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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설의 재림-220화 (22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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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비는 누구? -->

일단 하나 오해가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자메손.

그렇고 그런 사이는 절대 아니라고 한다.

'한 마디로 하비남친절대아님이네.'

비슷한 오해를 받은 적이 있었던 만큼 이해하는 입장이다.

하비가 깜짝 놀라며 해명을 하더라.

지켜보던 자메손의 표정이 조금 씁쓸해 보였던 건 기분 탓이겠지.

아무래도 좋은 일이지만 한 가지는 아쉽다.

원래 단둘이 데이트를 할 줄 알았다.

당초 잡았던 계획이 어떠했냐면.

1. 하비 집에 마중을 나간다.

2.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 간다.

3. 고기 좀 썰고 잔 좀 부딪히면서 혈중 알코올 수치를 높인다.

남녀 사이의 진도는 원래 한 시간 앞을 알 수 없는 법이다.

눈 떠보니 침대 같은 소리가 괜히 있을까.

선생님 진도 나가요!

일부 학생에 의해 억지로 나가면 분위기만 불편해진다.

진도가 술술 잘 나가는 날이 언젠가 오기 마련이다.

그 날이 오늘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동안 쌓아온 관계가 있기 때문에 다소 기대했다.

하비가 만나자고 먼저 연락까지 해오다니!

그런데 갑자기 외간 남자?!

남친이 아니라면 포용해줄 수 있는 남자다.

"He is my 파트너!"

"……Pardon?"

내가 착각의 착각을 해버린 건가?

언어가 다른 데서 온 착오였다.

일적인 파트너라고 한다.

혹시 까메오팟TV 출신의 BJ?

스트리머는 아니고 다른 일이었따.

듣고 보니 생긴 것부터가 BJ 상은 아니다.

어디서 양복이랑 넥타이 좀 빼입었을 사이즈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꽤 훈남이긴 해.'

한 8할까지 인정해줄 수 있다.

그럴 정도로 제법 수준이 높다.

내가 처음에 괜히 오해했던 게 아니다.

"복잡하다. Can you wait?"

나도 시시콜콜 물어보기 싫다.

그러면 막 집착하는 거 같잖아!

하비의 용건과 관계됐다고 하니 천천히 들어볼 생각이다.

'근데 대체 무슨 일이지…….'

국제 결혼정보업체에서 오신 분일 수도 있다.

예로부터 6월은 결혼의 달이다.

6월의 신부가 행복하다.

그런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순탄한 길이 되지 않지만 괜찮다.

하비와 함께라면 가시밭길, 기쁘게 걸어갈 수 있음이다.

각오를 하고 왔는데 무색해졌다.

물론 이는 부수적인 것이다.

'Whatever You Like….'

가사에 Rice cake 말고도 한 가지가 더 있다.

너를 사고 싶어.

오늘의 하비는 진지한 느낌이다.

* * *

E-스포츠판은 넓으면서도 작다.

전세계적으로 롤챔스가 열린다고?

정보가 정말 셀 수 없이 쏟아지겠네?

결국 한두 발 건너면 다 모이게 돼있다.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

각 게임단의 감독, 구단주들은 발이 넓다.

"해외 대회에서 AP원딜이 성행하고 있다고?"

삼선 게임단의 감독 최우룡.

뇌신(雷神)이라는 별명이라는 불리는 그가 에어컨의 온도를 조정하며 입을 열었다.

"예, 블러디 원딜 있지 않습니까? 준결승전에서 썼던 거 말입니다."

"그래…… 4세트였지."

바로 그 블러디 원딜의 희생자가 됐던 게임단이다.

준결승전 2대2까지 갔던 접전.

네 번째 세트에서 어처구니없는 블러디 픽에 된통 당했다.

물론 당하자마자 바로 작전 타임을 요구해 대응책을 짰다.

그 대응책이 무색하게도 상대가 안 써버렸지만.

선수마저 바뀐 바람에 죽 쒀서 개 준 꼴이 됐다.

'결과적으로 이겼으니 다행인 일이지.'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식은땀이 흐를 정도다.

운 좋게 밴픽의 승리.

잼할과 잼구의 극부진.

두 가지가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면 패배을지도 몰랐다.

그랬다면 십중팔구 결승전의 우승팀도 바뀌었으리라.

이벤트 매치, 레전설의 캐리력을 목도한 마당이다.

최우룡 감독은 솔직한 심정을 속으로만 삼켰다.

자신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쉽게 흔들려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신출내기에 얕보여서야 이 바닥도 끝장이다.

스타크래프트 시절부터 쭉 짬을 먹어온 그는 잘 아는 입장이다.

이번 레전설에 대한 문제 또한.

"레전설을 어떻게든 영입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래야 전력도 높아지고……"

"뭐, 전력(電力)?!"

뇌신이라는 이명에 걸맞게 최우룡은 전기세에 굉장히 민감하다.

때는 2014년, 한국전력공사가 개꿀 빨던 시기다.

7단계까지 적용되는 누진세는 가히 살인적이다.

까딱 잘못하는 순간 전기세가 명품 가방·지갑·시계값 만큼 나올 수 있다.

에어콘의 온도가 29도인 걸 확인한 최우룡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서야 본격적인 대화가 이어진다.

"레전설, 그 녀석은 분명 탐나는 인재지."

"예, 이번에 저희가 조금만 무리하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말이죠."

삼선 갤럭시의 수석 코치 최명욱이 들고 있는 서류를 만지작 넘긴다.

서류의 내용은 다름이 아니다.

타 게임단들에 대한 분석.

선수들이 아닌 자금원 쪽이다.

에이스 카드를 영입하는데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습니까?

주머니 사정을 파악해 두었다.

'1억……, 1억 5천……, 상한선의 최고치는 2억이라.'

어디까지나 상한선의 이야기다.

그만한 액수의 거금을 선뜻 내줄 리 없다.

2014년은 아직 프로게이머들의 연봉이 고만고만하던 시기다.

스타크래프트의 전설이던 이영호, 이제동 등 슈퍼스타들조차 2억원대에서 머물렀다.

로드 오브 로드에 이르러 판이 커졌다고는 하지만 슈퍼스타급은 그다지 탄생하지 않았다.

하물며 재계약 시즌도 아닌 만큼 당연하다.

'미친 척하고 2억 이상을 내주는 곳도 있을 수는 있어.'

이벤트 매치 이전이었다면 단언컨대 없었을 것이다.

그만한 도박수를 둘 정도로 과감한 인간.

적어도 최우룡이 아는 한에서는 없다.

반대로 말하면 이벤트 매치 이후 레전설의 주가가 급상승했다는 소리다.

여타 요인들도 있어 상상 이상이다.

오래 전부터 눈독을 들여온 최우룡은 레전설을 극히 탐내고는 있지만.

"나서지 마."

"네? 하지만 레전설인데요? 화끈하게 2년 계약 묶어두면 괜찮지 않을까요?"

물론 아직 불안정한 카드다.

재계약 시즌도 아닌 지금 거금을 주고 영입하는 건 부담된다.

잘 안되기라도 하면 수억원짜리 애물단지를 팀에 들여놓는 셈이다.

하지만 기량을 충분히 보여줬다.

무엇보다 남 주기에 아깝다는 것이 크다.

다른 팀이 가져갔다가 성적 다 뺏기면 어떡해!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소리다.

"우리는 적당한 선에서만 물고 늘어지면 돼. 집착하지 마."

"하지만……."

최우룡이 쓰윽 눈길을 주자 최명욱은 주춤 물러선다.

뇌신이라는 이명이 괜히 생겼을까?

그만한 기백을 내뿜고 있기 때문이다.

채 납득하지 못했지만 상관의 말이니 어쩔 수 없다.

최명욱은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간다.

감독실에 혼자 남은 최우룡.

'명욱이 녀석 서운해 하겠군.'

그도 자신도 레전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착각해서는 안된다.

코치는 선수들을 보조하는 게 업무다.

관리하고, 영입하고, 나아가 판을 꾸리는 것.

감독의 업무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본분을 망각해서야 위계질서가 흐트러진다.

'애초에 알고 있었어.'

AP원딜이 성행하고 있다.

그로 인해 레전설의 주가가 상승했다.

판이 커졌다는 의미다.

레전설 영입을 재고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한국에서 제시할 수 있는 1억, 2억?

자금력이 막대한 해외에서는 우스운 액수다.

마음만 먹으면 그 배가 되는 액수도 부를 수 있다.

즉, 마음을 안 먹게 하는 게 중요하다.

끼어들었다간 괜시리 판만 더 커진다.

판이 커지면 자금력이 부족한 한국팀들은 경쟁력이 없어진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다 혹여 관심이 꺼졌을 때 낚아채는 정도로 만족하는 게 선이다.

'과열되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 노려보는 거고.'

자신이라고 해외 오퍼가 들어온 적이 없을까?

주위를 둘러봐도 예가 적지 않다.

E-스포츠 판은 넓어보이지만 사실은 작다.

막상 해외에 가는 사람이 별로 없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웬만한 액수로는 마음이 안 먹어진다.

아직 국내 선수들의 해외 엑소더스가 시작되지 않은 2014년이다.

─레전설은 차기 시즌 어느 팀으로 갈까?

의리로 파프리카 프릭스에 남을까?

역시 상위권팀에 가서 우승을?

그것도 아니면 돈 많이 주는 해외로 런?

└해외 런도 가능함?

글쓴이-이미 간 선수가 몇 명 있더라

└하긴 한국 선수들 빼갈 만하지ㅋㅋ

└그래도 웬만큼 많이 주는 거 아니면 안 가지 않을까?

아직 작은 바람만이 소용돌이 칠 때다.

커뮤니티에서는 벌써부터 관심이 부풀고 있다.

과연 레전설은 차기 시즌 어느 게임단으로 이적할까?

팬들은 물론 국내 프로게임단들의 최대 귀추다.

* * *

하비와의 식사.

본래 의도와는 틀어지게 되었다.

식사를 하면서 좋은 분위기로 이끌어나가고 싶었는데!

자메손의 존재 때문에 망치고 들어갔다.

합석이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애초에 김칫국이었다.

대화의 주제가 생각 이상으로 무거웠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망설였던 건지.

나로서는 여러가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하나쯤 대대적인 오퍼가 들어올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지인을 통해서라니 놀랍기는 하다.

심지어 하비.

솔직하게 0.5 유리야급 얼빵함이다.

'물론 0.5는 애교라고 볼 수 있는 수준이지.'

하지만 교두보 역할 정도로만 생각했다.

외국인이기도 하고, 나와 친분이 있다.

지인이 부탁해서 자리를 잡아준 거라면 그럴 만도 하네!

그런 게 아니라서 문제다.

자메손과 일적인 파트너.

자메손은 미국의 아마조네스닷컴에서 파견됐고 하비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아마조네스닷컴.

모를래야 모를 수는 없는 글로벌 대기업이다.

한 마디로 대빵 큰 11번가, 옥션, G마켓이다.

〈11번가 AK-47 2NE1 직접 배송 이벤트, 최대 11% 카드 추가 할인 가능!〉

〈옥션 산불 All Kill 특가, 스마트 배송, 누구나 10% 할인.〉

〈G마켓 핵미사일 최대 100% 최대 12번 할인, 쇼핑은 시작부터 끝까지…….〉

한국만 해도 이토록 별의별 걸 다 판다.

총기도 허가되고 무기상도 있다는 미국은 더 대단하겠지.

가히 짐작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아마조네스닷컴에서 운영하는 게임단이 있던가?'

몇몇 해외팀에서 오퍼가 들어왔기에 혹시 몰라 조사를 해봤다.

적어도 북미와 유럽쪽에서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그 점에 대해서는 하비가 건네온 서류에 상세하게 적혀있었다.

요약을 하자면 신생팀의 창단.

팀의 에이스로 나를 영입하고 싶다는 입장이다.

하비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단칼에 거절했을지도 모른다.

'파프리카 프릭스에서 이제 막 벗어났는데 또 개고생을 하라고?'

하지만 곱씹어볼수록 나쁘진 않다.

일단 조건 자체가 상당하다.

지금껏 제시해온 어느 곳보다 연봉이 높다.

뿐만 아니라 승리 수당 등의 인센티브도 군침이 돈다.

파프리카 프릭스와 달리 선수 영입에도 망설이지 않는다.

코치진은 당연하고 시설 또한 본격적으로 할 것이다.

계약 승인은 확인 이후에 해도 상관없다.

가히 파격적인 조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미국.

언어라는 무시 못할 장벽.

그리고 솔직히…… 아직도 몰래 카메라 같다.

「거짓말 아니다.」

「당사 정말로 주목한다.」

「또 이야기하고 싶다.」

.

.

.

하비에게서 온 까톡이다.

일상 대화는 영어를 섞는 하비지만 글로 쓰는 까톡은 그렇지 않다.

서투름이 딱딱한 말투에서 묻어 나온다.

'그 하비가 말이지…….'

솔직하게 내 안에서 하비는 반쯤 개그 캐릭터였다.

중간중간 진지함이 마음을 설레는 정도.

친구부터 시작하는 연인이라는 느낌으로 여겼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하비가 어떤 기업에 소속돼있다.

그 기업에서 나를 절실히 원한다.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혹시 헤드헌팅?

의도적으로 접근한 거야?

안 좋은 쪽으로 생각이 연결되고 만다.

물론 그런 게 아닐 거라고 믿는다.

하비도 좋은 조건이기에 말을 건넸을 것이다.

정말이라는 전제 하에 이 이상이 없을 정도이기도 하다.

'근데 진짜라고 쳐도 당장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야.'

해외 게임단에 들어가는 것이 어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일까.

갑작스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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