하는 영어로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그래서 했는데…… 문제가 좀 있었어.'

아이디가 표시가 안된다.

뭐지?

내 컴퓨터의 오류인가?

처음에는 그렇게만 생각했다.

처음 하는 게임이고 그럴 수도 있는 일.

원래 당시 게임들은 오류가 잦았다.

썩 발전하지 않았던 시대인 만큼 당연하다.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특히 바람의 나라했던 사람들은 웬만한 건 다 그러려니 하는 내성이 생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 컴퓨터의 오류가 아니었다.

서버에서 읽지를 못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자랑스런 한글을.

-□□□

-□□□!

-방장이 □□□ 맞아요?

.

.

.

채팅창이 박스 모양으로 도배되고 있는 이유다.

그렇다.

□□□!

대체 어느 나라 언어지?

우리나라 언어다.

시스템이 인식을 못해버린 결과다.

'당시에는 북미에서도 한글 아이디를 만들 수 있었거든.'

물론 모르고 만든 거다.

알고 했으면 당연히 영어로 했겠지.

어느 나라 게임인지, 누가 만든 건지 게이머들이 보통 신경 안 쓴다.

그 게임 회사가 막 블리자드! 밸브! 유비소프트! 이런 곳이면 몰라도.

로드 오브 로드 게임사는 당시에 그냥 구멍 가게였다 구멍가게.

'그 구멍가게 게임이 잘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아무튼 아이디를 한글로 만들었다.

게임 클라이언트에도 정상적으로 보인다.

막상 인게임에 들어갔을 때 못 읽어서 문제지.

한글이 메인 언어로 깔리지 않은 컴퓨터들도 □□□로 읽는다.

다른 팀원들이 나를 박스박스라고 부를 때 인지해버렸다.

북미에서 나는 레전설이 아닌 박스박스라 통했다.

"하비."

"네?"

"기분은 좀 풀렸어?"

"저는 괜찮아요. 그런데 썽훈이……."

똥챔 장인이 똥챔을 못해서 삐졌다.

그래서 똥챔을 시켜줬다.

'마음 같아서는 베토벤 바이러스 마냥 똥.덩.어.리를 복창시키고 싶긴 한데.'

똥챔 장인들은 대화와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하비가 아무리 그러지 않아 보이는 말투와 외모를 하고 있다고 해도 머릿속에 든 본질이 똥챔 장인이다.

티몽을 시키고 카시오가피로 발을 맞춰줬다.

눈에 띄게 기분이 풀린 모습을 보니 다행이다.

-□□□!

-□□□이 뭐야?

-래딧에서 정주행하고 와!

-방장 박스박스 맞아요? 아직도 리픈 해요?

문제는 아까 전부터 채팅창이 이 모양.

하비가 걱정을 할 만도 하다.

근데 이런 걸 한두 번 겪어본 게 아니다.

'파프리카TV에서 방송할 때는 일상과도 같았으니까.'

산전수던 다 겪어봤기에 그러려니 한다 이런 건.

한가로운 오후의 커피 한 잔.

그 위에 프림을 아차할 정도로 쏟은 기분이다.

그런 별일도 처음 쏟았을 때나 인생 다 산 거 같지 몇 번 반복해보면 치우는 요령을 터득하게 된다.

지금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박스박스인지 아닌지는 뭐 보면 알겠죠."

간단한 이야기다.

* * *

연이은 패배.

팬들 뿐만 아니라 그 본인에게도 충격적이다.

방송 도중 당황스러운 상황을 경험했을 때 십중팔구는 취하는 행동이다.

"살다살다 티몽한테 지는 서폿은 상상도 못했네……. 다이아 서폿들 너무 열받는데 본캐나 하러 갈까요?"

-너무 심하긴 했어 모르피나!

-속박 명중률 봤어? 스치지도 않아

-그냥 카시가 잘 피했던 거 아닌가……

낮은 티어에서 패배하는 건 수치가 아니다.

소위 말하는 본캐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챌린저 계정에 접속해서 띄우면 된다.

자랑스러운 휘장.

북미 서버에 속한 수많은 유저들 중 오직 200명에게만 허락된 티어다.

종나 몬하이는 챌린저 원딜 스트리머로 입지를 단단하게 다져놨다.

-WOW……

-모르피나가 멍청이야. 자기네 원딜 챌린저인지도 모르고

-왜 호응 안 해주냐면서 불만만 많았지!

게임의 내용이 어떠했는지는 상관이 없다.

그런 입롤로 지적하기에는 너무 높은 티어다.

하위권도 아니고 중위권.

그가 전성기였던 시절에는 최상위권에도 들락거렸다.

모름지기 롤은 티어 높은 사람 말이 맞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그렇게 믿는다.

이윽고 시작하는 게임.

챌린저 큐답게 오래 걸렸지만 기다림을 충족시킨다.

수준 높은 라인전이 진행되자 종나 몬하이가 한 소리 얹는다.

"방금 쓰렉귀 호응 보셨죠? 원래 서포터는 이렇게 해줘야 하는데…… 다이아 애들은 내가 기대하는 대로 못해주거나 오바를 해서 문제에요."

시청자들이 맞장구치며 머쓱했던 상황이 흘러간다.

제대로 붙는다면 종나 몬하이가 질 리가 없지!

그의 방송을 오래본 팬들은 한결같은 마음이다.

하물며 챌린저 큐에서 바로 승리를 거둔다.

봇라인 차이로 용을 먹고 스노우볼링.

한타에서의 프리딜도 감탄을 자아낸다.

"다이아 티어는 애들 수준이 너무 천차만별이라 이런 게임이 잘 안 나와요. 어디까지나 참고만 하세요."

-챌린저를 어떻게 참고해!

-하긴 이렇게 정상적인 게임이 돼야 원딜이 활약하는 구도가 나오지

-그럼 아까 패배는 무효야?

-서폿 차이가 나는데 어쩔 수 없는 거잖아. 걔네가 챌린저에 오면 다시 하던가 LUL

팀게임인 이상 있을 수 있는 패배다.

그리고 부캐에서 지는 건 중요하지 않다.

정작 중요한 본캐에서 게임을 이기지 않았는가?

'내가 괜히 내려가서 상대할 이유가 없지.'

운 나쁘게 져버린 바람에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글자 그대로 실수일 뿐이다.

채팅창 분위기는 어느새 전부 환기됐다.

기본적인 티어의 격차가 하늘과 땅이다.

같은 천상계라고 해도 챌린저와 다이아는 아예 비교 선상에도 둘 수 없다.

올라올 수도 없을 것일 뿐더러, 온다고 해도 제대로 된 게임이라면 절대 지지 않는다.

'박스박스?'

그런 종나 몬하이조차 과거 두려움에 떨던 상대가 있었다.

상식이란 상식이 먹혀들질 않는다.

시즌1부터 롤을 해온 올드 유저들은 뼈저리게 기억한다.

물론 그래봐야 옛날 일.

당사자가 거짓말처럼 증발해버렸다.

챌린저 구간을 쑥대밭으로 엎어버린 채 사라지고 말았다.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

들뜨던 팬들로서는 아쉽겠지만 현지의 챌린저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을 포함해 인지도가 있던 네임드들은 신경이 곤두섰다.

솔로랭크를 돌리는 것조차 눈치 보였을 정도다.

단순히 게임을 지는 게 아니다.

패배의 순간이 영상 편집이 되어 커뮤니티를 떠돈다.

단 한 번의 게임이 흑역사가 되어 불특정 다수에게 조리돌림 당한다.

인지도가 낮은 유저들은 쪽팔리고 넘어갈 일이다.

하지만 자신을 포함한 네임드들.

그리고 프로나 프로를 지망하려는 이들.

민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떤 이들은 과도할 정도로 받아들인다.

멘탈이 깨져서 연패 끝에 다시는 올라오지 못한 이들까지 생겼다.

한 가지 다행인 건 그의 집권 기간이 길진 않았다.

랭킹 1위를 달성하더니 홀연히 사라졌다.

수많은 소문만은 낳은 채.

'프로팀에 스카웃되었다는 소문도 있고, 유럽 프로의 부캐라는 소문도 있었고…….'

게임사의 실험용 슈퍼 계정이 아니냐는 소문까지 있었다.

저런 아이디는 통상적으로 지을 수 없다.

귓속말도, 친구 추가도 되지 않는다?

가히 그럴 듯한 가정으로 종나 몬하이도 반쯤 믿었을 정도다.

그도 그럴게 피해자가 되지 않은 거지 상대해본 경험이 수차례 있다.

괴물이라는 두 글자가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린다.

살아 숨 쉬는 도시전설 그 자체였다.

일련의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나버린 이유.

-LEGENSUL?이 박스박스라는 이야기가 래딧에 올라왔어요!

-□□□?

-□□□!

-에이, 설마……

'뭐? 설마.'

시청자들의 심정과 똑같다.

종나 몬하이는 굉장히 오래 전부터 방송을 해왔다.

그의 시청자들도 상당수가 올드 유저이기에 알고 있다.

몽골이 송연해지는 헛소문을 웃어 넘기고 싶다.

그러기에는 전판의 임팩트가 잊혀지지 않는다.

설마 하는 생각이 사무친다.

* * *

빌딩의 7층.

처음 왔을 때 별 생각없이 들어온 장소다.

최근에도 별 생각없이 입출입을 하고 있다.

'휴게실이더라고.'

그때는 워낙 경황이 없었다.

내가 웬만하면 당황 안 하는 체질인데…… 너무 신박했어.

그 신박한 친구들과 점점 안면이 트이고 있다.

"What the……난 살면서 이런 걸 먹어본 적이 없어. 대체 이 소스는 뭐야."

"입에 착착 감겨! 단순한 샐러드가 이렇게 맛있어질 수 있다니 Unbelievable!"

음식도 나눠 먹을 정도로 말이다.

사실 나눠줄 생각은 없었는데 꾸역꾸역 쳐먹고 있다.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길래 한 입 준 게 실수였다.

"아아, 그건 쌈장이라고 하는 거다."

""Ssamjang!!""

지들끼리 난리가 나서 호들갑이다.

대체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에 든 모양이다.

내가 최근 아침 대용으로 먹고 있는 오이 샐러드.

'는 개뿔이 그냥 쌈장에 오이 찍어 먹는 거긴 한데.'

누가 패스트푸드의 본고장 아니랄까봐 식사에 기름기가 좔좔 흐흐더라.

음식이 하도 기름져서 이렇게 먹다가는 어느 날 훅 가겠다.

혈관 막혀서 픽 쓰러질 듯한 위기의식이 들길래 아침은 꼭 이렇게 샐러드로 챙겨 먹는다.

굉장히 마음에 든 모양이다.

오이를 우적우적 씹어먹다 동이 나자 쌈장을 손가락으로 푹푹 찍어 쪽쪽 빤다.

이제는 지들이 먹던 바게트 빵에 발라먹기 시작한다.

"썽훈! 지금 먹는 건 혹시……."

"저번에 줬던 거."

"Secom Dalcom! Secom Dalcom! Please!"

"Please give me! Secom Dalcom!"

처음부터 음식에 호기심이 일었던 게 아니다

한국에서 가져온 새콤달콤과 마이쮸.

심심할 때 꺼내서 오물오물 씹는데 자기도 하나 달래.

그래서 하나 줬더니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란다.

도몬타를 시작으로 하나둘 입소문을 타더니.

"이건 뭐야 쌈장이야?"

"NO! NO! 코리안 카라멜!

"입안에서 콜라 젤리가 살아 춤추고 있어!!"

개사료처럼 쳐묵쳐묵 먹는다.

하나 주면 아쉬울까봐 통째로 줬다.

그렇게 음식을 시작으로 조금씩 말이 트였다.

"썽훈, 프로게이머 하기 전에 직업이 뭐였어?"

"학생이랑 군인."

"What……?? You were a soldier?"

"대체 무슨 일이야?"

"그는 한국에서 군인이었대!"

갑자기 존경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본다.

우리나라에서 군바리라고 하면 짬냄새나는 애들.

안타깝긴 한데 사회적인 시선이 정말로 그러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 군인이었던 만큼 생생하게 기억한다.

다림질 하고, 구두 광내고 해서 밖에 나가봤자 하~나도 안 알아줘.

하지만 미국에서 보는 군인에 대한 시각은 180도 달랐다.

"정말 군인이었어! 핸드폰에 사진까지 있다고!"

"우리나라는 원래 2년 입대……."

"2년? 2년이나 군인이었던 거야?!"

"세상에…… 계급이 병장이야. 그는 전투의 스페셜리스트였어!"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기간만 채우면 진급하는 한국 병장과 달리 미국 병장은 전투력을 검증 받아야만 올라갈 수 있다.

그런 속사정을 굳이 설명해줄 필요는 없어 보인다.

지들이 알아서 뽕에 취해 떡실신 상태다.

'귀에서 스게에~~! 환청이 들리는 건 기분 탓이겠지?'

이곳이 일본이 아닌 미국이라 다행이다.

이세계에 전이해온 주인공의 기분을 느낀다.

놀라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말로 박스박스? 당신이 박스박스 본인이었습니까?"

사실 가장 놀라야 할 부분은 이거다.

내심 알아서 말 꺼내길 바라고 있었는데 늦었다.

어느새 존댓말까지 써버리게 된 도몬타 외 기타 등등 친구들이 물어온다.

마지막 한 명.

종나 몬하이도 오래 가진 않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본인이 사과하러 왔다.

자존심이 있는지 쭈뼜댔지만 옆에 있는 친구들이 난리법석이다.

"음식의 마술사, 육군 병장, 박스박스야. 이렇게 대단한 사람을 우리가 몰라 봤어!"

"빨리 사과해 그는 군인이야! 싸움이 될 리가 없다고!"

"……죄송합니다. 당신을 멋대로 넘겨 짚어 오해하고 말았습니다."

대체 무슨 오해가 있는 건지 하나하나 다 풀다가는 날이 저물 것이다.

아무튼 사과를 해온다니 받아준다.

'평소 같았으면 얄짤도 없겠지만……'

태평양을 건너 미국까지 왔다.

다소의 오해, 트러블은 예상하고 있었다.

빠르게, 그리고 잘 풀린 만큼 한 번은 넘어 가준다.

무엇보다 웃음을 참는 게 조금 힘들다.

본의치 않게 팀장으로서의 입지가 빠르게 다져졌다.

========== 작품 후기 ==========

아아, 이건 국뽕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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