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설의 재림-218화 (218/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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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 시즌이 끝났다.

물론 선수들에게 있어 해당 시즌이 끝나는 건 패배한 순간이다.

나는 4강에서 패배했지만 따로 일정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다소 소란이 있긴 했는데…….

저번처럼 문제가 된 것도 아니니 그러려니 한다.

태풍의 눈이 되는 건 이제 익숙해졌을 지경이다.

그 규모가 헥토파스칼에서 킬로파스칼이 됐을 뿐!

더 번지지 않을 거란 확신도 얻은 참이다.

한동안은 여유롭게 쉬어도 되는 입장이 됐다.

이 시기의 선수들은 다 비슷할 게 분명하다.

'코돈빈도 휴가를 갔다고 들었지.'

딱히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는 아니다.

우연찮게 솔로랭크에서 만났다.

챌린저 티어에서는 흔한 일이다.

사이가 나쁘지 않다 보니 근황 이야기를 좀 나눴는데.

'낙타과에 속하는 포유류들이 있는 목장을 구경하며 휴가를 보낼 계획이라…….'

그런 한가로운 일상이 허락되는 유일한 나날.

바로 비시즌 기간이다.

간단하게 해당 시즌이 끝난 직후를 가리킨다.

특히 최근은 선수들의 몇 안되는 안식기다.

일반적으로 재계약 시즌은 섬머 시즌 직후.

스프링 시즌 직후인 지금은 한가롭다.

역으로 나는 그래서 문제다.

〈차시즌, 차후 시즌까지 고려한다면 저희 게임단 이상의 선택이 없을…….〉

〈에이스의 부재로 오랜 기간 골머리를 앓아왔습니다. 레전설 선수라면…….〉

〈방문하여 직접 얘기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다만 숙소 사정으로 에어컨 사용이 안되어 양해를…….〉

기존 선수들의 계약 기간이 남아있는 만큼 대부분의 팀들은 자리가 안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락이 폭주하고 있다.

국내 1군 게임단만 해도 이 정도.

'해외에서도 러브콜이 꽤 많이 왔어.'

특히 최근 들어 잦아졌다.

정보가 늦게 갔거나, 이벤트 매치가 영향을 미쳤거나.

어느 쪽인지는 콕 짚어 물어보지 않았지만 상당히 적극적이다.

조건을 따지면 해외가 평균적으로 높다.

몇몇 곳은 아예 비교를 불허할 수준이다.

그 대부분이 중국이라는 게 옥에 티라서 문제지.

'차라리 다른 나라면 문제가 없는데…….'

고액 스카웃이 왔는데 당연히 가야 하는 거 아님?

중국은 판도 크고 돈도 많이 벌 것 같다.

나라고 안 해본 상상이 아니다.

막상 현실이 되자 고민할 거리가 한두세네 가지가 아니다.

연봉 좋고 조건도 좋은 데서 일할래요?

오오 진짜요? 회사가 어디에요?

중국(中國).

니취팔러마!

밥 잘 먹었냐는 뜻이다.

돈을 둘째 치고 장기 팔리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걱정된다.

뿐만 아니라 의식주 등.

타지에서 생활하는 게 쉬울 리 없다.

연봉 더 받는 정도로 수지타산이 맞는지 결정하기 애매하다.

그래서 당장 조급하기 보다는 쉬기로 했다.

쉬는 사이에 더 좋은 조건의 계약이 들어올 수도 있다.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은 계약을 추려낼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나 너무 고생했잖아~.

'그놈의 잼잼 듀오 아오…….'

게임을 재밌게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다는 건 인정한다.

시청자 입장이었다면 긴장감 오지게 더했을 것이다.

멱살 캐리하는 나로선 정말 멱살을 잡고 싶어서 문제지.

최근 또 멱살 캐리를 해달라며 징징대는 4인조가 생겼다.

「성훈씨 계세요??」

-ㅇ

「어, 있으시네! 혹시 이따가 밤에 시간 되시나요?」

-?

.

.

.

읽지 않은 메세지 3건.

보통 짧게 답하면 눈치껏 까톡 끊지 않나?

삐져서라도.

그리고 무슨 밤에 만나재.

무슨 여자가 저렇게 적극적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But 적극적인 여자 싫어하지 않는 남자야.'

나 레전설, 동방예의지국의 후손이다.

우리나라는 조선 시대때 선을 봐서 결혼했다.

하지만 그보다 전인 고려 시대에는 연애 결혼을 했다.

운치가 있는 나라였다.

나는 후손으로서 그 문화를 존중함이다.

삭막해진 조선에서도 러브 스토리가 전해져 내려왔다.

'춘향전 모르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

우리의 신분이 평등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언젠가 너의 이몽룡이 되어주고 싶다.

그렇게 설렜던 시절도 잠깐이었다.

「저희 이따 밤에 몰래 PC방 가려고요.」

「한 10시쯤 도착할 것 같은데 만날 수 있으세요?」

「혜민, 유아, 민경 언니 전부 오빠 기다리고 있어요!」

혹시 같이 가자는 말인가……?

심야 데이트 발칙하지만 싫진 않아.

단체 데이트 소화할 수 있는 남자야.

그런 게 아니라서 문제다.

알아버려서 문제다.

읽지 않은 메세지들을 확인해봤다.

'만남의 장소가 소환자의 전장이지.'

게임에서 만나자는 소리다.

그렇게 만나서 하는 것도 게임이다.

심지어 일반 게임에서 같이 놀자는 거다.

'내가 일반 게임을 안 하는 이유가 딱 한 가지 있어.'

일반 게임이라고 무시하지 않는다.

하루에 첫 판, 손을 풀기에는 오히려 안성맞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하게 된 계기가 있다.

일반 게임 전설의 4인큐.

내가 말해도 못 알아듣는 인간들은 난생 처음이었다.

정글 뭐해요 봇갱 안 와요?

위쪽 터트렸어요 ㄱㄷㄱㄷ.

님이 안 와서 저희 힘들잖아요.

아니, 서폿이 그냥 사려요 그랩하지 말고.

뭐래……. 너나 잘해.

혜지야, 너 잘하고 있어. 쟤가 하는 말 무시해!

그냥 답이 없다 답이.

킬 먹여준 미드랑 탑도 편 들고 앉았다.

그 사건 이후로 일반 게임을 안 하게 됐다.

그런데 나보고 4인큐에 끼라고?

'매판 암행어사 출두라도 해달라는 거니?'

이몽룡이 춘향이 뒤치다꺼리 하려고 암행어사가 된 게 아니다!

어떤 상황이 그려질지 안 봐도 비디오다.

무려 두 번이나 같이 게임을 해본 마당이다.

보나마나 각 라인에서 푸짐~하게 싸재끼겠지.

걸그룹인지 똥쟁이이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쓸데없는 까톡이 안 오도록 커밍아웃을 한다.

-제가 사실 헬로우비너스 팬이라 헬로우비너스 싸인 받아주시면 해드릴게요. 그럼 2만

한동안 소라씨의 까톡은 확인하기 힘들 것 같다.

무슨 말이 와있을지 두렵다.

일단 고민거리 하나는 억지로 해결했다.

간만의 휴식을 시답잖은 일로 방해 받을 수는 없다.

〈표현이 서툰 것도 잘못인가요~.〉

울려오는 전화도 웬만하면 무시하고 있다.

특히 절대로 무시하는 전화가 둘 있다.

참고로 유리야는 아니다.

부재중 전화- 남수길 대표 2통

부재중 전화- 박인주 운영자 4통

기존에 속해있던 파프리카 프릭스에서도 연락이 왔다.

제시해온 조건이 스프링 시즌과 비슷하다.

조금 올랐기는 한데 직장인 연봉 같다.

'오르는 것 같으면서도 전혀 오르지 않은 듯한 느낌적인 느낌.'

딱 그런 느낌의 계약서를 내밀더라?

바로바로 왔으면 0.1%는 혹했을지 모른다.

코치진도 생긴다고 하고, 나를 중심으로 여러가지 이벤트도 열 예정이라고도 하고.

BJ생활을 포함한다면 나쁘지는 않다.

BJ의 수입이 작정하고 하면 상당하다.

대부분의 게임단들이 스트리밍 방송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말이다.

'근데 너무 늦었어.'

다른 곳에서 워낙 많이 쏟아지고 있다.

대우라는 측면에서 아예 비교가 안된다.

그쪽에서는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원래 세상이 다 그렇잖아?

'사람 부려먹는 거 잘하는 수길이형은 이 느낌 알잖아?'

* * *

남수길은 뒤늦게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파프리카 프릭스의 전담 팀장에게서 올라온 보고 서류.

나흘도 되지 않아 만들어온 것 치고는 제법 완성도 있었다.

나아가야 할 방향성.

협상 가능한 코치진.

파프리카TV에 방송국을 개설한 현역 아마추어들.

.

.

.

기타 등등

어느 것도 버릴 것 없는 알짜배기 정보들을 짜임새 있게 정리해왔다.

이사들이 한 번씩 칭찬을 돌렸을 정도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사회의 대부분이 로드 오브 로드가 뭔지 모른다.

대충 스타크래프트 비슷한 건가?

얼추 그런 느낌으로 뜬구름만 잡는다.

아예 그조차도 모르는 세대인 분들도 있다.

웬만한 건 몰아붙일 힘을 가진 남수길 대표 이사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크다.

움직이는 돈의 액수가 섣불리 결정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상장회사인 만큼 이사회의 눈치를 안 볼 수는 없다.

전담 팀장의 고군분투 덕에 한시름 놓았다.

대상이 무엇인지, 어떤 느낌인지 확연하게 알아야 회의의 진행도 쉽고 발안이 통과되기도 쉬워진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는 가히 합격점.

주가 등의 가시적인 지표도 있어 이사회의 설득은 간단했다.

"그러면 뭐해. 그러면 뭐하냐고! 자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겐가?"

"……죄송합니다."

눈치 없는 부하 직원에게 북받쳐오른 짜증을 덜어낸다.

남수길은 인상을 구긴 채 떠올렸다.

그가 준비해온 서류는 분명 완벽했다.

단 한 가지를 빼고.

말하자면 엔진이 없는 자동차다.

레전설의 계약 기간이 스프링 시즌으로 끝났다.

급한 불만 끄고 다음 시즌은 다른 BJ들을 섭외하자.

한 시즌 급하게 막으려던 궁여지책이 화로 작용했다.

부랴부랴 전 시즌보다도 훨씬 나아진 조건을 제시했음에도 연락이 없다.

아니, 연락을 의도적으로 씹는다.

'요즘 애들은 키워줘도 은혜를 몰라 은혜를.'

그래서 목줄을 채워둬야 한다.

BJ들의 행보는 항상 주시하고 있다.

절대 플랫폼에 반역의 의지를 낼 수 없도록.

하지만…… 레전설은 BJ가 아니다.

당장 BJ를 그만둬도 아쉬울 게 없는 입장이다.

한 회사의 CEO라는 것.

협상에 있어 머리 돌아가는 능력은 빠삭하다.

'주도권을 가져와야 돼.'

남수길이 E-스포츠에 대해 잘 몰랐던 것은 옛날 일이다.

파프리카 프릭스.

투자한 돈이 한두 푼이 아닌 만큼 관심이 안 갈 수가 없다.

사람은 원래 관심이 있는 것은 빠르게 배운다.

룰과 대략적인 흐름, 게임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알게 되자 레전설의 가지는 위상과 가치 또한 와 닿는다.

절대 놓아줘서는 안된다.

이건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문제는 그 레전설을 속박할 권한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니, 한 가지 있어.'

BJ들을 꼬실 때 가장 많이 쓰는 미끼.

베스트BJ는 별다른 협약이 없다.

얻는 게 적은 만큼 제약 또한 가볍다.

하지만 파트너BJ는 다르다.

환전 우대, 퀵뷰 지원, 광고 수익 등 여러가지 혜택을 가진다.

그렇게 가진 권리에는 의무 또한 따른다.

협약이라는 이름의 족쇄가 묶인다.

레전설은 진작에 묶어뒀다.

물론 BJ로서의 족쇄다.

하지만 계약 조항이란 해석하기 나름이다.

이를 테면 다른 프로팀들은 방송을 못하게 하므로 BJ활동에 지장이 생긴다.

법무팀까지 동원하면 잡을 만한 요소는 더욱 드러날 것이다.

"자네."

"네, 사장님!"

"레전설도 자네 담당이지? 파비 관련 서류도 자네한테 있고?"

"아…… 예, 그렇습니다!"

평소 얼타고 눈치 없는 모습과 달리 대답이 재깍재깍 돌아온다.

남수길이 가진 경영 철약.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는 반드시 고삐를 잡아둬야 한다.

레전설에게 고삐를 못 씌운 탓에 생긴 일이다.

이번 기회에 상하 관계를 확실하게 해둘 필요성이 있겠다.

협박 좀 섞어서 윽박지르고, 좋은 말로 구슬리면 넘어오게 돼있다.

'어린 녀석이 앙칼지긴.'

남수길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 * *

마치 결승전 같았던 이벤트 매치가 끝나고 일주일.

정말 편하게 휴가 다운 휴가를 보냈다.

원래 진짜 안락한 휴가는 집에서 농땡이 치는 거다.

'슬슬 몸을 움직일 때가 되긴 했어.'

두 가지 심각한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하나는 지금 내가 배가 고프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노심초사하고 있는 부분이다.

나도 웬만하면 걱정을 안 하려고 했다.

하도 심상치 않다 보니 근심이 안 사라진다.

아니, 그러고 보니 문제가 한 가지 더 있긴 하다.

'수길이형이 애타더라고.'

파트너BJ의 조항을 꼬투리 잡아 자꾸 재계약을 하려는 눈치다.

정 하고 싶으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되잖아?

우리나라 기업들은 이래서 문제다.

질소 가득한 감자칩을 어떻게든 팔려고 안달이다.

자신들이 감자를 더 넣을 생각은 추호도 안 한다.

눈 가리고 아웅도 사람 봐가면서 해야지.

수길이형 나를 이렇게 몰라주면 섭섭해?

'수길이형은 그렇다 치고 문제는 나머지 두 가지야.'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수준이다.

진짜로 배가 등가죽에 달라붙었다.

때문에 오늘 약속을 잡았다.

잘하면 두 가지를 전부 해결할 수 있다.

나의 배고픔과 다른 하나.

〈Stacks on deck, Patron on ice…….〉

기다리던 연락이 닿았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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