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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연의 재림 -->
"야, 빡대가리야! 얼른 안 나와?"
현재 유리야의 집 앞에 나와있다.
전화를 걸어서 소리치자 힝힝댄다.
〈저……, 저……. 아직 시간 걸려요.〉
"감히 나를 기다리게 한다고? 뒷감당 되겠니?"
진지하게 물어보는 말이다.
너 나를 기다리게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직도 몰라?
나름대로 사정은 있었다.
〈그치만…… 그치만……시간이 너무 부족하단 말이에요오!〉
시간이 부족해서 늦는다고?
평소 같았으면 기가 찼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이해해줄 여지가 있다.
'어제 회식 자리가 오래가긴 했어.'
원래는 기껏해야 밥 한 번 먹고 끝인 회식 자리다.
굳이 친목 도모를 하기도 뭣하다.
일반적인 게임단들과 달리 고정 멤버가 아니니까.
그런데 어제는 여러 일이 많아서 길게 이어졌다.
안타까운 일이 있을 때는 텐션을 더 높여야 한다.
그런 취지에서 2차, 3차 간 탓에 귀가 시간도 늦어지게 됐다.
유리야의 변명도 납득을 해줄 수 있는 노릇이다.
안 그래도 잠꾸러기일 텐데 정오까지 잤겠지.
조금은 기다려줄 용의가 있지만.
"한 10분이면 되지?"
〈10분 안돼요……. 1시간만 주세요.〉
"너네 집 앞이라고 말 했어, 안 했어?〉
무슨 벌 서니?
집앞에서 한 시간씩 대기하고 있게?
'여자들은 이게 문제야.'
샤워하는데 5분, 옷 갈아입는데 5분.
정확히 10분이면 끝날 수 있는 준비다.
그런데 무슨 시간 단위로 놀고 자빠졌어.
〈여자는 화장도 해야 되고 여러가지 많단 말이에요!〉
"그렇구나. 그럼 미리 하면 되잖아.〉
〈미리 했는데……, 했는데……. 선배가 옷 고르라고 해서 힘들단 말이에요!〉
옷 고르는 것 때문에 늦는다고?
궁둥이 팡팡형으로 응징하고 싶다.
하지만 사실 옷 고르는 건 내가 부탁하긴 했다.
'아니, 이쁜 옷을 입어야 용서를 받을 수 있을 거 아니야.'
중요한 자리에서는 정돈된 옷차림을 해야 한다.
특히 죄 지은 게 있다면 더더욱!
내가 괜히 극성인 게 아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지친 몸을 이끌고 너네 집까지 찾아온 거야?"
〈저 때문에요…….〉
"그럼 서둘러 준비해야 돼, 안 해야 돼?"
〈해야 돼요…….〉
목소리가 쏙 들어간다.
이 조련하는 재미는 한 번 맛들면 못 끊는다.
아무튼 유리야의 집까지 찾아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선빵을 쳐야지.'
말이 나오고 대처하면 늦는다.
손해는 손해대로 보고 고생은 고생대로 한다.
말 나오기 전에 발 빠르게 유리야를 굴리기로 했다.
간만에 느낌적인 느낌이 있는 방송을 진행할 예정이다.
한 마디로 유리야의 대국민 사죄 방송.
오는 길에 렌터카까지 한 대 빌려왔다.
"나 더 못 기다리니까 일단 문 열어."
〈안돼요! 저 아직 옷 못 정했단 말이에요.〉
"왜, 빤스 바람이야?"
〈우쒸…… 저 집이라고 가볍게 입고 돌아다니진 않아요!〉
원래 집에서는 돌핀팬츠 같이 편한 복장 입는 게 좋다.
달래만 해도 집에서는 그렇게 입는다.
개인적으로는 하비한테도 한국 문화를 알려주고 싶다.
'외국에서는 보편적이지 않다고 하던데…….'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편한 신문물은 공유해야지.
절대 혹심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물론 유리야는 딱 봐도 안 입게 생겼다.
"그럼 나보고 1시간 동안 문밖에서 서성이고 있으라고? 그러다 또 경찰서에 끌려가고?"
〈아뇨 그게 아니라…… 카페 같은데 있을 수 있는 거잖아요.〉
떠올려 보니 등골이 서늘하다.
그때 정말 별별 생각이 다 들었는데.
한 번도 경찰서 따위 가본 적 없는 소시민으로서 십년감수했다.
'그 외에도 별별 일이 다 있긴 했어.'
처음 만난 게 군대에서였다.
여자 좀 소개해주지 않을래?
대학 동기한테 부탁했더니 핵폭탄을 떠넘겨 받았다.
그 인연이 여기까지 이어지다니.
심지어 굵게 계속해서 역이다니.
참 세상 일은 알다가도 모르는 것 같다.
"지금 너네 집 들어갈 테니까 문 열어."
〈저, 저 옷 못 입었다니까요!〉
"그러니까 골라줄게. 나랑 시청자들이."
〈???〉
유리야의 인생도 알다가도 모르게 된다.
나와 함께라면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을 것이다.
품평회를 열 시간이다.
* * *
갑작스런 합방을 하게 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반성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솔직히 나는 면죄부 줘야 되고 문제는 유리야.
연이은 패배의 주인공이라 민심이 좋을 수가 없다.
-방패 거꾸로좌……
-여기가 유리야 집임?
-뭐지? 딱 봐도 있는 집 같은데
딱 맞췄다.
그것도 보통 있는 집이 아니다.
집값도 한참 비싼 곳이라 너나우리는 범접할 수 없는 세상에 사시는 분이다.
'전혀 있는 집 자식 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그런 유리야다.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래서일 수도 있다.
있는 집 아니었으면 억지로라도 철이 들었겠지.
20대 초반 나이에 동화 속에서 살 정도로 참한 아이다.
"선배……."
유리야가 고개를 빼꼼 내민다.
얼굴만 내민 채 눈치를 본다.
지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롤챔스 패배의 주역 빡대가리야 등장!
-맛폰이라 그런지 느낌이 다르네
-뭐야, 정말로 유리야야?
설사 내가 괜찮다 해도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다르다.
괜히 감싸고 돈다고 느낄 수도 있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하지만 외모로는 쉽게 갚을 수 있는 시대야.'
외모지상 사회, 이쁜 사람은 득보는 세상이다.
드럽게 치사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세상의 순리다.
그리고 유리야는 이쁘장하게 생겼다.
그 사실 자체를 부정한 적은 없다.
단순히 애 같아서 여자로 안 보일 뿐이다.
하지만 But 사람은 옷에 따라 천차만별 달라 보인다.
"유리야 이리와."
"그렇게 애완동물처럼 부르지 마요!"
딱 한 마리 키우는 느낌으로 불렀는데 눈치 챘나 보다.
은근히 눈치가 빠른 아이다.
"저 없을 때 우리 애들 괴롭힌 거 아니죠?"
"어차피 내 근처에 오지도 않아."
"선배가 못된 사람이라서 주위에 안 오는 거에요."
-유리야 역공ㅋㅋㅋ
-근데 애들이 뭐임? 리야 혹시 애 있음??
-진지충 보소……
-저기 고양이 말하는 거 같은데
유리야 집에는 고양이가 다섯 마리 있다.
토마토, 먹물, 크림.
맛있어 보이는 이름을 가진 녀석들이다.
색깔 별로 분류돼 있어서 외우긴 편하다.
'나랑은 안 친하지만.'
원래 고양이들이 경계가 강하다.
그리고 내가 유리야를 때리기도 했다.
고양이들 입장에서 충분히 미워할 만하다.
"아무튼 당장 튀어와."
"싫어요……. 부끄럽단 말이에요."
"시청자들이 지금 화가 잔뜩 나있잖아! 사죄 안 해?"
-아아, 우리는 화가 났다
-잔뜩 화가 난 거시다!
-님들 뭔 일임? 왜 화냄?
-모름ㅋㅋ 일단 화난 척하셈
이럴 때만 협조성 오진다.
이윽고 유리야 마지못해 나타난다.
평소와는 달리 짧은 스커트, 샤방샤방한 여친룩.
"탈락."
"왜요! 저 아끼는 거 입은 건데."
"왜일까?"
그냥 입에서 자연스럽게 튀어 나왔다.
얘는 대체 뭘 입어야 섹시할까?
두어번 유리야의 패션쇼가 이루어졌다.
"탈락."
"트집이에요! 이 옷 이쁜 건데. 큰 맘 먹고 산 건데."
"아무것도 아니야. 하아……."
-레전설 한-숨
-왜? 나만 이쁘다고 느끼나?
-레전설 눈 높은 척 오지네
-민심 안 좋으니까 괜히 갈구는 거 같은데ㅋㅋ
괜히 갈구는 게 아니다.
그냥 마음에서 우러나온 거다
예를 들어서 달래가 싸구려 흰티를 입었다고 상상해보자.
'난 상상이 아니고 직접 보긴 했는데.'
절대 야한 옷이 아닌데, 야할 수가 없는 옷인데…… 야하게 되는 마술이 펼쳐진다.
미드 차이가 심해서 그런가?
하긴 다대기가 잘하긴 했어.
"리야야."
"왜요."
"우유 많이 먹어라."
"저 우유 많이 먹어요. 저희집 우유 배달도 시켜요~."
-그런 의미로 한 말 아니지 않음?
-진짜 모르나 봐ㅋㅋㅋ
-그래도 리야 정도면 ㅅㅌㅊ인데
-여신님과 비교하면 차이나긴 함ㅎㅎ
딱히 비교하는 건 아니다.
나 레전설, 동방예의지국의 후손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큰 사람이 별로 없었다.
'포부 말이야, 포부.'
고구려 시대 이후로 한반도를 벗어나지 못한 통탄의 역사다.
아무튼 원래 우리나라 문화가 아담하고 소박하다.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특징을 유리야도 닮았다.
"안되겠다 가자."
"네?"
"너희 집에는 그 이상의 옷이 없는 것 같으니 사러 가자고."
오늘 방송의 취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민심 관리.
들고 일어나기 전에 미리미리 선수를 친다.
예쁜 모습, 좋은 모습 보여주면 희석되기 마련이다.
어차피 롤 유저 대부분이 덜렁덜렁이라 직빵으로 통한다.
'사실 게임 좀 못했다고 사과하고 그럴 건 아니긴 해.'
상황이 워낙 특수하기도 하고, 관심도 많이 쏠렸다.
우리나라가 그런 게 있다.
별것도 아닌 걸로 갑자기 붐이 일어나서 죽일 놈 만들고.
지난 걸즈데이 파동 때 내가 당한 입장이다.
유리야는 당하지 않았으면 싶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끼는 후배다.
많이 고생한 만큼 챙겨도 준다.
차도 빌렸으니 하루 정도 놀아줘야지.
내 개인적인 심산도 하나 없지는 않다.
'몸이 허할 때 이만한 게 없어.'
오동통한 유리야 한 마리 몰고 간다.
* * *
팬들로서는 관심과 함께 걱정이 인다.
레전설이 많이 힘들어하지 않을까?
심지어 욕도 엄청 많이 먹었다.
이러다가 프로 관두고 그러면 어떡하지.
특히 까다가 팬이 된 사람들은 찔린다.
레전설의 방송에 이목이 쏠렸는데.
─그 비제이 근황.jpg
유리야 옷 갈아입히면서 놀고 있음
└…….
└얘는 진짜 예측이 안된다
└겁나 알아서 재밌게 잘 노네
└무인도에 던져 놔도 알아서 잘 먹고 잘 살 애임
여캠이랑 노닥거리면서 놀고 있다.
어휴, 레전설이 그러면 그렇지.
괜히 걱정했다가 손해 봤네!
그러면서도 눈길이 가게 된다.
여캠을 옷 갈아입히면서 놀고 있어?
달린 이상 관심이 안 갈 수가 없다.
─유리야가 진짜 여캠은 여캠이다ㅋㅋ
옷 갈아입을 때마다 졸 귀엽네
몰랐는데 비율도 엄청 좋다
└유리야가 여캠 중에 ㅆㅅㅌㅊ임
글쓴이-아 ㄹㅇ?
└캠으로만 이쁘고 현실 망인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성격도 착하고 순해서 진국임!
모든 남자들의 이상형이다.
이쁘고 착한 것.
물론 그 둘만은 아니긴 하다.
누나랑 여동생이 여자로 안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성으로서의 매력은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성숙미가 부족했다.
─유리야 H라인 스커트 엄청 잘 어울린다
은근히 힙이 있네 힙이
옷빨이 잘 산다
허리도 얇고…… 미드는 아쉽지만 나쁘진 않고
└유리야 B컵 아님? 상위 20%일 텐데
└엥, 상위 20%? 그거 완전 골드 아니냐?
└사스가 골리야……
자연스럽게 여론이 좋아진다.
눈호강만 해도 깔 수가 없다.
원래 예쁜 여자는 한국 사회에서 면죄부를 받는다.
그것이야 말로 합방을 한 취지다.
따가운 눈초리가 집중되던 유리야.
어느새 씻은 듯이 여론이 사그라든다.
그리고 다른 쪽 관심이 부풀어 오른다.
그도 그럴게 롤챔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결승전의 두 진출팀이 정해졌다.
─결승전은 결국 마진 실드 대 삼선 블루네
마진 실드는 첫 번째 우승 노리는 거고
삼선 블루는 형제팀의 복수고
나름 스토리가 없는 건 아닌데 아쉽다……
└진짜 파프리카 프릭스가 올라왔으면 흥행 보증이었는데
└나도 직관 갈지 말지 망설이는 중
└두 팀이 애매하긴 해
└잘하긴 잘하는데 약간 이름값이 없달까
모든 스포츠가 그러하듯 실력이 모든 것이 아니다.
못하는 팀도 충분히 인기 있을 수 있다.
나~는 행복합니다~ 한화 이글스의 팬들이 존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마진 실드, 삼선 블루.
그렇게 엄청난 인기팀은 아니다.
상위권 팀의 위세는 있지만 최상위권의 인기는 가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벌써부터 걱정이 인다.
요번 스프링 시즌 결승전 흥행되려나?
한 가지 찌라시가 잠잠히 울려퍼진다.
─결승전 초청 가수 걸즈데이임ㅋㅋㅋ
혹시 흥행 안될까봐 오프게임넷이 무리 좀 했나 보네
걸즈데이 보러라도 갈까?
└뭐? 걸즈데이라고?
└캬 파프리카 프릭스 결승전 갔으면 큰일날 뻔ㅋㅋㅋㅋㅋ
글쓴이-?? 왜?
└꺼라 위키- 레전설- 사건/사고 참조^^
그렇고 그런 사고가 있었다.
적어도 반갑지는 않을 구면이다.
결과적으로 인연이 빗나갔으니 잘된 일.
하지만 인생사 방심할 수 없는 법이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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