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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설의 재림-216화 (216/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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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그다와 닥트리오 -->

샤라라락-!

게임 초중반부터 수도 없이 봐온 광경이다.

이즈레알의 궁극기 정조준 사격.

맵을 쉴 새 없이 가르며 라인을 관리했다.

로드 오브 로드에서는 상당히 중요하다.

모든 프로팀들이 지향하는 운영 제1원칙.

바로 라인을 태우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레전설 선수가 단신으로 해냈습니다. 게임이 30분이 넘도록 지탱될 수 있었던 이유에요.〉

김은준 해설의 말대로 지탱이다.

사실 승패는 진작에 결론이 났다.

아무리 레전설이 잘하고, 킬을 먹고, 깽판을 쳐도 게임을 끝낼 결정타는 못 박는다.

팀게임이 괜히 팀게임이겠는가?

RPG게임처럼 무쌍을 찍는 건 불가능하다.

한다고 해도 초중반이지 풀템전 가면 엇비슷해진다.

삼선 블루는 그런 구도를 만들었다.

이 정도 시간이면 아이템이 슬슬 갖춰진다.

이즈레알 혼자 날뛰어봤자 한계가 명확하다.

〈너무 진지한 거 아니에요? 이벤트 매치인데.〉

〈아니, 이게 진짜…… 진지하게 됐습니다. 시청자분들도 분명 이해하실 거에요.〉

-ㅇㅈ합니다

-난 진짜 바론 먹고 게임 터진 줄

-이벤트 매치가 이벤트 매치가 아니여ㅋㅋ

진용준 캐스터의 물음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답한다.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 게임이란 없다.

심지어 과정이 워낙 화려했다.

한타 대승에 바론 처치.

승리로 향하는 전형적인 공식이다.

그게 딱 떠버리자 혹시라는 생각이 들어버린다.

이러다 정말 이기는 거 아니야?

물론 어디까지나 웃자고 하는 이야기다.

그렇게 예능이었을 경기가 갑자기 다큐가 돼버린다.

〈그런데 이렇게 2차 전직을 해버리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죠.〉

-맨날 이야기가 달라지는 은준좌

-아까는 절대 이길 수 없다메ㅋㅋ

-이즈가 2차 전직 해버렸자너~

RPG게임들이 으레 그렇다.

같은 레벨이더라도 1차 전직과 2차 전직은 아예 느낌이 다르다.

다른 세상에 발을 디딘다는 표현이 맞다.

현재 이즈레알의 상태가 그러하다.

피융!

쏘아진 마법 화살에 얼음 장판이 깔리지 않는다.

대신 막대한 데미지가 묻어난다.

단 한 방.

원딜 애씨의 허리가 휘청인다.

〈아니, 아이템 좀 바꿨다고 이렇게 세지나요? 아까랑 느낌이 전혀 다른데요?〉

〈이즈레알이 AP계수가 은근히 엄청납니다. 실제로 칼바람 협곡에서는 사기급 OP로 분류돼요.〉

〈아, 칼바람 협곡! 근데 대회에서는 보통 AP템트리를 안 가는 걸로 아는데…….〉

진용준 캐스터의 의문대로 보통 안 간다.

아니, 갈 수가 없다.

아무리 성장 기대치가 뛰어나도 라인전 단계에서 필히 무너진다.

이를 몰아먹기 전략과 2차 전직으로 이루어냈다.

완성만 시키면 극강의 캐리력을 자랑한다.

AP의 이즈 강림에 삼선 블루가 당황한다.

─진영을 무너뜨려라~~~!

티확찢을 제대로 하며 성장한 갓렌이다.

방템만 둘둘 두르자 딜이 박히지도 않는다.

불과 3분 전만 해도 대놓고 맞아줄 수준이었다.

─하루 종일이라도 끄떡 없어!

물구나무를 서며 이즈레알을 도발한다.

그러다가 역풍을 제대로 맞는다.

앞비전한 이즈레알이 화살을 쏟아낸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았을 때는 늦었다.

이즈레알의 비전 쿨이 한 번 더 돈다.

앞비전에 의해 무자비히게 짓밟힌다.

〈뭐, 뭐죠? 갓렌 죽었는데요?〉

-고통 받는 가붕이……

-붙지도 못하는데 탱도 안되다고?

-갓렌은 햄보칼 수가 업서!

장난스럽게 지켜보던 클끼리가 깜짝 놀랐다.

아니, 극방템 갓렌이 죽는다고?

갓렌이 멍청해서 그렇지 단단하다.

적 진영에 던져놔도 5초는 버틴다.

그런 갓렌을 홀로 잡아버리는 화력이라니…….

〈방금은 실수였지만 그 실수가 한타에서 안 일어나리란 보장이 없어요. 삼선 블루 방심 더 하다가는 진짜로 질 수 있습니다.〉

김은준 해설도, 클끼리 해설도 이쯤 되니 진짜로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방템을 두른다고 막을 수 있는 딜이 아니다.

마법 저항력을 두르는 것도 해답이 안된다.

〈총검이랑 무사마사라서 AD딜도 무시 못해요. 참고로 피흡도 엄청납니다. 이건 진짜 작정하고 캐리할 목적으로 준비해왔다는 느낌이…… 쎄하죠?〉

클끼리 해설이 무심코 해버린 생각.

경기를 보는 관중들, 시청자들은 소름이 돋아버린다.

저 레전설이라면 진짜 해버릴지도 모른다.

농담삼아 했던 이야기가 현실화된다.

* * *

애초부터 상정을 해두고 있었다.

진정한 게임의 시작.

'AP템이 갖춰지고 나서지.'

이벤트 매치인 이상 일방적인 양학은 안 할 것이다.

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걸즈데이는 모르는 사람이 더 적을 인기 걸그룹이다.

함부로 대하기라도 했다간 팬들한테 욕 오지게 먹는다.

'……그런 불합리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더라고.'

아무튼 그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수월하게 잘 풀렸다.

상대가 여유를 부리고 있다.

그 여유가 부메랑처럼 되돌아간다.

샤라라락-!

더 이상 라인 클리어 따위에 쏟지 않는다.

정조준 사격이 일직선으로 뻗어나간다.

사거리 무한의 글로벌 궁극기다.

대충 쏘면 한 명은 맞는다.

"와~ 애씨가 엄청 아픈가봐요. 체력이 반피나 나갔어요."

"저도 마음 같아서는 님 반피 나가게 하고 싶으니까 한눈 팔지 말고 제 뒤에 있으세요."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이번에는 사전 협의를 마쳤다.

다소 막말을 해도 문제가 생기지 않음이다

그리고 내가 괜히 과격하게 말하는 것도 아니다.

'유아 쟤는 진짜로 유리야과야.'

자꾸 옆에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쫑알쫑알 쫑알쫑알.

둘이 두면 한 다섯 시간은 화젯거리가 마르지 않을 것이다.

잘하기라도 하면 모르는데 실력도 유리야라 조금만 눈을 떼면 죽는다.

다른 팀원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꼬치꼬치 다 해줘야 된다.

말을 안 하면 오또케! 오또케! 놀고 자빠졌다.

신경이 곤두서지 않을 수가 없다.

"티몽 라인 천천히 밀라니까? 천천히 몰라 천천히? 1초에 1티몽 미터 이상 전진하지 말라고!"

"아니, 랄라 제 옆에 있으라고요 내 한참 뒤 말고! 오른쪽에 날개. 어어, 거기 딱 붙어있어요 알았어요?"

"이 와중에 힐라카 또 혼자 와드 박으러 가네? 님 진짜 반피 나갈래요?"

단 한순간도 쉴 틈이 없다.

나 혼자 포킹하고 라인 관리하고 생쇼하기도 벅찬데 팀 네 명이 전부 각자 따로 논다.

그래서 기본적인 역할을 정해줬다.

티몽이 사이드 푸쉬.

나머지는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한 마디로 디그다와 닥트리오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심한 오더가 없으면 사람 노릇을 못한다.

여자 사람 친구 컴퓨터 맞춰주는 기분이다.

선의로 한 번 도와주니까 시도 때도 없이 부른다.

이거 어떻게 하냐고.

컴퓨터가 안된다고.

콘센트 좀 꼽으라고!!!

시시콜콜 한 걸 겁나게 물어본다.

앵간한 건 스스로 알아서 좀 하지.

근데 보면 스스로 안 하는 게 오히려 낫다.

무언가 하려다가 사고 치는 애들이 더 대책이 없다는 걸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 지정해준다.

정신머리가 없을 정도로 게임이 바쁘게 흘러간다.

샤라라락-!

쏘아진 정조준 사격이 미드 쏘냐를 가른다.

딱 보니까 비전 Q총검 하면 죽을 사이즈네.

죽이자 나머지 적들이 물 밀듯이 밀려온다.

"커져라! 팅!! 신짜장 변이! 신짜장 변이! 아니, 티몽 집 가지 말고 라인 밀라고!"

단 한 순간도 눈을 돌릴 수가 없다.

랄라와 힐라카의 보조 하에 한타.

지극히 어렵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미카엘! 미카엘! 3번 누르라고요. 내가 이럴까봐 3번인 거 외우고 있었는데 티몽 거기서 버섯 깔지 말고 포탑 밀라고!"

애씨의 궁은 피할 수 없었지만 괜찮다.

힐라카의 미카엘의 그릇으로 스턴을 푼다.

풀리자마자 바로 점멸 앞비전으로 밟는다.

─더블 킬!

이즈레알이란 픽의 의의는 탱커를 때리는 게 아니다.

순간적인 앞비전으로 적 딜러를 잡아내는데 있다.

AP이즈레알은 그 장점을 더욱 극대화시킨다.

'밟으면 그냥 터지니까.'

살아남은 적은 신짜장과 미달리, 합류해오고 있을 갓렌.

나머지는 카이팅을 통해 농락이 가능하다.

신짜장이 점멸로 붙어 3타를 내려치지만.

"띠잉-!! 띠잉-!! 아줌마 띠잉-!! 오케이 궁 잘 썼고 티몽 라인 쭉 밀고, 랄라 혼자 미달리한테 찢기지 마!"

한 명이 좀 정상적으로 행동하나 싶으면 다른 한 명이 말썽이다.

그녀들의 패턴을 알아냈다 그것은 강약약 강강강약 강중약!

직모 누나의 랄라가 서폿 미달리한테 솔킬을 당한다.

그래도 내가 살았다는 게 중요하다.

〈정의를 위해!!〉

티몽의 머리를 쪼갰던 갓렌의 궁극기다.

힐라카의 궁극기가 발동하며 한 턴을 버텼다.

조금 더 빨리 쓸 수도 있었겠지만 아무튼 살았으니 됐다.

피융!

샤락-!

AP, 아니 물리복합 이즈레알이다.

방템을 올리든 마저템을 올리든 아프게 박힌다.

그리고 그 모든 딜이 피흡으로 환산돼 내 체력을 채운다.

─트리플 킬!

앞비전으로 신짜장부터 잡는다.

갓렌이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빙글빙글 돈다.

데미지가 제법 있지만 총검의 흡혈량이 우위에 선다.

갓렌과 미달리만이 남았다.

서폿 미달리는 도망가도 위협적이지 않다.

매서운 갓렌의 반항은 엽기떡볶이가 처리한다.

나름 배인이기 때문에 탱커는 잘 잡는다.

상성 관계인 이상 시간 문제다.

그렇다, 1초라도 헛되게 쓸 수 없다.

바로 봇라인을 향해 텔레포트를 탄다.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적팀의 억제탑을 파괴했습니다!

티몽이 라인을 쭉 밀어둔 덕분이다.

억제탑까지 손쉽게 밀 수 있었다.

아니, 그거에 만족해서 집 가지 좀 말고!

"연어세요? 회귀본능 있나? 틈만 나면 집 가고 수풀에서 버섯 캐고 나는 자연인이다 찍을 시간에 포탑이나 때리세요."

"히이잉……."

유아가 유리야의 아줌마 같은 부분을 떼어 놨다면, 티몽을 하는 혜민 이분은 약한 부분을 떼어 놨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둘이 합해진 유리야 대체는 얼마나 총체적 난국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와…… 말하시면서 다 잡으신 거에요? 저희 근데 이제 뭐해요? 혼자 가셔서 바론 못 잡아요 저희."

"거기서 그냥 편하게 쉬세요."

"네?"

"게임 끝났다고요."

"???"

한타를 이기고 적진에 텔레포트를 탔다.

이즈레알은 포탑도 빨리 미는 챔피언이다.

광채의 검 효과를 발동시키기 때문인데 AP이즈레알은 추가 데미지가 훨씬 더 강렬하다.

─펜타 킬!

전설의 출현!

마무리……!

집을 막으러 온 미달리를 앞비전 총검으로 가볍게 터트린다.

무언가 뜬 거 같기도 한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상대가 부활하기 전에 넥서스를 깨서 마무리 짓는다.

『승리』

이겼는데도 현자 타임이 격하게 밀려오는 이 기분.

처음 느껴보는 게 아니다.

하고 싶은 말도 꾹 담아 넣는다.

보상을 보자 보람이 조금은 생긴다.

[게임을 승리했습니다!]

[포인트를 9569만큼 획득했습니다.]

[독재자와 같은 용병술이 성공을 거두며 50892포인트를 추가로 획득합니다.]

.

.

.

[누구도 가능성을 논하지 못했던 위업을 달성하고 말았습니다……!!]

[도합 100만 명 이상의 시청자들에게 우레와 같은 찬사가 쏟아지며 111074포인트를 추가로 획득합니다.]

'……그렇게 많이 봤어?'

포인트를 격이 다를 정도로 많이 얻을 만도 하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을 누릴 수가 없다.

솔직하게 찔리는 부분이 한두세네 가지가 아니다.

이거 혹시 오프 더 레코드 나가는 거 아니겠지?

살짝이 소름이 돋는 건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문제 안 삼는다고 해서 되는대로 내뱉었다.

"저기……요."

"아, 네……."

처음 막 만났을 때와도 같은 어색함이다.

말문도 똑같이 트는 것 같다.

엽기떡볶이의 그녀, 소라다.

'설마 이제 와서 너무했다는 건 아니겠지……?'

만에 하나 그런 소리를 한다면 많이 곤란해진다.

걸그룹 팬들의 화력에 의해 시멘트 아래까지 쳐박힐지 모른다.

오히려 호의에 가까운 마음이었다.

"오늘 정말 재밌었어요. 정식 경기도 아니고, 버스 탄 거긴 하지만…… 평생 해보지 못할 특별한 경험을 한 것 같아요."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은 건 아니다.

애초에 그럴 시간 자체가 전무하다.

하지만 말을 하면 해볼수록 알게 된다.

정말로 롤을 좋아하고, 많이 하는 듯하다.

프로게이머와 진지하게 게임을 하다니.

대부분의 팬들은 한 번씩 해볼 상상이다.

"민경 언니도, 혜민이도, 유아도 다 즐거웠어요. 그치?"

소라씨의 물음에 다른 멤버들이 밝게 웃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

온데간데없는 건 아니지만 약간은 희석됐다.

그 정도로 승리, 그리고 독특한 경험이 즐거웠다니 다행이다.

나로서도 보람을 느낀다.

소라씨가 생각지도 못한 물음을 건네왔다.

"저기 저 괜찮으시면…… 연락처 교환 가능할까요? "

"네? 연락처요?

"다, 다른 게 아니라 저희 게임할 때 모르는 것도 많고 그래서 제가 대표한다는 느낌으로……."

횡설수설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다

아무튼 말의 요지는 알아들었다.

그 정도야 어려운 일도 아니다.

흔쾌히 수락해주자 미소 짓는다.

'근데…… 나 걸즈데이 별로 안 좋아하는데.'

상병 때부터 쭉 헬로우비너스파였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추천과 코멘트& 원고료 후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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