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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회의 땅 -->
하비가 보여준 서류.
천천히 여유를 갖고 검토해봤다.
변경점이 있는 만큼 하비도 조급해 하지 않았다.
'나쁜 내용은 아니야.'
일단 서류를 검토하는 척 마음껏 볼 수 있다.
수영을 하고, 선탠을 하는 하비.
눈이 따갑다는 명목으로 선글라스도 하나 빌렸다.
'……대놓고 보면 좀 그렇잖아.'
하비 본인도 딱히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같이 놀자면서 성화다.
대략적인 검토는 벌써 마쳤다.
변한 계약 사항도 파악했다.
한국 과자 마냥 뜯어보니 질소칩!
그런 건 아니고 한 마디로 리스크다.
'아메리칸 드림이라…….'
기회의 땅 미국.
하지만 기회에는 늘 리스크가 따른다.
위인전과 TV에는 성공한 쪽만 소개되기에 소외된다.
애초에 쪽박 찬 사람들은 나올 기회도 없다.
호락호락하지 않으리라는 건 인지하고 왔다.
꿈만 같은 풍경을 보고 있다 보니 잠시 망각했을 뿐이다.
〈E-스포츠에 투자할 근거를 보여라. 기한은 2014년의 12월 31일.〉
동시에 한 가지 사정 또한 눈치챌 수 있었다.
하비가 하려는 것.
하고 싶어하는 것.
썩 환영받지만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 많이 봐왔어.'
물론 케이스는 다르다.
결과론적인 관점에서는 비슷하다.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여가부라고 존재 이유가 의심되는 집단이 있다.
대체 왜 있는 건지 자신들도 잘 모른다.
그래서 가치를 증명하려고 여기저기 시비를 건다.
대표적인 만만이가 바로 게임.
학생들한테 안 좋은 거 아니니?
여러가지 규제안을 내놓으며 열심히 하는 척을 한다.
'이제는 그마저도 못하게 됐지만.'
응, 아가리 Shut up.
당연히 헛짓거리로 판명이 났다.
게임 산업의 규모도 커져서 만만히 못 보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특히 돈을 투자하는 입장.
한 마디로 상층부는 미심쩍은 것이다.
일단 허락은 해주겠다.
하지만 필히 결과를 내라.
결과를 안 내면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기 어렵다.
'철밥통의 꿈은 그렇게 물 건너 갔습니다.'
살짝 꿀을 빨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대기업이 대대적인 투자를 한다!
와서 에이스로서 도와줘라!
삽시간에 소년가장이 되어버렸다.
먹여 살리지 않는다 싹 다 죽는다.
어떤 느낌인지는 대략 입감이 온다.
"하비~!"
수영장이 좀 크다.
목욕탕 같은 게 아니다.
저~~~~끝!
멀다 보니 소리를 쳐야 한다.
그제서야 하비가 이쪽으로 다가온다.
헤임을 쳐서,
'뭐지, 여기는 천국인가?'
쭉 뻗은 8등신 미녀가 물에서 올라오는 광경.
시시각각 달라지는 감동의 쓰나미다.
상체가 빙산의 일각이라는 느낌이다.
갑작스레 세상 살 맛이 좀 난다.
털어내는 머리카락의 물방울.
조금 튀겨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생각해봤어요? 어느 쪽이어도 저는 당신의 판단을 존중할게요."
"어…… 근데 한국어로 좀 말해줄래?"
"알았다. 썽훈! 나 기다린다. Tell me!"
"……."
혀 짧은 목소리의 갭이 엄청나다.
후자는 한 마리 키우고 싶은 느낌인데, 전자는 키움 당하고 싶다는 느낌이다.
아무튼 대답은 크게 어렵지 않다.
* * *
미국 로스앤젤레스.
통칭 L.A로 알려진 곳이다.
워싱턴 D.C의 저 반대편으로 약 6시간에 걸친 비행 끝에 도착했다.
'LA갈비와는 전혀 상관 없는 곳이지.'
어렸을 때는 그런 줄도 모르고 맛있게 먹었다.
근데 알고 먹든 모르고 먹든 맛있다.
이곳 식사도 부디 맛있길 바란다.
"여기가 우리 숙소야?"
"그렇다! 여기다!"
"……몇 층이?"
L.A의 한 시내다.
여기저기 고층 건물들이 솟아있다.
한국에서는 굉장히 일상적인 광경이라 새삼 놀라거나 하진 않는다.
'사람들은 굉장히 놀랍긴 하지만.'
한국 시내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백인, 흑인 등의 인종을 그렇다 치고.
사람들이 크다.
안 큰 사람이 없다!
길거리를 다니는 것도 부담스럽다.
빨리 안에 들어가서 마음의 평안을 되찾고 싶다.
그런데 하비가 지목한 건물 또한 크다.
「Toichi.TV」
익숙한 팻말 하나가 눈에 띈다.
팻말 또한 굉장히 거대하다.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짓기 때문일까?
그거야 내 짐작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10층 건물을 통째로 쓴다고?'
하비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은 토이치TV의 자사를 겸한다.
또한 E-스포츠의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라 한다.
로스앤젤레스라는 위치가 가진 특이성.
북미 E-스포츠 리그의 대부분이 L.A에서 열린다.
또한 유명 게임 회사들의 본사 또한 가깝다.
스타크래프트 등 수많은 역작을 낳은 블리자드.
로드 오브 로드 게임사의 본사도 L.A, 혹은 근처에 위치한다.
토이치TV에서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밀어붙였다.
로드 오브 로드 뿐만이 아니다.
E-스포츠에 투자를 하기 위한 발판이다.
나는 이곳에서 생활하게 될 예정이다.
"하비도?"
"Of course. But 같은 방 아니다. 썽훈…… It say 엉큼하다!"
오는 길에 핸드폰으로 뭘 그리 열심히 찾나 했더니.
단어를 하나 애타게 검색해봤나 보다.
오는 길이 심심하지 않았다.
'미리미리 어필을 하는 거지.'
하비네 집에서 하루 정도 있었다.
그리고 오는 길도 바로 옆자리다.
비행기에서 약 6시간.
우리 사이가 친구로만 끝날 게 아니다.
서로 깊게 알아갈 필요성이 있다.
호감도를 착실히 쌓을 수 있었다.
"썽훈 여친 있다. 바람 So Bad!"
"……."
하비가 미소를 지으며 타박을 해온다.
내가 장난치는 줄 알았던 거야?
하나하나가 전부 진심이었는데?
'그 오해는…… 빨리 풀어야겠다.'
진도를 나가기 위해서는 급선무의 과제다.
일단 지금은 짐부터 풀어야 한다.
한국에서의 짐은 비행기로 미리 보내 놨다.
하지만 그 외 들고 있는 것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함께 할 팀원들을 알고 싶다.
빌딩 안으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 * *
하비와 오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러브 라인을 잇기 위한 숱한 노력.
여친이 있다는 오해 때문에 무색해졌지만 그 외에 일적인 부분도 많다.
'일을 대체 어느 정도 벌렸나 감이 안 잡혔는데.'
건물의 크기와 규모를 보아하니 입감이 온다.
나 같은 소시민으로선 봐야만 이해가 된다.
커도 보통 큰 사업이 아니었다.
위쪽에서 엄포를 낼 만도 하다.
10평 남짓한 투룸 월세도 부담되는 나다.
이만한 고층 빌딩은 얼마나 될지 감도 안 잡힌다.
'세계에서 손가락에 꼽는 대기업이니 일을 확 벌릴 만도 하긴 해.'
내부는 아직 공사 중인 곳도 많지만 속속들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로드 오브 로드 이외의 수많은 E-스포츠 종목들.
그리고 지사에서 행할 수많은 것들.
그보다도 우선되어 첫 번째 업무로 배정됐다.
다름 아닌 토이치TV 후원의 LOL게임단이다.
어깨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투자를 결정한 대표적인 E스포츠가 롤이기 때문에 반드시 성과를 냈으면 좋겠다라…….'
하비도 상당히 필사적이다.
직접 말하지 않아도 전해진다.
나와 하비의 사이이지 않은가?
앞으로 더 가까워질 것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좋은 방향으로 매듭을 짓고 싶은데.
"여기다. 팀원들 있다. 연락했다. Are you ready?"
"Sure. 지체할 이유가 뭐가 있어."
"소개할 때는 영어를 써야 하는데 괜찮나요?"
"……어, 그래야겠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7층.
문 안쪽의 대기실에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이미 나머지 선수들을 엄선하여 뽑아두었다며 하비가 자랑스럽게 말해왔다.
'하나하나 신경 안 써도 돼서 정말 좋네.'
현지의 사정을 내가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파프리카 프릭스 때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하라고 하면 곤란했다.
역시 하비.
그녀는 분명 믿음직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까지 그러리란 보장은 없었다.
처음으로 소개 받은 한 선수.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다.
"원딜러를 맡으실 종나 몬하이씨에요. 토이치TV에서 원딜 선생님으로 유명합니다."
"……."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수긍했다.
외국 사람들 이름이 특이할 수도 있다.
언어유희 개그, 웃긴 자료 게시판에서 많이 봤다.
'어떤 외국 사람들에게는 내 이름이 특이할 수도 있는 거니까.'
종나 몬하이씨는 이름과는 달리 종나 잘하신다.
스트리머임에도 티어가 높아 챌린저 중위권의 실력자다.
원딜 포지션을 시청자들에게 가르쳐주는 컨텐츠로 유명하다고 한다.
"타블 D 지게몬페씨가 탑라인을 맡아주실 거에요. 탑솔러답게 믿음직하죠?"
"……."
프랑스 사람으로 팀의 듬직한 탑솔러다.
외모도 무척 듬직하여 믿음직하다.
딱 봐도 힘 좀 쓰게 생겼다.
이름이 약간 걸리기는 하지만 티어가 높다니 문제는 없겠지.
내가 해외에 친숙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아무튼 한 가지 알 것도 같다.
'하비가 파프리카 프릭스를 많이 참고한 거 같은데?'
유명 스트리머들을 섭외했다고 한다.
반대로 유명 아마추어, 혹은 공백기인 프로게이머들을 영입하기도 했다.
닭이 먼저든 달걀이 먼저는 결과는 일맥상통하다.
선수들 개개인이 프로게이머이자 BJ.
아니, 토이치TV에서는 스트리머라 부른다.
파프리카 프릭스와 비슷하면서도 틀리다.
파프리카 프릭스는 어디까지나 궁여지책이다.
자신들 돈으로 선수 영입하기 싫다.
싸게싸게 굴려먹을 인재로 BJ를 썼을 뿐이다.
토이치TV는 보다 본격적으로 E-스포츠와 스트리머의 합일화를 목표로 한다.
그 취지를 잘 살리고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무언가 불안한 예감이 드는 건 기분 탓이겠지.
"서포터인 십 몬타니카씨에요."
"……."
"도몬타씨가 정글을 맡아주실 거에요. 공격적인 스타일의 매서운 인파이터이시랍니다."
"혹시 풀네임이 어떻게 되시죠?"
"버스 도몬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느낌이 왔다.
아직 스크림 한 판 해보지 않았음에도 깨달았다.
오늘은 초면이므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다시 단둘이 있게 된 하비.
"하비."
"무슨 일이에요?"
"……일단 한국어 좀 써주고."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봐도 의아하다.
의아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선수들 이름이 조금 특이하지 않아…?"
"Why? Why? 모르겠다."
한국어로 바뀌자마자 귀엽다.
귀엽긴 한데 이건 좀 별개야.
하비는 정말로 모르는 걸까?
아니면 나를 일부러 놀리는 걸까?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짚어줬다.
"HaHaHa! 재밌다. That's a funny joke!"
"그래? 그렇구나……."
하비도 그제서야 한국어와 비교하며 깔깔거린다.
외국인들에게는 그냥 재밌는 농담일 수도 있다.
내 이름이 외국말로 웃기는 뜻이라고?
그냥 한 번 웃고 넘기는 농담이다.
'근데 나는 지금 웃을 수가 없는 입장이야.'
선례가 없었다면 모를까 있다.
잼잼 듀오.
챌린저 최상위권에서 팀플레이로 이름 높은 실력자들이다.
내가 이 둘을 영입하려고 얼마나 머리를 숙였는데.
막상 데뷔하니 머리를 시멘트 바닥에 박아주고 싶었다.
제2의 잼잼 듀오가 나타나리라는 건 내 괜한 망상이겠지?
'물론 티어가 높기는 높아. 다들 챌린저, 혹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실력자들이라고 하니.'
선례가 없었다면 순수하게 믿었을 것이다.
티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개뿔이 그 새끼 구라쟁이야.
잼잼 듀오의 재림이 살짝 그려진긴 한다.
하지만 뭐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해보지도 않고 쪼는 건 남자가 할 짓이 아니지.
'하비도 실력자들로만 엄선했다고 하고.'
내가 안 믿으면 누가 하비를 믿어주겠어.
여러가지 프로젝트로 안 그래도 바쁘다는데.
그 하비와의 거리가 물질적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하비, 혹시 도망가는 건 아니지……?"
"아니다. 도망 아니다. 저, 정말 아니다!"
하비가 말을 더듬는 걸 처음 보는 거 같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버린 건가?
공감대가 생겨버린 건가?
조금 다른 쪽의 일이었다.
"구단주?"
"티미씨, 썽훈 만나고 싶어한다. Are you okay?"
안될 거야 당연히 없다.
오히려 한 번 보고 싶었다.
대체 누구길래 우리 하비를 귀찮게 하나.
'몇 가지 짚어주고 싶은 게 있었어.'
계약서의 전체적인 내용에는 동의한다.
기한이 있다고 쫄을 내가 아니다.
하비의 백마 탄 왕자님은 오직 나에게 부여된 신성한 임무다.
하지만 세부적인 조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원하는 바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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