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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전설의 재림 -->
'아니……, 아니……, 아니!'
마음속 외침을 꾹 담아두었다.
인터스텔라의 재현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딱히 하비의 호감도가 위태위태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연기고.'
아무튼 그러하다.
중요한 건 현재 하비의 상태.
자신감이 없다는 사실이 여실히 느껴진다.
"하비."
"……네."
평소와 달리 소심하다.
하는 플레이도 소심하기 짝이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하비는 이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그 탓에 라인전에서 2데스라는 굴욕을 당했다.
솔랭에서 만났으면 한나 머리 위에 미아핑 5연속으로 찍었다.
영어를 쓸 때면 그 누구보다 어른스러운 하비가 대체 왜 이러는지.
사실 안다.
알고 있다.
차마 적용시키기 싫었을 뿐이다.
'똥챔 장인들의 무적 논리…….'
솔로랭크에는 별의별 인간들이 다 있다.
같이 섞이다 보면 싫어도 알게 된다.
저 새끼들이 얼마나 답이 없는 인간인지.
그 중에서도 원탑을 꼽는 부류가 원챔 장인이다.
기본적으로 인성 갈아 마셨다고 보면 된다.
아니, 뭐 인성이 안 좋은 건 상관 없어.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도 레모씨라고 인성이 약간 나쁘다는 편견이 있지만 알고 보면 따듯한 도시의 남자, 매게임 하드 캐리를 해주는 듬직한 팀원이 한 명 존재한다.
근데 원챔 장인들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PC방에서 만나면 뒤통수 전력으로 후려갈겨도 무죄야.'
판사가 롤 유저라면 반드시 무혐의 처분해줄 것이다.
그 정도로 답이 없는 인종이다.
그 답이 없는 인종들 중에서도 군계일학.
분리 수거조차 안되는 이들이 바로 똥챔 장인이다.
"하비."
"……왜요."
"게임을 하기가 싫지?"
"아니에요. 갑자기 왜…… 혹시 화났어요?"
"아니, 솔직하게 말해봐. 지금 그냥 게임하기 싫잖아."
-이걸 또 시비를 건다고?
-남자 또라이 아님……?
-저건 사이코패스야 사이코패스! 세상에 별의별 걸로 다 트집잡네
아니이!!!
마음이 너무 잘 통해도 문제다.
다 알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다.
똥챔 장인의 심리.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어.'
내가 하비랑 하루이틀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니다.
방송 본지 며칠이나 됐다고 아는 척을 하네.
이 국경 없는 물소들은 예쁘면 단 줄 알아.
'나만 해도 이렇게 잘 생겼는데 숱한 오해를 받잖아.'
여자라고 다를 거 없다는 소리다.
롤을 한 시점에서 그 사람은 이미 인성이 반쯤 파탄 났다고 보면 된다.
그러한 게임이다.
너희들도 곧 그렇게 될 거고.
일단 현재 진행되는 게임.
마무리를 짓고 진솔한 대화를 나눠본다.
학살을 찍은 시점에서 변수는 없다고 보면 된다.
파앙!
달려가서 이즈레알의 머리빡을 한 대 찍는다.
체력바가 움푹 파인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다.
'잘하는 도라이븐 상대를 해본 적이 없으면 그럴 수도 있지.'
눈 뜨고 코베인다는 속담.
혹시 미국에는 없는 건가?
없다면 코리안 컬쳐를 가르쳐줄 시간이다.
파앙!
도끼를 받으며 달려나간다.
W스킬 광란의 파바다가 리셋.
다시 한 번 질주하며 밀쳐낸다.
광우스타의 들이박기를 캔슬시킨다.
'본래라면 여기서 한나가 한 번 더 밀쳐줘야 돼.'
광우스타가 곧 땅을 내려칠 것이다.
하비가 익숙하지 못한 바람에 아쉽다.
지금 당장은 성장 차이로 찍어 누를 수 있으니 상관은 없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LEGENSUL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이즈레알이 비전으로 도망간 위치.
회전 톱날이 스르륵 수확하고 지나간다.
평타 세 방에 궁극기면 순삭이 가능하다.
'1코어 뜬 시점부터는 초장에 도망가는 거 아니면 그냥 죽어.'
알지 못한다면 당할 수밖에 없다.
오직 도라이븐만이 가능한 차별점.
패시브를 계속 터트리면 이렇게 된다.
살아남은 광우스타도 곧 도끼의 이슬로 사라진다.
[게임을 승리했습니다!]
[포인트를 172만큼 획득했습니다.]
[토이치TV의 롤 시청자들이 놀라움을 표합니다.]
[상대 스트리머의 시청자를 일부 흡수하였습니다.]
[……3892포인트를 추가로 획득합니다.]
윗라인도 밀리거나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살짝 우세.
게임은 15분이 안되어 마무리됐다.
사실상의 오픈으로 가볍게 끝이 났다.
'포인트 외 이러저러는 익숙한 거고.'
방송을 하루이틀 해온 게 아닌 만큼 몇 번이나 봤다.
파프리카TV에서 내가 시청자가 많아서 흡수 같은 건 없었는데 지금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똥. 챔. 장. 인.'
그러니까 똥챔 장인들의 무적 논리는 다름이 아니다.
자신이 해당 똥챔을 잡지 못했을 때.
무조건적인 즐겜 모드에 들어간다.
아니, 지금 0.5인분만 해도 버스탈 수 있는데?
설사 팀이 유리해도 게임을 던진다.
이게 딱히 아군이 저격밴을 해서가 아니다.
'이유는 단 하나야. 자신이 똥챔을 못했기 때문이지.'
똥챔 장인들은 자신들이 똥챔으로 게임을 이기는 것 하나에 모든 의의를 두는 인종들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됐지 왜 이렇게 깐깐해?
통상적인 상식으로는 이해조차 불가능하다.
그냥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
그래서 명명하기를 무적 논리.
설득, 논파를 할래야 할 수가 없다.
"하비, 마이크 끄고 잠깐 이야기 좀 나누자."
"왜요…? 썽훈이 왜 그러는지 잘 모르겠어요."
"지금부터 알아가자."
하지만 나는 저 매캐한 심리를 안다.
아는 이상 어렵지도 않은 일이다.
* * *
로드 오브 로드를 지탱하는 5대 리그.
한국-LCK
중국-LPL
대만·홍콩·마카오-LMS
유럽-EU LCS
북미-NA LCS
각각의 특징으로 구별된다.
북미는 메타의 발산지로 유명하다.
타지역에서 잘 안 쓰이는 픽들.
유난히 북미에서 성화일 때가 있다.
아니, 이 챔피언이 왜 갑자기 너프가 돼?
패치 노트에 죽도록 의아한 부분 있을 때 일단 북미 걸고 넘어지면 8할은 맞는다!
메타가 여유롭다 보니 여러가지 시도가 나온다.
독특한 시도를 한다는 것 자체에 자부심을 가진다.
이는 장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단점 또한 품고 있다.
한 가지에 몰두하지 않는다는 것.
극한의 장인이 드물어진다는 소리다.
그런 북미의 팬들로서는 신비롭게 느껴진다.
-종나 몬하이 선생님이 지다니……
-도라이븐이 원래 저렇게 센 챔피언이야?
-패시브를 너무 잘 터트렸어
-그것도 있지만 너무 잘해.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아!
더욱이 충격적이기도 하다.
프로게이머를 제외하면 가장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는 아마추어다.
종나 몬하이의 완패.
단순히 게임을 진 거면 모른다.
아예 머리통이 터져버렸다.
이를 지켜본 팬들의 심정은 혼돈의 도가니다.
"서포터도 약한 픽인데 하필 상대가 듀오라서 라인전이 말렸습니다. 안타깝게 됐네요."
-Agree!
-솔랭에서 아군이 광우스타 하면 라인전 힘들지
-심지어 상대는 듀오였으니까
-윗라인도 너무 터졌어!
하지만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제아무리 잘하는 사람도 질 때가 있다.
10명이 하는 팀게임인 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하물며 이유가 딱딱 떨어진다.
봇유저라면 상체 탓 누구나 한 번은 해본다.
그리고 상대가 듀오로 오면 라인전이 너무 빡세다.
"낮은 구간인 걸 감안하고 할게요. 서포터가 못하니까 상대가 너무 들이대네요."
-right! right! 차라리 쉬운 보포터였으면 이겼을 거야
-Revenge Match GOGO!
-그런데 다이아1,2가 낮아……?
-챌린저인 종나 몬하이 선생님한텐 낮지!
시청자들의 염원대로 잡히고 만다.
복수전이 될 다음 큐.
지난 판의 설욕과 진정한 실력 증명의 장이 되리라.
그 밴픽이 심상치 않다.
상대의 조합에 원딜이 없다?
종나 몬하이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아~ 저분이 그 AP원딜 창시자였죠? 도라이븐도 그렇고 독특한 거 하시나 봐요."
-뭐지? 누가 원딜이야?
-직트가 원딜이겠지
-아~ 상대 스트리머가 소문의 AP원딜 했던 아시아 프로게이머?
마법사 챔피언이 원딜 포지션에 간다.
그 실효성이 북미 롤챔스 4강과 결승전에서 증명된 마당이다.
하지만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아직 낯설기도 한 메타다.
종나 몬하이는 상대한 적도 많고, 대처법도 숙지했다.
메타가 변하면 가장 다이렉트로 영향을 티어가 마챌.
원딜 선생님을 자처하는 만큼 누구보다 관심이 깊다.
"이번 기회에 정석 원딜러로 사파 원딜러를 파훼하는 방법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반쯤 의도해서 벌인 매칭이다.
상대의 특기가 알려져 있지 않은가?
당연하게도 파훼법을 준비해서 왔다.
첫 게임은 예상과 너무 상이했다.
도라이븐을 저렇게 공격적으로 쓰다니.
하지만 예측된 범위인 이번 게임은 다르다.
〈티몽 대위 명을 받들겠습니다!〉
자신만만한 종나 몬하이의 시야에 믿을 수 없는 조합이 들어온다.
* * *
인터넷 방송이 그다지 주류라고는 볼 수 없는 시기다.
굳이 찾아서 보는 사람이 썩 많지 않다.
하지만 관심을 가지는 이까지 적다는 소리는 아니다.
초창기부터 차곡차곡 내실을 다져왔다.
북미 로드 오브 로드의 팬층은 공고하다.
애초에 게임사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해 있지 않은가?
그 수많은 롤팬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 래딧.
스물스물 올라오는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네임드들의 승부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대사건이다.
─종나 몬하이와 하비 듀오가 한 판 붙었어!
솔로랭크에서 만났다고!
심지어 같은 봇라인에서!
└종나 몬하이는 챌린저 아니야?
글쓴이-Yes Yes 그래서 부캐
└Oh~ 스트리머의 자존심을 건 매치네
└하비한테 붙은 남자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참에 털렸으면 좋겠어!
올드 유저이며 원딜 강의로 유명한 종나 몬하이.
여성 스트리머로 떠들썩한 이슈를 낳고 있는 하비.
둘의 대결은 래딧 유저들의 관심을 모으는데 충분했다.
그 결과는 의외로 팽팽하지 않았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여 승리를 점했다.
결정타를 넣은 이는 밉살맞은 캐릭터로 씹히는 레전설.
─Crazy 도라이븐!!
저렇게 공격적으로 잘 쓰는 사람 처음 봤어!
킬 따고 죽는 모습 너무 매력적이야
└인정하긴 싫지만 플레이가 섹시해……
└LEGENSUL? 무슨 뜻이지?
글쓴이-뜻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잘해!
└쓰레기 같은 녀석이긴 해도 실력은…… 있더라고
첫 번째 게임을 완승하는데 이른다.
그다지 나오지 않는 독특한 챔피언.
완벽히 소화하며 보는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게임
북미 유저들의 최대 관심사다.
그들은 잘하는 것과 독특한 플레이를 동일한 수준으로 좋아한다.
─본고장 AP원딜은 상당히 색다른가 본데?
AP원딜을 괜히 처음 썼던 게 아니었나 봐
LEGENSUL이 카시오가피를 원딜로 쓰고 있어!
└카시오가피? 어떻게 쓸지 상상이 안 가
└촉촉 쏘는 독니가 의외로 지속딜을 할지도. 서포터는 누구야?
글쓴이-티몽……
└???
그 니즈 또한 가볍게 만족시킨다.
레전설 본인 뿐만 아니라 서포터도 미쳐 날뛴다.
티몽으로 이색적인 플레이를 선보이며 이겨버렸다.
프로를 제외하면 가장 이름 높은 원딜러, 종나 몬하이가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패배했다.
그의 팬들로서는 충격적인 소식이다.
팬이 아닌 이들은 순수하게 호기심이 인다.
─LEGENSUL이라는 스트리머 엄청 잘해!
한국 프로들은 원래 저렇게 잘하나?
아니면 저 선수가 특별한 거야?
이런 느낌은…… 옛날의 박스박스 이후 처음이야
└박스박스? 들어본 적도 없어
글쓴이-아주 옛날에 독특한 아이디를 쓰는 유저가 있었거든!
└아, □□□ 말이구나
└아이디도 플레이도 실력도 기괴했지. 난 기억해!
마치 도시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다.
독특하기를 넘어 가능은 해?
이상한 아이디를 쓰는 유저가 있더라.
혜성처럼 나타나 북미 최상위권 유저들을 하나둘 쓰러뜨렸다.
때는 격변의 세대였던 시즌1.
새로운 고수가 나타는 건 드문 일이 아니지만 박스박스는 한 가지 유별났다.
피지컬이……좋아도 너무 좋은데?
무엇보다 기세가 워낙 범상치 않다.
짧은 시간에 50위권을 돌파하여 그 위로.
래딧 전체가 떠들썩해지며 그의 1위 쟁탈을 응원했다.
결국 해내고야 말았다.
당시 래딧이 완전 터져버렸을 정도다.
기억하는 이들이 당연히 적지가 않다.
문제는 그 이후로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사실이다.
소식도 근황도 들려온 적이 없다?
몇몇 북미의 올드 유저들이 그의 향취를 느꼈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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