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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설의 재림-225화 (225/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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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회의 땅 -->

세상사 시기가 절묘할 때가 있다.

좋은 쪽 말고 애매한 쪽.

속된 말로 아다리가 안 맞는다는 표현을 쓴다.

택배 아저씨는 꼭 씻고 있을 때 온다!

지각할 때면 꼭 버스가 보이지 않는다!

열심히 공부하다 잠깐 게임할 때 부모님이 불심검문한다.

'……이건 아닌가?'

아무튼 머피의 법칙은 정말 그럴 듯한 이론이다.

갑자기 까톡이 하나 왔다.

그 내용이 바라지 마지 않던 것이다.

「성훈씨가 부탁하셨던 거요…….」

메세지와 함께 사진 파일이 하나 첨부돼있다.

사진의 내용은 다름이 아니다.

내가 일전에 부탁 아닌 부탁을 했었다.

걸즈데이의 멤버 중 하나인 소라라는 분.

계기가 있다 보니 알고 지내게 됐다.

근데 자꾸 귀찮게 해!

'그 있잖아. 버스 기사 아저씨들한테 여기서 내려 달라는 애들.'

택시가 아니라고요!

제가 태우고 싶을 때 태우고, 내려주고 싶을 때 내려주고 싶어요.

자꾸 듀오 요구를 해오길래 말했다.

내 부탁을 들어주면 해주겠다고.

-제가 사실 헬로우비너스 팬이라 헬로우비너스 싸인 받아주시면 해드릴게요. 그럼 2만

「……네?」

「저 또 놀리시는 거죠?」

「성훈씨?」

「성훈씨?」

좀 많이 얼척이 없을 만하다.

그때 내가 살짝 홧김에 말했다.

하고 나자 후회가 급밀려왔었다.

'근데 내가 뭐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잖아?'

부탁을 한다고 꼭 들어줘야 돼?

그래, 들어줄 수 있어 한두 번은.

그렇게 호의가 반복되면 둘리인 줄 아는 애들이 있다.

물론 입장의 차이이기도 하다.

승객과 운전기사의!

운전기사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니까 자꾸 태워 달라고 하는 거다.

나 레전설, 빠꾸 없는 남자다.

그대로 강행해 밀어붙였다.

등가교환의 법칙은 지극히 합당하다.

'그렇다고 진짜로 들어줄 줄은 몰랐지…….'

잠깐 잊고 살았다.

하도 바빠서 떠올릴 겨를도 없었다.

첨부된 사진 파일에 헬로우비너스의 싸인이 보인다.

앨리스 윤조 유아라 라임…….

멤버 한 명, 한 명의 자필 사인이다.

이를 착각한다면 팬이라고 할 수 없다.

심지어 나에 대한 메세지까지.

『To 레전설 파이팅!』

'실화야? 감동 실화야??'

사람 너무 설레게 만드는 거 아니야?

몰라봤는데 행동력 있는 여자였다.

남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나 이런 타입 싫어하지 않아.

「택배로 보내드릴까요? 아니면 만나서…….」

'말하는 것도 센스가 있네.'

이건 이지선다가 아니잖아

골라 달라는 거잖아.

설마 내가 그 정도 눈치도 없을까봐.

-저 집에 가면 바로 받으러 갈게요. 그때까지만 맡아주실래요?

「아, 네. 집에 언제 도착해요? 저희도 스케줄 같은 게 빡빡해서…….」

살짝 튕기는 느낌이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저가 아니라 저희.

바로 캐치했어.

걸그룹이랑 단체 데이트도 가끔 하면 재밌을 것이다.

물론 부담은 된다.

이러다 스캔들 나면 어떡해.

마성의 프로게이머 걸즈데이와 열애?

이런 느낌의 기사라도 뜨면 곤란하다.

하지만 But 할 때는 하는 남자다.

그런데 지금을 할 수가 없을 때다.

진짜로 미안한데 내가 집에 도착하려면 좀 많이 멀었다.

-내년? 빠르면 올해 말 정도까지 걸릴 거에요

「네?」

-제가 지금 밖에 나와 있어서 가는데 좀 걸려요

「……대체 어디시길래요?」

'여기가 어디였더라?'

좀 멀리 나왔다.

나도 처음 와보는 곳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공항이다.

『Washington Dulles International Airport』

워싱턴덜레스 국제공항.

이제야 기억난다.

비행기에서 하도 잠을 푹 자다 보니 어질어질 했던 바람에 까먹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하비와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도착한 곳이다.

* * *

다소 어이없어 했지만 결국은 응원해줬다.

보통의 여자애들이면 화냈을 거다.

직업이 가진 특이성 덕분일까?

'가수들에게는 익숙할 만도 하지.'

팬이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걸즈데이 정도면 다른 나라 공연 한 번쯤 갔어도 이상하진 않다.

일 때문에 미국에 온 걸 어떡해!

내가 사인 받으려고 편도선 비행기 구해서 한국에 되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헬로우비너스 여신님들…… 기다려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굉장히 안타깝긴 하지만 앞으로 할 일이 많은 만큼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지난 겨울에 입었던 옷에서 만원짜리 쌈지돈 발견한 느낌이었다.

쌈지돈은 잠시 저금하는 기분으로 접어둬야겠다.

「흥, 잃어버려도 몰라요.」

「제 책임 아니에요.」

-그, 그러지 마세요…….

「그럼 받아가시던가요.」

'…….'

여신님의 성물을 함부로 대하면 안되는데.

받는 입장이라 차마 투정할 수가 없다.

정말로 그러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아무튼 현재 잘 모르는 집 앞.

우거진 수풀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집 주위에 아득할 정도로 펼쳐져 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정원사의 손길이 느껴진다.

그렇다.

영화에서나 보았을 그림 같은 정원이다.

큰 정원을 낀 저택이 보인다.

여기가 어딘지는…….

'나도 몰라.'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다이렉트로 왔다.

택시값이 겁나 많이 나왔지만 괜찮다.

영수증 끊으면 경비 처리해준다고 하비한테 들었다.

그 도착지가 웅장한 저택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들은 바도 없기 때문에 망설여진다.

아파트가 일상인 한국에서는 익숙지 않은 광경이다.

"저기, 죄송한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썽훈- 최!"

"……."

정문이라 생각되는 지점.

경비원이 한 명 지키고 있더라?

그래서 대뜸 물어보니 대뜸 대답해온다.

바로 알아보더니 안내를 해주신다.

사전에 인상착의를 전달 받았나 보다.

듬직한 경비원의 뒤를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간다.

'아니, 시험해볼 게 좀 있었는데 너무 가볍게 알아보시네.'

시험해볼 내용은 다름이 아니다.

서투를 수밖에 없는 영어.

치트키로 가볍게 해결해버렸다.

『영어 회화 -마스터-』

이전부터 상정해두고 있었다.

만에 하나 해외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러면 이 능력 상당히 쓸 만하겠는 걸?

『자신감이 중요한 실전 영어!』

『발음부터 바로 잡는 토익스피킹』

'토익은 대체 왜 가르쳐주는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고마운 능력이다.

무능한 신도 가끔은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물론 그만큼 가격 또한 비싸다.

아마 무능한 신의 예상이었다면 못 샀겠지.

적게는 1만 많으면 10만 짜리 고오급 스킬들이다.

포인트에 여유가 있을 때 사두기로 했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이상 거의 필수적이다.

배워서 최소 손해볼 일은 없는 우량주라고 생각했는데.

"썽훈!!"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발신지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누군가가 물속에서 마치 인어처럼 솟아올랐다.

'집안에 풀 실화냐……?'

저택 안에 푸른 물이 가득 채워진 수영장이 보인다.

그 수영장에서 올라온 하비가 걸어온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수영복을 입고 있다.

"오는 길에 힘든 일 없었어요? 마중을 가고 싶었는데 아침에 일이 생기는 바람에……. 나 참 내 정신 좀 봐."

하비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낸다.

그 자체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원래 하비가 은근히 말이 많다.

느낌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Morning 바빴다. 마중 Sorry……. 썽훈 Are you okay?"

"……."

하비의 갭이 한층 도드라졌다.

피카츄가 라이츄가 되어있었다

* * *

미국.

아메리카!

기회의 땅!

그런 말이 있을 정도로 자수성가형 부자들이 많은 미국이다.

하지만 미국이란 나라가 정착된지도 제법 흘렀다.

기존의 이권을 틀어쥔 부자들도 생기게 된다.

그리고 둘 사이의 갈등.

아마조네스닷컴의 상무이사 로를 몬테.

그는 전형적인 자수성가의 수순을 밟아왔다.

이사회의 한 파벌의 수장이기도 한 그가 인상을 구겼다.

"자네는 이 서류의 내용이 합당하다고 보나?"

"그럴리가요. 백작가의 따님이 헛물을 들이키고 온 모양입니다."

측근의 대답에 구겼던 인상이 조금은 펴진다.

로를 몬테가 들고 있는 서류.

얼마 전 있었던 회의에 의한 여파다.

토이치TV의 인수를 두고 아마조네스닷컴의 이사회는 몇 달간 분쟁이 있었다.

돈 문제 뿐만 아니라 이권 다툼까지 걸려있다.

사안이 워낙 크다 보니 세 파벌로 나뉘었다.

받아들일 것인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인가.

에라, 모르겠다 일단 지켜보자.

로를 몬테는 받아들이지 않는 쪽의 파벌장이다.

거의 넘어올 뻔했던 승기.

이는 단순히 토이치TV의 인수가 합당하냐, 아니냐를 넘어 파벌간의 힘싸움이기도 하다.

"백작가의 따님만 아니었어도 저희의 주장이 받아 들여졌을 텐데 말이지요."

"맛이 간 거야. 백작 녀석들도, 대표이사도."

백작가.

찬성했던 쪽의 파벌을 뜻하는 은어다.

대표이사 다음으로 높은 전무이사가 우두머리다.

그 전무이사의 저택이 새하얗다.

호화스러우며 권위적으로 느껴진다.

귀족을 뜻하는 백작가는 이를 비꼬는 은어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 녀석이 찬물만 안 끼얹어도…….'

백작가의 따님은 그 전무이사의 딸.

어린 나이에 측근으로 활동하고 있다.

묘하게 능력이 없는 듯 있어 껄끄러운 존재다.

친족 우대 등의 이유로 잘라내려 했지만 실패했다.

몇몇 프로젝트의 추진으로 대표이사의 총애를 받게 된 탓이다.

이번 토이치TV의 건은 그녀의 입지를 더욱 탄탄하게 다져줬다.

'1년 잠잠하다 했더니 외국에 조사를 나갔을 줄이야. 방심했어.'

영락없이 꽁무니를 뺀 줄 알았다.

혹은 분에 넘치는 자리를 감당하지 못했거나.

어느 쪽이든 잘된 일이라 여겼는데 중요한 순간에 와서 초를 치다니.

몇 달에 걸친 분쟁을 끝낼 종지부였다.

난데없이 튀어나와 흐름을 바꿔 놓았다.

중립 파벌이 손바닥을 뒤집으며 인수를 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그 결과.

"롤? E-스포츠? 도무지 모르겠군. 이런 걸 대체 어디다 써먹을 작정인지……. 정신이 나갔어."

"철이 없어서 그렇지요. 실패를 경험한다면 정신을 차릴 겁니다."

로를 몬테가 들고 있는 서류는 다름이 아니다.

토이치TV의 인수, 이후 방향성에 대한 보고서다.

파벌 싸움의 뒤처리이기도 하다.

아무리 뜻하는 바가 달라도 한 몸이다.

아마조네스닷컴을 이끌어나갈 기둥들이다.

때문에 큰 논쟁 이후에는 암묵적인 합의를 가진다.

우리 파벌의 의견이 받아 들여졌네?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잘해나가 보자.

반대한 파벌은 감사(監査)할 권한을 가진다.

참견할 권리를 주겠다는 의미다.

체면을 세워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 서류의 내용을 살펴볼수록 머리가 지끈댄다.

'개인 방송, 게임, E-스포츠…… 뭐야, 이 잡다한 것들은. 아마조네스닷컴의 이미지를 떨어뜨리지나 않으면 다행이겠군.'

대기업이다.

그것도 전세계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만에 하나 돈이 된다고 해도 그들 입장에선 푼돈에 불과하다.

기업의 이미지나 타기업과의 관계가 무너지면 본말전도는 커녕 손해다.

백작가측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 참에 손을 봐주는 건 어떻겠습니까?"

"방법은?"

"조금 주제 파악을 하게 해주는 정도로도 충분하겠지요."

서류를 감사할 수 있다.

이는 마음만 먹으면 딴지를 걸어 괴롭힐 수도 있다는 소리다.

측근의 제안은 지극히 보편적인 발상이다.

로를 몬테라고 어찌 생각을 안 해봤을까?

대놓고 해코지 하기에는 걸리는 부분이 많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역풍을 맞아버릴 수 있다.

"어차피 기량도 경험도 부족한 어린 계집입니다. 제 풀에 지쳐 쓰러지게 해버리시죠."

반대로 일정 수준, 더욱이 명분이 있다면 가능하다.

프로젝트의 한 축을 맡고 있는 계집 하나.

곤란하게 만드는 건 여반장이다.

이만한 일을 맡아본 적이 있을리가 없다.

운좋게 전무이사의 딸로 태어나 눈에 띄었다.

운좋게 아이디어가 몇 번 맞아 떨어졌다.

쉽게만 산 그녀도 세상의 쓴물을 맛볼 때가 됐다.

"전무이사의 딸이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면 내 아들이 끼어도 토를 달 수 없겠지. 지금 티미는 뭐하고 있지?"

"특별히 큰일을 맡고 있진 않습니다. 불러올까요?"

눈치 빠른 비서의 대답에 로를 몬테가 씨익 웃는다.

총괄자, 스포츠의 팀에서는 구단주다.

자신의 아들을 앉혀 놓으면 보다 편하게 주시할 수 있음이다.

물론 그 하나로는 부족하다.

로를 몬테가 서류 뭉치를 뒤적거렸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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