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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설의 재림-223화 (223/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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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비는 누구? -->

달그락.

얼음이 든 유리컵을 괜스레 한 번 젓는다.

할 말이 없을 때면 습관적이다.

분명 나만이 아닐 거라 생각한다.

'아무 소리도 없으면 좀 그렇잖아.'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한 방편.

나도 처음 겪는 상황이라 난감하다.

카페 안에 달리 사람도 없어서 한산한 상태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처음은 아닌데……'

내가 그렇게 만들어버린 적이 있다.

그건 명백하게 해결법이 존재한다.

대가리 박고 사죄하면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다르다.

오랜만에 연락이 온 유리야.

만나서 커피를 마시던 도중 울먹거린다.

"그럼…… 그럼…… 선배 다시는 못 보는 거에요?"

"그럴 리가 없잖아. 잠깐이야 잠깐."

그 잠깐이 여차하면 수 년이 될 수도 있을 뿐이다.

전해 듣자 눈망울이 그렁그렁.

물처럼 연한 콧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평소와 같은 흐름이라 테이블 위 휴지를 뽑아서 닦아줬다.

코에 대자 팽-! 푼다.

"착하지 뚝!"

"그치만…… 그치만…… 선배 못 보는데. 선배도 저 못 보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거에요?"

"그냥 군대 한 번 더 가는 거랑 비슷한 거야. 휴가도 오고 그럴 건데 뭐."

나도 우리 리야 좋아한다.

갈구고 그러는 것도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아끼는 후배라는 소리를 내가 괜히 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너를 애완동물로 반입할 수는 없잖니.'

마음 같아서는 나도 유리야 한 마리 입양하고 싶다!

그런데 막상 입양하면 키우기 힘들 거야 분명.

하도 잘 먹어서 치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평소였다면 그런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달랬다.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라서 문제다.

이야기만 꺼낸 건데 얘가 울먹울먹 난리가 났다.

"정말 가는 거에요? 가버리는 거에요?"

"……내가 가버렸으면 좋겠니?"

"씨잉! 그럴 리가 없잖아요오."

평소에 많이 놀렸잖아.

특히 롤챔스 기간 때는 날이 섰었다.

얘가 삐져서 골이 깊어진 게 아닌지 내심 찔렸다.

그런 건 또 아닌 모양이다.

리야가 속이 깊은 아이는 아니지만 착한 아이다.

현실에서 마주하는 게 거의 한 달 가까이 됐음에도 변함이 없다.

"저 선배 군대 있을 때 엄청 잘해드렸다고 생각해요."

"그건 맞지. 내가 너 덕분에 휴가 때마다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그거 혹시…… 왜 그랬는지 아세요?"

"……."

갑자기?

유리야가 콧물을 당기면서 말을 잇는다.

분위기가 진중해진다.

'사실 모르진 않지.'

모를 수도 없다.

이성에게 잘해주는 이유는 하나다.

물론 간혹 오해를 낳을 때도 있다.

여자가 나한테 잘해준다고?

쟤 나한테 막 마음 있는 거 아니야?

그런 흔한 착각 남자라면 한 번씩 해본다.

하지만 유리야는 그런 머리 잘 못 굴린다.

어장 관리 생각도 못해봤을 아이다.

순수하게 받아들이면 되는 부분.

"리야야."

"네……."

"그때 너 코찔찔이 였잖아."

"흐에에엥!"

우는 이유가 달라져 버렸다.

아니, 근데 맞잖아!

오죽 했으면 민우한테 화를 냈을까.

내가 여자애를 소개시켜 달라고 했지, 여자인 아이를 소개시켜 달랬냐고!

군인 신분으로서 얼마나 설렜었는데.

당시에는 화가 났지만 지금은 좋은 인연 다리 놓아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선배는…… 아직도 저 여자로 안 보여요?"

"……."

유리야도 은근히 나이를 먹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두 살.

20대는 정말 1년, 1년이 다르다.

특히 여자애들은 스무 살이랑 20대 초랑은 차이가 역력하다.

스무 살도 20대 초 아닌가?

무슨 궤변을 늘여 놓는다고 의아해 할 수 있겠지만 팩트다 팩트.

군대 갔다 오면 여자 동기들이 여자가 됐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선배……."

"어, 어."

"혹시 오늘 시간 괜찮으세요?"

옷도 갈아입히고 했더니 많이 나아지긴 했다.

물론 여전하다.

유리야는 아끼는 동생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딱 한 번밖에 없긴 한데…….'

내 군생활 찬란했던 흑역사.

후회가 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착각할 만큼 얘가 외모가 되기도 하고 착하다.

무릇 착한 여자 싫어하는 남자는 없는 법이다.

근데 너무 착하면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다.

약간 책임져야 하고 그런 느낌.

유리야를 동생으로만 본 데는 사실 그런 연유도 있다.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어찌 나 좋다는 이쁜 여자 멀리할 수 있겠는가.

"저 오늘 선배랑 놀고 싶어요. 그래도 되죠?"

어쩌면 유리야 안의 둑.

계기가 생기며 허물어진 걸 수도 있다.

실수를 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만약이라는 두 글자가, 오늘 내 맘을 무너뜨렸어…….〉

휴대폰을 통해 벨소리가 울린다.

채 전화가 닿기 직전.

벨소리의 주인공이 약속 자리에 도착했다.

"썽훈!"

하비와 잠깐 만나기로 했다.

별 일은 아니다.

다 제쳐두고 순수하게 밥이나 한 끼 먹고자 한다.

점심으로 돼지 갈비.

촉촉이 배어든 양념이 일품이었다.

이미 밥을 다 먹고 먹고 후식을 챙기러 나왔다.

"여기 와본 적 있어?"

"Um…… Never. 여기 cafe?"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설빙(雪?).

굳이 표현하자면 한국식 카페다.

최근 붐이어서 온 것이기도 하고.

"코리안 빙수인데 고소해서 맛있어. 먹어봐."

사실 달달한 후식은 여자들이나 좋아한다.

당연히 주면 먹지.

하지만 굳이 찾아가서 먹지는 않아.

이곳 설빙은 남자들 입맛에도 썩 괜찮다.

엄청 달거나 하지 않아서 좋더라.

하비와 약속을 하기도 했다.

"이게 코리안 케이크야. 쌀로 만든 케이크 알지?"

"안다. 떡! 떡! 떠뽀끼!"

Rice cake 떡, 한국식 케이크다.

이전에 말을 한 번 꺼냈었다.

물론 하비도 모르지 않다.

대중적인 음식이지 않은가?

길거리에서 굉장히 흔하게 판다.

매콤한 떡볶이는 쉽게 접할 수 있는 간식 중 하나다.

'하지만 그런 떡만 있는 게 아니야.'

세상에는 정말 여러가지 종류의 떡이 있다.

빨간 맛 말고 달달한 맛.

꿀을 뜸뿍 찍어서 하비에게 권했다.

포크로 찍어 먹여주자 분위기가 달달해진다.

달달해진 분위기 탓에 마치 데이트 같다.

당연하게도 본연의 목적은 이런 느낌이 아니다.

"썽훈."

"응?"

"Have you thought?"

생각해봤어?

물어보는 내용은 다름이 아니다.

내용에 대해서도 이제 익히 알고 있다.

아마조네스닷컴.

하비와 자메손이 얽혀있다는 회사다.

너무 대기업이라 현실감이 와 닿는 게 살짝 늦었다.

'스트리밍 업체의 인수 및 운영이라…….'

한 가지 큰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가히 대기업이라 불릴 만한 스케일이다.

플랫폼 하나를 통째로 인수할 예정이라고.

토이치TV.

나도 언뜻 들어본 적이 있다.

한 마디로 해외의 파프리카TV다.

아마조네스닷컴은 인터넷 스트리밍의 발전을 주시해왔다.

오랜 논쟁 끝에 토이치TV의 인수를 결정했다.

움직이는 돈의 액수는 대략.

"10억 원?"

"No. No 달러. U.S. Dollar!"

나도 그 정도는 안다.

달러라는 화폐 단위를 쓰는 나라는 많다.

대표적으로 대만 달러, 짐바브웨 달러 기타 등등.

당연하게도 미국 달러가 가장 비싸다.

그런 달러로 10억?

'대충 1조 정도 되겠네.'

츄파춥스 50억개.

짜장면 2억 그릇.

치킨 5천 500만 마리.

아무튼 배 터지게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아마조네스닷컴의 시가는.

"500 billion."

"5천억원?"

1조에 비하면 얼마 안되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5천억 달러였다.

'츄파춥스를 전 지구의 모든 사람들에게 500번은 먹일 수 있겠구나.'

뭐지, 깝치지 말라는 건가?

소리 소문 없이 쓱싹 할 수도 있는 거야?

기업의 가치와 프로젝트의 중요도 어필이었다.

초대기업이, 엄청난 액수의 돈을 움직인다.

확실히 그것만으로도 없던 신뢰가 생긴다.

그리고 하비.

그녀가 어째서 한국에 왔는지도 이해가 된다.

해외는 한국에 비하면 스트리밍 시장이 본격적이지 않다.

그래서 인터넷 방송 시장을 조사하고자 한국에 왔다.

방송을 시작했던 것도 그 일환.

'한 마디로 시장 조사 차원에서 파견을 나왔던 거네.'

하비는 애초에 아마조네스닷컴의 직원이었다.

파견 기간이 길다 보니 현지 적응을 했을 뿐.

한국어 패치가 잘못되는 등 부작용도 생겼다!

차마 상상치도 못했던 일이다.

하지만 대기업이라면 그만한 밑준비를 할 만도 하다.

움직이는 돈의 단위가 다른 만큼 조사와 준비도 체계적이다.

"그럼 나는 토이치TV가 후원하는 팀에서 뛰게 되는 거야?"

"That's it! But…… Some 다르다."

인수를 한 이상 굴려야 한다.

본전을 뽑아야 하지 않겠는가?

대기업의 일이니 달리 큰 그림이 있겠지만 골자는 결국 그거다.

토이치TV의 대대적인 홍보.

가장 확실하고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는 수단으로 E-스포츠를 선택했다.

롤모델이 한국이기도 하거니와 인터넷 방송의 주류가 바로 게임이다.

게임단을 굴리겠다는 게 납득이 된다.

그리고 나를 영입하고 싶은 이유도.

신규팀의 에이스 카드.

더불어 내가 잘생기긴 했다.

'내 얼굴이 한국에서는 상위권이지만 전세계적인 메타에서는 탑티어에 들 만하지.'

내심 생각하고 있던 부분인데 하비도 나보고 잘생겼다고 했으니 틀림없다.

우리 엄마도 분명 그랬다.

하비가 오랫동안 준비해온 일이라고 하니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중요한 건 결국 조건이다.

헬렐레 넘어갈 정도로 나 레전설 쉬운 남자 아니다.

제시해온 조건 자체가 처음부터 월등했기 때문이다.

재계약 시즌이 아닌 지금 이 이상의 대우를 받기는 힘들다.

붕 떴던 고민도 요 며칠간 해소하고 왔다.

사실 해외 활동에 최적화된 환경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구입 가능한 스킬 목록이 표시됩니다.]

-영어 회화 초급

-3분이면 따라하는 중국어 스피킹

-자신감이 중요한 실전 영어!

'처음에는 내가 외국어 학당을 잘못 찾아왔나 싶었는데…….'

지금 와서 보면 무능한 신의 큰 그림이다.

아니, 무능한 신이라고 할 게 아니다.

해외 진출을 하게 된 이상 이것보다 더 도움 될 만한 스킬을 찾기도 힘들 것이다.

행보관과 남수길 대표에게 썼던 연봉 협상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포인트도 많아서 가뿐히 고급편을 밟을 수 있다.

물론 가장 큰 건 역시 조건과 대우, 그리고 환경이다.

"거기 시설 좋아?"

"Of course! 우리 투자 많다. Care OK!"

자신들이 얼마나 한 포부를 가지고 있는지 열심히 어필한다.

서투른 한국어로 열심히 설명해온다.

그 모습이 귀엽기 때문도 있고.

'어차피 한국에는 달리 없을 거야.'

충분한 연습 환경, 보다 많은 기회.

국내에서는 얻기가 힘들다.

현재의 한국 리그는 작다.

판이 좁은 이상 한계가 명확하다.

보다 큰물에서 놀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해외의 진출은 나 자신에게도 의미가 깊다.

남자라면 누구나 나가보고 싶기 마련이다.

'하비만 해도 엄청난데…….'

외국 여자들이 몸매가 그렇게 좋다더라?

건강한 느낌의 복근.

고기도 꼭 부드럽다고 맛있는 게 아니다.

부드러운 맛에 먹는 것도 있지만 씹는 질감도 평가의 큰 요소 중 하나다.

다른 느낌의 여자를 찾을 때가 된 건 아니고.

그냥 단순히 기대가 좀 될 뿐이다.

'내가 원래 백마를 좀 좋아하는 편이야.'

어쩌다 TV에서 우연찮게 경마 채널을 보게 됐을 때.

나도 모르게 백마를 응원할 정도다.

약간 남자의 로망 같은 게 있다.

관심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순전 거짓말이다.

어쩌면 그 꿈을 이룰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속물적인 이유도 포함되니 꿈 꿔볼 만하다.

"하비."

"Why Why?"

"일단 한 번 가볼 생각인데 괜찮겠어?"

"Sure! 썽훈의 OK 기다렸다."

아메리칸 드림.

무작정 해보자는 게 아니다.

한 번 가보면 얼추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의구심이 들겠지만 하비다.

나 스스로 믿어보고자 마음 먹은 사람이다.

한 가지 불안 요소가 남아있긴 하다.

"다른 게 아니고…… 자메손때 약간 충격이 없지 않아서 있어서 그런데."

"Huh?"

"혹시 본토에 남자친구 있니……?"

순진문구한 0.5 유리야 느낌의 하비가 근육질의 백인 혹은 흑인 남성과 사귀고 있다.

Unbelievable…….

100% 트라우마가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딱히 다행인 건 아니지만 일 때문에 바빠서 남자를 사귈 여력이 없다고 한다.

'근데 일 때문에 바쁜 사람들도 사내 연애는 느낌이 또 달라.'

조금 입후보 해보고자 한다.

========== 작품 후기 ==========

가을 방학 -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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