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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연의 재림 -->
"……."
""…….""
한 마디 대화도 없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딱히 별걸 하려는 게 아니다.
게임을 한 판 할 뿐이다.
'문제는 누구랑 하냐지.'
어째서 이런 상황이 오게 되었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내가 너무 잘해서.
'적당히 잘했으면 MVP도 덜 받았을 텐데…….'
승강전과는 다르다.
정규 리그인 롤챔스는 최다MVP라는 제도가 있다.
해당 시즌 가장 돋보인 선수가 수상 받는다.
그리고 그게 나다.
혼자 똥꼬쇼 하며 고생한 보람이 있다니 다행인 일이다.
그런데 수상만 하는 게 아니라 행사가 하나 딸려왔다.
결승전이 끝나고 이벤트 매치를 뛰게 됐다.
수당도 있고 그렇다고 해서 받아들였다.
부스 안에 도착했는데 자리가 좀 거북하다.
행사를 같이 뛰게 된 동료들과 어색한 공기가 흐른다.
"저기……요."
"아, 네……."
어색한 대화가 오간다.
믿을 수 없게도 먼저 대화를 걸어왔다.
내가 친히 엽기떡볶이라는 별명을 지어준 그녀.
"말 편하게 하세요. 저보다 연상이시잖아요."
"제가 어찌 그러겠습니까? 감히 걸그룹한테."
"저번에는 말 편하게 잘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
나도 그 느낌 들었다.
왠지 모르게 초면이 아닌 듯한 느낌적인 느낌.
착각이 아닐 수밖에 없다.
'그때는 근데 게임 중이었잖아!'
게임 중에는 말이 격하게 나올 수도 있는 법이다.
이를 테면 스포츠.
몸으로 치고 박고 겨루는 과격한 종목들이 존재한다.
자기보다 윗사람이라고 태클 안 하고 그런 건 군대 축구지.
대대장이 달려나가면 막 모세의 기적이 펼쳐지고.
현실 축구에서는 당연히 그러지 않는다.
넓은 의미에서 롤도 마찬가지다.
오더를 하다 보면 강압적인 말이 나올 때가 있다.
그리고 그때 솔직히…… 니들 너무할 정도로 못했잖아!
"당시에 제가 전역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말이 헛나왔습니다. 죄송하게 승극흡느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를 한다.
나 레전설, 동방예의지국의 후손이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참을 수 있는 남자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나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냐는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지.
'전혀 공감되는 소리는 아니지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못해 놓고 욕 먹는 거 싫어하는 사람이다.
특히 롤은 못하면 욕을 먹어야 돼.
여자고 나발이고 예외는 없어!
하지만 같은 실수를 두 번 저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는 잃을 것도 많기 때문에 말을 조심하게 된다.
그런데 내 주위에는 살짝 이상한 여자들만 꼬인다.
"아, 그러셨구나……. 많이 힘드셨겠어요."
"제가 말을 골라서 해야 했는데 늦게나마 사과 말씀 드립니다."
"저희는 그때 꽤 재밌었어요. 처음으로 게임 다운 게임을 한 기분이었달까……."
"……."
쑥스러운지 발그레해진 볼이 인상적이다.
순간 인상 확 구길 뻔했다.
그러면 그때 나서서 실드를 좀 쳐주던가!
세상 서러워서 눈물 나온다.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물어보니 자신들도 당황스러워서 별다른 대처를 못했다고 한다.
'이거 그거 아니냐 그거?"
오또케 오또케!
마음 같아서는 한 소리하고 싶다.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애들한테 어찌 그러겠는가.
인성 터졌다는 소리도 듣는 나지만 지난 일에 연연하진 않는다.
본인들이 저지른 것도 아니고 타의에 의했던 거다.
무엇보다 지금 바깥 상황이 어수선하다.
〈걸즈데이 파이티이이이잉!!〉
목이 찢~어져라 외치고 있다.
부스 밖 관중들이 무서울 지경이다.
저런 인간들이 인터넷에서 나 못 잡아서 먹어서 안달이 났었구나.
'그럴 만도 하네.'
성난 군중 만큼 무서운 게 없다는 사실이 납득이 간다.
수천 명이 하나 되어 응원하고 있다.
걸즈데이는 그럴 만한 위상을 가진 인기 걸그룹이다.
참으로 황송하게도 최다MVP를 수상한 덕에 남은 한 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어깨가 무거워지는 일이다.
이를 상대하는 팀이 무려.
"근데요."
"네?"
"저…… 어때요?"
이분 혹시 유리야과인가?
뭐가 어떻다는 거지 대체?
여자 애들은 이래서 문제다.
'내가 무슨 심리학과 교수야?'
아니면 명탐정 코난이야?
지금부터 추리해서 맞춰야 돼?
진실이 언제나 하나밖에 없다면 처음부터 편하게 말을 해줬으면 싶다.
"그때 짧은 머리 별로라고 하셔서."
"……."
그래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나 보다.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과거의 나를 반성하게 된다.
근데 나 뿐만 아니라 남자라면 모두 긴 머리에 대한 환상이 있다.
'하비와 만나면서 갠취라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이르렀지.'
단발 취향 분들과 타협을 했다.
혹시 당시의 내 말에 상처를 입었던 건지.
아니면 본인이 기르고 싶어서 기른 건지는 몰라도 어깨에 살짝 안 닿을 정도로 길러진 머리가 눈에 띈다.
솔직히 머리가 짧던 길던 내 취향은 아닌데.
아무튼 당시에 서운했던 부분이 풀렸길 바란다.
그때와 달리 가성비도 엽기떡볶이급이 아니기를 믿는다.
"저 솔랭 티어도 한 단계 올렸어요. 뒤에서 배경이나 찍는 게 도와주는 것이 아닐 정도로 열심히 할게요."
"혹시…… 제가 그렇게 말했나요?"
"기억 안 나세요?"
"……."
내가 말한 걸 일일이 다 기억하고 있다고?
이분 생긴 거랑 다르게 되게 소심하네!
언뜻 보기에는 콧대 높아 보이는데.
'이쁜 여자애들이 오히려 그런 감도 있기는 해.'
범접하기 힘든 오오라 때문에 다가가지 못하고 상상만 하다.
저렇게 예쁜 애들은 성격이 고고하겠지?
근데 실제 만나 보면 달래처럼 개판이거나, 유리야처럼 띨빵하거나, 하비처럼 자유분방하거나 여러가지다.
그리고 저분은 특히 소심한 타입인가 보다.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가 다 털어놓고 앉았다.
이상할 정도로 사차원 사고를 가진 여자밖에 안 꼬이는 건 기분 탓이겠지.
"오늘은 다 잊고 즐겁게 해봐요. 아셨죠?"
"즐겁게요…?"
"좋은 추억으로 남겨야죠. 저도 그렇고 걸즈데이 분들도 그렇고요."
"아 네에……"
나는 다 이해한다.
원래 그런 게 또 있다.
가해자는 못 잊어도 피해자는 평생 안는다.
그걸 가해자 입장에서 말하니까 쓰레기 같긴 한데 기억해주는 게 어디야.
'나도 피해자야 피해자!'
이번에는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이벤트 매치의 취지에 충실할 생각이다.
괜히 승리 욕심내지 말고 즐겁게!
분위기가 달콤해진 나머지 잊고 있었다.
이제 겨우 한 명, 롤은 다섯이서 하는 게임이었다.
* * *
익숙한 BGM이 흘러나온다.
롤챔스를 대표하는 밴픽 브금이다.
해설진들의 표정이 결승전보다도 진지해 보인다?
〈카직트를 잘랐습니다. 방금 전 결승전에서 스피리트 선수가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캐리형 정글러이기 때문에 견제를 하는 건 탁월한 판단이죠.〉
김은준 해설의 말대로다.
카직트는 한 번 킬을 먹기 시작하면 무섭다.
대회 무대에서도 그럴지언데 솔로랭크에서는 더더욱이다.
그리고 현재 경기.
굳이 따지면 솔로랭크에 가깝다.
자유분방한 느낌의 이벤트 매치다.
원래라면 말이다.
〈삼선 블루는 혹시 모를 레전설의 캐리를 막기 위해 헤일을 잘랐어요. 마이도 잘랐습니다.〉
〈몰아먹기 조합을 적극적으로 견제하네요. 변수가 있다면 그것밖에 없을 테니까요.〉
-이거 이벤트 매치 아님?
-해설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함ㄷㄷ
-지금 선수들 분위기가 장난 아니잖아ㅋㅋㅋ
양쪽 모두 밴픽이 가히 본격적이다.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묻는다면 딱 잘라 설명하기 뭣하다.
어느새 이렇게 됐다는 표현이 맞다.
배경을 놓고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삼선 블루, 그리고 레전설.
사실 준결승전은 둘의 대결이었다.
파프리카 프릭스는 레전설이 있기에 성립하는 팀이다.
이 이벤트 매치는 어떤 의미에서는 리벤지 매치의 요소가 있다.
〈물론 이벤트 매치입니다. 너무 진지하게 조합 갖추면 졸렬하다고 한 소리 들을 수도 있어요?〉
〈상대가 누굽니까? 프로 선수 아니거든요~. 걸즈데이에요 걸즈데이!〉
클끼리와 진용준 캐스터의 말이 옳다.
사자는 토끼 한 마리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한다.
그런 격언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다.
이벤트 매치는 당연히 해당되지 않고 관중의 눈초리도 생각해야 한다.
-오또케 오또케!
-픽 겁나 고민되겠네ㅋㅋㅋ
-근데 저격밴한 것만으로도 굴욕 아님?
-상대가 레전설이라 어쩔 수가 없어!
본래라면 삼선 블루도 설렁설렁했을 것이다.
우리가 뭘 해도 걸즈데이는 이기지~.
아무리 프로가 한 명 보조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 한 명이 무슨 짓을 저질러도 이상하지 않은 핵폭탄이다.
심지어 전과도 하나 있다.
군챔스라 불리는 군인들의 축제.
천연의 똥싸개 걸즈데이를 데리고 막상막하의 접전을 펼쳤다.
아니, 이겨버리기까지 했다.
저 레전설이라면 또 일을 터트릴지 모른다.
〈자칫 잘못 하면 오늘 결승전의 주인공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임팩트가 남는 거 아닙니까? 생방송이에요. 수십만명이 보고 있어요. 삼선 블루 긴장 많이 해야 됩니다!〉
삼선 블루는 만에 하나 지는 순간 보통 망신이 아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빡겜도 할 수 없다.
왜냐!
상대가 걸즈데이다.
물론 승산을 따지면 한없이 유리하다.
방금 막 결승전을 우승한 팀이다.
대충 한다고 설마 지기라도 하겠는가?
그럴 가능성이 1%라도 있어서 문제다.
〈의아하게 생각하는 시청자분들도 계실 거에요. 레전설 하나 낀다고 상대가 되는 밸런스인가? 참고로 삼선 블루는 패널티가 적용됩니다.〉
삼선 블루가 똥줄을 타고 있는 이유다.
만반의 태세라면 5티몽을 해도 이기지.
만반의 태세가 아니다.
마우스가 평소와 같지 않다.
버티컬 마우스라고 오지게 불편한 마우스를 쓴다.
평소의 피지컬이 나올 수가 없다는 소리고, 이는 치명적인 실수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진지픽을 하는 것도 눈치 보인다.
부디 레전설이 빡겜을 하지 않길!
삼선 블루의 선수들은 전원 설마 하는 마음이다.
─퍼스트 블러드!
그 설마가 방심을 만든다.
파프리카 프릭스는 삼선 블루를 상대했다.
오늘 경기도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을 것이다.
인베 단계에서의 습관.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실수.
자그마한 빈틈을 후벼파 대성공을 거뒀다.
〈설마 인베 오겠어? 왔습니다. 그리고 땄어요!〉
〈심지어 킬도 레전설이 먹었죠. 이렇게 하나둘 방심하다가 진짜로 훅 가는 겁니다~.〉
두 해설자가 경기장 그 누구보다 들떴다.
그도 그럴게 보는 입장에서는 그냥 꿀잼이다.
지든 이기든 흥행이 보증이야!
걸즈데이가 이겨주는 편이 오히려 재밌기도 하다.
반대로 삼선 블루 선수들은 식은땀이 난다.
아니, 이걸 퍼블을 먹힌다고?
그래도 설마 지기야 하겠어…?
그런데 상대가 레전설이다.
피융!
챔피언도 어디선가 한 번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때는 상대가 실수도 해줬고, 조합의 힘도 있어서 이겼다.
하지만 지금 자신들이 들고 있는 챔피언은 하면서도 웃음이 나온다.
〈이벤트 매치 포함해서 LCK 첫 등장이에요. 향후 몇 년은 못 볼 수도 있습니다.〉
〈갓렌…… 나쁜 챔피언은 아닌데 스킬 구조가 간단해서 대회에서는 기용이 안되거든요.〉
-픽한 거 후회되겠다ㅋㅋ
-이즈한테 붙는 건 가능?
-레전설이 거리를 주겠냐!
-진영을 무너뜨려라~~~ㅋㅋㅋ
이벤트 매치인 걸 고려해 평소에는 안 하는 챔피언들을 꺼냈다.
선취점을 먹히자 살짝 후회되려고 한다.
저 이즈레알 크면 어떻게 막지?
〈레전설 선수는 준결승전에서 선보였던 몰아먹기 조합입니다. 팀원이 최소한만 해줘도 캐리할 수 있어요.〉
선취점을 먹으며 초반이 좋게 풀리기도 했다.
이러다 이기지 못하리란 보장이 없다.
그리고 걸즈데이도 나름 못하지 않는다.
〈평균 티어는 브론즈지만 실버도 있고, 골드 티어도 있습니다.〉
〈골드 티어요?〉
〈원딜러인 소라 선수가 롤을 굉장히 좋아하고, 자주 한다고 하네요.〉
-갓.골.드
-골리야의 빈 자리를 채워주나?
-걸즈데이 롤충이라니 호감이네ㅋㅋㅋ
-에이, 그래봤자 결국 삼선 블루가 이기겠지~
레전설이라도 이건 에바지!
그러면서도 내심 설마 한다.
레전설 쟤는 예측이 안되는 놈이다.
세상에는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는 속담이 있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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